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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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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확인 버전: 2014-05-14
한국 개신교계에서는 1866년 조선에 온 미국인 개신교 목사 로버트 저메인 토머스를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로 본다. 하지만 이 사람을 순수한 순교자라고 보기는 힘든 것이, 이 사람이 타고 온 배는 상선인 제너럴 셔먼 호이기 때문이다. 이 배는 말이 상선이지 대포와 총기로 무장한 군함 수준의 무장상선이었다. 이 배에 탄 미국인들은 통상을 요구하며 20여 명의 우리 군인과 민간인까지 살해한 범죄를 저질렀다. 결국 미국인들의 만행에 분노한 평양 관민들이 배를 침몰시키고 선원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제너럴 셔먼호 사건인 것이다.
토마스는 당시 청나라 선원 이팔용 등과 함께 뭍으로 올라왔다. 당시 평양 감사였던 박규수 (1804~1877)는 이후 개화파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정도로 진보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이 선원들을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평양의 민중들이 워낙 분노하여 자칫하면 군에 덤벼들 기세라 어쩔 수 없이 선원들을 민중의 손에 넘겨주었다. 결국 토마스는 찍소리도 못하고 민중들에게 다구리 맞아 죽었다.
일부 개신교계에서 토마스가 복음을 전하러 왔다가 외세를 배척하던 당시 조선 조정에 의해 효수당한 것처럼 미화한 것이다. 달력이나 책자에서 조선군이 토마스를 참수하는 그림을 그리는 한편, 토마스의 이름을 딴 교회당까지 지었다. 총칼을 앞세워서 통상을 요구하며 조선인들을 죽이는데 동참하다가 민초들에게 맞아 죽은 침략자를 순교자로 떠받드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이후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믿기 시작하면서 개신교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개화기에 이르러 외국의 개신교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조선 개신교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기 선교사들은 특히 교육 사업이 중점을 두어, 배재학당, 연희전문학교, 이화학당 등의 미션스쿨, 숭실대학 등이 설립되었다. 또한 서울 각지에 승동교회, 정동교회 등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평양은 '조선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선 개신교의 산실이었다. 평양신학교는 조선 근본주의 개신교의 대표적인 신학교로 이름을 날렸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생경한 사실 대신 주체교로 바뀌었다.
이렇게 개신교가 확장된 이유는 양반층 입장에서는 서구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최단 루트가 개신교 선교사를 통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고 오랫동안 소외받았던 일반 민중 및 하층계급 입장에서는, 야훼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사상에 이끌렸기 때문이다. 특히나 평양은 오래전부터 권력에서 밀려난 비주류세력의 지방이었고 상인들이 활동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 교세가 확장될 수 있었다.
선교 초기부터 주류 양반계층에게 밉보였던 천주교안습와 달리 서양식 의술 등을 가져오면서 왕실이나 주류 양반 계층에 인정받았기 때문에 비교적 거부감이 덜한 편이었다. 심지어 어떤 유학자는 개종하면서 개신교를 위군위민 (爲君爲民)의 종교라고 극찬하기까지 했었다.
1.2 일제강점기 ¶
그러나 서양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신학을 강요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부 개신교 교단이 생존을 위해 친일하는 스텝을 취하자 이에 반발한 사람들이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로 이승만, 이동휘, 김규식, 여운형이 있다. 또한 아예 박헌영처럼 유물론을 받아들여 반기독교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 개신교의 일제강점기에서 절대로 빼 놓을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문제이다. 아예 교단차원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동방요배를 하기로 결정한 것. 결국 이 해방 이후 문제로 인하여 개신교 교단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장로교의 분열이 시작되었으며(해방 이후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사들이 반발하여 떨어져 나간 교단이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측 교단이다. 현재 고신대의 전신. 이후에 장로교는 연쇄분열을 시작... 성결교단같은 경우는 당시 연회록을 살펴보면 황국신민선서와 대동아전쟁의 승전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고 창씨개명을 한 모습들이 보인다. 물론 신사참배문제로 결국 교단을 자진해산하기는 했지만...
1.3 해방 이후 ¶
해방이 되고 북한에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종교가 탄압을 받자, 믿음의 자유를 찾아 평양에서 활동하였던 종교 관련인사들이 대거 월남한 역사가 있다.
남한에는 감리교 신자인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이 되면서 개신교는 보수적 기치를 내걸고 반공을 외치기 시작했다. 이승만은 은근히 불교를 탄압하였는데, 개신교회에 세금을 받지 않았던 것과 달리 사찰에는 세금을 따로 받고 승려들의 환속을 그럼에도 일부 승려들은 당시 이승만에게 아첨데레데레하며 또 다른 부처님이라는 망언까지 해댔다.(...)[4] 지금도 한기총에선 이승만을 국부라면서 조선일보나 뉴라이트와 같이 동상을 만들자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1970년대 근대화와 새마을 운동을 계기로 해서 개신교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교회들이 굉장히 근대적인 이미지를 내세워서 개신교 믿으면 서양식으로 잘 살 수 있을 거란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고 이러한 이미지는 역설적으로 기복신앙적인 면과도 결합하게 되었다. 지금도 평야지대와 도시 중심가들이 대부분 뱀파이어 헌터 십자가로 점거된 이유도 이 때문. 문제는 이게 주화입마해서 번영신학, 신사도 운동으로까지 갔다는 거지만. 그리고 이 때문에 한동안 한국의 전통문화들은 우상 숭배적이라는 이유로 외면 받았었다.
과거 전두환 정권 시절에만 하도 도시산업 선교회 등 친 노동운동적인 교회단체가 존재했으나 정부의 탄압과 친정부적 교파의 압박으로 소멸당하거나 규모가 축소되었다. 다소 예외일 수 있겠으나, 70-80년대 빈민선교활동과 두레 공동체 운동으로 대중에게 알려졌고 10월 유신 반대로 옥고를 치렀다가 뉴라이트 연합 상임 이사가 된 김진홍 목사 같은 경우도 있다. 이렇게 전체적으로 보수화가 많이 진행되어 있는 한국 개신교는 최근 들어 더더욱 신앙적인 보수화가 이루어지고 있고, '신본주의'와 '성경주의' 등의 근본주의를 외치고 있는 교단도 있다.
2 특징 ¶
2.1 기복신앙 ¶
국내에서의 개신교는 상대적으로 기복신앙적인 측면이 강한 편이다. 한국인의 정서에 적절히 어필한 이러한 믿음은 개신교가 국내에서 부흥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으나, 기복의 의미가 참된 '영적인 복'과 '현실의 물질적인 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게 된 것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기복 때문에 개신교의 다른 가치인 선행이 다소 묻히는 경향이 생겨서 이에 대한 많은 내외부적인 비판이 존재한다. 그래서 교인 수평이동 같은 일도 일어난다.
한국에서의 개신교는 종교 그 자체로서의 의미보다 정치적인 의미 등 기존의 토속신앙등과도 결부되어 "복을 내려주십시오."라는 식의 기도문을 쉽게 들을 수 있으며, 대부분의 기도의 주체는 내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되는, 상당히 안타까운 현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개신교, 오히려 지금의 개신교의 정립에 많은 영향을 주고 또한 현재 개신교가 가장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는 선교활동에는 힘쓰나 전도활동은 그 규모가 매우 낮고, 또한 사생활침해가 되지 않는 선이며, 나, 혹은 나와 관계된 사람에게 기도하는 것보다는 지적 구원자인 하나님의 존재나 그 의미를 깨닫는 활동에 힘을 쓰고 있다. 물론 그 교리 자체는 흡사하기 때문에, 생판 모르는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얀데레식의 이야기는 미국에서도 들을 수 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한국 개신교 형성 초기에 영향을 끼친 평양지방의 분위기와 결부지어서 생각해야 한다. 초기 개신교를 받아들인 길자연 장로를 비롯한 서북(평양)지역 신도들의 사상적 기반이 기복사상과 도교적 영향력을 받은 것이라는 것. 여기서 파생된 것이 통성기도, 새벽기도, 기복신앙이며 이들이 한국전쟁 당시 월남하여 기독교 주류의 자리로 들어서면서 한국교회의 특성으로 나타나게 된 것
2.2 정치성 ¶
관련 기사
전두환 쿠데타 당시에 여러 교회의 목사들이 참여한 기도회가 TV로 생중계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으며, 오히려 불교계에서 10.27 법난이 일어나는 등 저항하기도 하였다.
또한 선거철마다 특정 대형 교회의 특정 정치 세력 지지가 문제가 되곤 하는데, 주로 보수적 성향의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들이 나온다. 이러한 특정 교회의 특정 세력 지지 발언의 영향력을 통계학적으로 검토해보면, 현재까지의 선거에서 단 한 번도 유의미한 영향력을 미친 적이 없다. 하지만 의미가 있지 않다 해서 정교분리를 초월하려는 일부 교회에서 자행되는 위와 같은 행위는 지양되어야만 한다. 이는 다른 종교계에서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내용이나, 다만 개신교 쪽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좀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데에는 개신교에서 이를 일부 이단의 문제로만 치부하지 않고 전체적인 성찰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역대 대통령 중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윤보선 전 대통령,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종교로, 이명박, 김영삼, 윤보선은 장로교 신자였으며 이 중 이명박과 김영삼은 장로였다. 이승만은 감리교 신자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종교가 무어다 잘라 말하기 애매하다. 가톨릭 세례를 받았지만 퇴임 이후 시끄러운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으며 일해거사라는 별명도 생겼다. 절에서 나온 이후에는 개신교 방송인 극동방송에 출연했으며 교회에 다니는 등의 개신교도 같은 행적을 보이고 있었다.
반면에 민주화 운동을 지원하며 보수 진영 정권들에 저항하고 비판하는 교회 또한 상당수 공존한다. 대표적인 진보 진영 교단으로는 교단과 신학의 보수화에 반발하여 떨어져 나온 김재준 목사에 의해 설립된 한국기독교장로회 (한신대학교의 재단)와,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학풍을 가지고 있는 대한성공회가 있다. 대체적으로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근본주의 교단은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이고, 신학적으로 진보적인 자유주의 교단은 정치적으로도 진보적인 경향이 있으나, 신학적으로 보수라 할지라도 정치적으로 진보적일 수 있고, 그 반대도 될 수 있기에, 일반화해서는 안된다.
2.3 현주소 ¶
"안에서의 불신도 문제지만, 교회 밖에서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훨씬 참혹했다. 무종교인의 한국교회 신뢰 비율은 8.4%, 불신 비율은 56%로 부정적인 평가가 7배에 달했다.(...) 세부 항목에서 기독교인의 신뢰 지수는 4.4%, 목사는 11.5%, 한국교회는 18.8%를 기록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가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교인들만의 신앙적 게토로 변질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가톨릭과 불교에 비해서도 한국교회는 무종교인들에게 가장 믿을 수 없는 종교였다. 가장 신뢰하는 종교 항목에서 한국교회를 꼽은 무종교인들은 8.6%에 불과했다. 반면 가톨릭과 불교는 32.7%, 26.6%의 신뢰를 받았다. 기윤실은 나이별 신뢰도에서 20대에게 최저 수준의 신뢰(12.9%)를 받은 것을 언급하며, 한국교회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평가했다."
상기 뉴스링크 출처. 자료제공 기독교윤리실천운동.[12]
주지하듯이 가톨릭이 사회적으로 신뢰받고 존경받는 종교집단으로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가운데, 불교가 완만한 신뢰성장을 보이고 있음에도, 개신교의 체감 신뢰도는 급전직하하고 있다. 같은 기독교끼리 왜 이리 극과 극인지 이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시행된 통시적 설문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시사점이 발견되었다. 과거만 하더라도 개신교의 신뢰회복을 위한 첫째 과제는 봉사 및 구제활동이었으나, 2013년 현재에 이르러서는 윤리와 도덕 실천 운동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결론이 나온 것. 과거에는 개신교가 사회적으로 뭐 하는 게 있느냐는 공기취급? 반응이었다면 이제는 "너나 잘 하세요" 정도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개신교가 맛 잃은 소금이 되었다는 사회적 컨센서스 (concensus)가 모아진 것.
현대 개신교계 내에서도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있어 개신교의 위상은 (위에 인용된 기사 내용에서도 보듯이) 현시창 수준이며, 이에 대해서도 교계에서는 다음세대(Next Generation) 문제라 하여 중요한 화두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불과 2007년만 하더라도 "평양대부흥 100주년" 이니 뭐니 하여 샴페인을 터뜨리고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던 것과 대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의 분위기 변화.(...) 놀라울 것도 없는 것이 이 때만 하더라도 부흥이 실제로 핵심적 화두였었다.
한국 개신교에서 2007년은 하나의 기점으로서의 의미를 갖는 해다. 개신교의 외적 성공에 겨워 정신줄을 놓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다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로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았던 해. 서점 종교코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기독교 문제 진단서적들도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만들어진 신』 같은 무신론 관련 서적들도 이 무렵에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왔으며, 특히 만들어진 신의 경우 15만부나 팔리는 성공을 거두었다. 더불어 그 해에 한국 개신교 최악의 스캔들이라 할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등을 겪으면서, 비로소 개신교 내에서 이런 대책없는 부흥 이야기가 다소 사그라들고 암담한 현실을 직시하기 시작했다.[13]
3 교세 ¶
개신교는 한국에서는 급속도로 성장하여 훨씬 먼저 들어온 가톨릭을 뛰어넘는 신자수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불교보다는 적은 숫자이고, 개신교가 여러 교파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교파별로 세세히 나누면 도리어 단일 교파인 가톨릭이 더 크다. 그래도 개신교가 교세 자랑할 땐 가톨릭 신도들 수 까지 끌어들여 자랑한다.
이 지도는 각국의 개신교 신도 비율을 나타낸 것인데 한국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색이 칠해져 있다.[14]
3.1 지역별 ¶
위의 대한민국 각 지역별 종교인 통계에 의하면 호남지역에서 가장 강세라고 한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는, 전봉준이 민중봉기를 일으켰던 지역 답사중 지나가는 할머니께 "할머니, 전봉준이 누군지 아세요?" 라고 물었더니 "몰러, 교회나 가. 교회 안가면 지옥에 간디야."라고 대답했다는 일화도 있다.(...)[15]
물론 신도 수로 따지면 수도권 지역의 개신교 신도 수가 훨씬 많다. 반대로 영남지방에선 개신교도의 비율이 매우 낮은데, 이는 영남지방이 오래전부터 불교, 유교가 뿌리깊게 정착되어 있어서 그런 걸로 풀이된다. 또한 제주도 역시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매우 낮다. 다만 충청도는 조선 유력 사대부들이 많았던 지역임에도 개신교 세가 약하지는 않다. 수도권과 비슷한 정도.
다른 종교들에 비하면 서서히 신자수가 줄어들고 있다는 조사도 존재하는데, 1995~2005년 사이에 전체적으로 큰 폭으로 감소 하였고, 호남 지역에서만큼은 신자가 증가하였다. 그런데 위의 지도를 보면 호남권에서도 농촌 지역의 경우 개신교의 교세가 감소세로 반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흥미롭게도 전국에서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시/군으로 인천광역시 강화군, 옹진군, 전라남도 신안군, 경상북도 울릉군 등 섬 지역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엉뚱하게도 이들 지역에서는 육지처럼 교회가 난립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육지에서 경쟁적으로 교회를 개척하는 개신교 교단들이지만, 섬 지역에서는 여건상 각 교단별로 선교 구역을 분담하는 경우가 많아 대개 섬 하나에 교회가 하나 꼴로 존재하기 때문에 신도 수 확보를 위한 교회, 교단간 경쟁이 육지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4 선교 ¶
4.1 국내 ¶
극성 예수쟁이를 위시하여 보편적 사회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선교 활동이 문제시된다. 이들 예수쟁이와 일반 개신교인들의 포교활동 간의 범위가 모호해 전반적인 개신교의 선교활동이 한꺼번에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다. 태도를 막론하고 전도 자체가 타인이 종교를 믿지 않을 권리를 침해할 요소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내 역사적 특성상 종파가 매우 다양하고, 각 종파간의 차이가 성경해석부터 시작하여, 정치적 성향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극과 극에 이르는 경우도 많으므로 개신교는 어떻다고 단정하기는 곤란한 바가 있다.
이러한 선교 활동이 비기독교인들이 수용가능한 선에서, 건전한 자원 봉사활동 등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사회에서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사회의 전통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지나치게 배타적인 선교 활동의 경우 사회적인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4.2 해외 ¶
한국에서 신도가 많이 늘고 교세가 많이 확산되었기에, 짧은 역사도 불구하고 해외로의 활발한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 다음에 세계 2위이다. 조용기의 자랑에 의하면 무려 190개 나라에 3만 명이 있다카더라.
해외 선교활동에 대한 현지에서의 평가는 일반적으로 좋은 편이다. 이는 해외에서의 선교활동이 봉사라는 형태로 시작하기 때문으로서, 구호품 전달, 학교나 병원 설립 등 현지인들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부분에 도움을 많이 주고 있어 이에 대한 현지인들의 평가가 높다. 또한 이러한 선교와 봉사에 태권도, 음식, 국악 등 한국 문화 전파도 함께 이루어져 외국에 한국을 알리는 데에도 기여하는 측면도 있다.
기O소O선교회에서는 케냐와 탄자니아에 방송국을 세우고, NGO 단체로 등재되어서 그 나라에 선교 및 청소년 선도 사업도 하고 있어서 그 나라 정부에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청소년 캠프를 주최하기도 하여서 정부 국회의원이나 청소년 장관에게 감사를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것과 기독교에 대한 호감은 전혀 다르다. 봉사라는 형태의 재화와 서비스만 수용하고서 선교 자체는 거부해 버리는 경우먹튀가 흔하다고. 이로 인해 물정 모르고 들어온 선교사 중에는 충격을 먹고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안습
해외에서의 선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이 다음 단계이다. 봉사를 통한 감화라는 장기적인 플랜 없이 단기간에 성과를 거두려고 하거나, 현지의 문화와 종교를 무시한 지나치게 배타적인 포교활동이 봉사와의 밸런스를 맞추지 못하게 될 경우 큰 문제가 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문제를 만드는 것은 일부만의 문제인가? 현지인과 문제없이 지내며 조용히 헌신하는 선교사들이 다수라고 주장되며 인터넷에서 까임의 대상으로서 언급될 때처럼 절대다수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이런 선교사들조차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조급증에서 비롯된 온갖 문제들이 지속적으로, 꽤 많은 숫자로 발생하고 있다. 사건사고면은 선행보다 기억에 강하게 남기 마련이다.
한편, 이러한 국내외에서의 선교 및 포교 목적의 봉사 활동을 국내의 신도들에 대한 과시, 보여주기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봉사 활동을 위해서는 돈과 물자와 사람이 필요한 법이니 당연히 홍보야 필요하기 마련이지만, 이런 비판은 봉사에 대한 홍보가 실제보다 지나치게 부풀려지는 경우가 왕왕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검증되지 않은 사실들은 인터넷과 거리의 전단물 등을 통해 무차별로 확산되어 문제를 부풀린다. 해외에서 선교과정에서 일어난 수두룩한 사건들이 이를 증명하며, 이에 관련된 책으로는 〈개독교를 위한 변명〉,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등의 목사나 선교사에 의해 쓰여진 내부증언담이 있다.
교회들이 이런 잘못된 행동들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지 않는 것 또한 비난받아야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일부만 그렇고 대부분은 좋은 소리 듣는다면 좋은 쪽만 홍보하고 선전하며 잘못은 모른 척 하는 문제를 넘기면 안 된다.
대한민국 개신교는 더 이상 국내에서 교세 확장 등을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이미 교세가 늘어날 만큼 늘어났으며, 교회는 너무 많아서 경쟁이 심하다. 출생률 감소 추세와 맞물려서 교세의 성장이 둔화되었거나 마이너스로 접어들었다는 분석. 이것이 자연스럽게 해외로 눈을 돌리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선교를 무조건 반대하는 시각도 옳지 않다. 어찌 보면 종교 집단의 당연한 활동이며, 불교나 천주교나 원불교도 선교하고 봉사단체 얼마든지 보낸다. 그런데 문제는 외국에 선교목적으로 나가는 사람 중에 한국에선 수십여 년 사이 50년대 대비 40년 만에 10배 이상 급속도로 교인이 증가하는 유례없는 성장세를 거두었으니 해외에서도 이와 같은 성공이 반복될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각국에는 그 나라의 종교가 있으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이슬람 국가에서 그렇게 했다간? 코로 할랄푸드를 먹는다. 코랄푸드
순례목적으로 기독교 성지를 방문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성지들은 대부분 이스라엘이나 이슬람 국가들의 영토다. 터키에선 중요한 성지들을 경비원들을 통해서 지켜준다곤 하지만, 터키의 동부는 보수적인 이슬람 동네이다. 다른 곳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곳에서 찬송가를 부르면서 울부짖으면서 기도어그로를 하는 것은 주위의 이목을 끄는 일이며, 결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한국어니까 모를 것 같은가? 손에 들고 있는 것과 분위기만 봐도 뻔 하게 알 수 있는 일이다. 하물며 거기 가서 이슬람 땅이라고 땅밟기를 해대니...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똑같이 하려나 극과 극은 통하는 법
예루살렘이나 시나이 산과 같은 다종교의 공동 성지에서 새해 첫날 찬송가 불러대며 울부짖는 건 민폐의 결정판. 개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국가적인 이미지 손실이다.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종교의 자유는 있으나,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하면 안 된다는 것. 예를 들어 지하철 포교는 법에 어긋나므로 하면 안되는 것이다.
5 봉사활동 ¶
국내외로 수행하는 봉사활동의 상당수가 개신교 관련 봉사 단체에서 이루어진다. 그 봉사활동의 투명성, 순수성, 의도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있고, 선교를 위한 봉사 자체를 금기시하거나 싫어하는 사람도 있으며, 반대로 지나치게 개신교의 봉사활동을 폄훼하고 매도하는 과격한 주장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모든 종교의 모든 봉사든 장사든 외부 활동의 궁극적 목표는 선교다. 봉사라고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선교라고 대놓고 하든가. 불교는 자비의 실천으로, 이슬람교는 가난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는 꾸란의 구절에 따라, 개신교 또한 예수가 주창한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
하지만 그 규모나 봉사 내역으로 보아 자원 봉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봉사를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선 없어서는 안되는 단체들이므로 지나치게 무시하면 안 된다. 해외에서 도움 받는 어려운 사람들은 자신들의 아픔과 배고픔을 도우는 이들을 종교를 떠나 고마워한다. 이 경우는 개종을 억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고, 당연히 자발적으로 개종해야 한다. 조급증 마냥 선민사상에 찌들어 19세기 제국주의 선교사들처럼 먹을 것 던져주면서 사람을 가축처럼 여기는 이들도 있는 게 문제
도움 받는 쪽에서도 속으로 비웃으며 겉으로만 귀의하는 척하고, 실컷 물질적으로 얻어내곤 내몰차게 외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동남아에서 선교사를 하는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자신이 그 나라로 처음 갈 때 아이 어른할 것 없이 한국어로 기도를 잘 한 후 '기도했으니 빨리 달라'며 물질적인 것만 요구했다. 즉 '기도하고 받아먹는다'는 인식을 뿌리박히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걸 바꿔놓았더니만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고 다른 교회에서 뭘 준다고 하자 거기로 죄다 가 버렸다고 한다.(...) 물론 기도나 예배는 나오고 종교는 여전히 이슬람교라고 답변하는 게 대부분이었다고.먹튀 돋네
6 교포 사회에서의 역할 ¶
해외 각지의 교포 사회에서는 교회 본연의 역할에 더하여 교인들 간의 커뮤니티 역할도 한다. 특히 미국의 경우 대부분의 한인 교포들이 개신교 신자들이다. 새로 이민을 오게 되는 사람들이나 유학생들이 현지에 적응하는 데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교회를 나가지 않던 사람도 해외에서 교회를 다니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것은 목사 역시 마찬가지여서, 한국에서는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이민 가서 먹고 살 게 없으니 신학대학에 들어가 대충 공부하고 목사로 먹고 살려는 사람들도 부지기수. 생계형이니 비난하긴 어렵지만 이런 목사가 엄청난 신심을 가지고 있다고는 도저히 못하겠다.
그러나 이민 사회에서 교회가 비대하게 커지면서, 비신자들에 대한 배타성이나 교회 내부에서의 힘싸움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1992년 4월 29일 LA 폭동 당시 일부 교회들은 한국인이 자기들 교회의 교인이 아니면 모른 척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교회들 세력으로 나누어져 갈등을 빚은 적도 있다. 흠좀무
대도시에서는 한인교회가 지나치게 많아져서, 포교가 아니라 기존에 교회에 다니던 사람에게도 '우리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교인 빼앗아가기가 매우 성행하고 있다. 세계구급 국제망신 갓 이민 온 이민자나 유학생이 눈에 띄면 서로 자기 교회에 끌어들이기 위해 갖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 건 차라리 낫다. 어디까지나 전도는 그렇게 하는 게 기본이니. 하지만 다른 교회 사람을 자기 교회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건 율법식으로 말하면 범죄이며 신약성경에서도 직접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행위이다.
이런 무분별한 교회의 성장은 이민 1.5세대나 2세대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 부모가 영어를 잘 못하기에 종교적인 관점보다는 한국인들과의 교류를 위해 교회에 나갔다면, 바쁜 부모보다 교회에서 또래들과 어울리며 자란 아이들은 신심이 깊은 대신(?) 잘못된 지식을 주입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를 들면 스님이 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사탄이 쓴 책을 대체 왜 읽냐"(...)면서 다른 종교에 대한 심한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이스터 버니나 산타클로스, 핼러윈, 성 패트릭의 날처럼 지역적인 관습에 대해서도 우상숭배라며 너그럽게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핼러윈은 원래 켈트족 축제이고, 성 패트릭의 날은 아일랜드의 가톨릭 전파를 기념하기 위한 날이기 때문. '담배 피우면 지옥 간다'는 말도 있는데, 담배를 피우면 몸에 해로우니 피우지 말라는 것이 상식적인 논리이지 성경에도 없는 대목에 지옥을 갖다붙이니 어불성설이다. 물론 담배를 핌으로서 신체가 지옥의 고통을 체험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에서는 재일교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쿄 신오쿠보에서 은근히 교세가 있는 편. 그러나 일본 현지인들에게는 반응이 없다. 애초에 일본인들은 기독교를 잘 모른다.
7 목사 임명에 대한 논란 ¶
목사로 임명받는 과정은 각 교단 별로 차이가 있지만, 정통적이라고 여겨지는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으려면 신학 대학과정(4년)을 이수하거나, 신학 대학원과정(3년)을 이수 해야하고, 자신이 소속된 교회에서 전도사로서 봉사를 하여야 한다. 전도사는 다른 국가에는 없는 한국만 가지고 있는 직책이다. 미국과 같은 경우는 youth pastor나 assistant pastor로 칭하는데, 미국의 경우는 교회에서 사역을 공식적으로 하는 사람을 pastor라고 부른다. 대다수의 교단은 미혼인 사람은 목사로 임명조차 하지 않으며 전도사로서 봉사를 시키는 것은 해당 인물이 적합한 인물인지 평가를 위해서다. 이는 바울의 서신(디도서 1장, 디모데전서 3장)에서 나온 감독으로 합당한 자에 대한 설명을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교단 등록에 아무런 제한이 없단 것을 이용, 기존 교단들의 이름과 비슷한 교단을 만들어 그럴 듯하게 장로교니 감리교니 침례교니 하지만 전혀 관련이 없는 자체적인 교리와 시스템을 가지고 사이비 단체로 발전한다든가, 혹은 돈을 노리고 자체적으로 목사를 임명하는 프로그램을 돌리기 시작했는데, 그로 인해서 이른바 '속성'으로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두 달은 양반이고 3일 속성, 7일 속성도 가능하다. 심지어 인터넷만으로도 국가에서 인정한, 합법적인 목사가 될 수 있다. 물론, 기존 교단들은 이러한 교단과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기와 같은 범죄를 조금 더 쉽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방향으로 목사 '타이틀'을 취득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재미있는 건 정작 신교를 만든 거라 할 수 있는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목사에게 특별한 권위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상당수의 종교개혁자들이 "모든 성도가 사제이며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만민사제설을 주장하여 당시에 사제에게만 허락되어있던 세례, 예배 같은 성례를 모든 사람들이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마르틴 루터의 말에 따르면 "목사는 성도 중에서 성도를 이끄는 지역리더일 뿐, 어떤 계급이나 권위적인 존재가 아니다."라고 한다. pastor라는 어원 자체가 양을 치는 목자다. 실제로 초대교회에 존재했던 teacher, overseer, bishop, deacon, elder, apostle등의 감독직들은 '기능적'인 의미에서 감독자일 뿐, 신분 자체는 여전히 양이라는 것을 신약 성경 전반에 걸쳐서 보이고 있다. 또한 성경에서도 위에 있는 사람은 섬기라고 되어 있듯이, 목사에게 특혜 및 권위를 지나치게 부여하는 행위는 교리 상으로도 위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