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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선교사였던 “리빙스톤”은,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되기 위해, 의사면허를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망대로 아프리카로 건너가 그 곳에서 “산 돌”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아프리카의 영원한 소망이 되었습니다. 본문을 통해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합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성전의 머릿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성도들이 당하는 그 고난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장하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본문에서 표현한 “돌”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중요한 주제로 등장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축복을 가로챔으로, 졸지에 아버지의 집을 떠나 외삼촌이 있는 하란으로 가던 중, 밤에 길가에 있는 돌을 하나 취하여 그것으로 베개를 삼아 잠을 잤습니다. 이 때, 그의 꿈 속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몹시 놀라고 두려워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베개로 사용했던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곳을, “하나님의 집” 곧 “벧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을 해서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이 마실 물이 없자 모세를 향해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라며,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야곱과 모세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계신다”는 겁니다. 본문에서 베드로가 전하는 “산 돌” 역시, “하나님께서 성도와 함께 거하시는 신령한 집으로 세워진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돌”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하나님의 신실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성도된 우리가 의지하며, 안식할 처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 안에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 속에 넣으려는 것은, 코끼리를 가정용 냉장고에 넣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사 55: 8 - 9을 보시면,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하게 엎드리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세주로 믿고 구원받은 것은, 최고의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 모두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것은 아닙니다. 살후 3: 2을 보시면, “또한 우리를 부당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시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니니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듭나야 하며, 우리의 믿음을 계속해서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러기에, 엡 4: 13을 보시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산 돌”이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며, 함께 동행하심으로, 하나님의 보배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합니다. 성도인 우리가 보배로운 산 돌이 되기 위해서는 5가지 악덕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는 믿음으로 살게 된 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상담학 용어 가운데, “성인 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내면은 아직도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사람의 특징은, “이기적이고,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고, 쉽게 토라지고, 쉽게 상처받거나, 정서적으로 불안한 행동”을 합니다. 이와 같이, 외적으로는 신앙생활을 오래 해서 믿음이 좋은 거룩한 성도같지만, 실제적으로 내면에 있어서는, 어린 아이의 신앙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성도들의 특징은, 말씀대로 살려는 몸부림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5가지 악덕을 버리라고 합니다. 무엇입니까?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도로 살 때, 우리의 푯대가 되는 것은,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겁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리에게는 버릴 것이 있고, 또 사모해야 할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이 본문에서 베드로가 말한 5가지 악덕입니다. 먼저 “악독”은, 단순한 악의와는 달리 모든 종류의 사악함으로, 마음으로 남을 해하려는 무자비한 악을 말합니다. 남을 해하려는 무자비한 마음으로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 겁니다. 다음으로 “기만”은 미끼, 덫, 올가미 같은 것으로 상대를 속여서 올무에 넣기 위해 미끼를 놓고 기다리는 겁니다. 마치, 사냥꾼이 덫을 놓고 사냥감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상대방이 덫에 걸리게 하여, 상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며, 또, 상대의 무지함이나 나약함을 교활하게 이용하는 겁니다. 다음으로 “외식”은 겉과 속이 다른 겁니다. 겉으로는 믿음 안에서 형제요 자매인 것처럼 웃는 얼굴과 좋은 말을 하지만, 그 뒤에는 악독에 가득찬 비수를 품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상대방이 그의 이중적인 태도를 알지 못하고 무방비의 상태로 다가올 때, 기습적으로 비수를 꽂는 겁니다. 이것을 신앙적인 면에서 보면, 거짓된 경건이며,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거짓된 우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다음으로, “시기”는 열등감에서 나오는 행동으로 상대가 잘되는 것을 방해하는 겁니다. 즉, 상대의 능력과 번영, 명성, 혹은 성공적인 수고에 대해 한탄하는 행위와 마음입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이렇게, 마음으로만 상대를 저주하며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잘되는 것을 방해하는 적극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끝으로, “비방”은, 비난이며 상대를 헐뜯거나 그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겁니다. 여러분, 성도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 이러한 5가지 악덕을 버림으로, 하나님이 택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보배로운 산 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2 - 3절을 보시면,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합니다. 성도인 우리가 보배로운 산 돌이 되기 위해서는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아야 합니다.
앞에서 5가지 악덕을 버리라고 말한 베드로는 이어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합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 무엇입니까? 이는 본문 3절에서 언급된, “주의 인자하심”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도록 하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을 잘 드러냅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젖을 먹으며 자라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공급받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3절에서 “맛보았다”는 것은 “경험했다”는 겁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을 하며, 무엇을 논하겠습니까? 성경 전체를 읽어보셨습니까? 그 속에 흐르는 줄기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사입니다. 그리고, 이 구속사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갓난 아기는 본능적으로 젖을 빨고 차차 커갈수록 젖의 맛을 알고 먹습니다. 이와 같이, 진리를 아는 사람은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시 34: 8을 보시면,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합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만을 전적으로 사모하며 먹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히 5: 13 - 14절을 보시면,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고 합니다. 미국의 법률가였던 “올리버 웬델 홈즈”는, “불타는 장작더미도, 퍼붓는 저주도 이 책을 태워버리지 못하고 이것을 더럽히지도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그가 그토록 극찬한 책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영생을 주려고 우리에게 주신 겁니다. 그러기에,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펼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아야 하며, 삶 속에서 경험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게 됩니다. 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아는 것이, 성경 공부의 목적이어야 하며, 성경 읽기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통해,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하심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보배로운 산 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4 - 5절을 보시면,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합니다. 성도인 우리가 보배로운 산 돌이 되기 위해서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본문에서 성도들에게 구체적으로, 예수님께 나오라고 합니다. 간단한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그가 수식한 말은,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입니다. 성도인 우리가 나가야 하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신지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한 겁니다. 이렇게까지 베드로가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기위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과 은혜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4절 끝에 있는 “예수께 나아가”입니다. 벧전 1장 중간에서 본문인 2장 앞부분까지 많은 명령들이 나옵니다. 보시면, 벧전 1: 13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하며, 15절에서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합니다. 또, 17절에서는,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하며, 22절에서는,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합니다. 이러한 명령들의 끝이 본문 4절에 나오는 “예수께 나아가”입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께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있는 곳을 성전으로 만들어야 하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성도들의 사명이며, 열매입니다. 이어, 본문 5절에서 베드로는,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고 합니다. 교회의 기초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 돌”입니다. 첫 번째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여, 불순종의 죄를 범했지만,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모든 요건들을 충족하셨고, 또 우리에게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 제가 무엇에 의지하여 이 믿음의 여정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라며, 물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약의 십자가로 답하실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얼마나 또, 어디까지 사랑하는 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이기에,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해, 본문 5절에서,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사도 베드로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외인이었던 우리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며, 또 존귀한 자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존귀한 자가 된 우리가 이 땅에서 묵묵히 감당해야 할 사명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신령한 집이 되어야 하고,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불안합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끝날 기미가 없이 계속되자, 일부 유럽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단하자는 말이 나옵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정복되는 것은, 우크라이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로 인해,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 북한에게 그들이 품은 것을 이룰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물가는 계속해서 치솟는 데, 국회는 이에 대해 답을 주지 않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이렇게 힘들고 불안한 가운데, 우리는 2024년 사순절을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합시다. 세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속히 종전되도록 기도하며,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역시 속히 종전되고, 그들이 타결점을 찾도록 기도합시다. 또, 국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의 경제를 위해 기도합시다. 사순절을 맞아 우리의 산 돌이 되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로 꾸준히 나가심으로, 거룩한 제사장의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