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강원도에 있는 고등학교 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도서관에 서있는 나무 한그루에 아이들이 적바림한 글들이 달려있었습니다. 식구를 떠올리며 쓴 글도 있었으나 눈길을 끈 것은 ‘지금하고 싶은 일’을 적어 배로 접어놓은 것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진로와 관련된 활동을 많이 접해보기”와 “피아노 치기”라 써놨습니다. 끌리는 것이 피아노치기인 듯합니다. 한 아이는 “① 잠 많이 자기”와 “② 친구들이랑”과 “잡아서”라고 적혀놓은 것으로 보아 “친구들이랑 날 잡아서 어디를 가거나 놀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한 아이가 쓴 글에는 “주에 되돌아봤을 때 돌아오기 싫은 마”까지 보입니다. 아마 ‘다음 주에 되돌아봤을 때 돌아오기 싫은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하겠다’는 말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 글을 보면서 ‘그렇게 바람직하게 살지 않아도 되어’란 생각이 든 건 제가 청개구리 같은 마음보를 가진 탓이겠지요? 또 한 친구는 “행(강원도 탈출)”과 “만큼 공부해보기”라고 적어놨습니다. 앞에 글은 문맥으로 보아 강원도를 벗어나 여행을 하고 싶다는 것 같습니다. 뒤에 글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부를 얼마큼 해보겠다는 건지 제 머리로는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혹시 “바라는 만큼 공부해보기”였을까요 아니면 “성적이 쑥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공부해보기”였을까요? 그대는 이 친구가 뭐라고 했다고 생각하세요?
처음에 ‘강원도 탈출’이라는 글만 보고는 아찔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우물 안에 개구리”가 되지 말라고 “너른 바다로 나가라”고 부추기는 우리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우물을 벗어나 내와 강을 거쳐 바다로 가는 개구리가 우물을 말갛게 지키는 개구리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민물에 사는 개구리가 짠물로 나가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설혹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것을 개구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다행스럽게도 저 친구는 강원도를 벗어나 여행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적은 것이어서 제가 드린 말씀은 군걱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해야 하는 이 친구들이 써놓은 글에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하는 걱정 어린 생각과 “하고 싶은 것과 누리고 싶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배어 있었습니다. 잠 좀 많이 잤으면, 바라는 바 없이 놀아봤으면, 공부만 해야 하는 이곳을 떠나 훌훌 날아가고 싶다는 속내를 보면서 이토록 아이들을 책상 앞에 앉아있도록 몰아넣으면서도 앞날을 지켜주지도 못하는 어른이 제가 딱했습니다. 저토록 가둬두고 몰아치기보다 제 마음대로 하도록 풀어놓을 때 제 앞가림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지지 않을까요?
첫댓글 맞아. 지금 나처럼ㅎㅎㅎ☺️
씨익~ 흔들흔들 ㅎㅎ
살아있기에 오락가락 흔들흔들 하지
흔들리되 휘둘리지 않으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