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가운데
가장 고민이 되었던 성경은 사사기였습니다.
그래서 만나는 동료 목사님들에게
"사사 시대에 모세 율법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며 혹시 연구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묵묵부답.....
사사기에 모세 율법의 흔적이 없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실로 경악할 일이요, 충격적이었습니다.
아무생각도 없는 사람들에게
질문의 답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모세와 광야시대, 그리고 여호수아 시대에 그렇게도 넘쳐났던 모세 율법의 흔적이
사사기에 거짓말 처럼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다리가 끊어진 것입니다.
역사는 이어지는데 다리는 끊어졌습니다.
여호수아가 죽고 난 후 첫번째 사사가 된 웃니엘부터 그 이름도 유명한 기드온과 그리고.....등등
심지어 마지막 사사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였던 사무엘에게서 조차 모세 율법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사들 가운데 모세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고.....
사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모세 율법에 근거한 훌륭한 신앙을 가졌던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수 많은 사사들이 세워졌지만
아브라함의 언약 신앙과 모세 율법의 영향을 받은 사사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언약의 땅, 가나안.....
그 땅을 아브라함 언약의 복으로 받은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세 율법은 고사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조차
한번도 언급되지 않는 약 350여년 동안의 사사 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계속 되었지만.....
언약의 맥이 끊어진 사사 시대를 어떻게 이해를 하여야할찌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사사들 가운데서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없었고.....
더더구나 아브라함의 언약 신앙을 가진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사 시대는
오직 생존을 위한 안타까운 몸부림만 있었습니다.
마치 야수들이 우글거리는 정글의 밀림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죄로 인한 고통을 받고,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은혜인지조차 개념이 없었던 사사 시대였습니다.
가나안의 신을 섬기는 것이 죄였고.....
미디안과 아말렉과 블레셋의 압제에서 풀어 주는 것이 구원이었습니다.
이러한 죄와 구원의 개념에는
아브라함의 언약 신앙과 모세 율법의 법령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모세오경이 존재하였다는 흔적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사사 시대는
모세 오경이 모세의 저작이 아니라 후대의 작품이라는 의혹을 갖게 합니다..
당시에 히브말은 있었지만
히브리 문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고고학적 근거는
더욱 모세오경의 모세 저작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용한 "모세의 글"이라는 것은
모세가 기록하였다는 의미보다 모세에 관한 글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고 기록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신약의 성경을 예수님의 복음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직접 기록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사 시대에 모세오경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나의 고민은
신념으로라도 모세 오경의 모세 저작을 믿어야 할 지경입니다.
사무엘에게서조차 모세 오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
모세오경 보다 사사기가 먼저 기록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갖게 합니다.
사사 시대에 안식일과 유월절과 희년 등 절기를 지킨 기록이 없고...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사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언약을
약속의 기업으로 받은 것이라는 신앙을 찾을 수 없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사시대로부터 다윗 시대를 지나 요시야 왕 십팔년에
비로소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예루살렘에서 처음으로 여호와 앞에 유월절이 지켜졌습니다.
다윗은 물론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도 유월절을
모세의 율법대로 지키지 못하였던 것은 언약책의 내용을 알지 못하였고.....
모세 율법의 언약책이 요시야 18년 성전을 수리하다가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시야 때 언약책이 발견되기 전.... 그 오랜 세월 동안.....
이스라엘 땅에는 모세 율법의 언약적인 신앙의 가르침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다윗이 솔로몬에게 유언하였고
아사왕 때는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는 지가 오래 되었다고 하였으나
이사 왕의 아들 여호사밧 왕 때는 제사장들을 통하여 율법을 가르쳤으며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율법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시야 왕 때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왕상2:1-3)
☞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는 지가 오래 되었으나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대하15:3-4)
☞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치되
그 모든 유다 성읍들로 두루 다니며 백성들을 가르쳤더라(대하17:9 )
☞ 여호야다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왕관을 씌우며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왕하11:12 )
☞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왕하22:8 )
열왕기 기자는 율법책을 발견한 요시야 왕을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고 말씀하였습니다.
☞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왕하23:25)
요시아 왕은 남쪽 유다 왕으로
바벨론의 침공으로 멸망하기 불과 몇 십년 전의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 기간에
아브라함의 언약 신앙과 모세 율법의 흔적을 쓰게 되면 아주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실로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이스라엘이 멸망하는도다"는
호세아 선지자의 탄식이 들여옵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께서 세운 사사들 마저
모세 율법의 정체성을 전혀 갖지 못하였으니.....
그 유명한 기드온은 에봇을 만들어 우상으로 섬겼으며.....
삼손은 모세 율법이 금한 불레셋 여자와 결혼을 하였으며.....
입다는 기생의 몸에서 태어나 사사가 되었고 양이나 짐승이 아닌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하여
딸을 번제로 드리는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입산은 사사가 되어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을 두었는데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보내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타국에서 여자 삼십을 데려왔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방탕아를 두 아들로 두었고....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법꿰마저 불레셋에게 빼앗겨 다곤 신당으로 옯겨지는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사무엘은 두 아들 요엘과 아비야를 사사로 세웠지만
그들은 사무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여
결국 사사에서 쫓겨나고 사무엘로 하여금 왕을 세우지 않으면 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모세 율법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는 사사 시대는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가운데 가장 큰 난제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할 떄마다 .....
하나님은 에돔과 암몬과 미디안과 동방 사람과 아말렉과 블레셋 사람을 들어
이스라엘을 침약하며 약탈하게 하였습니다.
고통이 극에 달하여 울부짖을 때
사사를 세워 이스라엘을 압제에서 풀어주는 방식의 구원역사가 되풀이 전개되었습니다.
사사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사사기의 흐름을 살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의 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길 때....
하나님은 유브라데강과 티그리스강 유역을 다스리던 메소포타미야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8년 동안 고통 받도록 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그나스 사람 갈렙의 동생 유다 자파의 사람 웃니엘을 사사로 세워
구산 디사라임을 물리치고 40년 동안의 평화를 주었습니다.
그 후 모압왕 에글론은 암몬과 아말렉과 조약을 맺고 연합하여 18년 동안
이스라엘을 짓눌렀습니다.
그 때 베냐민 지파 사람인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 사사로 부름받아
에글론과 그의 군대를 물리치고 80년 동안의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에훗이 죽은 후 아낫의 아들 삼길이 이스라엘을 이끄는 사사가 되었는데
삼길은 소를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이고 이스라엘을 건져내었습니다.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가나안의 왕 야빈을 들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에브라임 지파의 여선지자 드보라를 사사로 세웠고.....
드보라는 바락을 세웠는데 바락은 납달리 지파, 스불론 지파 1만명을 이끌고 전쟁에 나아가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습니다.
그 후 7년 동안 미디안 사람들이 아말렉과 동방 사람이 함께 올라와서
이스라엘 괴롭히며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에 므낫세 지파의 사람 기드온이 사사로 세움 받았는데
기드온은 3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미디안 연합군을 완전히 물리쳤습니다.
기드온은 왕이 되기를 거절하였고...
기드온이 살아 있는 40년동안 그 땅에는 평화가 깃들었습니다.
그 후 잇사갈 지파의 사람 돌라가 사사가 되어 23년을 다스렸고...
그 다음에는 므낫세 지파 사람인 야일이 등장하여 22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활동하였습니다.
입다는 갓 지파 출신의 사사이면서 암몬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기생의 아들이었으나 큰 승리를 얻었으며, 그릇된 서원으로 인해 자기 딸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쳤으며 ....
다스리는 6년 동안 평화가 있었습니다.
입산은 베들레헴의 유다 지파 출신으로 7년 동안 평화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아들 30명을 두었으며 그들을 위해 타국의 여자 30명을 데려왔고,
딸 30명을 타국으로 시집보냈습니다.
엘론은 스불론지파 출신의 사사로
1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하였습니다.
압돈은 에브라임지파 출신의 사사이며,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이 70필의 나귀를 탔다는 기록이 있고 8년 동안 평화를 유지하였습니다.
삼손은 단지파 출신의 사사이며 블레셋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40년 동안 속박당했으며 20년 동안 평화를 유지하였습니다.
나실인이었지만 성결한 생활을 하지 못하였고 블레셋 여자 들릴라의 꾀임에 빠져 수욕을 당하였지만
죽을 때 다곤의 신당에서 성대한 제사를 드리는 날에 신전의 사람들과 수 많은 블레셋인을 죽였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왕이 없으므로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가운데
40년을 치리하였던 엘리는 홉니와 비느하스가 법궤를 빼앗기고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며
그 후 사무엘이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웠으나 뇌물을 받아 판결을 굽게 하여
백성의 원성으로 쫓겨나게 되었고....사울을 왕으로 세우게 되었습니다.
사사 시대로부터 남쪽 유다의 요시아 왕 18년에 유월절을 지킬 때까지
수 백년 동안 이스라엘 땅에 그 같은 유월절을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로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이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언약의 복으로 받은 가나안의 이스라엘 땅에
모세 율법의 기초 위에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세워지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 구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성경에 대해서 무엇을 아는가"라는 의혹의 질문을
성경대로 진실하고 정직하게 답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