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이 3800억원을 투자해 새만금 산업단지에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76㏊, 23만평) 규모의 스마트팜(smart farm) 단지를 세우기로 했다. 새만금에 투자의 물꼬를 트는 것인 데다, 대기업이 농업 관련 산업에 본격 진출하는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몇 해 전 동부그룹이 대규모 유리온실을 지어 토마토 재배 사업을 하려다 농민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 사업을 접은 바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새만금개발청에 따르면 LG CNS는 LG전자·LG이노텍·LG화학·LG MMA·LG하우시스 등의 계열사와 함께 '스마트 바이오파크(Smart Biopark)'라는 이름의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를 세우겠다는 사업 계획서를 지난 2월 새만금개발청에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스마트팜이란 정보통신기술(ICT)이 접목된 '지능화'된 농장을 말한다. PC, 스마트폰 등으로 작물의 생육 환경을 원격 제어하는 기초적 수준의 스마트팜도 있지만, 빅데이터를 통해 최적의 생육 환경을 알아서 찾아주는 최첨단 스마트팜도 있다. 그래서 IT 서비스 기업인 LG CNS가 이 사업을 주도한다.
LG그룹은 새만금 단지 안에 스마트팜 연구개발(R&D) 센터와 재배 시설, 가공 및 유통시설 등을 세울 계획이다. 전체 부지 76㏊ 가운데 26㏊는 R&D 등에 쓰이고, 나머지 50㏊에선 토마토, 파프리카 등을 재배할 계획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R&D 센터에서 연구한 스마트팜 기술을 재배지에 실제로 적용해보고 이를 시설 개발에 활용한다는 구상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설은 농민 설득 작업을 거친 뒤 내년부터 2022년까지 단계별로 착공할 예정이다. 국내 농민들과 경쟁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생산된 농산물은 전량 해외로 수출할 계획이다.
LG그룹은 새만금 단지를 통해 한국형 스마트팜 장비 및 솔루션을 개발해 판매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LG그룹의 각 계열사 특성을 활용하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가령 IT 서비스 기업인 LG CNS는 스마트팜 온실에서 전체 제어 프로그램과 빅데이터 분석을 맡고, LG전자는 환경 제어기와 액체 상태로 작물에 영양을 공급하는 '양액 공급기' 등의 제조를 맡는 식이다.
또 LG이노텍은 실내 환경 센서와 CCTV, LED 등을 제공하고, LG화학과 LG MMA는 온실 제조용 다층 폴리카보네이트와 아크릴을, LG하우시스는 알루미늄 섀시 프레임을 제공한다.
대기업 중 LG그룹은 일찌감치 미래 산업으로서 농업 분야의 성장 잠재력을 인지하고 사업 진출을 준비해왔다. LG전자는 작년 말 생활가전 사업을 담당하는 H&A 사업본부 산하에 농업 분야를 담당하는 그린하우스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지난 4월엔 LG화학이 농약, 종자, 비료 등을 만들어 팔던 농자재 회사인 동부팜한농(현재의 팜한농)을 인수했다.
LG그룹이 농업 분야에 뛰어드는 데 통과해야 할 최대 관문은 농민들의 반발이다. 동부그룹 경우처럼 이번에도 농민들이 '대기업이 농업 분야에 진출한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군산 지역 간담회에서는 인근 농민들이 LG CNS 측의 사업 설명을 듣는 것을 거부했다.
LG그룹 측은 "농산물을 생산해서 파는 게 목적이 아니라 농작물 생산을 위한 시설 개발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논리로 토마토, 파프리카 생산자 단체 등 농민들을 설득하고 있다. 농작물 재배는 어디까지나 농업 관련 연구·개발을 위한 테스트 베드(test bed·개발한 기술의 적합성을 시험해보는 환경)이기 때문에 농작물을 생산해 수출하려던 동부팜한농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민들과 직접 경쟁하면서 농업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농업 관련 산업에 진출하는 것이니만큼 성공할 경우 스마트팜 단가 하락과 국산화
등 농민들에게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만금개발청도 LG그룹의 대규모 투자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LG 측이 부지로 새만금을 고른 것은 대규모 용지 확보가 쉬운 데다 항만과 항공, 철도 등이 인접해 수출에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새만금개발청 관계자는 "다른 기업에도 새만금 투자에 대한 좋은 신호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