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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궁극이
64편 5절-8절: 저희는 악한 목적으로 서로 장려하며 비밀히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보리요 하며 저희는 죄악을 도모하며 이르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저희를 쏘시리니 저희가 홀연히 살에 상하리로다 이러므로 저희가 엎드러지리니 저희의 혀가 저희를 해함이라 저희를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5절: ‘저희는 악한 목적으로 서로 장려하며 비밀히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보리요 하며.’ 이는 하나님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사람만 의식한다는 거다. 그러나 성령의 눈을 가진 사람은 악한 자들이 어디에서 어느 종교적 노선을 타고 들어와서 함정을 파고 있는 것인지를 알고, 그것이 사단 마귀 악령의 짓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안다.
일반사람들은 주일날 성경 찬송을 들고 걸어가는 것을 보면 ‘저 사람이 교회에 가는구나’ 라고 하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은 ‘저 사람이 성경 찬송을 들고 감리교회에 가는구나. 성결교회에 가는구나. 장로교회에 가는구나. 천주교회에 가는구나. 이상한 데로 가는구나’ 이렇게 본다. 그런데 우리는 더 올라가서 교회에서 하는 설교를 들으면서 ‘이 목사님은 속에 어느 정신이 들어서 저 말이 나오는구나’ 이걸 봐야 한다. 목사님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건지, 하나님의 생명과를 따먹고 육신은 죽어가지만 속사람은 죽지 않을 사람으로 성장시키고 이 면을 살리는 말씀을 하는 것인지를 구별하고 분별해야 한다. 말씀을 이치적으로 깨닫게 하는 건지, 충성봉사를 많이 하면 복 받고 잘 산다는 말을 하는 건지 분별하고 구별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교회 목사님이던 이름 있는 신학을 나온 게 문제가 아니라 목사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진리본질에 정확한 신앙사상의 말이어야 한다. 여기에서 벗어난 다른 말을 한다면 아무리 유명한 신학교를 나왔다고 해도 ‘그 배움의 노선, 그 신학의 노선이 어느 길로 들어가고 어느 길로 나가는구나’ 하는 것을 설교를 듣자마자 알아야 한다.
성경에 사단, 마귀, 악령, 용, 뱀 등이 나오는데, 이것들은 한 마디로 성도들의 바른 신앙을 망치게 하고 방해하는 것들인데, 이런 자들의 이름이 다양하다는 것은 그 수법이 그렇게 다양하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지금 누구를 붙들고 어느 길에다 함정을 팔까? 성경에 보면 마귀는 뭘 잘 들고 나오느냐? 뿔을 들고 나오느냐? 흡혈귀 모습으로 나오느냐? 성경구절을 들고 나온다. 그러면 뱀도 마귀와 같은 놈인데, ‘뱀’이라고 할 때는 뭘 의미하는 거냐? ‘뱀’ 하면 무슨 느낌이 드느냐? 뱀은 어디로 잘 들어가느냐? 구멍으로 잘 들어간다. 구멍만 있으면, 즉 허점만 보이면 그리로 잘 들어간다. 사람의 허점을 잘 노린다는 거다.
뱀은 혀가 둘로 가라졌는데, 뱀의 입 안쪽에서는 원래 하나의 혀인데 앞부분에서 둘로 갈라졌다. 이는 두 말을 하는, 즉 거짓말을 상징한다. 사람도 거짓말쟁이는 자세히 보면 혓바닥이 두 개가 날름거린다. 이걸 볼 수 있어야 한다. 혓바닥이 두 개라고 하는 것은 이 말을 했다 저 말을 했다 하는 것을 말한다. 즉 거짓말을 한다는 거다. 뱀의 혓바닥을 두 개로 만들어 놓은 것은 거짓말쟁이 사람을 알려주려는 거다.
‘용’ 하면 뭐냐? 용이 어디에 많으냐? 용이 어디에 사느냐? 용이 중화요리 집에 사느냐? 용을 본 사람이 있느냐? 계:에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요,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 용이 나오는데, 왜 이런 표현을 하는 거냐? 이게 다 교회를 말해주는 건데, 예를 들면 목사님의 명함에 ‘무슨 장, 무슨 장’ 하고 죽 써놓는 것은 이게 용의 성격이구나. 용은 모양이 어떻게 생겼다기보다 용은 면류관을 많이 썼으니까 자기 자랑이 많다는 거다. 그리고 대가리가 많으니까 이것은 조직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되니 많은 뿔이 생기는 거다. 즉 권세가 큰 것을 말한다. 이게 용의 성질이다. 이게 용이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이런 용을 말씀해 놓은 것은 용을 들어서 성도들이 용과 같은 성질의 신앙사상을 가진 자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다. 그러니까 거기에 홀리지 말아라 그 말이다. 홀리면 너는 잡아먹히고, 이용당하고, 심판을 받고 죽는다는 거다. 우리가 영의 눈을 가지고 신앙 사상적으로 보면 지금도 사단, 마귀, 악령, 용, 뱀의 활동이 교회 안에 많이 있다. 사람 속에 그 성질이 들어가서 ‘누구를 붙잡고 함정을 같이 팔까?’ 하고 있다. 성경이 아니면 이런 걸 모른다.
사단 마귀의 함정은 그 수단이 아주 교묘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눈으로는 못 보고, 종교적인 눈을 가지고도 못 보고 진리본질의 성령의 눈이라야 알 수 있다. 그래서 육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사단 마귀의 함정에 거의가 넘어간다. 그리고 한 번 넘어가면, 즉 사단 마귀의 함정에 빠지면 그 다음에는 이 사람을 자기들의 목적에 부려먹는다. 이를 위해 감쪽같이 함정을 파는 거다. 함정을 판다는 것은 자기가 하는 일을 남이 모르게 한다는 거다. 이런 일은 일반사람도 모르고, 종교인들도 모른다. 영적인 눈을 가진 자라야 안다.
‘비밀히 올무 놓기를 함께 의논하고 하는 말이 누가 보리요 하며.’ 이 말이 사단 마귀가 예수 믿는 성도를 향해서 하는 말인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을 향해 하는 말인지? 사단 마귀는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을 속여먹을 필요가 없다. 안 믿는 사람들은 영이 죽어있기 때문에 사단 마귀로서는 이들로부터 얻어먹을 게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사회에서 일을 할 때는 자타에게 유익이 있어야 한다. 예수 믿는 자기의 몸은 자기 몸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이다. 예수님의 몸을 가지고 일을 한다면 손의 수고에 대한 대가가 들어와야 한다. 무슨 일을 해도 예수를 믿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야지 세상에서 부자 되기 위한 목적으로 일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교회에서 예수이름으로 하면 세상 모든 일이 만사형통이 된다고 하는 말은 금물이다. 이런 말은 예수를 잘 믿게 하려는 말 같으나 결과적으로는 예수 믿는 사람을 구복주의 기복주의의 함정에 빠뜨리게 된다.
구복주의 함정에 어떤 교인들이 잘 빠질까? 세상 복을 받으려고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잘 빠진다. 어느 목사는 ‘하늘을 향해 입을 크게 넓게 벌려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 라고 한다는데, 이게 무슨 짓이냐? 이런 말을 듣고 그 말을 따라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다고 하니 그러고 앉아있는 교인들은 멍텅구리다.
그러면 신비주의 함정에는 어떤 교인들이 잘 흡수되고 빠질까? 현세주의 함정에는 어떤 교인들이 잘 빠질까? 고행주의 함정에는 어떤 교인들이 잘 빠질까? 그리고 현재 궁극교회 교인인 자기는 무슨 주의 신앙이냐? 이 네 가지의 기독교 함정 중에 자기는 어느 신앙사상의 함정에 빠지기 쉽겠느냐? 아무 데도 안 빠질 자신이 있느냐? ‘복 복’ 하는 기복주의에는 누가 잘 빠지겠느냐? 가난한 사람이다. 신비주의에는 어떤 사람이 빠지기 쉽겠느냐? 성령을 받겠다고 기도를 많이 하고, 무슨 체험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빠지게 된다.
진리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내가 이런 면에 허점이 있구나’ 이걸 알게 된다. 자기가 자기의 허점을 대강은 느낀다. 그런데 자기가 지금 어떤 함정에 빠져 있으면서도 이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허우적거리면서 살려달라고 외치는데 정신적 사상적으로 세상의 물에 빠지면 자기가 여기에 빠진 것을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오려고 하지도 않고 꺼내달라고 외치지도 않는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이런 차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자기가 진리본질의 노선으로 가고 있을지라도 평소에 자기의 마음이 어디를 강하게 향하고 있느냐? 어느 쪽으로 강하게 작용을 하느냐? 이걸 반드시 알아야 한다. 왜냐? 자기가 강하게 향하고 있는 쪽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신앙사상 면에 악한 자들이 악한 짓을 하고서도 ‘누가 보리요’ 라고 말을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하는 짓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은 의식하지 않고 사람을 의식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이 절대로 모를 거다’ 라고 하며 악한 짓을 하는 거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그들의 말의 근원을 신앙 사상적으로 분석해 보면 ‘그들의 정신과 생각과 마음이 어디에 뿌리를 박고서 어디로 가는 거다’ 하는 것을 익히 알아야 한다. 그들의 수단 방법을 익히 알고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서 그 사람의 소원 목적이 세상에 뿌리를 박고 말이 나온다면 그 말의 결과가 어디로 가는 거냐? 세상으로 나간다.
생명과를 먹은 지식의 설교는 이치가 분명하고 나오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지혜지식적으로 깨달아지고, 도덕성이 바로 서고, 이해타산 평가성이 분명해진다. 그런데 거짓 종들의 선악과 따먹은 차원의 설교는 그 소원과 목적이 세상이다. 미래적으로 세상적으로 잘 될 것을 말을 한다. 이 생각은 말씀에 뿌리를 박은 게 아니라 세상에 뿌리를 박고 세상에서 잘 되기를 바라는 거다. 거짓 종들은 성경을 들고 말을 할지라도 전부는 세상에 속한 것에 목적이 들어가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신앙자들이 한두 명이냐? 엄청나게 많다. 깔려있다.
6절: ‘저희는 죄악을 도모하며 이르기를 우리가 묘책을 찾았다 하나니 각 사람의 속 뜻과 마음이 깊도다.’ 묘책을 찾았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힌 묘안을 생각해냈다는 거다. 그러면 악한 자들의 깊은 속에서 기발한 아이디어 하나를 찾아낸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한다. 이게 뭘까? 이단자들이나 거짓 종들이 교인을 속일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뭘까?
목사가 교회에서 불교경전을 말하면 교인들이 목사라고 하겠느냐, 중이라고 하겠느냐? 중이라고 한다. 뭘 사용하니까 중이라고 하는 거냐? 불교경전을 쓰니까 중이라고 한다. 그러면 중이 교회에서 성경을 읽어놓고 설교를 하면 뭐라고 하겠느냐? 중 목사라고 할 거다. 교회에서 이런 짓을 하는 게 기발한 아이디어일까?
‘악한 자들’이란 진리에서 이탈된 자를 말한다. 이들이 교회 안에서 교인들을 속이려면 뭘로 속이겠느냐? 거짓 목사가 뭘 가지고 말을 해야 교인들이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까? 성경을 들고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는 거다. 이게 악한 자들의 기발한 아이디어다. 교회 안을 외모와 외형을 잘 꾸며서 분위기를 잡아주고, 악기와 노래와 춤으로 눈요기를 하게 하고, 구호를 외쳐서 마음 속에 바람을 집어넣고, 이성적 감정과 흥분을 일으키게 하는 이것이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난 것이라고 하는 것 등이 기발한 아이디어다.
어느 교회에서는 예배 중에 어떤 장로가 강단에 천사가 나타나서 눈에 보인다고 외치면 이 말을 듣는 교인들은 자기들 눈에는 천사가 보이지 않는데도 ‘주여, 주여’ 하며 감탄을 하며 탄성을 지른다던데, 이런 짓을 하면 그 교회 교인들이 보이는 쪽의 신앙을 추구하겠느냐, 보이지 않는 정신 사상이 바로 서는 쪽의 신앙을 추구하겠느냐? 이런 교회는 분명히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자들을 내세워서 간증케 하고, 은사 받은 것을 자랑하게 할 것이다. 그러면 이런 교인들은 틀림없이 ‘보았네. 꾸었네. 들었네. 뛰었네. 날았네. 추었네. 굴렀네’ 하는 쪽으로 나가게 될 것이니 마귀의 간교한 꾀에 다 넘어가고 만다. 지금 기독교 전체적으로 이런 것에 얼마나 많이 빠져있는지?
우리 궁극교회 교인들은 혹시 그런 분위기 속에 들어가면 안 빠질 자신이 있느냐? 사실 그런 데는 앉아있을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런 자들의 말을 들으나 안 들으나 유형교회에 들어갔을 때 그 교회 안에 액세서리가 많으면 나와 버려라. 분위기 조성을 해서 사람의 감정을 일으키게 하려는 것은 다 마귀장난일 뿐이다. 목사님이 설교하는 강대상 뒤의 벽에 붙인 십자가 안에 빨간 불을 넣어서 분위기를 잡는 것도 못 쓴다.
7절: ‘그러나 하나님이 저희를 쏘시리니 저희가 홀연히 살에 상하리로다.’ 악한 자들이 하는 짓은 성도들의 진리운동을 방해하고, 복음운동을 방해하고, 구원운동을 방해하고, 이룰구원 운동을 방해하는데, 세상 속화된 기독자들이 볼 때는 그들이 꼭 성령의 불이 붙어서 하는 복음운동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원자 하나님께서는 그것이 자타의 이룰구원을 방해하는 악한 짓임을 아시고 그들에게 진노를 하신다. 이 진노하심은 갑자기 되는 일이라서, 즉 그들의 계획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이 갑자기 당하는 일이기 때문에 얼마나 놀라고 황당하겠느냐? 악한 자들이 이런 심판을 받는 모습은 이들은 하나님 앞에 바로 살고자 하는 것은 없었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다는 증거가 되는 거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에게 갑자기 쏘는 것이 어떤 사건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들고 세상을 자랑하고 이것을 따라가는 자들을 갑자기 쏘신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 이런 자들은 각오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저희를 쏘시리니 저희가 홀연히 살에 상하리로다.’ 악한 자들은 생명 길 좁은 길을 가는 신실한 하나님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순교를 당하기까지 해도 이들을 참 신앙자로 보지 않는다. 교회 안에서 사단 마귀의 격동을 받은 거짓 종들은 자기들이 하는 종교적인 사업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것이니 만사형통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에게 부르짖는다. 그러나 그런 자신들에게 갑자기 재앙이 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의 운동이 최고로 부풀어질 때까지 그냥 두는 것은 참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적 수입을 위한, 즉 영인의 성장과 영능의 실력을 위해서다. 부풀어 오르는 것은 풍선처럼 때가 되면 반드시 터져버린다. 그러니까 커진다고 해서 ‘아, 진짜다’ 라고 보지 말아라. ‘안에서 뭘로 커지고 있는 건지?’ 이게 중요한 거다.
밤하늘을 보면 그동안 안 보이던 별이 아주 밝게 빛이 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게 뭐냐? 인공위성이다. 그러면 시골의 노인 분에게 ‘저게 뭐냐?’ 하고 물으면 별이라고 할 거다. 그래서 ‘별이 아니다’ 라고 하면 이 노인 분이 이 말을 믿겠느냐? 과학의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인공위성을 진짜 별이라고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진리말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거짓적인 말을 받은 자기에게 ‘그것은 비진리요 거짓말이다’ 라고 하면 절대로 아니라고 우긴다.
인공위성은 진짜 별보다 지구와 더 가까이 있기 때문에 밤이 되면 진짜 별보다 더 빛이 난다. 어떻게 보면 진짜 별과 비슷하다. 그런 것처럼 세상에서도 거짓 것이 더 호화찬란하고 이름을 얻는다. 그렇지만 거짓은 아무리 빛이 나고 이름이 나도 참 별은 아니다. 또 보면 성경에 별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진다고 했는데, 어떻게 보면 ‘인공위성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을 말하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든다. 그래서 알고 보면 이런 게 우리로 성경을 많이 깨닫게 한다.
8절: ‘이러므로 저희가 엎드러지리니 저희의 혀가 저희를 해함이라. 저희를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본문의 악한 자들이 엎드러지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저희의 혀가 저희를 해함이라.’ 혀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말을 가지고 매를 자청했다는 거다. 아무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으면 괜찮을 것인데, 자기가 모르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으면 괜찮을 것인데 안다고 말을 해서 그렇다는 거다.
그러면 모르는 상태에서 무슨 말을 했겠느냐? 목사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세상을 만드신 창조의 원인과 동기가 없는 설교를 했으니, 즉 세상 넓은 길, 사망 길, 심판 길로 교회를 인도했으니 이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정 반대되는 길로 나가게 한 것이다.
‘저희를 보는 자가 다 머리를 흔들리로다.’ 사람들이 악한 자들의 운동 속에 사단 마귀의 교활한 수단 방법이 있음을 봤기 때문인데, 역사적으로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심을 봤고, 또 여전히 악한 자들의 뒤를 이어가는 악한 자들의 완악함과 이들의 결과를 봤기 때문에 이것을 보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드는 거다. 역사적으로 한 번 봤으면 되는데 그 뒤를 또 따라가는 자들이 있고, 이들 역시 또 그 일을 하다가 또 당할 것이니 그걸 보면서 머리를 흔드는 거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말세 때에 노아 홍수 때와 같고 소돔 고모라 때와 같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말씀을 모르는 기독교인이 어디 있느냐? 그런데도 기독교회가 또 그렇게 된다. 뭘 몰라서 그런 거냐? 역사를 몰라서 그런 거냐, 역사는 알지만 역사 속에 들어있는 자기의 정신 사상적 성격이나 성질을 모르기 때문에, 즉 계시를 모르기 때문이냐? 후자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도 소돔 고모라 때의 정신을 몰랐기 때문에 소돔 고모라가 당한 것과 같은 심판을 받았는데, 신약시대에도 또 그런 일을 하고 또 당하는 거다.
믿는 우리는 사람의 정신상태가 어디로 흐르는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나가는 교회의 신앙정신이 어디로 흐르는가를 봐야 하는데, 먼저는 목사님의 가르침이 진리본질에 맞으면 따라가고, 그렇지 않으면 따라가지 말아라.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