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이날은 동방 교회의 신자들과 함께,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은총을 가득히 채워 주신 그 성령의 감도로 성모님께서 아기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이다.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성모님께서 세 살 되시던 해에 성전에서 하느님께 성모님을 바쳤다고 전하여 온다. 이날은 본디 6세기 중엽 예루살렘 성전 가까이에 세워진 새로운 성모 성당의 봉헌을 기념하는 날이었는데,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선포하였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효자가 되기도, 효자를 두기도 어렵습니다.
효자와 불효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옛날에 어느 고을에 효자로 소문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웃 고을에 또한 불효자로 이름난 아이가 살았다고 합니다. 불효자로 부모로부터 여전 꾸중을 듣는 그 아이는 그 소리가 너무도 듣기 싫어서 매일 집을 나갈 궁리만 하고 부모님의 잔소리에도 싫증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신도 효자 소리를 들으며 효자가 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효자로 소문난 아이를 찾아갔답니다.
“얘야! 나는 저 아래 고을에 사는 아이란다. 너보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큰데도 나는 집에서 매일 꾸중을 듣고 산단다. 그리고 사람들이 나보고 불효자라고 말들을 많이 한단다. 그런데 너는 인근에서 효자로 소문이 자자한데 어떻게 해서 효자노릇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나에게 가르쳐 주면 어떻겠니?”하고 사정을 얘기했답니다.
그러자 효자로 소문난 아이가 싱긋이 웃으며 대답하더랍니다. “그건 아주 쉬운 일이고 간단한 일이야. 나는 특별히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어. 그냥 저녁이 되면 아버지 이부자리를 펴고 주무시게 하지, 그런데 아버지가 주무시러 이불 속으로 들어오실 때 추우시면 좋지 않잖아 그래서 내가 먼저 이불 속에 들어가서 따뜻하게 이부자리를 녹여드려. 그리고 아버지가 들어오시기 전에 얼른 나오면 아버지가 따뜻하게 주무실 수 있잖아. 그리고 아침이 되면 아버지가 옷을 입으실 때 차가운 옷을 입으실까봐 아버지가 일어나시기 전에 먼저 아버지 옷을 입어 따뜻하게 녹이고 있다가 따뜻해지면 일어나시기 전에 얼른 벗어놓지 그러면 아버지가 따뜻한 옷을 입으실 수 있게 하는 것 밖에 없어 그냥 그래”
그래서 불효자로 소문난 아이는 가만히 생각해보니 효자가 되는 일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당장 아버지 이부자리에 들어가 차가운 이부자리를 제 체온으로 따뜻하게 녹여놓았답니다. 그런데 그만 따뜻해져서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아버지가 들어오셔서 ‘버릇없이 아버지 이부자리에서 잠들었다.’고 무지하게 혼났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버지 옷을 녹여드릴 요량으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일어나셔서 옷을 찾으시더랍니다. 꾸물거리다가 옷을 벗어놓는 시간을 놓쳐버린 아들은 허겁지겁 옷을 벗어드리는 바람에 버릇없이 아버지 옷을 입고 있었다고 또 한 바탕 야단도 맞고 종아리도 맞았답니다. 효자 되기가 정말 어렵다고 그러더랍니다. 그리고 다시는 효자가 될 결심을 하지 않더랍니다.
옛날부터 효자는 ‘효자를 둘만한 부모 밑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부모도 효자 아들을 둘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모를 정성껏 모시는 기본 정신을 잘 살려서 부모의 뜻을 잘 받드는 것이 참된 효자라고 합니다. 부모의 뜻을 잘 살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얼마나 조심스러운 것인지 부모를 모셔보지 못한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나도 부모를 모시고 살아봐서 조금은 알고 있지만 완전히 알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부모가 되어서 자식들이 내 뜻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것도 또한 알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의 효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부모의 뜻을 따라 살지도 못하고 부모를 사랑하는 노력을 기울이지도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냥 건성으로 신자라고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느님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답답한 노릇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준행(遵行)하는 사람이 당신의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 뜻으로 아무리 효성을 다한다고 하여도 부모의 뜻과 맞아야 효성을 다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잘 한다고 하여도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소용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헤아려 살아야 할 것입니다. 효자 되기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효자 두기도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