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가 된 주거 공간
글 : 최현희 인스테리어 CSO
현실이 된 “이불 밖은 위험해”
중세 시대 흑사병으로 인한 농노제 몰락 사건 그리고 총.균.쇠에서 다루어졌던 세균으로 인한 세계 역사의 변화 사례를 떠올리게 하는 2020년이다.
팬데믹으로 발전한 코로나19는 앞으로 우리의 삶과 의식 그리고 문화를 크게 바꿀 것으로 보인다.
사업 실무현장에서는 무엇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재택근무 또는 비대면 디지털화의 가속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한다. 또 다른 차원에서는 탈세계화 등과 같이 산업 근간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러한 변화들은 가깝게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인식과 정서 그리고 의식주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확실히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우리에게 익숙했던 약속들에 잠깐이나마 ‘괜찮을까?’ 생각해보게 되지 않았는가? 코로나는 이불 밖, 집 밖, 나아가서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했던 사회활동들을 점검하게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했다.
슬기로운 집콕 생활 - 주거 공간 산업의 급성장
의식주 변화 중에서 주거 공간의 중요성은 단기간 내 빠른 속도로 높아진 상황이다. 타자의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 인식이나, 사회 전반의 재택 문화 활성화로 가속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주거 공간, 즉 리빙 산업 전반의 성장은 최근 확연히 눈에 띄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소상공인 매출 정보를 제공하는 한국신용데이터 최근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매출이 가장 많이 상승한 품목이 가구로 나타났다. 부동산 시장의 거래 둔화로 매출 하락을 겪었던 가구 및 리모델링 업체인 한샘의 경우, 코로나 정점이었던 2020년 2분기에 영업익이 172% 증가하며 어닝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백화점 및 유통업계에서도 다른 부분들은 모두 역신장했으나, 리빙 관련 품목과 명품의 매출만 늘어난것으로 보고되었다. 불과 3년 전인 2017년, 1인당 GDP 3만 불 시대의 대표 수혜 분야로 언급되었던 리빙 산업이 코로나19로 인해 예상보다 더급격한 속도로 본격 성장 중인 것이다.
언택트 온라인 구매 문화 증대로,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 리빙 앱들은 더욱 성장세가 높다. 대표적인 집꾸밈 커머스 어플리케이션인 오늘의 집은 2020년 6월달 월 거래액 1,000억을 달성하며, 1년 반만에 5배 성장을 기록했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최근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홈 인테리어 등에 대한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에 집에 있는 시간이 증가하고, 홈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졌다는소비자가 34%를 기록했다.
순식간에 도입된 재택근무나 원격 학습문화와 함께, 아직 개발되지 않은 코로나 백신과 계속되는 재확산 우려로, 한번 집콕 생활에 적응한 사람들의 인식과 행태는 쉽게 이전처럼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전망이 많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은 당분간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늘어날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그동안 소홀했던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 집이라는 공간을 통해 형성해온 관계들 그리고 추억들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롭고 싶지는 않은 ‘홈하비, 홈루덴스족’의 출현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두기나 재택근무, 자발적 격리 등에 들어가게 되면서, 확실히 집에서 예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영화관 대신OTT(인터넷으로 영화, 드라마 등 각종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더 이용하면서 넷플릭스 유료 사용자는 2분기 1,000만 명 증가하였으며, 온라인 쇼핑은 역대 최고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며, 업무가 메신저로 많이 처리되기 시작하면서, Zoom과 같은 클라우드 업체들 또한 상한가를 기록했다. 매일 가던 헬스장 대신 집에서 홈트(home+training, 홈트레이닝) 영상을 보며 운동하는 사람들도 늘어, 미국 운동복 업체인 룰루레몬은 디스플레이형 거울을 이용해 홈 트레이닝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기업 미러를 5억 달러에 인수했다.
집은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기본적인 거주 기능 외에, 이제 잘 놀고 재충전을 잘할 수 있는 여가 및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기대도 더해지고 있는것이다. 실제 SSG 닷컴에 따르면, 최근 40% 이상 매출이 증가한 부문은 홈 인테리어 분야 외에도, 홈 엔터테인먼트와 홈 피트니스, 홈 가드닝 상품 등이다. 이들 모두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기록하며, 매출이 100%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로 인해 대중교통이나 사람들이 많은 외부공간을 피하고, 역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집에서라도 보다 건강하고 활기 있는 삶과 시간을 보내기 위한 상품이 대거 소비되고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뉴스가 있었다. 반일 불매 운동 중에서도 일본 게임 회사인 닌텐도의 ‘동물의 숲’이 코로나 초반부,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한 것이다. 5월 어린이날과 가족의 달 특수성도 있었겠으나, 사람들이 ‘집콕’ 함으로써 생긴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외부 활동 불가로 인한 단절,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발생한 고립감에서 연유하는 우울감)를 달래는 역할로 선택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동물의 숲’에는 경쟁이 없다. 동물의 숲의 특징 중 하나는 일상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는 조경의 원리와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발매된 버전은 무인도로 이주한 플레이어가 무인도를 원하는 대로 가꾸는 것이 스토리의 전부다. 게임 속의 시간은 현실과 똑같이 흐르며, 내 마음대로 집을 짓거나 낚시를 하고 정원을 가꾼다. 무언가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목표나 미션, 경쟁은 전혀 없다. 즉 가상 공간에서 조경 활동을 하며 느끼는 즐거움 그 자체만으로도 현실을 대체한 평화로움을 충족시켜주는 느낌을 준다.
동물의 숲의 또 다른 특징은 ‘혼자가 아닌 같이’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최대 8명까지 멀티 플레이가 가능해, 친구를 섬에 초대하거나, 친구의 섬에 놀러갈 수 있다. 함께 산책하고 함께 얘기하고, 가끔은 내가 꾸민 섬을 자랑하거나 하는 것들이 전부이지만, 플레이어들은 이를 두고 ‘최고의 휴양지 같은 게임’이라며 빠져든다. 단순하면서도 심심한 게임이 이토록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고 또 가꾸고 싶어 한다는 욕구의 반증이 아닐까. 비록 게임 속의 공간일 뿐이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조경 활동을 원하고 있고, 가끔은 또 다른 사람들과 활동과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관광이 예전보다 어려워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의 공간 이동과 나눔을 통해, 치유와 교류의 부족분을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에서 일정 부분 충족 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큰 덕이 아닌가 한다.
집에서 더 풍성해진 놀이와 볼거리 - 디지털 여가 문화의 확대 가능성
코로나19로 인해 문화 관광 산업은 직격타를 맞았다. 일시적으로 출입국이 어려웠던 국가들도 다시 교류의 문을 열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쉽게 해외로 여행을 가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까운 나들이로 다중 집합 시설인 영화관이나 박물관, 미술관에도 선뜻 가기 전에 한번쯤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잠정적인 보균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혹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게 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고립된 외로운 개인들이 게임 동물의 숲을 즐기고, 방방콘(방구석 방탄소년단 콘서트)에 열광케 되기도 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6월 14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방방콘은 한국과 미국, 영국, 일본, 중국 등 총 107개 지역에서 75만 6,600여 명이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고 동시 접속자 수 75만 6,600여 명은 약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오프라인 스타디움 공연의 약 15회에 달하는 기록으로, 전 세계에서 진행된 유료 온라인 콘서트 중에서는 역대 가장 큰 규모였다. 티켓 판매 예상 매출은 25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고되었다. 게임산업이나 대중문화산업에서는 온라인 특수를 누리고 있는 듯한데, 이러한 흐름은 예술의 전당 SAC on Screen이나 영국국립극장 NT Live, 앤드루로이드 웨버의 The Show must go on 등으로 이어져, 다양한 국가와 분야에서 시도되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기에 홀로 살 수 없다. 또한 치유와 교류의 도구로서 놀이 그리고 문화는 여전히 우리에게 너무나 유의미하다. 이러한 점에서 집콕 생활로 인해 필연적으로 진화 중인 놀이와 문화의 디지털화는 우리나라의 산업 측면에서는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미 K-Pop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 VR, AR 등으로 대변되는 실감 콘텐츠 역시 높은 5G 네트워크와 고성능 디바이스 보급률 측면에서 주도적으로 개척할 가능성이 있는 분야다.
라이프 스타일 플랫폼과 우리들의 ‘집’
개인의 주거 공간은 물리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의미 패러다임 측면에서도 더 많이 변화할 것이다. 미래학자인 토머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장은 “미래의 집은 단순히 집 이상의 역할을 하며, 사람들이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이제 집은 그의 말처럼 단순한 거주공간을 넘어, 쉼터이자 일터로 또한 각종 취미생활과 여가를 즐기는 공간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어쩌면 인류에게 집은 본래 많은 역할을 수행해온 공간이었는지 모른다. 어느새 치열해진 우리의 삶의 결에 따라 다른 많은 것들에 비해 집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매우 기능적이고 목적적으로 많은 의미를 잃어온 것이 아닐까. 특히 한국의 집은 밤이나 주말시간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휴식을 취하는 물리적인 공간으로 전락해왔다. 아파트를 선호하는 문화가 빠르게 정착하면서, 정원을 가꾸거나 자연 바람과 익숙하게 맞부딪히는 순간들과 어느새 멀어진 주거 풍경이 한국적인 것으로 이미지화 된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공간의 큰 변화의 축은 많은 기업들이 장기화할 것으로 예측되는 재택근무에 의해 도심 내 업무 공간이나 상업 시설을 복합 주거 공간으로 변모시킬 가능성이 있다. 직주 일치 또는 직주 근접의 공간에서 커뮤니티 기능을 강화한 놀이 기구, 운동기구 또는 색다른 볼거리 등의 제공 기능이 편의성을 높인 공간 내로 들어올 확률이 높아 보인다. 전시관이나 미술관에 집적되어온 문화 예술 작품들도 직주 공간 단위별로 분산 파편화 되면서, 사람들에게 보다 쉽고 편하게 또한 심리적으로 안전하게 자신의 효용 가치, 즉 교류와 치유 역할을 강화하게끔 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외신에서 주목받았던 공공 미디어 아트 작품인 코엑스의 WAVE 콘텐츠는 형태와 크기를 바꾸어 다양한 직주 공간에서도 충분히 전시 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재택근무 확대와 휴식 기능 공간의 확대 필요성 등으로, 거주 공간 자체가 교외화 되고 분산될 가능성도 있다. 이는 이미 북미권에서 시작된 흐름으로, 수도권의 확장과 함께 일부는 일과 휴식 그리고 휴양을 결합한 리조트 시설 등으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경우, 지역별로 발굴된 특색 있는 로컬 문화, 지역 기반의 커뮤니티 강화 등을 통해 주거 공간의 변화와 결합하여, 공간 산업 자체의 발전과 새 패러다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트 코로나, 영감과 치유체로서의 놀이
역사적으로 펜데믹은 인류의 삶을 바꿔왔다. 지금까지는 주로 두려움과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물적 토대와 제도의 변화가 중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수메르, 이집트 문명 등과 같은 인류 최초의 문명은 세균 확산이 어려운 건조 기후에서 시작한데 비해, 도시 상하수도 시설과 같은 발전적 산업은 수인성 감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21세기 팬데믹 중의 하나로 기록될 코로나 시대에 집은 일과 놀이의 복합 공간으로,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클러스터의 탄생에 핵심 기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거 공간의 변화와 더불어 디지털화 그리고 지역분권적인 문화 정책을 슬기롭게 고안해 나간다면, 우리에게 꽤나 오랫동안 그 중요성에 비해 관심권에서 벗어나있던 주거 공간과 함께, 라이프 스타일의 표현체로서의 놀이는 그 자체만으로도 영감과 치유를 제공해주는 방향으로 그 위상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