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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말씀/ 이사야 1:1-31 요절/ 이사야 1:18 | 2023. 5. 7 | |
이사야 제 1 강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히브리서에 이어서 제 5복음서로 일컬어지는 이사야서를 공부하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이사야서의 저자는 이사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사야는 BC8세기 중반에 부름받은 선지자로서 40년간에 걸쳐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가르쳤습니다. 이사야서는 66장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하나님의 책으로 1-39장, 40-66장 두 파트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죄와 심판에 대해서, 후반부는 회복과 소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불순종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 하나님께서 그 백성의 실패 가운데서도 언약을 어떻게 이루어가시는지 보여줍니다. 이사야서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많이 나타나고 시편과 더불어 신약에 가장 많이 인용될 정도로 신약의 기초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소통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자연과 우주와 소통하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1장은 이사야서의 전체를 보여주는 서론에 해당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의 유다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왜 그 나라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초청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절은 이사야 선지자가 어느 시대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서 활동하였는가를 알려줍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보고 그대로 전한 위대한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는 국제정세가 요동하던 때였습니다. 다윗 왕 때 이스라엘은 강성하였으나 솔로몬 이후 르호보암 때 남북이 분열되었고, 남유다는 웃시야와 요담 때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아하스 때 국력이 크게 약해졌고 북이스라엘과 아람 동맹군의 침략으로 나라의 존립이 위태로웠습니다. 히스기야 때는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고, 국토가 유린되고 예루살렘만 남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친 앗수르 반 애굽, 또는 반 앗수르 친 애굽의 외교정책을 펴면서 줄타기를 했습니다.
그때 유다 백성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하나님은 하늘 법정에서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아서 유다의 죄를 고소합니다. 하나님과 유다의 관계는 어떤 관계입니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자식과 같이 양육하였습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유다를 먹이고 입히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아버지의 사랑을 배반하고 거역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잘 나서 이만큼 컸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지 않고도 잘 살고 있는 강대국 앗수르를 보면서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하고 앗수르의 선진문화를 받아들이고 그들처럼 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유다는 자기들이 키우는 짐승보다 못합니다. 왜냐하면 소나 나귀는 다른 것은 잊어도 주인은 알고 주인이 주는 밥그릇은 잊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지금까지 지기들을 먹이고 입히고 키워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감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향한 이사야의 슬픔이 어떠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이사야의 슬픔은 하나님의 슬픔을 대변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였습니다. 하나님은 노예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시고 애지중지 돌보셨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공급해 주시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십계명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를 범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부패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요 구속자요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그들의 거룩한 이를 만홀히 여기고 멀리하고 물렀습니다. 그들은 윤리적으로 배신했을 뿐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반역자입니다. 그들은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했습니다.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상처는 너무나 깊고 커서,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어떤 명의도 그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상황은 어느 정도 심각했습니까? 그들의 땅은 황폐하였고 성읍들은 불에 탔고 토지는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습니다. 전국토가 유린되고 시온 다시 말해 예루살렘만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한 결과 히스기야 때 강대국 앗수르의 침공을 받아 전국토가 짓밟히고, 겨우 수도 예루살렘만 남았습니다. 그것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않았더라면 유다는 소돔 같고 고모라 같이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을 겁니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백성을 때리실지라도 소망의 싹은 남기십니다. 하나님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일지라도 완전히 망하게 하지는 않고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니다.
유다가 국가적 위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언약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어겼고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배반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과 언약을 어김으로 소돔과 고모라의 백성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방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야 했는데, 이방인들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풍습을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품위를 상실하고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님께 소나 양의 무수한 제물을 바쳤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많이 바치기만 하면 많은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제물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들은 성전에 와서 마당만 밟을 뿐이었고 마음은 세상에 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담기지 않는 예배를 받지 않으십니다. 마음이 빠져버린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회개 없는 제사와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을 가증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이 기복적으로 드리는 기도, 회개 없이 드리는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드리는 제사 자체를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유다가 맺은 언약을 파기하는 겁니다. 제사는 하나님과 유다를 맺어주는 끈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거절하시는 것은 유다와의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곧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제사를 거절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몸은 성전에 있지만 마음은 세상에 가 있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기만 하면 복을 받고 헌금을 드리기만 하면 복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없는 예배, 회개가 없는 예배, 믿음이 없는 예배를 드리며 자기들이 잘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마음과 회개와 믿음이 있는 예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우리 손에 묻은 피를 씻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10:22) 우리는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참 예배자의 모습은 어떤 삶으로 나타납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사회적 약자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공적 예배는 삶의 예배로 연결됩니다. 공적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좋은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악된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섬기고 많은 악을 행함으로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백성들을 은혜의 보좌로 초청하십니다. 하나님은 “너희들 꼴 보기 싫으니 다시는 내게 오지 말라.”고 하지 않고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고 하십니다. “오라”는 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오라는 것이요, 더럽고 흉측한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오라는 것입니다. 좋은 모습만 보이고자 하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나쁜 모습, 숨기고 싶은 모습도 개의치 않으십니다. 와서 변론해보자 하십니다. 변론하는 것은 따져보는 것입니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어디에서 굴러 떨어졌는지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가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우리의 상처가 깊을지라도, 우리의 문제가 심각할지라도 주님은 다 들어주시고 다 용서하시고 싸매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저는 군대에서 동료들에게 이끌려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후회하고 또 후회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지우개로 지우고 싶었지만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밤마다 악몽을 꾸었고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제 내 인생은 망했고 심판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를 안고 고통과 절망에 빠져 있는 저를 주님께서 어느 날 초청해 주셨습니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그리고 놀라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그때 저는 뜨거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고백했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주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삼아주신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피의 은혜로 죄인을 용서해주시고 새생명을 주셨으니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많은 죄를 지었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때마다 주님은 저를 은혜의 보좌로 초청해 주시고, 그 피로 씻어주시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평생 주님의 은혜를 붙들고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참 예배자요 참 제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게 됩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그런 사람은 즐겨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깊이 맛본 사람은 자원하여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꿀처럼 달고 하나님의 말씀이 기쁨이 되고 힘이 되고 소망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며, 성령의 열매와 생명의 열매를 많이 맺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깊이 맛보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담으로 느끼고 거절하고 배반합니다. 그 결과는 칼에 삼켜지는 인생,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인생이 됩니다.
21-31절은 예루살렘이 죄로 인해 얼마나 비참하게 되었는지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은 신실하던 성읍이었고 정의와 공의가 충만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그 도시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기와 같이 더럽혀졌고 살인자들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 도시는 불순물과 혼합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그 백성을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하며 혼잡물을 다 제거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 도시의 지도자들인 재판관과 관원들을 깨끗하게 세탁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온에 정의와 공의가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거역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들이 심판 받는 이유는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기뻐하던 상수리 나무로 말미암아 너희가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택한 동산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며” 상수리 나무는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나무로서 그곳에서 우상숭배가 행해졌습니다. 유다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며 동시에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신들을 많이 섬길수록 더 많은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혼합주의와 기복신앙은 재앙과 부끄러움으로 끝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강한 사람도 삼오리기 같아서 불에 타서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거나 돈을 의지하거나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의지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주와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자만이 참 행복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