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고개’라고 모두 소나무고개가 아니다
_서울 종로구 송현동의 솔고개
-서울 강북구 북한산 자락의 솔샘
-경기-포천군 소흘읍의 송우리의 솔모루
들을 지나 숲을 지나 고개 넘어 가는 길
들꽃들만 도란도란 새들만 재잘 재재잘
누가 누가 오고 갈까 어떤 이야기 있나
뭉게구름 흘러가고 바람만 지나가는
꼬불꼬불 오솔길 마냥 걸어갑니다
꽃들과 얘기 나누며 새들과 함께 노래 부르며
꼬불꼬불 오솔길 마냥 걸어갑니다
구름 바람 벗삼아 휘파람 불며불며
풀잎동요 <오솔길>에 나오는 가사이다.
오솔길. 생각만 해도 걷고 싶은 길이다. 오솔길은 정작 어떤 길일까?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솔’자가 들어갔으니 막연히 소나무 사이의 숲길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솔길’에서의 ‘솔’은 ‘소나무’가 아니다. 그럼 무엇일까?
‘솔섬은 ’소나무섬’일까?
‘솔나무’를 ‘소나무’가 되는 현상을 맞춤법에선 ‘ㄹ탈락’이라고 한다. 이러한 탈락 현상은 ㄴ과 ㄹ의 부딪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ㄹ과 ㅈ의 부딪힘, ㄹ과 ㅅ의 부딪힘 관계에서도 일어난다.
버들+너무=버들나무 > 버드나무
불+집갱이=불집갱이 > 부집갱이
쌀+전=쌀전 > 싸전(쌀가게)
불+삽=불삽 > 부삽
풀+서리=풀서리 > 푸서리
‘소나무’의 원이름이 ‘솔나무’라는 사실은 솔잎, 솔가지, 솔가래, 솔방울 등의 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도 알 수 있다. ‘소나무’란 이름은 그 가느다란 잎 때문에 나온 것으로, ‘솔나무’의 ㄹ탈락 햔상에 따른 것이다. ‘불나비’가 ‘부나비’로 된 것과 같다.
우리말에서는 작거나 가느다란 것에 ‘솔’을 붙인 경우가 많은데, 땅이름에서의 예를 들면 ‘작은 내’의 뜻인 ‘솔내’가 있다. 이런 이름은 전국에 엄청 많은데 변하여 ‘소내’로 된 것이 적지 않다.
경남 창녕군의 소내는 하왕산 밑에서 발원하여 고암면 우천리를 지나 대암리에 이르러 토평천에 들어가는 하천인데, 원래 '작은 내'의 뜻인 '솔내'였다. 경북 영주시 부석면 소천리와 경기 광주시 남종면 우천리의 '소내'도 마찬가지였다. 경북 봉화군 재산면 동면리 소냇골은 마을 앞에 '소내(솔내)'라는 작은 내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작음-좁은-가늘다’의 뜻인 ‘솔’
‘솔바람’이란 게 있다. ‘소나무 바람’이라는 뜻일까? ‘솔바람’은 ‘소나무(솔나무)’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다. 나무를 스쳐 오는 약한 바람을 대개 ‘솔바람이라고 한다. ‘솔’이 ‘작다’는 뜻이니까.
휘파람새과의 작은 새를 ‘솔새’, 작은 이끼를 ‘솔이끼’라고 일컫는 것을 보면 ‘솔’이 작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또 넓이가 작다고 할 때 ‘솔다’라는 말을 쓰는데, 지금은 이 말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다.
‘솔’이 ‘작다’는 뜻으로 쓰인 예로는 오솔길, 솔바람, 소래(솔애) 등을 들 수 있다. 오솔길은 외진 곳에 난 작은 길을 뜻하고, 솔바람은 세지 않게 살살 부는 바람을 뜻한다.
오(외)+솔(小)+길=오솔길
솔(小)+바람=솔바람
소래는 ‘작은 마을’을 말한다. 식물 이름의 솔(졸)은 ‘부추’의 사투리인데, 잎이 가늘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다.
서울에 있는 유명한 두 솔고개
서울 종로구 광화문 근처에 ‘솔고개’가 있었다. 작은 고개여서 ‘솔고개’이지만 한자로는 ‘송현(松峴)’으로 적는다. 경복궁 동쪽인 송현동, 중학동에 걸쳐 있는데, 이곳의 송현동(松峴洞)이란 이름도 이 ‘솔고개’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그 남쪽에도 잘 알려진 ‘솔고개’가 또 있다. 소공동과 남대문로 사이에 있다.
둘 다 유명한 솔고개(송현)이니, 예부터 가려서 불러야 했다. 경복궁 동쪽의 것을 ‘웃솔고개’, 소공동 쪽의 것은 ‘아랫솔고개’라 했다. 각각 북송현과 남송현이라고도 했다.
전국에는 ‘솔고개’가 수도 없이 많다. 이와 비슷한 이름이 ‘솔재’나 ‘솔치’이다. 그런데, 발음상으로는 ‘솔고개’의 ‘솔’이 그냥 살아 있는데, ‘솔재’는 이와 달리 ‘소재’로 변화된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것은 ‘솔나무’가 ‘소나무’가 된 것처럼 ㄹ탈락 현상을 일으킨 것이디. ㄹ 뒤에 ㅈ이 오면 앞음절의 ㄹ이 탈락하는 현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쌀전(쌀가게)’이 ‘싸전’이 되는 것처럼.
‘솔섬’이나 ‘솔고개’라고 해서 무조건 ‘소나무’와 관련 있다고 단정 짓는 것은 잘못이다. 관련하여 이번에는 ‘솔섬’에 관해서 알아보자.
인터넷의 나무위키에서는 ‘솔섬’의 한자식 이름 송도(松島)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송도(松島). 한자 지명으로 풀어보자면 ‘소나무섬’ 혹은 ‘솔섬’. 바다에 떠 있는 섬 중에서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기도 하지만, ‘작다’는 뜻의 ‘솔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어 ‘작은 섬’이라는 뜻의 ‘솔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된 곳도 많다.”
인천에 ‘송도’라는 섬은 없었다
전국에는 ‘송도(松島)’라는 이름이 무척 많다. 해수욕장으로 알려진 곳만 해도 부산과 인천에 송도해수욕장을 들 수 있다. 지금은 인천 송도해수욕장은 없어졌다.
송도가 모두 소나무가 많아서 나온 이름일까?
인천 앞바다에는 ‘송도’라는 이름의 섬이 없었다. 송도라는 이름은 러일전쟁(1904~1905) 때 일본의 군함 이름을 따 붙인 것이라 한다. 러일전쟁에 참가한 군함 송도호는 1908년 4월 타이완 마공(馬公) 지역에서 선내 폭약고 폭발로 침몰했다고 한다. ‘송도’라는 이름은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고국인 일본의 삼경(三景) 중의 하나인 미야기현의 ‘마쓰시마(松島)’를 떠올려 이를 인천의 능허대에 갖다 붙인 것이라는 설도 있다. 또, 동학농민운동 이후 인천항을 수시로 드나들던 ‘송도호(松島號, 마츠시마)’라는 군함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인천의 송도 지역은 옥련(玉蓮), 한나루, 옹암(독바위) 등으로 불리던 곳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의해 강제로 개명된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자리잡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옥련동 지역에 ‘송도’와 ‘옥련’이라는 지명이 혼재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송도라고 부르는 일이 거의 없다.
일제 강점기 이후 일본이 송도함을 기리는 의미로 해당 지역을 ‘송도’로 개명했고, 그 잔재가 송도역과 옛 송도 유원지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전국에 많은 송도(松島)는 토박이 땅이름으로 ‘솔섬’이지만 ‘소나무섬’이라는 뜻이 아닌, ‘작은 섬’이라는 뜻의 것이 훨씬 많다.
서울 강북구 북한산 자락에는 ‘솔샘’이라는 작은 샘이 있었다. 이 역시 소나무와는 관계없이 ‘작은 샘’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솔샘이 있던 이 지역은 ‘송천동(松川洞)’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지금 이 근처를 지나는 길 이름이 ‘솔샘로’이다. ‘솔샘’이란 이름은 이곳 말고도 전국 여러 곳에 있다.
경기도-포천군 소흘읍의 송우리(松隅里)는 ‘솔모루’라고 불리던 곳이다. 이곳은 본래 포천군 외소면 지역으로서 ‘솔모루’ 또는 ‘송우(松隅)’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초동교리 일부를 병합해 ‘송우리’라 해서 소흘면에 편입되었던 곳이다.
솔모루는 ‘솔모퉁이’라는 뜻인데, 이 이름은 전국 여러 곳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의 ‘솔’이 작다는 뜻에서 나온 것인지, 소나무와 관련 있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친척말
솔, 오솔길, 졸(부추), 졸개, 소름(솔음), 솔바람, 솔내(좁은 내)
친척 땅이름
-솔고개(송현.松峴) / 대구 달서구 송현동, 대전 서구 내동동, 충남 예산군 대흥면 교촌리, 전남 여수시 웅천동 등
-솔모루(송우.松隅) / 충남 천안시 풍세면 용정리, 충북 괴산군 증평읍 남하리, 강원 양구군 남면, 충남 예산군 광시면 월송리, 충남 서산시 원북면 장대리, 충남 홍성군 은하면 장척리 등
-솔모통이(솔모팅이, 솔모탱이) / 경기 동두천시 보산동, 전북 장수군 장수읍 용계리, 전북 임실군 강진면 문방리, 경남 산청군 삼장면 평촌리
전남 해남군 마산면 상등리 등
-소재(솔티) / 강원 강릉시 왕산면 송현리, 충북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강원 양구군 방산면 송현리, 충북 제천시 고명동 등_서울 종로구 송현동의 솔고개
-서울 강북구 북한산 자락의 솔샘
-경기-포천군 소흘읍의 송우리의 솔모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