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꺼지지 않는 모닥불 같은 사람
-가슴에 불이 많았던 사람, 박건호
시인 유 화
‘모닥불’ ‘잊혀진 계절’ ‘아! 대한민국’ 등 '70.80' 세대의 히트곡을 쓴 작사가 박건호 선생님께서 2007년12월9일 오후 10시30분 타계했다. 그날 밤 12시경, 그 분과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김성봉 작곡가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순간 먹먹해진 가슴에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고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몇 해 전 필자에게 걸려온 첫 전화 목소리가 귓전에 아직도 생생하다. “유화 씨, 나 박건호입니다. 한 번 만나고 싶은데.” 나는 그때 선뜻 ‘그렇게 하겠습니다.’란 말을 못하고 “언젠가는 뵐 수 있을 거예요.”란 말로 그분의 만남 제의를 미룬 적이 있었다. 그 후 몇 개월 있다가 그 분은 직접 내가 살고 있는 양평까지 찾아 오셔서 전화를 하셨다. “나 지금 유화 씨 사는 근방에 와 있는데. 볼 수 있을까요?” 먼 길, 여기까지 오셨다는 박 선생님을 뵙지 않을 수 없어 나는 집 근처의 강이 잘 보이는 작은 노천카페에서 박건호 선생님과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분의 첫 인상은 장난기 많은 소년의 웃음처럼 맑은 미소를 띤 얼굴이셨고, 키는 크지 않았지만 곰처럼 둥글둥글한 체격이 왼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중년의 남자였다. 선생님이 나를 반갑게 맞아 주시며 두 손을 꼭 잡고 빙긋 웃어 보이던 그 모습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그 분과의 만남은 잦아졌는데, 그 분의 작품 이야기와 재치 있는 말로 내게 감동을 주는 분이기도 하셨다. 그는 사람을 좋아하고 만남을 좋아 한다. 그러나 고집스러운 성격 때문에, 때론 그가 좋아했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했다. 그의 그런 성격은, 어쩌면 너무나 솔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와 필자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었다.
2007년2월10일 충남 보령시 성주면 개화리에 개화예술공원 박건호 선생님 詩비 앞에서
그는 생전에 작사한 3000여곡 가운데 이용의 ‘잊혀진 계절’, 나미의 ‘빙글빙글’과 ‘슬픈 인연’, 조용필의 ‘모나리자’,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 심신의 ‘오직 하나뿐인 그대’와 노랫말이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로 시작되는 ‘서울’ 등 불후의 곡을 남겼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어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잊을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의 가사는 발표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또 부르고 있는 불후의 명곡 중 명곡으로 불리고 있다. 살아있는 전설이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작사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1980년대 후반. 그는 뇌졸중으로 언어장애와 손발이 마비되는 중풍을 앓으며 활동에 위기를 맞았다. 이후 신장과 심장 수술 등을 받으며 힘겹게 투병하는 와중에도, 그는 작사가이자 시인으로서 꾸준한 활동을 펼치는 열정을 보였다.
이건 운명에 대한 대반란이다./ 신이 만든 것은 이미 폐기처분되고/ 인간이 고쳐 만든 모자이크 인생이다.
모자이크 / 박건호
- 심장병동에서
얼마 전에 가슴 뼈를 톱으로 자르고
심장으로 통하는 두 개의 관상동맥을 교체했다
옛날 같으면 벌써 죽어야 했을 목숨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어릴 때는 생각이나 했던가
팔이 부러지면 다시 붙듯
목숨은 다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사금파리를 딛어 발이 찢어졌을 때는
망초를 바르고
까닭없이 슬퍼지는 날이면 하늘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커가면서 계속 망가져 갔다
오른 쪽 수족이 마비되고
언어장애가 일어나고
아무 잘못도 없이 시신경이 막히면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었다
설상가상
어릴 때부터 아파오던 만성신부전이 악화되어
콩팥도 남의 것으로 바꿔 달았다
누구는 나를 인간승리라고도 하지만
이건 운명에 대한 대반란이다
신이 만든 것은 이미 폐기처분되고
인간이 고쳐 만든 모자이크 인생이다
그렇다고 나를 두고
중세기 성당 벽화를 생각하지는 마라
모자이크가 얼마나 눈물겨운 것인지
너희들은 모른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심장병동에서
톱으로 자른 가슴 뼈를 철사줄로 동여 매고
죽기보다 어렵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을
구소련 여군 장교같은 담당 간호사도 모른다
밤새 건너편 병실에서는
첨단의학의 힘으로 살아나던 환자가
인간의 부주의로 죽어 나갔다
나는 급한 마음에 걸어온 길을 돌아다 본다
그러나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알고 지냈던 시간 내내, 그의 작품세계의 고집스러움과 열정은 진정 식지 않고 영원히 타오르는 불씨 같았다. 새벽 6시에도 전화를 걸어 문득 떠오른 시 한 구절을 읊어주며 “나는 밤새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막 떠오르는 글을 쓰려다 보니, 한 잠도 못 잤네요. 이제 다 마쳤는데, 문득 유화 씨 생각이 나서 전화 했어요…….” 50이 넘어 6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그의 열정은 끝이 없었고, 그의 작품세계는 무한히 크고 넓어 보였다. 그 분이 시와 수필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로써 드러내셨던 작품세계는 감히 들여다 볼 수 없을 만큼 누구보다도 더 문학에 대해 치열하고 뜨거운 가슴을 가진 분이였다.
그는 194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1969년 ‘영원의 디딤돌’을 시작으로 19권의 시집과 수필집을 펴냈다. 그는 ‘슬프고, 억울하고, 고독했던 어느 날부터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 마음이 후련하고 누가 옆에 없어도 좋았다. 문학은 내 고독과 그리움의 도피처이기도 했다.’라고 표현 했다. 그는 그렇기에 어쩌면 작사가라기보다는 시인이다. 다만 그는 생활문제로 돈벌이를 하기 위해 시인의 길보다는 대중가요를 쓰기 시작하여 작사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는 평소에 자신은, 시인들 틈에선 작사가라는 타이틀 때문에 시인대접을 받아 본 적이 없으며 시인들 틈에선 늘 왕따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시인으로서 또한 작사가로 창작 작업을 했다.
친구인 마광수 연세대 교수와 가수 겸 작곡가인 김성봉 음악가와 함께 음반 작사를 최근까지 도우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곡을 쓰고 남긴 그가 12월 9일 오후 10시 30분경 향년 58세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그분의 맑고 순수해 보이던 웃음은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으며, 자주 통화하여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필자에게 많은 이야길 하던 그 투박하고도 따뜻한 목소리도 더 이상은 들을 수도 없다. 필자가 어느 모임에서 마지막으로 따로 차려드린 식사가 그분과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 후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말을 들었지만 중환자실에 계셨기 때문에 일반실로 옮긴 후에 찾아뵙겠다는 핑계로 미루고 있던 중에 선생님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필자를 보고 농담처럼 “유화 씨 너무 예뻐서 모닥불 모델로 세워 놓고 싶어.”란 장난기 담긴 말씀도 이제 더는 들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 분의 식지 않은 열정만은 대중가요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곁에서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은 모닥불이 되어 잊히지 않는 사람, 박건호로 사람들 가슴에 별이 되어 영원히,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생전에 맑은 웃음으로 필자를 반겨주시던 모습을 기억 하며…….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박건호 작사 박인희 작곡 박인희 노래
프로필
194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69년 시집「영원의 디딤돌」을 출간했고 1972년 ‘모닥불’로 데뷔, 하면서 가요 작사가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 및 저서로 시집「영원의 디딤돌」「타다가 남은 것들」「물의 언어로 쓴 불의 시」「추억의 아랫목이 그립다」「고독은 하나의 사치였다」「기다림이야 천년을 간들 어떠랴」「나비전설」「딸랑딸랑 나귀의 방울소리 위에」「그리운 것은 오래 전에 떠났다」등 열권의 시집이 있고, 산문집「오선지에서 빠져나온 이야기」「너와 함께 기뻐하리라」「시간의 칼날에 베인 자국」「나는 허수아비」등이 있다.「모닥불」「단발머리」「아! 대한민국」「잊혀진 계절」등 3천여 편의 대중가요 가사를 썼다.
인사신문-기자(시인:유화)
잊혀진 계절 /작사 박건호 /작곡 이범희 /노래 김성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