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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요원(星火燎原)
작은 불씨가 퍼지면 넓은 들은 태운다는 뜻으로, 작은 일이라도 처음에 그르치면 나중에 큰 일이 된다는 말이다.
星 : 별 성(日/5)
火 : 불 화(火/0)
燎 : 횃불 료(火/12)
原 : 언덕 원(厂/8)
(유의어)
석지실장(惜脂失掌)
여화요원(如火燎原)
적우침주(積羽沈舟)
출전 : 서경(書經)
대형사고의 이면에는 언제나 조그마한 부주의가 겹치고 쌓여 있는 것이 드러난다. ‘큰 실수는 굵은 밧줄처럼 여러 겹의 섬유로 만들어진다’는 빅토르 위고의 일침은 오늘날 하인리히 법칙으로 체계화 됐다.
미국의 보험사 직원이었던 H.W.하인리히가 1931년에 소개한 이 법칙은 작은 잘못을 방치하여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1명의 사상자가 나오기까지 29명의 경상자가 있었고, 또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내용이다.
이런 수치가 정확한지는 차치하고 우리 선조들도 그래서 잘 아는 일이라도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며 세심하게 주의를 하라고 가르쳤다. 작은 불(星火)도 자칫 잘못하면 들판을 태우고 만다(燎原)는 이 성어도 처음의 실수를 잘못 대처하면 걷잡을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성화(星火)는 별똥별, 유성(流星)을 말하는데 ‘빨리 달라고 성화다’에서 처럼 일이 매우 급한 상태나 급히 조르는 행위를 비유할 때 쓰고, 몹시 작은 숯불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말은 1960년대 중국 인민해방군 초기 기관지 이름이었다고 하고 문화대혁명 당시 구호로 사용됐다고도 한다.
하지만 더 오래전 서경(書經)에 등장하고 처음부터 조심하라는 비유는 여러 곳에서 사용돼 왔다.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 회남자(淮南子)에 이런 내용이 전한다. 유안은 전한(前漢)의 고조(高祖) 유방(劉邦)의 손자로 문학을 즐겨 많은 문객들과 어울렸다.
인간훈(人間訓)의 구절을 보자. '담이 무너지는 것은 조그만 틈새에서 비롯되고, 칼이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빠진 날에서이다(牆之壞也於隙, 劍之折必有齧).'
한비자(韓非子)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유로(喩老)편에 나온다. '천길 제방 둑은 땅강아지와 개미구멍에 의해 무너지고, 백 척의 높은 집이라도 자그마한 굴뚝 사이 불씨에 의해 타버린다(千丈之堤, 以螻蟻之穴潰, 百尺之室, 以突隙之烟焚).'
망징(亡徵)편에도 유명한 경구가 있다. '나무가 부러지는 것은 반드시 좀벌레가 파먹어서이고,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반드시 틈을 통해서이다(木之折也必通蠹, 牆之壞也必通隙).'
성화요원(星火燎原)
아주 작은 불이 들을 태운다는 뜻으로, 하찮게 보이는 못된 짓을 방치하면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이다.
담이 무너지는 것은 조그마한 틈새 때문이고(牆之壞也於隙), 칼이 부러지는 것은 하찮은 흠 때문이다(劍之折必有齧). 성인(聖人)은 이를 진작 알아차리고 미리 조치를 취함으로써 모든 것이 손상되는 법이 없다고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에 적혀있다.
대단찮은 결함(缺陷)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 곧 손쓰지 않다가, 또 설마하는 방심으로 큰 재난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운전사 한사람의 방심으로 빚어지는 대형 교통사고, 공무원 한사람의 사소한 실수가 초래하는 엄청난 국가적 손실 따위가 장지괴야어극(牆之壞也於隙)의 좋은 예가 될것이다.
한비자(韓非子) 유로편(喩老篇)에 나오는 제궤의혈(堤潰蟻穴)이라는 고사성어이다. ‘개미굴이 둑을 무너뜨린다’는 뜻으로, 큰 방죽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진다. 즉 사소한 결함이라도 곧 손쓰지 않으면 큰 재난을 당하게 된다. 사소한 실수로 큰일을 망쳐버림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개미구멍이 제방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과장이 아니다. 온몸으로 밤새워 틀어 막았다는 네덜란드 소년의 유명한 실화에 나오는 제방의 구멍도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막을 수 있었다지 않은가.
한비자(韓非子)의 유로편(喩老篇)에,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비롯되며,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다. 일을 잘 다스리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것이 작았을 때 해야 한다. 때문에 어려운 일은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하고, 큰일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천길이나 되는 제방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지고, 백척이나 되는 방도 굴뚝 사이의 불티로 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千丈之堤, 以螻蟻之穴潰; 百尺之室, 以突隙之烟焚). 이것은 모두 아무 일도 없을 때 경계함으로써 어려움을 피하고, 작은 일을 경계함으로써 큰 화를 멀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예로 명의(名醫) 편작(扁鵲)과 채(蔡)나라 환공(桓公)의 이야기를 들었다. 편작이 환공을 보고 살갗에 병이 있으니 치료하지 않으면 심해질 것이라고 말하였다. 환공은 자기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노라며 듣지 않았다.
열흘 뒤에 편작이 환공을 보고 근육(筋肉)에 병이 들었으니 치료하지 않으면 심해질 것이라고 말하였으나 환공은 역시 듣지 않았다. 다시 열흘 뒤에 찾아온 편작이 위장(胃臟)에 병이 들었다고 하였으나 환공은 이번에도 듣지 않았다. 또 열흘이 지나 편작은 환공을 찾아와서는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다가 돌아갔다. 환공이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물었다.
편작은, “살갗에 든 병은 약을 바르면 고칠 수 있고, 근육에 든 병은 침석(鍼石)으로 고칠 수 있으며, 위장의 병은 화제(火齊)로 고칠 수 있으나, 골수(骨髓)까지 스며든 병은 손을 쓸 수가 없다”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환공은 5일 뒤에 갑자기 병이 도져 죽고 말았다. 목숨을 앗아가는 위급한 병도 대수롭지 않은 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속담의 ‘개미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 또는 ‘개미구멍으로 공든 탑 무너진다’와 같은 말이다.
1960년대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 구호로 쓰였던 성화요원(星火燎原)은 아주 작은 불이 들을 태운다는 뜻으로, 하찮게 보이는 못된 짓을 방치하면 나중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는 서경(書經)에서 따온 말이다. 우리 주변에서 걸핏하면 일어나는 대형사고도 거의가 부주의와 방심이 빚어낸 참사가 아니던가.
성화요원과 비슷한 뜻으로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즉 적은 힘으로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에 쓸데없이 많은 힘을 들이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는 커지기 전에 처리하였으면 쉽게 해결되었을 일을 방치하여 두었다가 나중에 큰 힘을 들이게 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가지고 오직 한번뿐인 인생을 산다. 어떤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만 승리하는 인생, 영광된 인생, 후회없는 인생, 보람있는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가? 그러려면 다섯가지 5로 사상(思想)을 생각해 보자
첫째 : 스스로 자조(自照)의 원리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였다. 스스로 돕는다는 것은 내 발로 서서 내 힘으로 살아 가겠다는 자력주의(自力主義)의 인생관을 가지고 피와 땀과 노력과 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나는 나의 운명의 주인이요, 나의 미래는 나의 수중에 있고, 내 인생은 내 스스로 창조해 나간다는 건설적인 정신과 진취적인 기상을 가지고 힘차게 살아간다. 스스로를 도울 때 남도 나를 돕고 하늘도 나를 돕는다. 세상에 정말 믿을 것은 자기 밖에 없다.
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양심을 믿고 나의 재능을 믿고 나의 노력을 믿고, 나의 피땀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다. 새는 자기 날개로 난다. 우리는 자기 발로 서야 한다. 세상에 자신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스스로 돕는 정신, 이것이 우리의 인격독립, 생활독립의 근본이다. 먼저 인생의 근본이 서야 한다. 무엇이 우리의 근본이냐 ? 내가 내 발로 서서 내 힘으로 열심히 살아 가겠다는 자조의 정신이다. 스스로 돕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둘째 : 서로 협동(協同)의 원리이다.
우리는 서로 도울 줄 알아야 한다. 두 손이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한 손으로 허공을 아무리 허우적거려도 소리는 나지 않는다. 서로 돕는다는 것은 나도 살고 너도 살고 우리가 다 같이 사는 것이다. 우리가 제일 힘써서 배워야 할 것은 남과 협동해서 사는 기술이다. 우리는 모래알과 같은 고립적 인간이 되어서는 안된다.
주한대사로 있던 일본인 가나야마씨가 한국을 떠나면서 남긴 말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교훈을 던져 준다. 꼭 같은 여건하에서 모든 일본인은 모든 한국인을 도저히 당할 수가 없다. 그러나 세 사람의 일본인이 세 사람의 한국인과 맞설 때는 상황은 달라진다. 우리가 일 대 일로 대하면 모든 일본인을 이길 수 있지만, 일본인 세 사람이 한 덩어리로 뭉칠 때에는 우리를 이긴다는 것이다. 우리는 협동해야 하고 서로 돕는 공부를 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의 진리요 교훈이다.
셋째 : 하나로의 원리이다.
우리는 스스로 돕고 서로 돕는 동시에 하나로 뭉쳐야 한다. 세상에 집중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산 속의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실낱같은 물줄기는 나무 잎사귀 하나 떠내려 보낼 힘이 없지만, 수십개의 한 방향으로 뭉쳐 큰 폭포를 이룰 때 능히 거대한 바위를 부술 수 있다. 티끌모아 태산이다. 적은 돈이 모여 막대한 거액이 된다. 천리길도 한 발자국에서 시작된다.
한문에 적우침주(積羽沈舟)라는 말이 있다. 새의 털 하나 하나는 지극히 가볍고 적은 것이지만 그것이 수억이 쌓이면 큰 배를 바다 속으로 침몰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적은 것이 큰 것이 된다. 적은 돈, 적은 시간, 적은 노력, 적은 공부가 짬짬히 한 곳에 쌓여서 큰 돈을 이루고 큰 사업을 성취시킨다.
티끌모아 태산이다. 대업을 성취하는 원리는 적은 시간과 정성과 노력과 돈이 한곳에 계속 집중하는데 있다. 하나로 단결될 때, 온 국민이 한 마음으로 뭉칠 때, 큰 힘을 내어 큰 일을 할 수 있다.
넷째 : 창조(創造)의 원리이다.
우리는 부단히 변해야 하고 개혁을 해야 한다. 산다는 것, 개혁한다는 것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끊임없이 찾는 노력이다. 옛 사람들은 일일신(日日新)의 철학을 강조했다. 우리는 나날이 새로워져야 한다. 나날이 새롭다는 것은 부단히 전진하는 것이요, 쉴새없이 향상하는 것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새롭고, 오늘보다 내일이 새로워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새롭고, 우리의 행동이 새롭고, 우리의 인격이 새롭고, 우리의 사상이 새로워야 한다. 흘러 가지 않은 물은 썩기 쉽다. 구슬도 닦지 않으면 빛나지 않는다. 우리의 인격과 정신도 내버려 두면 낡고 녹이 쓴다. 특히 우리의 마음이 새로워야 한다. 아침의 맑은 이슬처럼 새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옛날 사람들은 ‘네 마음의 밭을 새로 갈라’고 하였다. 마음의 밭을 가는 것을 심전경작(心田耕作)이라고 한다. 우리는 항상 심전경작에 힘쓰는 인생의 부지런한 농부가 되어야 한다. 논밭은 호미로 갈지만 우리 마음의 밭은 양서(良書)로 갈아야 한다.
좋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의 밭을 기름지게 하고, 향기롭게 하고, 아름답게 단장하는 것이다. 맑은 샘물이 쉴새없이 솟구치는 샘터처럼 우리의 마음은 늘 새롭고, 우리의 생활은 항상 청신(淸新)해야 한다.
다섯째 : 바로(正)의 원리이다.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일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바로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악마도 일하고 도둑놈도 일한다. 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일의 목적과 내용이 중요하다. 진실하게 살고, 옳게 행동하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세상에 바로(正)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무슨일이나 바로(正) 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게 하는 것이요, 정의의 원칙에 부합되게 하는 것이요, 진실에서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것이요, 인생의 정도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몸을 바르게 갖는 것이 마음을 바르게 갖는 근본이라고 하였다. 모든 병은 정도를 밟지 않는 데서 생긴다. 우리의 마음의 병, 생활의 병, 사회의 병, 도덕의 병, 나라의 병이 모두다. 모두 과욕, 과식, 과음, 과색 때문에 병이 든다. 정도로 돌아가면 모든 병은 다 치유된다.
우리는 이제 정도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의 마음도 바르고, 나라의 경제도 바르고, 정치도 바르게 모든 것이 바른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마땅히 돌아가야 할 자리는 정(正)의 자리요, 바로(正)의 원리이다. 스스로 돕고, 서로 돕고, 하나로 뭉쳐, 새로이 창조하고 ,바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인생관과 가치관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인생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우리 자신도 행복하게 되고 사회와 나라도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 星(별 성)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날 일(日; 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生(생, 성)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날 일(日; 해)部는 별성자의 옛 모양에서는 해 셋 또는 ○을 셋 써서 별빛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셋을 씀은 많음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星자는 '별'이나 '천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星자는 日(해 일)자와 生(날 생)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生자는 풀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星자의 갑골문을 보면 生자 양옆으로 口(입 구)자가 그려져 있었다. 여기서 口자는 밤하늘의 별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口자가 아닌 日자가 풀잎 끝에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고 소전에서는 하나의 日자만 쓰이게 되면서 지금의 星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生(생)은 나타나는 일, 또 星(성)의 발음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붙어 있다. 그래서 星(성)은 (1)성(姓)의 하나 (2)성성(星星) 등의 뜻으로 ①별 ②별의 이름 ③해, 세월(歲月) ④천문, 천체(天體)의 현상(現狀) ⑤점(占) ⑥밤(=夜) ⑦저울의 눈금 ⑧순도(純度) ⑨화폐(貨幣)를 세는 단위(單位) ⑩희뜩희뜩하다 ⑪(비가)개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별 태(台), 별 경(庚)이다. 용례로는 운성이 떨어질 때의 불빛으로 운성이 떨어지듯 몹시 급한 일의 비유를 성화(星火), 구름이나 안개 모양으로 하늘의 군데군데에 흐릿하게 보이는 별의 떼를 성운(星雲), 천체들이 서로 의존하고 작용하며 이루고 있는 우주 공간의 세계를 성계(星界), 별의 위치가 바뀜을 성이(星移), 별의 모양 또는 별과 같은 모양을 성형(星型), 별의 반짝거림을 성휘(星煇), 세월로 성은 1년에 하늘을 한 번 돌고 상은 1년에 한 철 내린다는 뜻에서 온 말을 성상(星霜), 행성의 인력에 의하여 그 행성의 주위를 도는 별을 위성(衛星), 해의 둘레를 각자의 궤도에 따라서 돌아다니는 별을 행성(行星),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 가운데 가장 작은 별을 수성(水星),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별을 항성(恒星), 새벽에 보이는 별로 매우 드문 존재의 비유를 효성(曉星),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는 금성을 이르는 말을 신성(晨星), 항성 중에서 반경 광도가 큰 별로 큰 인물이나 위대한 사람을 거성(巨星), 길하고 상서로운 별을 길성(吉星), 빛이 동일한 별 가운데서 발광량이 적고 크기도 작은 별을 왜성(矮星), 항성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보이는 별을 객성(客星), 하늘에 떠 있는 무수한 별을 열성(列星), 작은 불씨가 퍼지면 넓은 들은 태운다는 뜻으로 작은 일이라도 처음에 그르치면 나중에 큰 일이 된다는 말을 성화요원(星火燎原), 별처럼 펼쳐져 있고 구름처럼 퍼져 있다는 뜻으로 사물이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 있는 모양을 이르는 말을 성라운포(星羅雲布), 별같이 벌여 있고 바둑돌처럼 늘어 놓였다는 뜻으로 물건이 여기저기 많이 흩어져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성라기포(星羅碁布), 하늘의 별같이 많이 늘어선 기이한 모양의 섬들을 이르는 말을 성라기도(星羅奇島), 아침 일찍 집을 나갔다가 밤늦게 돌아옴을 이르는 말을 성행야귀(星行夜歸), 우물 속에서 별을 본다는 뜻으로 우물 안에서는 겨우 몇 개의 별밖에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사사로운 마음에 가리우면 견해가 한 편에 치우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정중시성(井中視星), 달이 밝으면 별빛은 희미해진다는 뜻으로 한 영웅이 나타나면 다른 군웅의 존재가 희미해짐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월명성희(月明星稀), 지붕이 헐어서 뚫린 구멍이 마치 북두칠성과 같다는 뜻으로 몹시 가난한 살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옥여칠성(屋如七星), 새벽 하늘에 별이 드문드문 있다는 뜻으로 벗들이 차차 적어지는 것을 이르는 말을 신성낙락(辰星落落), 수많은 별이 북극성을 향해 떼지어 따른다는 뜻으로 많은 문사들이 모여듦을 이르는 말을 군성옹북(群星擁北), 사물은 바뀌고 세월은 흘러감을 이르는 말을 물환성이(物換星移) 등에 쓰인다.
▶️ 火(불 화)는 ❶상형문자로 灬(화)는 동자(同字)이다. 불이 타고 있는 모양을 본떠 화산이 불을 뿜는 모양이라고도 일컬어진다. 나중에는 火(화)가 化(화)와 같은 음(音)이므로 물건의 모양을 변경시키거나 없애는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아주 옛날엔 毁(훼; 태워서 없애 버리다)와 음(音)이 비슷하였다. ❷상형문자로 火자는 ‘불’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火자는 불길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열’이나 ‘불의 성질’과 관련된 뜻을 전달합니다. 火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집니다. 만약 한자의 아래 부분에 위치한다면 이때는 네 개의 점(灬)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灬자가 쓰였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불’과 관련된 뜻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爲(할 위)자와 烏(까마귀 오)자처럼 일부 한자에서는 ‘불’과는 관계없이 같이 단순히 사물 일부를 灬자로 표현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火(화)는 (1)화기(火氣) (2)오행(五行)의 하나. 제2의 위치하며 방위로는 남쪽, 시절로는 여름, 색(色)으로는 적(赤)이 됨 (3)화요일(火曜日) (4)몹시 노염을 타거나 못마땅해서 또는 뜻대로 되지 않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 등의 뜻으로 ①불, 열과 빛 ②타는 불 ③화재(火災) ④화, 한의학 용어 ⑤양, 태양(太陽) ⑥화성(火星), 별의 이름 ⑦긴급함의 비유 ⑧동아리(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 무리), 한패 동행자, 동반자 ⑩급하다 ⑪불사르다, 불에 태워 없애다, 태우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 수(水)이다. 용례로는 불이 나는 재앙 또는 불로 인한 재난을 화재(火災), 땅속에 있는 가스체나 바윗물이 땅껍질의 터진 틈을 통하여 땅거죽으로 나와 쌓여서 이루어진 산을 화산(火山), 불꽃으로 타는 불에서 일어나는 붉은빛의 기운을 화염(火焰), 불의 힘을 화력(火力), 걷잡을 수 없이 타는 불과 같이 썩 급함을 화급(火急), 불을 때는 아궁이의 아가리를 화구(火口), 열을 이용하기 위하여 불을 담아 두는 그릇을 화로(火爐), 화재의 원인을 화인(火因), 죽은 사람을 불에 살라 장사 지냄을 화장(火葬), 불이나 뜨거운 열 따위에 데어서 상함 또는 그 상처를 화상(火傷), 불에 익혀 만든 음식을 먹음 또는 그 음식을 화식(火食), 주로 산간 지대에서 풀과 나무를 불질러 버리고 파 일구어 농사를 짓는 밭을 화전(火田), 불을 내뿜음을 분화(噴火), 화재가 꺼짐을 진화(鎭火), 번쩍이는 불을 섬화(閃火), 사람이 일부러 불을 지르는 것을 방화(放火), 불을 켬을 점화(點火), 불이 나는 것을 미리 막음을 방화(防火), 불이 일어나거나 타기 시작함을 발화(發火), 건물이나 물건 등에 붙은 불을 끔을 소화(消火), 불빛이 하늘이라도 찌를 듯이 그 형세가 맹렬함을 이르는 말을 화광충천(火光衝天),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으로 사물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을 풍전등화(風前燈火), 등불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가을 밤은 시원하고 상쾌하므로 등불을 가까이 하여 글 읽기에 좋음을 이르는 말을 등화가친(燈火可親), 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는 뜻으로 더 말할 나위 없이 명백함을 일컫는 말을 명약관화(明若觀火),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데의 불을 끄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멀리 있는 것은 급할 때에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원수근화(遠水近火),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벌판의 불길이라는 뜻으로 미처 막을 사이 없이 퍼지는 세력을 이르는 말을 요원지화(爎原之火), 땔나무를 지고 불을 끈다는 뜻으로 재해를 방지하려다가 자기도 말려들어가 자멸하거나 도리어 크게 손해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부신구화(負薪救火), 번갯불이나 부싯돌의 불이 번쩍이는 것처럼 극히 짧은 시간이나 아주 신속한 동작 또는 일이 매우 빠른 것을 가리키는 말을 전광석화(電光石火) 등에 쓰인다.
▶️ 燎(횃불 료/요)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불 화(火=灬; 불꽃)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尞(료)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燎(료/요)는 ①횃불 ②화톳불(한데다가 장작 따위를 모으고 질러 놓은 불) ③땔나무 ④밤사냥 ⑤야화(夜火) ⑥제사(祭祀)의 이름(섶을 때어 하늘에 지내는 제사) ⑦(불을)놓다, 태우다 ⑧타다 ⑨굽다, (불에)말리다 ⑩밝다 ⑪비추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무서운 기세로 불이 타 가는 벌판을 요원(燎原), 횃불을 달리 이르는 말을 요화(燎火), 횃불을 달리 이르는 말을 요거(燎炬), 불이 붙어서 어지러움을 요란(燎亂), 축문 따위를 불살라 버리는 곳을 요소(燎所), 불을 피우는 데 쓰는 나무를 요시(燎柴), 제사를 지내고 나서 축문을 불에 살라 버리고 폐백을 땅에 묻는 일을 요예(燎瘞), 섶나무를 때며 하늘에 제사 지내는 단을 요단(燎壇), 촛불과 횃불을 촉료(燭燎), 불을 꺼 주고 물에 빠진 것을 건져 준다는 뜻으로 위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구원하여 줌을 이르는 말을 박료원닉(撲燎援溺), 작은 불씨가 퍼지면 넓은 들은 태운다는 뜻으로 작은 일이라도 처음에 그르치면 나중에 큰 일이 된다는 말을 성화요원(星火燎原), 온갖 꽃이 불이 타오르듯이 피어 매우 화려하다는 말을 백화요란(百花燎亂) 등에 쓰인다.
▶️ 原(언덕 원/근원 원)은 ❶회의문자로 厡(원)이 본자(本字)이다. 민엄호(厂; 굴바위, 언덕)部와 泉(천; 물의 근원)의 합자(合字)이다. 계곡의 맑은 물이 흘러 나오는 수원(水原)의 뜻으로 나중에 들판의 뜻으로 쓰이게 되자 수원의 뜻으로는 源(원)이란 글자가 따로 만들어졌다. ❷상형문자로 原자는 '근원'이나 '근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原자는 厂(기슭 엄)자와 泉(샘 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泉자는 돌 틈 사이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모습을 한자화한 것이다. 여기에 厂자가 결합한 原자는 물길이 시작되는 곳을 뜻했다. 그러나 지금의 原자는 물길의 시작점이 아닌 '근본'이나 '사물의 시초'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후에 水(물 수)자를 더한 源(근원 원)자를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다만 실제 쓰임에서는 原자와 源자를 엄격히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原(원)은 (1)어떠한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본디 처음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언덕 ②근원(根源), 근본(根本) ③저승 ④들, 벌판 ⑤문체(文體)의 한 가지 ⑥원래 ⑦거듭, 재차 ⑧근본(根本)을 추구하다 ⑨캐묻다, 찾다 ⑩의거(依據)하다, 기초(基礎)를 두다 ⑪기인(起因)하다 ⑫용서하다, 놓아 주다 ⑬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정성스럽다 ⑭거듭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언덕 구(丘), 언덕 판(坂), 언덕 구(坵), 언덕 파(坡), 언덕 강(堈), 언덕 안(岸), 언덕 강(崗), 언덕 애(崖), 언덕 구(邱), 언덕 판(阪), 언덕 릉(陵), 언덕 고(皐), 언덕 부(阜)이다. 용례로는 어떤 일의 근본이 되는 까닭을 원인(原因), 많은 경우에 적용되는 근본 법칙을 원칙(原則), 사물이 근거하여 성립하는 근본 법칙을 원리(原理), 제조하거나 가공하는 데 바탕인 재료가 되는 거리를 원료(原料),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여 재판을 청구한 사람을 원고(原告), 상품을 완성시킬 때까지 소비한 재화나 용역을 단위에 따라 계산한 가격을 원가(原價), 유정에서 퍼낸 그대로 정제하지 않은 석유를 원유(原油), 처음이나 시초로 본디대로 여서 진화 또는 발전하지 않음을 원시(原始), 본디대로의 상태 또는 이전의 모양을 원상(原狀), 제작물의 근본이 되는 거푸집 또는 본보기를 원형(原型), 변하기 전의 본디의 모양을 원형(原形), 물의 흐름의 근원이나 사물이 일어나는 근원을 원류(原流), 직물의 원료가 되는 실을 원사(原絲), 근본이 되는 이론 또는 그것을 기술한 것을 원론(原論), 회의에 부친 최초의 의안을 원안(原案), 본디의 저작 또는 제작을 원작(原作), 글자의 본디의 음을 원음(原音), 상당히 높은 높이를 가지면서 비교적 연속된 넓은 벌판을 가진 지역을 고원(高原), 풀이 난 들을 초원(草原), 시작되는 처음을 시원(始原), 평탄한 들판 평야를 평원(平原), 눈이 뒤덮여 있는 벌판을 설원(雪原), 넓은 들의 가운데를 중원(中原), 무서운 기세로 불이 타 가는 벌판을 요원(燎原), 실수하지 아니하도록 하는 방법을 일컫는 말을 원불실수(原不失手), 중원의 사슴이라는 뜻으로 천자의 자리 또는 천자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중원지록(中原之鹿), 작은 불씨가 퍼지면 넓은 들은 태운다는 뜻으로 작은 일이라도 처음에 그르치면 나중에 큰 일이 됨을 이르는 말을 성화요원(星火燎原), 무서운 기세로 타오르는 벌판의 불길이라는 뜻으로 미처 막을 사이 없이 퍼지는 세력을 이르는 말을 요원지화(爎原之火), 일의 결말을 짓는 데 가장 가까운 원인을 일컫는 말을 결국원인(結局原因)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