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뇨, 라니냐 외 1편
문정영
첫 번째 애인은 적조했으나 마음이 가난하지 않았다
작은 웃음쯤 나눌 수 있는 편안이 있었다
두 번째 애인은 바닷물 뒤집듯 열정으로 가득했다
탄소발자국 남기는 날이면 가뭄과 폭염으로 하루가 사라졌다
멀리서 부는 바람에 몸이 먼저 뜨거워졌다
두 번째 애인의 친구는 냉정한 라니뇨
물기 많은 구름에 덮이기도 하고 추운 겨울이 오래 갔다
적도 지역 저수온으로 캐나다엔 한파, 호주엔 폭우
무역풍을 닮은 그녀들을 두 개의 몸으로 만났다
엘리뇨, 라니뇨 뜨겁거나 차가운 몸을 가진 여자들
새로 만난 애인의 눈동자는 파랗고 꽃술이 붉은,
밤에는 뜨거우나 自淨하는 자궁을 가졌으면 좋겠다
메타버스(metaverse)
영상 속 글자들이 가상공간에서 움직인다
그녀에게 가 닿은 내 몸이 한 문장
아바타가 아바타를 만나 사랑을 나누는
거울 세계에 비친 현재도 한 문장
그녀와 나의 세컨드 라이프
어제 그녀를 가상현실에서 만났던 것일까
지나간 사랑을 새로운 세상으로 끌어내어
헤어진 그녀를 재구성했다
현실과 가상이 한 세계로 연결되는 통로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허상을 끌어안고 있는 것
내가 지난 시집에서 쓴 넷플릭스 속 그녀는 가상인물이었다
*가상과 초월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세계·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가상현실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사회·경제적 활동까지 이뤄지는 온라인 공간
문정영
1997년 월간문학 등단. 시집 두 번째 농담 술의 둠스데이 등.
계간 시산맥 계간 웹진시산맥 발행인. 동주문학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