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잡지』 1950년 3월호 제44권 제3호 통권 1020호(39〜42쪽)
최도마 신부 전기(十二)
一八三九년 박해이후에 우리교회의 가장 즈기여운 원수하나이 교인들을 상대로 흉측한 거즛말을 써서 정부의 이름을 빌어 삼천리전토에 선전하였으니, 그 목적은 다름이 아니오, 우리교인들에게 대한 특히 블란서인들에게 대한 대중의 악감을 선동시키기위함이였나이다. 박해가 무서워 아무도 이 불칙한 무함을 반박하지못하고, 이 엉터리없는 거짓말을 변명하고저아니하였나이다. 어느누가 조금이라도 이의를 토하는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무고히 교우들만 주목을 받어 반역자와같이 학살을당하게 될것이옵나이다.…
블란서인들은 「고군도」에서 파선을 당한이후, 익년에 다시 올 것을 언명하였으나, 三년이 경과토록 별무소식이오매, 한국인들은 실속없이 뽐내는자로 생각하여, 조금도 겁낼것이 없다고 보고있나이다.…」
최신부께서는 여기에 당시 국가정세에관한 말슴을 간단히 쓰섰다. 즉 三十三에에 헌종(憲宗)의 서거하심과 十八세로 철종(哲宗)의 등극하심을 말하고, 왕이 연소하여 국권이 튼튼치못하매, 당파싸움과 아울러 탐관오리들의 행악으로 국세는 극도로 쇠진하여지고, 백성은 도탄에 빠지는중 교인들은 이중으로 타격을 당하게되는 것을 탄식하섰다.
다시 최도마신부님의 편지를 계속하면 아래와같다.
「… 나는 신부님께 수토불양한데대한 약을 청구하옵나이다. 불란서학자들중에는 우리에게 이러한경우에 사용할 약을 가르처줄수 있을까 생각하옵나이다. 우리나라에는 산야에 개간할만한 땅이 많이 있어, 그러한데로 교우들이 가면 자미를 볼 듯 하옵나이다. 그러나 그런곳에 거주하는이들이 불행이도 병이 많어 현기증, 토혈증, 쇠약증 기타병이 생기나이다. 나의 관측으로는 의심없이 이모든병이 수토불양한데 기인하옵나이다. 그러니 신부님께서 그런데 관한 묘방을 알어보서서 내게 자세히 가르처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또한가지 신부님께 소청이 있사옵나이다. 신부님께서 수고하시면 우리 불상한 교우들에게 크나큰 위로될것이있어서 말슴드리나이다. 우리교우들이 성물을 대단히 원하여, 상본이나 고상이나 성패같은 것을 값을 불고하고 사려하옵니다. 내가 성물을 사기위하여 얼마간 돈 작만하기는 그리 어렵지않다고 생각하오나, 돈을 상점에 보낼 도리가 없나이다. 만일 한국돈이 은으로 된것이라면 그다지 불편이 없겠지만, 이나라에는 은전을모르나이다. 그러하오니 신부님 좋고 실한 성물로 큰 고상, 적은 고상을 위시하여, 예수와 성모와 성요셉과 성요안세자와 종도들과 성학자들과 기타 도문(禱文)에 이름이 실려있는 성인성녀들의 패와 상본을 가추가추 보내주시면, 이후 기회있는대로 대금을 전하여드리겠나이다.
「아블류」신부께서는 아직 아무것도 하실수없으시고, 주교각하와 다만 내가 교우들을 방문하나이다.
우리는 방금 안심하고 있는 형편이오며, 큰 박해는 없사오나, 사군란은 항상 그칠줄을 모르나이다.
천주여 네 거룩하신 이름을 적대시하는자들에게 진리를 깨닫게하시고, 그들을 교회의 품안에 들어오게하사 써 우리다함께 실락중에서 자유로 너를 섬기게하소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비옵느니, 신부님 가련한 이 한국민들을 위하여 자조 기구하여주시기를 바라오며, 여러 경애하는 신부님들께 문안을 사뢰옵고 이만 그치나이다」(3)
이상 소개한 장문의 편지는 최신부께서 一八五○년 월중에 쓰신 것으로 추측된다. 당신 입국과 국내에서 六개월간 첫전교하신 사정을 빠리외방전교회에 계신 「레그레좌」신부님께 알린 것이다.
× × ×
이야기를 잠간 「메스뜨르」신부께로 옴기자. 이상에 말한바와같이 一八四九년 十二월 최도마신부와함께 입국하시려고하시다가, 환경이 허락지를않어 최신부께서만 입국하시고, 「메스뜨르」신부는 창연이 돌아서서 「베르뇌」신부택에 유람하기고, 一八五二년 음 二월경에 한국에 포교하시기로 새로이 결정된「양수」신부와 동반하여, 한국 어느 해변에 오시고저 국내에 계신「페레올」(고)주교께 변문 내왕하는 어느 교우들편에 소식을 전하였었으나, 공교롭게 소식이 주교께 전하여지지못하였다.
「매스뜨르」신부와 「양수」신부는 소식이 전하여졌으리라고 믿고, 중국배를 타고 약속한 한국근해에 당도하였으나, 믿었던 영접군들을 만나지못하였다. 불행중다행으로 때마침 불란서군함이 그근처에서 파선을당하여, 이사건으로 상해주재 불란서공사 「드․몽띠니」씨가 그곳에 와있었고, 공사는 한국교우들을 인솔하고 있었다. 전교신부들이 입국차 그곳에 와계시다는 소식을 최도마신부께서 비밀이 알고, 곧 영접군들을 보내는동시에 「비낭」에로 유학갈 신학생들을 동반시켰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매스뜨르」신부와 「양수」신부는 더오래 기다려보려하였으나, 중국선주의 보채는 때문에 더 지체못하고, 따라서 영접군을 만나지못하고 다시 중국을 향하게된 것이다.(4)
「다불류」(안)신부께서는 쾌차하신후 전교에 전력하시는 한편, 시간을 이용하사 한국신학생 다섯을 교수하시고 지도하섰다.(5)
그리고 페레올주교께서 병고가 계서서 시각으로 위중하여가시니, 가끔 주교각하 방문도 게얼리아니하섰다.(6)
× × ×
최신부께서 주교님의 병환 때문에 큰 걱정중에 계섯고, 더 위중하실때에는 주교를 뫼시고 있다(7) 덜하시다면 다시 전교의 길을 떠나섰다. 주교께서 위석에 계서서 전교를 못하시고 누어계시매, 다블류신부와 최신부님의 전교사무는 더욱 번다하게된다.
최신부입국이래 주교와 다블류신부 두분이 체번하시다시피 병석에 계시매, 고달푼이는 오직 최신부님이시다. 그러나 무병하서서 전교에 분망을 계속하섰다. 아래에 또 최신부님의 전교중 경험담을 듣기로하자.(8)
「유명한집사람 하나이 새로 입교하러 왔으니, 이는 실로 인자하신 천주의 보여주시는 영적이라. 이는 전에 가끔 천주교이야기를 들었고, 그교는 악하고 때역한 도(道)라고 생각하였다. 멍에목이라는 산골짝이에 교우들촌락이 있었고, 그는 교우촌에서 멀지않게 살다가, 무슨 이유인지 교우촌 바루 옆에 집을 짓고 이사하였다. 때마침 교우촌은 화재를 보아 전소되었고, 새로 이사온 조씨(趙氏)라고 부르는 그는 재난을 당한사람들을 위문하러왔었다. 그러나 화재를 본 부락민들의 얼굴이 모두 태연함에는 아니놀랄 수 없어 그 이유를 물었다. 이재민들은 최초에 솔직한 이유를 말하지 않었다. 그러나 조씨는 그 대답에 불만하고 그러한 재난중에 그같이 태연이 지내는 이유를 재삼 추궁하므로, 마침내 천주교인 이라는것과, 교인은 만사에 천주의 성의를 생각하고 아버지같이 착하신 천주께 의지하며, 무한한 슬기로 안배하시는 천주를 흠숭하고 지낸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이 몇마디 말이 조씨의 마음을 즐겁게하였고, 진리를 알어듣기에 넉넉하였다. 그는 그날부터 교리를 배우기시작하였고, 완전한 교인이 되기위하여 교인답게 수계실천하였다. 그러나 박차버려야할 지장꺼리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조상의 신주를 없이할것이요, 수많은 친척과 친구들과의 상종을 끊어야하며, 가문의 체면을 돌아보지말어야한다. 이것이 드러나고보면 위선 박해의 이유가 될 것이다. 주의 성총은 조씨의 마음을 용감하게 부뜰어도우섰다. 그리하여 그는 거리낌없이 만반 희생을 각오하고 천주께 봉사하기위하여 무엇이나 짓밟어버릴 결심을 가졌다. 조씨는 여러 가지 이유를 빙자하고 부모친척을 멀리 떠나, 교우들을 가까이 불러 살며, 자기 가진바를 불질러 외교인들앞에 화재가 고의적이 아니라는것과 신주를 없이하였다는 것이 알려지지않게하였다.
그후 그는 세속과의 깊은 인연을 끊고서 전에 지나던 자기 일류와 앞으로 모든 거래를 사절하고, 사회방면에있어 일개 죽은사람으로 살고저한다고 언명하였다.
나 전교할때에 이 열열한 예비자를 영세시키고, 본명을 바오로로 정한후, 본명성인이 당초에 교회를 박해하던자이러니, 후에 유명한 선교사요 호교가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 이 본명성인종도를 본받으라고 권하였다.
조바오로는 즉시 교훈을따러, 위선 그아오를 권하여 진리로 이끌려고 하였다. 그 동생은 유명한 학자이였고, 그 이름이 세상에 날려있느니만치, 장차 고관 대작의 지위를 희망하고 있는 청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