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중순 붉은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기독교에서 주최하는 1박 2일 힐링 연수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자가용을 몰고 문의를 향해서 달려갔다. 그런데 문의에서 회남대교를 건너야 되는데 네비도 없는 초행길이라 막막하여 교차로에 차를 세우고 문의 지서로 들어가 경찰관에게 물으니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신다. 그래서 가르침대로 청남대 방향으로 달려가다 좌측 도로를 넘어 비탈진 고개를 올라가자 끝없이 펼쳐진 소나무 숲이 내 주위를 에워싼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도로만 길게 꼬리를 문 듯 이어지고 아무리 달려도 끝없는 산과 숲만 이어질 뿐 사방은 정막감과 고요함만 메아리칠 뿐이다. 혼자서 아무런 대화도 없이 회남숲을 묵묵히 달려가자 너무 지루하고 답답한 마음에 도시에서 ‘왁자지껄’시끄러움이 문득 그리워졌다. 숲을 한참 달리다 한적한 고갯마루에 잠시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왔다. 산 곳곳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오는지 울긋불긋 화장을 한 곳이 너무 예뻐 그리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본다. 가을바람이 노란 단풍잎을 흔들며 내 옷깃을 스치고 소나무 숲으로 살랑살랑 사라진다. 갑자기 시원함이 몰려왔고 솔잎 사이로 내비치는 붉은 햇볕이 너무 따스하다. 차가 고개를 넘어 한참을 더 달려 내려가자 막막한 산 속에서 외딴집이 나타나고 군데군데 자리잡은 널따란 밭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감나무마다 빠알간 감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익어가 식욕을 자극한다. 과일 중 너무나 달콤한 붉은 홍시보다 더 단 것이 또 있을까? 붉은 감을 보니 하나 또옥 따서 먹고 싶다.
비탈진 아스팔트 숲속을 끝없이 계속 달려가자 갑자기 회남대교가 나타나고 그 밑으로 대청호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봉우리는 알록달록, 강물은 파랗게 넘실거리는 곳을 지나 왼쪽으로 핸들을 돌려 큰 고개를 굽이굽이 넘자 높다란 언덕에 기독교 교회가 아담한 자태를 뽐내며 서있다. 난 평소 신자가 아니라 잠시 멈칫했지만 용기를 내서 온갖 나무와 꽃으로 가꾸어진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이미 힐링연수를 받으려는 많은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오셔서 삼삼오오 앉아 정답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등록을 마친 후 교회 강당에서 사십 여명이 모여앉아 찬송가와 가곡을 섞어 음을 높고, 낮게, 빠르고, 느리게 수없이 부르다보니 분위기가 부드럽고 화기애애하다. 처음이라서 어색했지만 많은 찬송가 부르기와 목사님의 설교는 힘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재미도 있다. 창문을 통해 간간이 불어오는 미풍은 노래와 더불어 교회 안 분위기를 시원하고 쾌적하게 만들어 준다.
저녁 무렵에 강사님과 많은 연수생들이 함께 언덕을 넘어 동산으로 길게 꼬리를 문 듯 걸어갔다. 오솔길 오른 쪽으로 펼쳐진 야산에는 감나무들이 쫙 퍼져 커다란 대봉감이 주저리주저리 매달려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문득 감이 먹고 싶어 붉은 감을 만지자 너무 딱딱해 그냥 널려있는 감을 스치듯 보며 지나갔다. 나중에 감이 잘 익으면 신도들에게 조금씩 나누어 준다고 한다. 감을 보니 불현 듯 어린 시절 시골에서 그 많던 감나무에 올라 감 따던 일과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다.
조금 더 가니 야산 위에 평평한 산마루가 펼쳐져 너른 잔디밭이 잘 가꾸어져 있고 그 옆에는 모과나무 세 그루에 노랗게 익은 커다란 모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바람이 불 때마다 출렁거린다. 우리 연수생들은 잔디밭에 차례로 앉아 강사님의 활기찬 강의와 찬송가와 가곡을 1시간 정도 즐겁게 듣고 부른 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행들 대부분은 돌아가고 몇 명이 남아 있을 때 주인인 사목님이 모과를 따도 된다고 하여 장대를 들고 모과나무에 올라 후드득 내리치니 둥근 모과가 잔디밭 위로 많이 떨어진다. 내가 커다랗고 싱싱한 모과 몇 개를 줍자 향긋한 모과향이 사방에 퍼져 폴폴 넘쳐간다. 세상에 모과향 보다 더 좋은 내음이 또 있을까? 남아있는 선생님들마다 모과향을 맡으며 포근하고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돌아오다 꼭대기에 둥근 바위가 있어 잠시 앉아본다. 밑으로는 벼랑이 매우 가파르고 시원한 하늬바람이 불어와 쳐다보니 대청호가 끝없이 넓게 펼쳐져 있다. 맑은 호수는 찰랑찰랑 작은 물결이 끊임없이 퍼져나가고 물새들이 낮게 나르며 물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반도처럼 툭 튀어나온 곳에도 참나무들이 예쁘게 단풍이 들어 울긋불긋 너무 멋지다. 만일 보트라도 한 척 있으면 사랑하는 님과 머얼리 물살을 가르며 노를 저어 작은 만과 반도를 가르며 호반 위로 유유히 여행을 떠나고 싶다. 다시 바위에서 일어나 오솔길을 내려가고 있을 때 외딴 곳에서 알싸한 향이 번져 바라보니 노랗게 핀 들국화가 바람에 하늘하늘 머리를 흔들고 있다. 작은 꽃에 코를 가까이 대어본다. 짙은 향이 확 몰려오며 손에 든 모과 향과 섞여 주위가 온통 노란 향기로 가득 찼다. 교회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반대쪽에서 산책을 하려는지 어떤 예쁜 낯선 젊은 여선생님이 혼자 오고 있어 문득 모과를 주고 싶은 생각이 나 큰 것으로 하나 건넸다. 그 분은 쑥스러운 미소로 모과를 받아 냄새를 맡으며 향이 좋은지 싱그럽게 웃는다. 나도 그 미소가 보기 좋아 같이 웃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숙소 뒤를 산책하려고 좁다란 오솔길로 들어섰다. 길가로는 잣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그 옆으로 너른 밭에 콩들이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밭둑에서 콩과 고구마 순을 보고 있으려니 어제 젊은 그 중학교 여선생님이 지나가며 어디서 얻었는지 크고 빨갛게 익은 대봉감 하나를 건넨다. 감을 만져보니 아직 덜 익었지만 따듯한 감촉이 남아있다. 둘이 오솔길을 걸으며 모과와 대봉감 같은 훈훈하고 향기로운 대화를 나누다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주변에는 오래 된 커다란 감나무가 둥시를 가득 매달고 군데군데 위치해 있고 지천으로 자라는 모과나무 밑에는 노란 모과들이 수없이 떨어져 땅에서 뒹굴고 있다. 그래서 크고 싱싱한 모과들만 한 아름 주워 차 시트 밑에 실었다. 오전에는 교회에서 연수생 40여명과 목사님 설교와 찬송가를 수없이 부르며 연수생들과 함께 예수님에 대해 감사를 드렸다. 점심 식사 후 교회 주변에 무수히 잘 가꾸어진 꽃나무들과 과일나무를 둘러보며 가꾼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 보고, 높은 동산에 올라가 마지막으로 산 아래 대청호를 둘러보며 경치 좋은 곳은 모조리 카메라에 담았다. 이젠 귀가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올랐을 때 모과의 향긋한 향기와 대봉감이 쑥스러운 듯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반갑게 맞아준다. 차가 어제 왔던 회남의 소나무 숲속을 정처 없이 달릴 때 노란 단풍잎과 빨간 감들, 중학교의 젊은 여선생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추억으로 붉게 물들어 갔다.
첫댓글 모과의 향긋한 향기와 대봉감이 쑥스러운 듯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반갑게 맞아준다. 차가 어제 왔던 회남의 소나무 숲속을 정처 없이 달릴 때 노란 단풍잎과 빨간 감들, 중학교의 젊은 여선생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추억으로 붉게 물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