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구는 소주를 좋아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고, 인권변호사로 명성이 쌓여도 그에게 술이란 것은 소주 밖에 없었다. 처음 술을 마신 것이 수능 백일 전 이었다. 친구 서준성과 오징어 하나로 강변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소주를 마시던 것이 그의 소주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서재에서 서준성이 보내준 메일을 보고 있던 유진구는 벌써 소주 두 병을 마셨지만 전혀 취하지 못했다. 죽은 친구가 속삭이고 있었다. 십 육년 전의 악몽이 다시 깨어났다고. 다시 싸워야 할 때라고. 그래놓고 죽어버리다니. 병신 같은 놈. 유진구의 주름진 눈가에서 통통한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지금 준성이 본다면 울보돼지는 여전하다고 놀리겠지. 하지만 자신의 별명을 지은 친구는 더 이상 그 별명을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 친구에게는 죄인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줘버릴 수가 없다. 불그스레한 얼굴로 유진구는 서재에서 나가 거실로 갔다. 불이 꺼진 어두컴컴한 현관입구를 장식하고 있는 가족사진을 보았다. 딸을 무릎 위에 앉히고 의자에 앉은 아내와 그 뒤로 검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자신이 웃으며 서 있었다. 사진을 보던 유진구의 입가에 빙그레 미소가 감돈다. 저 행복이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틀 전, 딸이 납치를 당했다. 딸이 다니던 연세초등학교에서 사이보그들이 인질극을 벌인 것이었다. 사건은 해결되고 모든, 아이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지만, 유독 자신의 아들만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일곱 시. 수신자가 적혀 있지 않은 한 통의 메일이 날아왔었다.
[딸을 찾고 싶나? 그러면 48시간 이내 자살해라.]
그 메일을 본 순간, 딩동 하고 벨소리가 들렸었다. 진구가 문을 열어보니 사람은 없고 빨간 상자 하나만이 바닥에 놓여있었다. 식은땀을 흘리며 그는 상자를 열어보았고, 그 속에는 녹이 슬어 총알이 제대로 나갈까 의심되는 리볼버 한 자루가 들어있었다. 그 리볼버에는 총알 하나가 장전되어 있었는데, 그 것을 본 순간 진구의 등이 식은땀으로 젖어버렸다. 자신에 대한 원한 때문에 아이를 데려갔고, 또 그 원한을 갚기 위해 자신에게 자살을 종용하는 것이다. 그였다. 김선혁. 자신 때문에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한 그가 똑같이 복수를 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47시간 56분이 지났다. 자신은 죽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자신이 죽은 후에도 그가 딸을 돌려보내줄지 장담할 수가 없다. 진구는 다시 자신의 서재로 갔다. 그는 컴퓨터를 켜서 준성이 보내준 자료를 자신의 장인에게 보냈다. 김선혁도 이 사람만은 쉽게 건드릴 수가 없을 것이다. 그의 장인은 현 국무부총리이자 차기 대통령 감으로 불리고 있는 정선규였다. 장인은 인간의 기계화금지법을 통과시킨 반 사이보그주의파의 수장이자, 16년 전 김선혁에게 판결을 내린 판사이기도 했었다. 장인이라면 딸과 손녀를 지켜줄 것이다. 그 정도의 거인이라면. 모든 일을 다 끝마쳤다는 듯이 홀가분한 미소를 지으며 진구는 서랍장에서 리볼버권총을 꺼냈다.
“홀로그램 켜줘. 봄소풍.”
갑자기 방 안이 들판으로 바뀌었다. 들판의 풀잎과 나무가 바람에 따라 흔들리고 그 위를 하늘색 투피스를 입은 아내의 앞으로 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거북이를 닮은 일본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딸이 뛰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딸에게 뛰지 말라며 소리를 지른다. 괜찮아요 하고 대답하자마자 넘어지는 딸. 그 모습에 부리나케 뛰어가는 아내. 그런 그들을 찍고 있는 홀로그램에는 나오지 않는 자신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정말 즐거운 웃음소리가. 그 때의 자신도 웃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의 자신처럼. 진구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김선혁은 모니터를 보며 포도주스를 마시고 있었다. 벽에 붙은 커다란 모니터와 어두운 원장실. 저녁이었기에 불이 켜지지 않은 원장실은 마치 소형 극장 같았다. 선혁의 표정도 마치 극장에 놀러와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는 소년의 그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모니터에 상영되는 영화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불타는 대림빌라를 바라보던 종연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유진구가 자신이 직접 고른 리볼버로 자살을 하는 것이었다. 홀로그램 동영상을 보다가. 후후.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꼬맹이일 때 개미를 잡고 논 적이 많이 있었다.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개미를 보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자신이 크고 거대하고 강하다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질리면 꽉 눌러 개미를 죽이는 것이다. 목숨까지 맘대로 하다니. 마치 신이 된 것 같다.
“됐어.”
그의 말과 동시에 모니터가 꺼졌다. 책상 위에 포도주스 잔을 놓은 선혁은 에어휠체어를 조작하여 원장실을 나섰다. 잔인한 미소를 짓던 방금 전과는 다르게 그의 얼굴은 뺨에 홍조까지 띈 채 긴장된 얼굴이었다. 마치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남자고등학생처럼. 선혁은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9층과 10층을 동시에 눌렀다. 원장실이 있는 10층과 연구소에 상주하는 교수들이 있는 9층 사이에 선혁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르는 층이 존재하고 있었다. 9.5층에 멈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빛이 사라진 어두운 공간, 마치 우주의 한 복판에 붕 떠있는 것 같다. 선혁은 다시 에어휠체어를 조종해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둥 하는 소리와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고, 선혁은 코앞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어둠 속에 뒤덮였다.
[아빠!]
[여보!]
목소리가 들린다. 반바지를 입은 선혁이 백사장 위에 서있다. 수영복을 입은 아내와 딸이 웃으며 뛰어오고 있다. 자신에게. 에어 휠체어에 앉은 선혁이 아내와 딸을 안으려는 듯 양팔을 벌린다. 그러나 홀로그램영상인 아내와 딸은 그를 통과해서 백사장 위에 서있는 선혁에게로 뛰어간다. 그는 아내와 딸을 안고 즐거워하다가 중심을 잃고 백사장 위로 나동그라진다. 모래범벅이 된 선혁을 보고 아내와 딸이 또다시 웃음을 터뜨린다. 뚱한 표정으로 모녀들을 보다가 선혁도 미소를 짓는다. 16년 전, 어느 여름날의 모습을 보며. 물끄러미 그들을 쳐다보던 에어휠체어에 탄 현실의 선혁이 오른손을 들어 딸의 뺨을 만지려 한다. 그러나 그의 손은 딸의 뺨을 통과할 따름이었다. 온기 따위는, 부드러움 따위는 느낄 수 없다. 어느새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 선혁이 말했다.
“꺼.”
16년 전의 선혁과 아내와 딸, 백사장과 푸른 바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대신 나타난 것은 천장까지 닿아있는 거대한 유리관 두 개와 유리관을 중심으로 빽빽하게 둘러싸인 기계들과 모니터들이었다. 모니터의 상단에는 붉은 곡선 그래프가 상승과 하강을 반복했고, 하단에는 빼곡한 수치들이 시간경과에 따라 명멸했다. 모니터를 한참 지켜보던 선혁의 얼굴에 갑자기 미소가 돌아왔다. 그는 두 개의 유리관을 동시에 포옹하듯 끌어안고 말했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지?”
온기와 부드러움은 없다. 그래도, 희망은 느껴진다. 선혁이 안고 있는 두 개의 유리관 속에는 생체배양액 속에 뇌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들어있는 뇌에는 수 십 가닥의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행복한 듯 유리관을 끌어안고 있는 선혁은 유리관 뒤 쪽의 벽에 붙어있는 모니터에 나타난 글자를 보지 못했다.
[보고 싶어. 여보.]
[보고 싶어요. 아빠.]
종연이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유진구의 집은 경찰들과 구경 나온 이웃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쪽 에서는 앰뷸런스가 있었고, 방송국차량도 눈에 띄었다. 방송국 차량 앞에는 단발머리의 예쁘장한 여자아나운서가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를 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사건의 내용을 전달하고 있었다.
“오후 9시 12분, 검사 유진구씨가 자택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오후 8시 40분, 유진구씨의 아내인 정주희 여사께서 서재에서 숨져있는 유진구씨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사인은 총기에 의한…….”
아나운서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종연의 눈이 커졌다. 자신이 김선혁이란 남자를 우습게 본 것이다. 그는 상상 이상의 괴물이었다.
갑자기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유진구의 집 대문이 열리고, 흰색 가운을 입은 두 남자가 흰 천으로 덮인 들것을 들고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들것을 덮고 있는 흰 천의 앞부분이 붉게 물들어 있는 걸로 보아 분명 유진구의 시체였다. 그 뒤로 피곤한 얼굴의 형사 두 명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종연은 익숙하게 보던 얼굴이었기에 그들이 무얼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단순한 자살이 아닌 것이다. 절대로. 그때였다. 종연의 핸드폰이 울린 것은. 자켓의 오른쪽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미정이었다.
“자책하고 있지?”
미정의 말에 종연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지도.”
“그럴 줄 알았어. 반장이 시켜서 전화했어.”
“뭐?”
“두 가지. 슬픈 것부터 들을래. 재미있는 것부터 들을래?”
“장난 칠 시간 없어. 빨리 말해.”
종연의 말에 전화기 속에서 미정이 숨을 가다듬는 소리가 들려온다. 뜸을 들인다. 이 왈가닥한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다.
“도저히 못하겠다. 재미있는 것부터 말해줄게. 정선규 국무총리 알지? 가끔 오셔서 우리 술 사주시는 분.”
미정의 말에 종연이 피식 웃는다. 반사이보그 파의 수장이자, 대 사이보그 전담반의 창시자이자 차기 대통령감이기도 한 남자를 그녀에게는 그저 술 사주시는 분인 것이다. 과학자란 다 이런 인종인가.
“알지. 그 분 때문에 우리가 밥 먹고 사는 거잖아. 근데 왜?”
“지금 세 개 공중파 뉴스를 장식하고 있는 유진구 검사가 그 분의 사위야. 그리고 하나 더. 김선혁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이기도 하시지.”
그다. 그가 다음 목표인 것이다. 입매가 일그러진다. 미소도, 우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면을 노려보는 종연의 눈빛은 칼날처럼 날카롭다. 그가 바라보는 곳에 마치 김선혁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미정의 다음 말로 인해 종연은 무릎이 꺾일 것만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 아이라고? 사라진 아이가?”
“응. 유진구 검사가 요청했대. 최대한 대내외적으로 비밀을 지켜달라고.”
종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자신 때문이다. 자신이 그 아이를 구했다면, 사이보그를 무찔렀다면……. 스스로를 향한 원망과 증오가 소용돌이친다.
“울어?”
흐느낌이 전화 넘어서까지 들리는가 보다. 미정의 물음에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종연이 말했다.
“흐음. 안 울어.”
“선배 그거 알아? 거짓말 할 때 괜히 헛기침 하는 거.”
“시간 없다. 끊어.”
종연이 폴더를 닫으려 하자 미정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상우랑, 윤하씨랑 한 잔 하자. 다 끝나면.”
“그래. 다 끝나면.”
종연의 말에 미정의 대답이 없다. 종연이 다시 폴더를 닫으려하자 그제야 미정이 말했다.
“조심해.”
“고맙다. 후배.”
진심으로 자신을 생각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눈가를 왼쪽 손등으로 닦으며 종연은 미소를 짓는다. 전화를 끈 후, 핸드폰을 자켓 주머니에 넣으며 종연은 자신의 차로 갔다. 차에 시동을 걸던 종연의 눈매가 다시 매섭게 변한다. 정선규를 지켜야 한다. 김선혁이라는 괴물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힘으로 불가능하다. 정선규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 계속해서 몰려드는 인파와 혼잡한 차들 사이로 운전하던 종연은 차반장과 상우, 미정과 함께 갔던 정선규와 그의 집 위치를 떠올린다. 정선규. 각진 얼굴과 툭 불거진 광대뼈가 신경질적인 인상이었지만, 푸근한 미소를 가진 노인. 정치가라기보다는 정년을 앞둔 대학교수 같은 인상이었다. 흰 머리와 주름을 빼고는 아직 혈기왕성한 청년 같이 반사이보그론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 사람을 지켜야 한다. 살아있을 지도,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유진구의 아들에게 자신은 빚이 있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에게 외할아버지까지 잃게 만드는 것은 너무 심한 일이 아닌가. 종연은 도로로 나오자 엑셀을 밟은 발에 더욱 더 힘을 주기 시작했다. 빚을 갚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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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더는 20부작입니다. 반을 넘었네요.
토, 일만 연제하려고 했는데, 그냥 빨리 올리고 끝내버리려고^^;
도배 안 되게 조심해서 올리겠습니다.
첫댓글 도배 돼도 돼요.. ㅋㅋㅋ.. 빨랑 다음편 보고싶어요..
저도 빨랑요~~!!
종연의 활약상이 기대 됩니다. 이번만은 지켜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