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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1 주일낮설교 / 충만교회 민창근 목사
막 14:32-42 /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 오늘 말씀
가룟 유다가 떠난 후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다락방에서 감람산으로 나갔고, 겟세마네라 하는 곳으로 갔습니다.
- 겟세마네는 예루살렘 동쪽 1.2km 지점이며, 감람산 서쪽 기슭에 있는 곳입니다.
겟세마네라는 히브리어는 “가트 쉐마니”로 “기름 짜는 곳, 기름 짜는 틀”이란 뜻입니다.
감람산(올리브산)은 올리브유를 짜는 장소가 있었기에 그렇게 불렸을 것으로 보는데, 예수님의 기도와도 잘 어울리는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활동을 시작하실 때에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기도 하시면서 시작하였고, 계속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고, 이제 중요한 십자가의 길을 가기 전에도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눅 22:44을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고 하였는데, “힘쓰고 애쓴다”(헬, 아고니아)는 것이 투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할 때 평안하고 조용하게 기도할 수도 있고, 이렇게 전투적으로 기도해야 할 때도 있다. 힘쓰고 애써 기도하는 것도 배웁시다.
전쟁을 치르듯 결연하고 심각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다보니 땀이 핏방울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 판명이 된 일입니다. 이런 모습이 기름 짜는 곳이라는 겟세마네와 아주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예수님은 8명의 제자들을 먼저 떼어놓으시는데, 이들에게 어떤 의무나 당부를 하지 않고 그저 단지 휴식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① 피곤하니까 쉬라는 것 – 제자들이 피곤한 상태라는 것을 아시고 그저 쉬라는 의미.
②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쉬라는 것 – 예수님이 가시는 십자가의 길, 그 길에서 제자들이 배반과 부인 등으로 영적인 위기 상황 속에 있는 것을 아시기에 그저 쉬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상황입니다.
별 기대를 안 한다는 느낌입니다.
- 그 다음에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이 중요한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가시는데, “33....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예수님은 세 명의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고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만큼 애정과 함께 기대를 갖고 있음이 보여집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아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기에 이런 심각한 죽음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는 것은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같이 기도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며 같이 기도해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입니까? 세 명의 제자들이 여기에 잘 부응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것입니다.
- 그 다음에 예수님은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눅 22:41에는 “돌 던질 만큼” 나아가서 기도하셨다고 하였는데, 약 30~50미터 더 가셔서 기도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26:39에는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였다고 하였는데, 명화에 예수님이 돌에 손을 얹고 폼 나게 기도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아빠, 아버지여” - 아빠는 아람어(‘압바’)이고, 아버지는 헬라어(‘파테르’)입니다.
예수님이 “아빠, 아버지여”라고 두 단어를 사용하시기 보다는 아람어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른 것을 마가가 헬라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을 위해 주석처럼 추가한 것으로 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아주 친근한 “아빠”로 부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간적인 아버지에게는 이 말을 썼지만 하나님 아버지에게는 불경하게 생각하여 사용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은 이 말을 사용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친근한 관계인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시는 죽음의 잔이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이어서 할 수 있다면 다른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을 사용해달라고 말하지만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해달라는 순종의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기도는 기도의 모범입니다.
1) 기도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대화입니다.
친밀하다는 것 때문에 기도는 어려워서는 안됩니다.
친밀하기에 모든 것을 편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 ‘제자입니까“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님의 야외예배 기도 – 교회 안에서 경직된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닌 눈을 뜨고 편안하게 나무와 주변을 보면서 기도하는 것처럼 친밀한 느낌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 최근 감동받은 페북의 뉴스
20세기 초, 미국 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느 날, 10살 정도인 남자아이가 1달러를 손에 꼭 쥐고 거리에 있는 상점마다 들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나님을 파시나요?”
가게 주인들은 안 판다고 말하거나 혹은 아이가 장사를 방해한다고 생각해 매몰차게 내쫓기도 했습니다.
해가 점점 지고 있었지만 아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69번째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하나님을 좀 파시나요?”
가게 주인은 60이 넘은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하나님은 사서 무엇하려고 그러니?”
자신에게 제대로 말을 걸어주는 사람을 처음 본 아이는 감격하여 눈물을 흘렸고, 자신의 사연을 노인에게 털어놨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오래전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삼촌이 돌봐주고 있는데, 얼마 전 삼촌마저 건축 현장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해 현재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삼촌을 치료하던 의사가 아이에게 “삼촌을 구해줄 것은 하나님밖에 없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이는 이 말을 듣고 하나님이라는 것이 정말 신기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천진한 아이는 의사에게 “제가 하나님을 사 와서 삼촌에게 먹일게요. 그러면 꼭 나을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들은 노인은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돈은 얼마나 갖고 있니?”
아이는 대답했습니다. “1달러요.”
“마침 잘 됐구나. 하나님은 딱 1달러거든.”
노인은 아이의 돈을 받아 선반에 있던 ‘하나님의 키스’라는 음료수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여기 있단다 얘야, 이 ‘하나님’을 마시면 삼촌이 금방 나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기뻐하며 음료수를 품에 안고 쏜살같이 병원으로 뛰어갔습니다.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는 자랑스럽게 소리쳤습니다.
“삼촌! 제가 하나님을 사 왔어요! 이제 곧 나으실 거예요!”
다음 날, 세계 최고의 의료 전문가들이 전용기를 타고 이 작은 도시에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삼촌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와 삼촌의 상태를 진찰했습니다.
아이의 삼촌은 정말로 병이 금방 낫게 되었습니다.
삼촌은 퇴원할 때 천문학적인 병원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라 쓰러질 뻔했습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어떤 억만장자 노인이 이미 비용을 전부 냈다고 말했습니다. 삼촌을 진찰한 의료진도 이 노인이 고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삼촌은 나중에야 아이가 마지막으로 들른 가게의 주인이 억만장자 노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 노인은 할 일이 없을 때 가게에서 적적한 시간을 보내곤 했던 것입니다.
감격한 삼촌은 아이와 함께 노인의 가게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노인은 여행을 떠난 상태였습니다. 가게 점원은 이들에게 이번 도움을 마음에 크게 담아주지 말라는 말과 함께 노인이 쓴 편지를 전했습니다.
삼촌은 그 자리에서 편지를 열어봤습니다.
“젊은이, 내게 고마워할 필요 없네. 사실 모든 비용은 자네의 조카가 다 낸 것이니 말일세. 자네에게 이런 기특한 조카가 있다는 것이 정말로 행운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네. 자네를 위해서 1달러를 쥐고 온 거리를 누비며 하나님을 찾아다녔으니 말이야… 하나님에게 감사하게. 자네를 살린 건 그분이니 말일세!”
; 기도는 1달러를 들고 하나님을 찾는 아이 같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기다리며 순수하게 그분을 찾을 때 만나주시고, 해결해주시는 것 같은 친밀함입니다.
2) 기도는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늘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소원은 합리적, 이성적으로 생각해서 맞는 것이라고 해도 소원을 두고 기도하는 것 말고 해야 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기도에는 우리의 행동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정말 원한다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 행동과 마음가짐, 자세 등이 포함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건강하길 원한다면 내가 운동을 하고, 먹을 것을 적절히 먹으면서 관리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건강 달라고 기도해야죠.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내가 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돌아보고, 말과 행동, 감정, 꿈, 습관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바꾸면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 우리집 화장실 하수구 주변에 머리카락 뭉치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3개로 늘었습니다. 그것을 치웠습니다. 가정에서 작은 일에 서로 협력하는 행동이 있어야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순종을 잃어버린 채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답을 못 찾을 때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딱딱 대답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때가 어려운 것이지요. 이때라도 순종의 맘이어야 합니다.
3) 기도는 고난을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을 통과해야 한다면 감당할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조차 고통하고 슬퍼하는 예수님과 한 시간도 함께 깨어있을 수 없는 고독한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도 내 짐을 대신 지어줄 수 없는 고독한 삶을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것은 내 스스로 헤쳐가야 합니다.
이 순간 함께 해달라고 아무리 애원하고 달래도 함께 할 수 없는 제자들을 의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 스스로 부딪치고 싸우며 이겨나가야 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마지막 남은 인간적인 기대조차 포기할 때 진정한 승리를 향한 길이 열립니다.
저는 이것이 십자가의 길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다고 봅니다.
(예) 며칠 전 어머님을 성암요양병원으로 옮겨드리기 위해 갔다가 슬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희가 방문도 오랫동안 했었던 보은의 집 원장님이 얼마 전에 갑자기 소천 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심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아파서 병원 갔더니 1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하더랍니다. 그리고 곧 돌아가셨습니다.
아직 할 일이 많은 40대에 왜 갑자기 이런 일이....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순종할 수 있어야 하고, 이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 하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시다.
첫댓글 2015년 3월 1일부터 마가복음 설교를 시작하였는데, 이번 설교가 150번째 설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