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묵회의 실체
내가 사는곳에서 길을건너 사거리쪽으로 100여m 가면 정명선씨가 운영하는 서예학원이 있다
붓글씨를 배우려는 생각은 있었으나 직장이 부천에 있는지라 퇴근하고 나면 피곤도 하고 시간이 맞지않아 생각도 못했다
어느날 퇴근길에 마음먹고 학원문을 두드렸다 20여명이 부지런히 쓰고있다
환갑 정도로 보이는 노인이 좌장 인듯하고 젊은이들 그리고 중년의 부인 처녀 아가씨와 꼬맹이도 있다
제법 잘쓰고 있다 몇달 아니 몇년은 족히 써야 따라갈가 싶다
무조건 접수부터 하였다
가다말다 쓰다말다를 번복하면서 그래도 두달이 지났다
어느날 퇴근길에 늦게 학원에 들어가니 여러사람들이 삥 둘러앉아 웅성웅성 하는것이 요란스럽다
지원知元이란 아줌씨가 서예에 출품하여 특상을 받았고 운봉雲峰이란 청년이 난정서蘭亭敍를 떼면서 책시세를
한다는것이다 특선이라 해서 학원에서는 경사스런 잔칫날이다
술도 떡도 음료수도 과일 과자가 수북히 탁자에 쌓여있다
책시세 또는 책거리 라고도 하는데 어느 학생이 한권의 책을 마스터 하는 기념으로 그간의 스승의 노고와 더부러
같은 동기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일로 옛날 서당에서 시작되였다
마침 퇴근길이라서 출출하던김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 우리 친목회를 만듭시다-
송석열이라는 이가 한마디 꺼내자 나이먹은 이들로 부터 호응도가 좋다
최의찬 양기봉 송석열 김영달 김만영 김우석 한학수 연택식 조민희 김정열 정명선등이 발기가 되어 [연묵회] 라는 이름으로 친목회가 성립되였다 물론 나도 빠질수가 없었다
그중 연장자인 최의찬씨가 회장이 되였고 김영달씨가 총무가 되였다
단언은 아니지만 서예깨나 한다는 사람들중에는 자존심이 강하고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자기 욕심과 잘난체하는 사람들이 많다 곧 자기일색이다 나는 연묵회에서 서력書歷으로는 가장 막내이자 초보자다
서예경력 20년 30년하고 떠드는 이들과 마주하다보니 내세울것이 없어 할말을 찾지 못하고 언제나 뒷전이다
입선만 해도 대단한줄 알았고 특선을 했다면 존경스럽고 부러워했다
내가 내세울수 있는것이 있다면 단지 어려서 서당을 다니면서 천자문 명심보감 소학 맹자까지 읽은것이다
물론 어려서 배운것이라 대부분은 다 잊어버리였다
하지만 그로인해 사회생활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고 퇴직후를 생각해서 한자급수 시험도 착실하게 최고 등급까지 올려놓았다
서예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중에는 과거에 한학을 공부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학과 서예는 엄연히 다르다 한학이 글자를 중시한다면 서예는 글씨의 예술을 의미한다
그래서 한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서예를 쉽게 생각한 나머지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도중하차하는 이들이 많다
나도 한참이나 글자에서 글씨로 바꾸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연묵회원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한문에 대해서는 나를 넘볼수없다고 자부도 했고 연묵회원 들도 그것을 인정해 주었다
글씨를 잘쓰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매주가 아니면 매일같이 만나는지라 학원이 파할시간이면 어김없이 술파티가 벌어진다
술한잔씩 들어가면 언제나 자기잘났다 일색이다 입선을 거처 특선을 했고 대상을 받은 작가라는 것이다
추사체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조민희와 송석열이 열을 올린다
어느날 70대쯤 되어 보이는 노인 한분이 학원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들이 장가를 가는데 [청혼서 서식과 사주]를 부탁하노라는 것이다
요지음에야 세월이 바뀌고 새로운 신식 문화가 자리하기시작부터 서서히 없어진 것들이 많다
컴퓨터가 들어오면서 대신 해주다보니 붓글씨쓰는 일이 서서히 자리를 잃게되였다
꽃집에서 단골로 쓰던 리본이 자리를 감추고 입춘대길 건양다경은 슬며기 사라젔다
한옥집 그럴사한 집에 걸려있던 표구도 힘을 잃었고 병풍조차도 차츰 흉물로 변하여 거리에 버려지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20년 30년 경력자도 대상을 받았노라는 작가들도 누구하나 자기가 써보겠다고 선듯 나서는 이가 없다
요지음은 이런 서식을 쓰는이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모르는게 어쩌면 당연하다
- 사주 년 월 일 시와 신부 신랑의 본관과 이름까지 적어 주시고 지금은 어수선하니 내일 들리시면 않될가요
내일 오시면 준비하였다가 드리겠슴니다 -
글씨야 서투르다 할지라도 서식 하나만큼은 여러번 써본 경험이 있어 쉽게 대답하였다
노인은 내미는 백지에 일필휘지 시원스럽게 써놓고는 내일 오후에 이시간에 오겠다며 나간다
또다시 술잔이 오고간다
연파 최정수씨의 수제자라는 조민희씨의 체본이 대다수를 이루고 원장 정명선씨도 지지 않을쎄라 한몫한다
연파의 아들 가산도 이따금 얼굴을 비첬다 가산은 전국적인 호응도가 높다
추사체회장 지봉 박성목 향곡이규환 초계김희숙 취원 노기태 등 추사체의 내노라 한다는 이들도 이따금 술자리를 했다 술한잔 들어가면 모두가 자기가 최고이다 한결같이 자기자랑에서부터 시작이다
좀더 겸손할수는 없을가 이세상 어느 누구도 최고는 없다 단지 이름이 있을 뿐이다
임진 왜란은 수많은 이들의 목숨 대가로 이순신이 영웅이 되였다 목숨바쳐 싸워주지 않았다면 영웅이 되였을가
협회 지회장이 되였다 그리 대단한것도 그리 훌륭한것도 글씨를 잘쓰는것도 대상을 받은적도 없다
우연히 그들만의 속내를 알게 되였다
가장 예쁜 소녀가 미스 코리아 진이 되는줄 알았고 가장 잘쓴 글씨가 대상인줄 알았던 사실이 무색하였다
세상은 그리 공평하지도 않음을 보았다 그래서 뒷바침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았다
세상의 돌아감은 세예의 세계라서 조금도 다를게 없다
모두들이 먹잇감을 노리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생존경쟁의 사회와 다를바 없다
대개의 끼리끼리 세상은 어디에도 존재하고 있다 그게 세상 살아가는 모습인가 보다
서실의 하루
스르륵 스르륵 종이위를 지나는
숨죽인 붓길의 난蘭치는 소리
은은한 묵향墨香이 콧가에 맴돈다
침묵을 가로 지르는 소리없는 힘찬붓길
조용히 다가오는 매화향기
파도치는 풍죽風竹
한동안 지나면 국화차 향기에 취하여
서로를 아우르는 인정은 묵향墨香과 더부러 서실을 적신다
첫댓글 초대작가들 중에서도 자기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 하는 사람이 많습디다.
공모전에서는 입선이라도 많이 시켜야 주최측의 수입이 늘어 나서 좋고
출품자는 시간을 가지고 계속 출품하면 입선,특선으로 점수가 쌓여 작가가 되는 현실....
고맙슴니다 읽어주시므로 이 글을 올린 무지를 위로 받는 느낌이듭니다
서예생활 20여년 이라지만 코떼고 귀떼고 무어떼면 과연 붓을 든 시간이 얼마일가 생각해봅니다
고작해야 수십시간 아니 수백시간? 그게 그리 대단할가 생각합니다
다시 감사함을 드립니다
서예를 통하여 자기를 수양하고 심신을 닦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입선, 특선, 초대작가 다 좋지만 너무 매달리면 보기가 그렇습니다.
未修님 ! 훈수 고맙습니다
서예계뿐만이 아니랍니다.
공감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