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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명승진(觀命昇進)
이관명의 승진이라는 뜻으로, 숙종 때 호조판서를 지낸 이관명의 승진에서 유래한다. 공적인 일을 소신껏 추진하여 인정받고 성공함으로써 고속 승진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觀 : 볼 관(見/18)
命 : 목숨 명(口/5)
昇 : 오를 승(日/4)
進 : 나아갈 진(辶/9)
출전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세계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공직을 수행하는 자(공무원)를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의 공복(公僕)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그들은 국민의 수임(受任)자로서 언제든지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지며 공익(公益)을 추구하고 맡은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공무원은 그에 상응한 보수를 받고 행정처리에 대한 권한도 주어진다.
공무원의 직분을 군주시대에는 관리(官吏)라고 하였고, 민주시대에는 공무원(公務員)이라고 칭하고 있다. 어느 때 어느 나라이건 공무원이 성실(誠實)하고 청렴(淸廉)한 나라는 부강(富强)해져 나라가 안정(安定)되고, 공무원이 부패(腐敗)하고 부정(不正)을 일삼는 나라는 결국 멸망(滅亡)하는 역사적 교훈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선 숙종 때 당하관(堂下官; 정3품 벼슬) 이관명(李觀命)이 수의어사(繡衣御使; 암행어사)로 임명되어 영남(嶺南)에 내려가 백성들의 실태를 살피고 돌아왔다. "수의어사(繡衣御使)이관명 알현이오."
옥좌(玉座)에 정좌한 숙종(肅宗)은 용안(龍顔)에 희색이 만연하여 그를 맞았다. "객지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그래, 백성들을 직접 살펴본 소회(所懷)는 어떠한고?"
상감이 묻자 어사 답하길 "상감마마께서 정사(政事)를 바르게 펴신 덕택에 지방 관리들도 모두 백성들을 잘 보살펴 주고 있었습니다. 다만 통영(統營)에 있는 섬 하나가 후궁의 땅으로 되어 있사온데, 그곳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공물이 너무 많아 원성이 자자하였기로 감히 아뢰옵니다."
숙종(肅宗)은 후궁(後宮)의 땅이라는 데 크게 노하였다. "과인이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주었기로서니 그것을 탓하여 감히 나를 비방하다니…!" 숙종이 주먹으로 앞에 놓여 있는 상을 내리치니 박살이 나고 말았다. 갑자기 궐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러나 이관명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아뢰었다. "소신이 예전에 경연(經筵; 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하는 일)에 참여하였을 때에는 전하(殿下)께서 이러지 않으셨사옵니다. 그런데 소신이 외지에 나가 있던 동안에 전하의 성정(性情)이 이처럼 과격해지셨으니 이는 전하께 올바르게 간언(諫言)하는 신하가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오니 모든 신하들을 파직(罷職)시키옵소서."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서슴없이 자기가 생각한 바를 그대로 아뢰었다.
그러자 숙종은 시립(侍立)하고 있는 승지(承旨)에게 명하였다. "승지는 전교(傳敎)를 쓸 준비를 하라." 신하들은 이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것으로 알고 숨을 죽였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副提學; 정3품의 벼슬)을 제수한다."
숙종의 분부에 승지는 깜짝 놀라 붓끝이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도 생각 밖의 일이었다. 주위에 함께 있던 신하들도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왜 그런 교지(敎旨)를 내리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처벌을 받을 줄 알았는데 승진을 한 것이다.
숙종이 다시 명했다. "승지는 나의 말을 다 썼는가?" "예!" 그러자 숙종은 이어서 "그럼 다시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弘文提學; 홍문관의 종이품 벼슬)을 제수한다고 쓰라."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승지만이 아니었다. 만조백관이 웅성거렸다.
숙종은 잇달아 명을 내렸다.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예조참판(禮曹參判; 예조판서를 보좌하던 종이품 벼슬)을 제수한다." 숙종은 이관명의 관작을 한자리에서 세 번이나 높이어 정경(正卿)으로 삼았다.
그리고 숙종이 말했다. "경(卿)의 간언으로 이제 과인의 잘못을 알았소. 하여 경을 예조참판에 제수하는 것이오. 앞으로도 그런 자세로 짐의 잘못을 바로잡아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오."
이 고사를 두고 후세 사람들은 갑자기 고속 승진하는 것을 관명승진이라 했다. 그는 훗날 예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다.
요즈음 자고나면 대선(大選)이야기로 언론매체가 차고 넘친다. 조용한 민심들이 대선에 관심이 많아지고 심지어는 과열경쟁이나 과격한 언행으로 상대후보에게 깊은 상처를 주어 심한 아픔을 겪는 경우도 있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지지율, 무능, 준비된 후보, 정책, 양심, 도덕, 전과, 부정, 가족, 등이 많이 회자(膾炙)되어 국민들이 오히려 혼란과 분열이 가증되는 듯하다.
이러한 종류로의 검증이나 대중적 이해를 꼽으라면 필자는 '도덕성'과 '양심'을 우선시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도덕성과 참다운 양심이 있으면 신하들이 감히 부정이나 부패와 결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더가 만원(萬圓)을 부정(不正)으로 꿀꺽하면 그 신하들은 마음 놓고 2만 원 정도를 부정(不正)으로 거리낌 없이 꿀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하고, 다산 선생도 목민심서(牧民心書) 곡부(穀簿)에 "윗물이 이미 흐린데 아랫물이 맑기 어렵다(上流旣濁 下流難淸)"고 리더의 비도덕성(非道德性)과 비양심(非良心)의 지도력을 지적하고 있다.
리더자가 아는 것이 좀 부족하다고 해도 도덕성과 양심만 살아있으면 그 예하 책임 있는 공복자들에게 합리적이고 책임성 있게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조화롭게 관리하면 되는 것이다.
옛날 태평성대(太平聖代)의 상징이었던 요순(堯舜)임금도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고,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임명하여 그들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도록 하였으므로 태평시대를 이뤘던 것이다.
송서(宋書) 심경지전(沈慶之傳)의 교훈을 새겨보고자 한다. "농사는 응당 남자 머슴에게 물어야 하고, 베 짜는 일을 마땅히 여자 종에게 물어야 한다(耕當問奴 織當問婢)." 리더가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할 수 있는 여건을 보장해 주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 어사 이관명(李觀命)의 직언
조선조 이관명(李觀命)은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자빈(子賓), 호는 병산(屛山), 유록(緌祿)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여(敬輿)이고, 아버지는 판서 민서(敏敍)이며, 어머니는 원주원씨(原州元氏)로 좌의정 두표(斗杓)의 딸이다.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 이듬해에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가 되고, 공조정랑을 거쳐 함열현감이 되었다. 1698년 알성문과에 급제, 전조랑(銓曹郎), 사인 등을 역임하고, 이조, 병조, 예조 등의 참판을 거쳐 양관 대제학을 지냈다.
1721년(경종 1) 모함을 받아 관직을 삭탈당하였으며, 이듬해 신임사화 때 아우 건명(健命)이 노론 4대신의 한 사람으로서 극형을 받자, 이에 연좌되어 덕천으로 유배되었다. 1725년(영조 1) 풀려나와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좌의정에 이르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이관명(李觀命)은 숙종 때 어명으로 영남에 내려가 백성들의 실태를 살피고 돌아왔다. "수의어사 이관명 알현이오."
옥좌에 정좌한 숙종은 용안에 희색이 만연하여 그를 맞았다. "얼마나 객고가 많았는가? 그래, 백성들을 직접 살펴본 소회는 어떠한고?"
이관명이 아뢰었다. "상감마마께서 정사를 바르게 펴신 덕택에 지방 관리들도 모두 백성들을 잘 보살펴 주고 있었습니다. 다만 통영에 있는 섬 하나기 후궁의 땅으로 되어 있사온데, 그곳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공물이 너무 많아 원성이 자자하였기로 감히 아뢰옵니다."
숙종은 후궁의 땅이라는 데 크게 노하였다. "과인이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주었기로서니 그것을 탓하여 감히 나를 비방하다니…!" 숙종이 주먹으로 앞에 놓여 있는 상을 내리치니 박살이 나고 말았다. 갑자기 궐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러나 관명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아뢰었다. "소신이 예전에 경연에 참여하올 때에는 전하께서 이러지 않으셨사옵니다. 그런데 소신이 외지에 나가 있던 동안에 전하의 성정이 이처럼 과격해지셨으니 이는 전하께 올바르게 간쟁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오니 모든 신하들을 파직시키옵소서."
그는 서슴지 않고 자기가 생각한 바를 그대로 아뢰었다. 그러자 숙종은 시립(侍立)하고 있는 승지에게 명하였다. "승지는 전교를 쓸 준비를 하라." 신하들은 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것으로 알고 숨을 죽였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
숙종의 분부에 승지는 깜짝 놀라 붓끝이 움직이지 않았다. 너무도 생각 밖의 일이었다. 주위에 함께 있던 신하들도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왜 그런 교지를 내리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숙종이 다시 명했다. "승지, 나의 말을 다 썼는가?" "예!" "그럼 다시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을 제수한다고 쓰라."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승지만이 아니었다. 만조백관이 웅성거렸다.
숙종은 잇달아 명을 내렸다.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예조참판을 제수한다." 숙종은 이관명의 관작을 한자리에서 세 번이나 높이어 정경(正卿)으로 삼았다.
이윽고 하교하기를, "경의 간언으로 이제 과인의 잘못을 알았소. 하여 경을 예조참판에 제수하는 것이오. 앞으로도 그런 자세로 짐의 잘못을 바로잡아 나라를 태평하게 하시오" 하고는
숙종은 옥좌에서 일어나 편전으로 듭시었다.
이 고사를 두고 후세사람들은 갑자기 고속 승진하는 것을 관명승진이라 했다. 파직은 고사하고 바른말 한마디로 한자리에서 세 번이나 승진하며 벼락감투를 쓴 이관명의 일화인 것이다. 그는 훗날 예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지냈다. 저서에 '병산집(屛山集)'이 있다.
권력 앞에서 그릇된 것을 그릇되다 말하는 이관명의 용기가 훌륭하지만 충직한 신하를 알아 보는 숙종 임금의 안목도 그에 못지않다고 사료된다. 그래서 '충신을 알아보는 왕만이 충신을 얻는다'는 명제가 오늘날까지 가르침으로 전해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판에서는 왜 이관명 같은 신하가 없었단 말인가? 있었다 한들 집권자가 받아들일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이었을까? 설령 옳은 말을 받아들일 여지가 전혀 없었다 할지라도 직언을 하는 사람이 있었어야 했다.
오늘날의 신하의 직언은 제 자리만 위협받을 뿐 왕조시대의 신하처럼 가혹한 형벌은 받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집권자의 어리석음을 보고도 아무도 직언하는 사람이 없었단 말인가?
이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대통령을 접견할 수 있는 정치인들과 고위관리들이야말로 개만도 못한 쓰레기가 아닌가? 차후 선거에서는 모두 다 쓰레기 자루에 쓸어 담아 땅 속에 묻어야 할 자들이다.
옳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정의를 외칠 수 있는 사회, 일반 백성들이 현자를 알아보는 사회, 그리고 관공은 물론 어디서나 상식이 통하는 사회야말로 진정 우리가 꿈꾸는 올바른 세상이 아닐까? 이는 온 국민의 힘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오늘의 이 추잡스런 꼴은 지난 선거의 유권자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 우리 온 국민은 나에게 주어진 유권자로서 지난 과거의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반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 정치판을 쓸어버리고 정화시켜 새로운 현자들에게 맡긴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리라 기대해 보는 것이 헛된 꿈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 이관명(李觀命)의 일화
조선 숙종 때 당하관 벼슬에 있던 이관명(李觀命)이 암행어사가 되어 영남지방을 시찰한 후 조정으로 돌아와 그 동안 파악한 민심을 임금께 보고하였다.
숙종이 여러 고을의 민폐에 관하여 묻자 그가 대답했다. "통영에 소속된 섬 하나가 있는데, 그 섬에서 거둔 세금이 전하를 모시고 있는 후궁의 주머니에 들어가고 있다 하옵니다. 이는 참으로 극심한 폐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말을 들은 숙종이 크게 노하면서 곁에 있던 철여의를 들어 책상을 내리쳤다. 책상이 박살났다. "과인은 어진 임금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가 후궁을 위하여 조그만 섬에서 세금을 거뒀기로서니 그대가 감히 과인을 나무라는가?"
그러자 이관명은 숙종 앞에 엎드리며 말하였다. "신은 어사로서 어명을 받들고 밖으로 나가 1년 동안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하의 지나친 행동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누구 하나 전하의 거친 행동을 막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러니 저를 비롯하여 이제껏 전하를 방치한 대신들도 아울러 법으로 다스려 주십시오."
숙종이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승지를 불러 전교를 받아 쓰라고 명하였다. 이윽고 숙종이 승지에게 명했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 승지는 의외의 분부에 놀라면서 교지를 써 내려갔다.
숙종은 다시 명을 내렸다.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관 제학을 제수한다." 숙종의 기세에 눌려 승지는 부르는 대로 받아 적었다. 이어 숙종이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홍문관 제학 이관명에게 호조판서를 제수한다."
이어 숙종은 이관명의 손을 잡고 간곡히 분부했다. "경의 충간으로 내 잘못을 깨달았소. 또 경이면 큰일을 감당할 줄 믿고 호조판서직을 맡기니, 앞으로 민폐를 근절토록 잘 단속해주오" 하였다. 목이 달아날 줄 알았던 이관명은 단박 세 계급이나 특진한 것이다.
이관명(李觀命, 1661~1733)
이관명(李觀命)은 조선 후기에 이조판서를 지낸 이민서(李敏敍)의 아들로 26세 때인 1687년(숙종 13)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익위사세마를 거쳐 내외직의 많은 벼슬을 하였다. 이조, 병조, 예조 등의 참판을 거쳐 1718년(숙종 44) 사은부사, 이후 홍문관, 예문관양관의 대제학을 역임한 뒤 이조판서에 올랐다.
1721년(경종1) 모함을 받아 관직을 삭탈 당하였다. 또한 이듬해 신임사화(辛壬士禍) 당시 아우 건명(健命)이 노론 4대 신의 한 사람으로서 극형을 받자, 이에 연좌되어 덕천으로 유배되었다. 1725년(영조1) 풀려나와 우의정이 되고 이듬해 좌의정에 이르렀다.
1728년 양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되었고, 1730년 기로소(耆老所; 조선시대 연로한 고위 문신들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관서)에 들어갔는데, 정식 명칭은 치사기로소(致仕耆老所)이다. 기로소(耆老所)가 맡은 일은 임금의 탄일, 정조(正朝; 설), 동지, 그리고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왕이 행차할 때, 모여서 하례(賀禮)를 행하거나, 중요한 국사(國事)의 논의에 참여하여 왕의 자문에 응하기도 하였다.
중기 이후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정경(正卿; 정2품)으로서 70세 이상된 문신으로 국한하였다. 기로소(耆老所)는 군신(君臣)이 함께 참여하는 기구라 하여 관아의 서열에서는 으뜸을 차지하였다.
이관명(李觀命)은 외직에 있을 때 구석구석 민심을 돌보았고, 시폐의 시정책을 촉구하는 상소를 많이 올렸다. 그리고 묘당에서는 임금의 융숭한 예우를 받았으며, 특히 문장에 뛰어나 응제문(應製文), 반교문(頒敎文), 시책문(諡冊文) 등을 많이 남겼다. 나주의 서하사우(西河祠宇), 흥덕의 동산서원(東山書院)에 봉향되었다.
매서화설(買書畵說)
(서화를 산 이야기)
이관명(李觀命)의 작품으로 그의 문집인 병산집(屛山集) 권8 잡저(雜著)에 실려 있다. 이 작품은 연경(燕京)에 갔을 때 물건을 산 것에 대해 그 이유를 나열하고 있는 내용이다. 연경에서의 경험을 서술하고 있으므로, 이 작품은 그가 사은부사(謝恩副使)로 청(淸)에 갔을 때인 1718년경에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설(說)은 한문학의 한 갈래로서, 현실의 경험을 통해 삶의 진리를 이야기하는 양식이다.
(줄거리)
나는 평생 마음이 조용하고 욕심이 없어 즐기는 것이 없었다. 기거하는 방에는 좋은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반백년을 지냈다.
이번에 연경(燕京)에 오자 호인(胡人)이 하루는 옛 사람과 요즘 사람이 그린 서화를 안고 왔는데 진짜와 가짜를 섞어 이익을 보려고 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온 종이와 붓을 꺼내 값을 치르고 그 중 마음에 맞는 것 십 여개를 택했다. 내 늙어 도리어 이것들을 좋아하게 되었으니, 글씨와 그림이 참으로 우리에게 좋은 물건이 될 만한 것이라서 그런 것인가.
내가 산림에 뜻을 둔 지 오래다. 이제 얻은 그림은 자앙(子昻; 조맹부/趙孟頫)의 '추산무진(秋山無盡)'과 당인(唐寅)의 '임천춘유(林泉春遊)'와 같은 것들이니, 황홀하여 나에게 은자(隱者)의 흥취를 일으킨다.
자양(紫陽) 부자(夫子, 朱子)의 '독서하는 즐거움'이란 4수의 시를 쓴 글씨는 한가한 흥취를 써낸 것일 뿐만 아니라, '뜰의 풀은 베지 않았다'라는 구절이나 '매화는 천지의 마음'이라는 말은 분명 지극한 이치를 개발하여 후학을 가르친 것이었다. 글씨를 펼쳐 보고 조용히 음미하니 실로 나의 삼자부(三字符)가 되었다.
돌아보건대 내 재주는 무디어 세상의 쓰임을 감당하지 못한다. 하물며 지금 늙고 병까지 들었는데, 그릇되어 사신(使臣)의 역할까지 맡아 몸이 고달프기 짝이 없는지라, 어서 귀국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이 그림과 글씨를 가지고 귀국한다면, 애초 먹었던 뜻대로 적막한 물가에 흥(興)을 붙여, 내 남은 인생을 즐기고, 자양 부자가 남긴 독서의 가르침을 따라 노년을 보낸다면 취생몽사(醉生夢死)를 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글씨다, 그림이다 하는 것들이 어찌 나의 좋은 물건이 될 수 없겠는가? 그것을 좋아한들 또 어찌 안 될 것이 있겠는가? 나는 또 오래된 구리화로와 돌로 된 연상(硯床)을 얻었는데, 이것들이 비록 하찮은 물건이나 또한 옛말에 산가(山家)에서는 빠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함께 간직해 전원으로 돌아간 육일거사(六一居士, 송나라의 구양수(歐陽脩))의 장부(帳簿)에 갖출 것이다.
▶️ 觀(볼 관)은 ❶형성문자로 覌(관), 観(관)은 통자(通字), 观(관)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볼 견(見; 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雚(관)으로 이루어졌다. 자세히 본다는(見) 뜻이 합(合)하여 보다를 뜻한다. 늘어 놓아 보이다, 자랑스럽게 남에게 보이다, 잘 본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觀자는 '보다'나 '보이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觀자는 雚(황새 관)자와 見(볼 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雚자는 隹(새 추)자 위에 큰 눈과 눈썹을 그린 것으로 '황새'라는 뜻을 갖고 있다. 雚자는 큰 눈과 눈썹이 도드라지는 황새를 잘 표현한 글자이다. 이렇게 황새를 그린 雚자에 見자를 결합한 觀자는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황새처럼 넓게 '보다'라는 뜻이다. 이외에도 觀자에는 '용모'나 '모양'이라는 뜻이 있는데, 이는 황새의 자태가 의미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觀(관)은 (1)한자어로 된 어떤 명사 아래에 붙어 체계화된 견해를 뜻하는 말 (2)관괘(觀卦) (3)도교(道敎)의 사원(寺院) 등의 뜻으로 ①보다 ②보이게 하다 ③보게 하다 ④나타내다 ⑤점치다 ⑥모양 ⑦용모(容貌) ⑧생각 ⑨누각(樓閣; 문과 벽이 없이 다락처럼 높이 지은 집) ⑩황새 ⑪괘(卦)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살필 찰(察), 살필 심(審), 조사할 사(査), 검사할 검(檢), 볼 시(視), 볼 감(監), 바라볼 조(眺),보일 시(示), 볼 견(見), 볼 람/남(覽), 볼 열(閱), 나타날 현(顯)이다. 용례로는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명승이나 고적과 풍속 등을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관광(觀光), 자연 현상의 추이를 관측(觀測), 사물을 잘 살펴 봄을 관찰(觀察), 사물을 관찰하거나 고찰할 때 그것을 보거나 생각하는 각도를 관점(觀點), 눈을 감고 마음을 가라 앉히고 깊이 생각하는 일을 관념(觀念), 영화나 연극이나 무용 등의 무대 공연을 구경하는 사람을 관객(觀客), 연극이나 영화 따위를 구경함을 관람(觀覽), 사물을 꿰뚫어 봄을 관철(觀徹),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찰하거나 음미함을 관조(觀照), 마음의 본성을 살핌을 관심(觀心), 구경하는 무리를 관중(觀衆), 사람의 상을 보고 재수나 운명을 판단하는 일을 관상(觀相), 인과 불인은 곧 알 수 있다는 말을 관과지인(觀過知仁), 마음을 떠보기 위하여 얼굴빛을 자세히 살펴봄을 일컫는 말을 관형찰색(觀形察色), 풍속을 자세히 살펴 봄을 이르는 말을 관풍찰속(觀風察俗), 과거의 사례를 살펴봄으로써 미래를 미루어 짐작한다는 말을 관왕이지래(觀往以知來),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당하여 옆에서 보고만 있는 것을 이르는 말을 수수방관(袖手傍觀), 우물 속에 앉아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견문이 매우 좁음을 말함 또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름을 이르는 말을 좌정관천(坐井觀天), 우물 속에 앉아서 좁은 하늘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소견이나 견문이 좁음을 이르는 말을 정중관천(井中觀天), 불을 보는 것 같이 밝게 보인다는 뜻으로 더 말할 나위 없이 명백함을 이르는 말을 명약관화(明若觀火) 등에 쓰인다.
▶️ 命(목숨 명)은 ❶회의문자로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令(령)의 합자(合字)이다. 입(口)으로 뜻을 전한다는 뜻으로, 곧 임금이 명령을 내려 백성을 부린다는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命자는 '목숨'이나 '명령'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命자는 亼(삼합 집)자와 口(입 구)자, 卩(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亼자는 지붕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그린 卩자가 더해진 命자는 대궐에 앉아 명령을 내리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다. 상관이 내리는 명령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완수해야 한다. 그래서 命자는 '명령'이라는 뜻 외에도 '목숨'이나 '생명'이라는 뜻이 파생되어 있다. 그래서 命(명)은 (1)목숨 (2)운명(運命) 등의 뜻으로 ①목숨, 생명(生命), 수명(壽命) ②운수(運數), 운(運) ③표적(標的), 목표물(目標物) ④명령(命令), 분부(分付)⑤성질(性質), 천성(天性) ⑥말, 언약(言約) ⑦규정(規定), 규칙(規則) ⑧가르침 ⑨작위(爵位), 작위의 사령서나 그 신표(信標: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하여 서로 주고받는 물건) ⑩하늘의 뜻, 천명(天命) ⑪도(道), 자연의 이법(理法) ⑫호적(戶籍) ⑬명령하다 ⑭가르치다, 알리다 ⑮이름짓다, 이름을 붙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윗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무엇을 하도록 시킴을 명령(命令), 시문의 제목을 정하여 주는 것을 명제(命題), 사람이나 물건에 이름을 지어 붙임을 명명(命名), 살아 있는 목숨을 이어 가는 근본을 명백(命脈), 겨냥한 곳에 바로 맞음을 명중(命中), 생명의 근본을 명근(命根), 목숨의 한도를 명한(命限), 앞으로의 존망이나 생사에 관한 처지를 운명(運命), 관직에 명함 또는 직무를 맡김을 임명(任命), 타고난 수명이나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날 때부터 타고난 운명을 숙명(宿命), 제 명대로 살지 못하는 목숨을 비명(非命), 맡겨진 임무나 맡은 일을 사명(使命), 생물이 살아 있는 연한을 수명(壽命), 사람의 목숨을 인명(人命),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뜻으로 숨이 곧 끊어질 지경에 이름이나 거의 죽게 됨을 이르는 말을 명재경각(命在頃刻), 한 시대를 바로잡아 구할 만한 뛰어난 인재를 일컫는 말을 명세지웅(命世之雄), 연거푸 생기는 행복을 일컫는 말을 명야복야(命也福也), 병이나 상처가 중하여 목숨에 관계됨을 일컫는 말을 명맥소관(命脈所關), 팔자가 사나움을 일컫는 말을 명도기박(命途奇薄), 목숨을 의에 연연하여 가볍게 여기다는 뜻으로 의로움을 위해서는 생명도 아끼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명연의경(命緣義輕) 등에 쓰인다.
▶️ 昇(오를 승)은 ❶형성문자로 升, 曻, 陹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날 일(日; 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오른다'는 뜻을 가진 升(승)으로 이루어지며 '해가 떠오른다'는 뜻이다. 전(轉)하여 널리 '오른다'는 뜻이 되었다 다. ❷회의문자로 昇자는 '(해가) 오르다'나 '(지위가) 오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昇자는 日(해 일)자와 升(되 승)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升자는 국자를 그린 것으로 '되'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모양자로 응용되었다. 升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양손(廾; 받들 공)으로 무언가를 떠받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 태양을 뜻하는 日자가 더해진 昇자는 마치 태양을 위로 떠받쳐 올리는 듯한 모습이다. 그래서 昇(승)은 ①(해가) 오르다 ②(높은 곳에) 오르다 ③(지위가) 오르다 ④(벼슬을) 올리다 ⑤(임금이) 죽다,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上(윗 상), 右(오른쪽 우/도울 우), 敭(오를 양), 登(오를 등, 얻을 득), 陞(오를 승), 陟(오를 척), 騰(오를 등) 등이고, 반의어로는 降(내릴 강, 항복할 항) 등이다. 용례로는 고체가 액체 상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기체로 변하는 현상 또는 사물이 한 단계 고상한 영역으로 높아지는 일을 승화(昇華), 하늘에 오름 또는 가톨릭에서 죽음을 이르는 말을 승천(昇天), 임금이 세상을 떠남을 승하(昇遐), 벼슬이나 지위가 오름을 승진(昇進), 오르고 내리는 것을 승강(昇降), 봉급의 등급이나 바둑 또는 태권도 따위의 급수가 오름을 승급(昇級), 유도나 바둑 따위의 단수가 오름을 승단(昇段), 어떤 표준에까지 격을 올림 또는 격이 높아짐을 승격(昇格), 값이 오름 또는 뛰어 오름을 승등(昇謄), 마루에 오름을 승당(昇堂), 집회할 때 지도자의 자리에 오름을 승석(昇席), 위로 올라감을 상승(上昇), 비탈진 곳을 타고 오름을 활승(滑昇), 항공기가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는 일을 이승(離昇), 아침 해가 떠오른다는 뜻으로 떠오르는 아침 해처럼 세력이 성대해짐을 이르는 말을 욱일승천(旭日昇天), 도를 극진히 닦아 육신을 가진 채 대낮에 하늘에 오른다는 뜻으로 선인이 되어 하늘로 오름을 이르는 말을 백일승천(白日昇天), 신선이 되어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방술을 이르는 말을 비승지술(飛昇之術), 서로 계승하여 법통을 전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혈맥상승(血脈上昇), 태평한 세상을 이르는 말을 승평세계(昇平世界), 다른 사람의 권세에 빌붙어 승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계견승천(鷄犬昇天), 하늘로 오르고 땅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자취를 감추고 없어짐을 이르는 말을 승천입지(昇天入地), 도를 극진히 닦아 육신을 가진 채 대낮에 하늘에 오른다는 뜻으로 선인이 되어 하늘로 오름을 이르는 말을 백일비승(白日飛昇) 등에 쓰인다.
▶️ 進(나아갈 진, 선사 신)은 ❶형성문자로 进(진)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隹(추; 꽁지 짧은 새, 진)의 뜻이 합(合)하여 나아가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進자는 '나아가다'나 '오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進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隹자는 작은 새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進자의 갑골문을 보면 止(발 지)자와 隹자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彳(조금 걸을 척)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進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進자는 새가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나아가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후퇴 없이 앞으로만 쭉 나아간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새는 앞으로만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밀고 나아간다는 뜻의 '추진(推進)'이라는 단어에 각각 隹자가 쓰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進(진, 신)은 ①나아가다 ②오르다 ③다가오다 ④힘쓰다 ⑤더하다, 그리고 ⓐ선사, 선물(膳物)(신)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아갈 취(就), 나아갈 진(晉), 나아갈 적(迪),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러날 퇴(退)이다. 용례로는 앞으로 나아감 또는 일을 처리해 나감을 진행(進行), 일이 진행되어 발전함을 진전(進展), 더욱 발달함이나 차차 더 좋게 되어 나아감을 진보(進步), 내쳐 들어감이나 향하여 들어감을 진입(進入), 앞으로 나아감을 진출(進出), 나아감과 물러남을 진퇴(進退), 학문에 나아가 닦음 또는 상급 학교로 나아감을 진학(進學), 진보하여 차차 더 나은 것이 됨을 진화(進化), 앞으로 나아가는 길 또는 나아갈 길을 진로(進路), 앞으로 나아가 적을 치는 것을 진격(進擊), 일의 진행 속도나 진행된 정도를 진도(進度), 적극적으로 나아가서 일을 이룩함을 진취(進取), 등급이나 계급 또는 학급 따위가 올라감을 진급(進級), 군대가 남의 나라 영토에 진군하여 머물러 있는 일을 진주(進駐), 일을 차차 이루어 감을 진취(進就), 앞으로 나아감을 진거(進去), 밀고 나아감을 추진(推進), 재촉하여 빨리 나아가게 함을 촉진(促進), 벼슬이나 지위가 오름을 승진(昇進), 힘써 나아감이나 씩씩하게 나아감을 매진(邁進), 빠르게 진보함을 약진(躍進), 더하여 나아감 또는 나아가게 함을 증진(增進), 앞으로 나아감을 전진(前進), 여러 사람이 발맞춰 앞으로 걸어 나감을 행진(行進),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을 후진(後進), 급속히 이상을 실현하려는 일 또는 빨리 진행함을 급진(急進), 남이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나섬을 자진(自進), 순서대로 차차 나아감을 점진(漸進), 낡은 것을 고치어 진보를 꾀함을 개진(改進), 정력을 다해 나아감 또는 아주 열심히 노력함을 정진(精進), 다투어 서로 앞으로 나아감을 경진(競進), 배나 비행기를 타고 나아감을 항진(航進), 방향을 바꾸지 않고 곧게 나아감을 직진(直進), 뛰어난 공로에 의하여 특별히 진급함을 특진(特進), 앞으로도 뒤로도 나아가거나 물러서지 못하다라는 뜻으로 궁지에 빠진 상태를 일컫는 말을 진퇴유곡(進退維谷),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궁지에 빠짐을 일컫는 말을 진퇴양난(進退兩難), 나아가면 그 세력이 강성해 당해 낼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진불가당(進不可當), 나아간 것은 적고 물러선 것은 많다는 뜻으로 소득은 적고 손실은 많음을 이르는 말을 진촌퇴척(進寸退尺), 더디고 더뎌서 잘 진척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지부진(遲遲不進), 한 길로 곧장 거침없이 나아감을 일컫는 말을 일로매진(一路邁進), 배우는 일에 정성을 다해 몰두함을 일컫는 말을 학업정진(學業精進), 거리낌 없이 힘차고 용감하게 나아감을 일컫는 말을 용왕매진(勇往邁進), 아무 사고가 없이 나올 자리에 나오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무고부진(無故不進), 싸움을 질질 끌지 않고 빨리 쳐들어가서 이기고 짐을 빨리 결정함을 일컫는 말을 속진속결(速進速決)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