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들녘으로 나가
십일월 넷째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절기는 입동 이후 찾아온 겨울 들머리 소설로 아침 기온이 내려간 징후가 역력하다. 날씨는 쌀쌀해지고 해가 점점 짧아지는 때라 자연학교 등교는 새벽같이 일찍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마냥 늦출 수는 없어 7시가 조금 지나 현관을 나서니 일반 학생들의 등교보다는 이른 편이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정류소에서 창원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명곡교차로를 지날 무렵 차창 밖 느티나무 가로수는 갈색이 완연하고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철이 늦은 단풍임을 실감했다. 벼 논의 추수와 단감 수확이 그렇듯이 가을걷이가 늦어지고 남녘 산자락 단풍도 늦음이 분명하다. 102번 버스가 마산으로 넘어가기 전 도중에 내려 창원역 앞에서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용강고개를 넘으니 동읍 일대는 안개가 자욱해 가시거리가 짧았다.
안개 속에 다호리와 주남저수지를 비켜 대산 일반산업단지에 이르니 승객은 대부분 내리고 한 아낙과 둘만 남았더랬다. 나는 가술 거리와 제1 수산교를 지난 신성마을에서 내리고 젊은 아낙은 종점을 향해 갔다. 대산 일대는 대규모 축산이나 특용작물을 가꾸는 고소득 청년 농부들이 있어 다른 지역에 비교해 젊은 부녀들도 있는 편인데 때로는 이주 여성을 며느리로 삼은 경우도 있었다.
신성마을은 수성마을과 이웃했는데 찻길과 가까워 나중 생겨 신성이고 옛적부터 있던 마을은 수성이었다. 동구에는 커다란 자연석을 옮겨와 세운 빗돌에 출향 인사로 부산의 대학에서 학장을 지냈던 이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시가 새겨져 있었다. 지역민들은 들녘에서 농사일로 고생은 많겠지만 농가 주택은 모두 반듯한 양옥으로 지어 정원수도 잘 가꿔 전원주택 단지를 보는 듯했다.
짙게 낀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들녘 농로를 따라 걸으니 마을에서 가까운 농지는 사계절 비닐하우스로 겨울을 앞둔 철에도 가지와 풋고추가 생산되어 선별 과정을 거쳐 상자에 담았다. 풋고추를 본격적으로 따야 하는 시기가 되면 현지인으로 인력이 부족해 베트남 여성이나 시내에서 찾아가는 할머니들의 손길이 필요했다. 아직은 풋고추를 한꺼번 다량으로 따는 시기가 아니었다.
비닐하우스단지 곁에는 벼농사를 지은 들녘이 나왔는데 여름보다 오히려 더 바쁜 철이 지금이었다. 벼를 거둔 넓은 들녘은 새로운 비닐하우스를 세워 겨울 농사로 당근이나 수박을 키우려는 준비였다. 트랙터가 땅을 갈고 철골을 옮겨와 구멍을 내어 하나씩 세워가는 작업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아주 넓은 비닐 필름을 대형 천막을 씌우듯 했는데 경험과 기술을 요구했다.
들녘의 비닐하우스 설치에는 외국인 인력도 보였는데 체격이 큰 우즈베키스탄 두 청년은 전선을 허리에 두른 드릴로 땅에다 구멍을 연속으로 뚫는 작업을 했다. 농장주를 돕는 베트남인도 보였는데 주인 아낙이 새참으로 내놓은 깎은 단감이 제과점에서 마련했을 빵과 함께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열대 과일을 귀하게 여기고 먹듯 외국인에게 단감을 맛이 있어 하고 즐겨 먹을 듯도 했다.
구산마을에서 모산리가 가까운 곳은 학교 운동장보다 넓은 사계절 비닐하우스 농장이 나왔다. 지나간 여름에 상품성이 처진 다다기 오이를 여러 차례 수집해 이웃에도 보낸 농장인데 겨울에도 역시 오이를 키워 언젠가 따내는 철이 오지 싶다. 비닐에는 물방울이 서려 밖에서는 오이가 얼마큼 자라는지 생육 상태를 알 수 없어도 문이 닫혀 주인이나 일꾼을 못 만나 물어보지 못했다.
죽동천을 건너 빗돌배기 다감마을 체험 농장에는 단감 수확이 막바지였다. 잘 익어 홍시가 되는 감을 소재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겨우내 맨살 버텨 늦은 봄 움을 틔워 / 새순에 잎을 달고 감꽃을 피운 자리 / 꽃 지자 배꼽 아물어 풋감송이 달렸다 / 뿌리가 수액 올려 둥치는 세력 뻗쳐 / 잎사귀 양분 받아 과육은 점차 살져 / 발갛게 홍시로 익자 입안 군침 삼킨다” ‘감’ 전문이다. 24.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