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 잎을 묶으며
-유홍준-
추석날 오후,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다발
또 다발 시퍼런 깻잎을 묶으며 쓴웃음 날려보낸다.
가난에 찌들어 한숨깨나 짓던 아내도
바구니 가득 차오르는 깻이파리처럼 부풀고
무슨 할 말 그리 많은지
맞다 맞어, 소쿠리처럼 찌그러진 입술로
아랫고랑 동서를 향해 거푸거푸 웃음을 날린다
말 안 해도 뻔한 너희네 생활,
저금통 같은 항아리에 이 깻잎을 담가
겨울이 오면 아가야
흰 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 우리
들깨 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에 흰구름 몇 덩이 머물다 가는 추석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한나절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을 묶는, 이 얼마만의 기쁨
한가위 삼행시
https://www.youtube.com/watch?v=HadaNAjqlK4
모두 떠나고 나니
텅 빈 허전함
어쩜 우린 혼자인지 모른다
톡을 보내고 차례 모시러 가자니 큰애가 많이 아프다
집사람도 몸이 좋지 않다고
나라도 다녀올까 하다가
안개가 넘 자욱해 운전이 주저된다
어쩔 수 없지
올핸 집에서 지내야겠다
아침 짓고 된장국을 끓였다
속이 아플 땐 된장국이 좋다
감자 호박 양배추등을 넣었으니 속을 달래 줄것같다
동물들 챙겨 주었다
녀석들을 가두어 두니 밖으로 나오려 안달
그래도 당분간 안되겠다
닭이 기러기와 함께 알을 품었는데 병아릴 한 마리 달고 나왔다
병아리는 빨리 부화되기 때문에 나온 것같다
그럼 기러기알은 앞으로 10여일 넘게 있어야 부화할 것같다
병아리 물과 모이를 따로 주고 닭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안쪽 하우스를 닫아 두었다
기러기도 태어나면 그곳에서 함께 키우면 좋겠다
저번에 캔 고구마 중 괜찮은 걸로 골라 작은 박스에 담았다
큰애네 주어야겠다
달걀도 한줄 담아 주었다
며느리가 밥을 차려 놓았다
큰애는 도저히 식사를 못먹겠다고
상당히 안좋은 것같다
그래 체할 때는 금식하는 것도 좋다
난 된장국 말아 맛있게 한술
손주들도 잘 먹는다
집사람이 민재 데리고 뒷산에 밤 주우러 가보잔다
올핸 밤이 열리지 않아 주울 게 없다고 하니 그래도 민재에게 경험시켜 주러 올라가 보자고
민재에게 장화를 신겨 같이 산에 올라가 보았다
아마 민재는 이런 산은 처음 올라가 보는 것같다
이른 밤나무 밑에 가보니 밤 몇 개가 떨어져 있다
밤한톨 주워 야호 소리내며 즐거워 한다
밤송이 가시에 찔려 아얏 소리도 내고
그게 민재에겐 추억이리라
한 40여개 알밤을 주워 내려 왔다
언덕을 내려오는데 아예 앉아서 내려온다
할아버지 할마니가 손잡아 주는데도 무서움을 탄다
겁이 무척 많다
그래도 산에 갔다오니 재미있었단다
난 시골살아 민재 만할 때 다람쥐처럼 나무도 타고 산도 잘 올라갔는데...
저 애들은 그런 경험이 전혀 없어 산을 타지 못한다
주워 온 밤을 며느리에게 가져다 쪄 먹으라고
작년엔 많이 주워서 주었지만 올핸 더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올핸 과일들이 별로 열리지 않았다
감나무가 20여그루 정도 될건데 총 열린게 10개도 안되는 것같다
봄에 기온차가 커 과일 꽃들이 제대로 피지 못한 탓이리라
집사람은 며느리에게 이것저것 챙겨준다
나물 해놓은 것과 김치 담아 놓은 것
뭐든 하나라도 더 주면 좋겠지
애들이 가고 나니 텅빈 집이 허전해 보인다
우리도 파크볼이나 치러 가잔다
파크장에 도착하니 11시
사람들이 별로 없다
추석명절이라 그런가?
여유로워서 좋다
오늘은 b홀에서
여긴 비거리가 있어 뻥뻥 때려도 웬만함 오비나지 않는다
이번 체육대회 파크볼은 b홀일까 생각했는데 내가 틀린 것같다
a홀에서 하더라도 저번 대회에 쳐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모두들 잘 할 수 있으리라
b홀 4바퀴를 돌고 나니 땀 주룩
여기에선 오비 별로 내지 않았지만 그래도 살짝 방심하면 오비가 난다
a홀로 옮겨 두바퀴를 더 돌았다
오랜만에 파크볼을 오랫동안 즐겼다
점심 한술 하고 조사장에게 전화
별 일 없음 바둑 한수 하자고
소밥 주고 바로 나오겠단다
오늘 밤엔 북이면 노래자랑 대회가 있으니 구경도 할겸 미리 나가 바둑이나 두어야겠다
조사장이 지금 나가겠다고 전화
나도 택시 불러 타고 바로 바둑 휴게실로
조사장과 세판을 두어 모두 승
이리 쉽게 무너질 바둑이 아닌데 오늘은 꼼짝 못하고 당해 버린다
컨디션이 별로인 것 같다고 하니 어젯밤 잠한숨 자지 못했다고
무슨 일 있었냐고 물으니 어제 커피를 몇잔 했더니 잠이 들지 않아 뜬 눈으로 세웠단다
아이구 조사장도 나처럼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자지 못하나 보다
커피 마시는것도 조심하자고
집에 잠깐 들어가 일을 보고 오겠다길래
전 이조합장과 한수
나에게 넉점 접바둑인데 세판을 내리 져 버렸다
어? 이렇게 잘 두나?
지금까지 날 이긴 적이 별로 없었는데...
묘하다
내가 이리 꼼짝 못하다니...
뭐 이도 실력인 것을 ...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해마다 한가위 노래자랑을 해왔는데 코로나로 몇 년 하지 못하다가 올해 다시 부활했다
노래자랑 잔치를 통해 그동안 멀리 있어 보지 못했던 지인들을 만나 볼 수 있는 자리라 노래자랑이 지역의 큰 축제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벌써부터 몸을 흔드는 사람도 있다
승훈동생이 막걸리나 같이 한잔 하잔다
요즘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웬일
추석날이라 한잔하고 싶단다
옆 식당에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 하며 꽤나 마셨다
집사람도 나왔다
광장에 사람들이 꽉 찼다
국회의원 군수 군의원 내노라 하는 인사들의 축하 인사말을 시작으로 노래 자랑 잔치
노열동생과 문사장도 왔다
구경하며 막걸리 한잔
오늘은 청년회에서 안주와 술을 무료로 제공
모르는 사람들과도 함께 어울려 즐겁게 마셨다
한참을 먹고 마셨더니 넘 취한다
잠깐 바둑 휴게실에 들어가 쉬려 했더니
전총무가 한판 두어주란다
저번에 두판을 두어 모두 져 버렸다
오늘은 잘 두어 보아야겠다 생각하고 두었는데 어라 또
두판을 모두 져 버렸다
아무리 술에 취했어도 그렇지...
내가 갑자기 하수를 다룰 줄 모르나하수들이 내가 가장 어렵다고들 했었는데 오늘은 이리 쉽게 무너지다니
뭐 별 수 있나?
조사장이 집에 갔다가 왔다
다시 한수 두잔다
조사장과 두판을 두어 모두 승
오늘 조사장이 넘 쉽게 무너진다
더구나 내가 많이 취했는데도
난 하수들에게 무너지고 조사장은 나에게 무너지고
이거참 뭐가 뭔지
어느새 11시가 넘었다
집사람은 화장지 상품을 받았다며
오늘 고생하는 의용소방대 사무실에서 쓰도록 주어야겠다고
좋은 일이다
집사람이 끝까지 보고 가자는데 한잔 두잔 권한 술을 마시다 보나 넘 취해 안되겠다며 들어가자고
집에 와 그대로 곯아 떨어져 버렸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쳤다
님이여!
온가족 함께한 한가위처럼
늘 화기애애하며 행복한 날들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