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해설>
연안여객터미널 앞에 위치한 포장마차 <양산박>에 어둠이 찾아들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포장마차 여주인은 그 옛날(1980년대) 대학생 시절 포장마차 술집 양산박에 자주 들렸었다. 그곳에서 군에서 제대한 복학생이었던 남편을 만나게 되어 결혼하게 된다. 남편은 아직도 시집 한 권 내지 못한 무명시인이다. 그래서 남편 대신 호구지책으로 이곳에서 포장마차 <양산박>을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는 역시 무명시인인 김태호가 단골 손님으로 자주 찾아온다. 그 역시 그 엣날 양산박을 자주 들렸던 복학생이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그 엣날의 향수를 달래기 위해 이곳 <양산벅>을 자주 들려 여주인과 과거 회상에 젖곤 한다.
어둠이 짙어갈수록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 집 나간 아내를 찾아 떠도는 이상국, 불온한 시대와 불화하다 교도소 수감되었다 갓 출소한 윤철민, 원인을 알 길이 없는 현대병 중증을 앓고 있는 박정태, 술집 작부 생활을 하다 주인에게 두들겨 맞아 말 더듬이가 된 만신창이 아가씨 김지원, 진실한 사랑을 주고 받은 일이 한 번도 없는 창녀 한정애가 바로 이들이다. 이들은 지금 모두 유토섬에 가려고 하는데 안개주의보 때문에 모든 배들이 발이 묶여 출항을 못하고 있다. 김태호가 연안여객 터미널 화장실 안에서 자살을 하고, 이상국이 한정애를 화장실 안에서 겁탈하려다 발각이 되고, 윤철민은 안개 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는 환청에 시달리고...크고 작은 사건들이 잇달아 일어난다. 이들은 모두 유토섬에 가기 위해 연안여객터미널로 몰려가지만 매표원은 뜻밖의 선전포고를 하게 되는데......
「양산박 사람들」의 작품 배경
〔기획의도〕
1. ‘양산박’이라는 명칭 유래
‘양산박’은 중국의 3대 역사소설 중의 하나인「수호지」에 나오는 작은 섬의 지명으로, 부패한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108명의 영웅호걸들이 모여 국가를 바로 잡으려고 활동하던 이들의 본거지이다.
2. 부산「양산박」의 상징적 의미
1980년대 초에 당시 부산일보의 기자였던 이윤택을 비롯한 네 명의 기자들이 의기투합하여 가난한 음악인 고 정용해 씨를 돕기 위해 실내 포장마차 형식의 주점을 만들었다. 술을 좋아하던 음악인 정용해는 술장사를 할 수 없다고 고사하자 시인인 임명수, 마지막으로 소설가 윤진상 씨에게 운영권이 넘겨지게 되었다. 이곳에는 당시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에 부산의 시인, 작가, 화가, 연극인 기자, 공무원을 비롯하여 학생 및 일반 시민들이 즐겨 찾았다. 이들은 이곳에서 시대의 암울한 정서를 술잔 속에 녹였고, 이곳은 예술과 시국에 대한 담론의 장을 펼치던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다. 당시 국제신문의 문화부장이던 최화수 씨의 르포〈양산박 사람들〉이 신동아 논픽션에 당선됨으로써 이곳은 전국적인 명소로 알려지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에 지상의 포장마차 ‘양산박’은 시인 임명수 씨가 운영했고, 원래의 운영자였단 윤진상 씨는 가까운 건물의 지하에 터를 잡아 각각 ‘윤산박’, ‘임산박’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3. 이번 공연의 기획 의도와 배경
이번의 작품은 부산의 극작가이며 연극평론가인 김문홍이 그의 네 번째 창작희곡집인 『대숲에는 말(言)이 산다』에 수록되어 있던 미 공연작품인「공중누각」을 바탕으로 하여 다시 새롭게 쓴 것이다. 연안여객 터미널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지금 이곳’의 포장마차 주점 양산박에 시대와 현실에 넌덜머리를 느끼고 상처받은 일군의 사람들이 어둠과 함께 이곳을 찾아든다. 지금 이 포장마차를 운영하고 있는 여주인은 1980년 당시 대학생으로 양산박을 자주 드나들다가 당시 복학생이던 남편을 그곳에서 만나 결혼하여 지금은 없어진 옛날의 포장마차 ‘양산박’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아 운영하게 된다.
이곳에 모여든 여러 명의 사람들은 ‘유토 섬’에 가려고 하지만 안개주의보에 선박들이 출항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달래며 불온한 시대적 현실에 대한 담론을 펼치게 된다. 한 사내는 바다에 관이 떠내려가고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힌다. 그 관속에서 그는 그 옛날 포장마차 양산박을 드나들던 기인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들은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하여 유토 섬에 가는 밤 배의 출항여부를 문의하게 된다. 그들은 모두들 하나같이 ‘유토 섬’에 가려고 한다. 그들은 왜 거기에 가려고 하는가? 거기에만 가면 그들을 옥죄고 있는 시대적 현실과 아픔, 그리고 상처가 치유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극의 후반부에 한 사내가 자살하고, 여객터미널의 매표원은 그들에게 청천벽력의 사실을 통보하게 되는데......
4. 이번 공연의 연출 의도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그 옛날의 양산박은 예술가들에게는 창작의 영감을 주는 곳이었고, 지성인들에게는 시대의 암울함에 답답해하던 그들에게 숨통을 트이게 했고, 대학생들에게는 시국의 담론을 펼치던 자유와 영혼의 해방구였다.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유토 섬에 가기 위해 지금의 양산박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불온한 시대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그 옛날 양산박을 드나들던 사람들이 ‘지금 이곳’의 현실에 환상으로 되살아나고, 이들은 함께 유토 섬에서 화해와 상생의 한 판 굿을 펼치게 하고자 하는 데 연출의 초점을 두었다. 즉, 이 작품의 중요한 배경적 공간인 ‘양산박’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의 차원을 넘어서서, 불온한 시대에 넌덜머리를 느끼는 순수한 영혼들을 포용하는 치유의 공간이라는 상징성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작가의 말>
양산박, 희망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극작가 김 문 홍
1980년대를 접어들 무렵, 굵직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이 현실 참여 지성인들의 숨통을 죄어 왔다.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서울의 봄, 광주 민주화 운동, 국보위에 의한 강제적 언론 통폐합, 전두환 군부 정권의 출범 등으로 우리의 영혼의 풍경은 잿빛으로 암울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 무렵, 한 가난한 음악인을 돕기 위해 일간지 부산일보의 몇몇 기자들이 의기투합하여 부산 광복동 입구의 골목에다 포장마차《양산박》의 문을 열었다. 그 후에 이곳은 소설가 윤진상, 시인 임명수 등으로 주인을 바꾸어 가며 시인, 작가들과 예술인들의 사랑방, 학생들과 지성인들의 시국 담론 장, 그리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희망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역할을 톡톡하게 해냈다.
지금은 눈을 씻고 봐도 이런 곳을 찾아볼 수가 없다. 시인과 작가들, 예술가들을 언제라도 만나볼 수 있는 곳, 시국에 대해 자유롭게 담론을 펼칠 수 있는 곳,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를 자처하던 ‘기인’ 들을 더러 만날 수 있는 곳...‘지금 이곳’의 우리 주위에서는 이런 풍경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연극 작품을 통해서라도 그 옛날《양산박》과 같은 그런 이상적 공간을 복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을 이곳에 모이게 했다. ‘지금 이곳’의《양산박》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불온한 시대의 질곡적 삶에 상처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러한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섬을 찾아가려 하지만 모든 배들은 안개주의보에 발이 묶여 있다.
연극 속의《양산박》은 현실적 공간이 아니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불온한 시대의 아늑한 영혼의 안식처였던 그 옛날《양산박》과 같은 공간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염원에서 탄생한 일종의 판타지적 공간인 셈이다. 연극을 보는 동안만이라도 우리 모두《양산박》에 함께 모여 그들의 아픈 속내를 들어주고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으면 한다. 왜냐 하면 그들은 곧 우리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연출자를 비롯한 출연진,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이지 않는 무대 뒤의 어둠속에서 수고를 아끼지 않은 스탭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첫댓글 김문홍 병장님, 양산박 공연 축하드립니다. 언제 나도 감상할 수 있음 좋으련만. 늘 건강하십시요. 이준섭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