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에 내려 앉은 고운 햇살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지는 어느 봄날 따스한
봄기운이 나를 끌고 낯설지 않은 곳으로 데려가고 있다.
그곳에 가는 동안 내내 가슴이 아릿하게 저며 오는 것을 느낄수 있다.
그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문득 나는 주부의 정체성 앞에 머뭇거리게 된다.
가끔, 한 줌의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서 친구의 공방을 찾아가곤 한다.
따스한 햇살 아래 피곤에 젖은 내 몸을 맡기다 보니 그 동안 자신을 잊고 살았던 게 하나
둘이 아님을 느낀다. 잘 닦여진 도로 위를 타박타박 걸어 가다보면 사방이
초록 물결 위에 서있고, 나무에는 연두빛이 바람에 흐느적거린다.
강가 풀밭에 앉아 고요히 흘러가는 강변의 물줄기를 바라보니 참으로 한가롭다.
다소곳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목련의 봉오리는 인동(忍冬)의 흔적을 보여주듯이
그저 소담스러울 뿐이다. 길 건너 산에도 어느새 서서히 옷이 입혀지는 걸 보니
묵묵하게 걸어온 자연의 생명이 아름답게 보인다. 푸른빛의 고운 물감으로 채색되어
가는 들풀들이 발에 채이고 멀찍이 시나브로 돋아나는 싹들이 밭이랑을 메꾸어 나간다.
그녀 집을 가는 길가엔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소박한 마을 풍경들이
걸어 나와 나를 기쁘게 하고 삶에 의욕을 돋구게 한다.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 옛 것을 토대로 하여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그곳,
그곳에는 흙으로 빚어내는 투박한 그릇들이 수묵화처럼 펼쳐져 있다.
깔끔하고 정갈한 그녀의 공방에 들어서면 마치 백목련이 피어오르는 듯한
향기가 나는가 하면, 흙의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도공의 손놀림을 보면서
한 마리의 학이 비상하는 날개짓을 보는 것 같다.
그녀는 화사한 배꽃같은 웃음으로 나를 반기고 정갈하게 꾸며진 전시장으로
날 데리고 간다. 난 화사하면서도 절제된, 온갖 치장을 거부한 소박한 모양과
자연스런 발색이 빚어낸 그릇 앞에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있는 그릇들을 바라보면 그녀의 숨겨진 일기장이라도
들여다 보는 듯 그녀의 감정표현이 흠뻑 들어가 있음을 가슴으로 느낀다.
저마다 각기 다른 표정으로 다양한 모양들을 연출해 내는 흙이 주는 따스함과
말할 수 없는 부드러운 감촉들이 나의 시선을 오랫동안 잡고 있다.
어딘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때로는 생활의 활력소
도 주고 마음의 안정감도 가지게 한다.
흙빛이 살아 있어서 움직이는 분청 앞에서 서민적이고 서정적인 도자기의
매력을 느끼게 되어 이곳 공방을 자주 찾게 된다. 어쩌면 도자(陶瓷)에는
그 어느 것보다도 우리 민족의 얼과 혼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삶에 지쳐 힘들때 가끔 공방에 나가게 되면 언제나 한결같이 편안하게 맞아주는
그녀를 만날 수 있어 무엇보다 감사하다. 공방에서 친구의 얼굴도 보고 생활의
미감도 느낄 수 있고 즐거움도 얻을 수 있으니 이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닐 수 없다.
그녀는 우리 도자기와 잘 어울리게 항상 우리 옷을 입고 있어 더욱더 친밀하고
편안하게 와 닿는다.
일에 열정적인 그녀가 만들어내는 질좋은 그릇들은 아름다운 빛깔로 나를 사로 잡는다.
독특한 어문(魚文)이 새겨진 사발과 옛날 어머니가 쓰시던 호롱을 여기서
만날 수 있으며, 무엇보다 FIFA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았다는
축구공은 처용탈을 조각해 만들어 독특해 보였다. 또한 울산을 상징하는
반구대 암각화를 그릇에 새겨 넣거나 장식용에 새겨 넣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녀는 흙과 불의 혼을 불러 빚은 그릇들을 소중하게 다루며 그릇에도
영혼이 살고 있다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속에 내 영혼도 한 켠 불어넣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시장 옆에 붙은 차실에 들어서니 '모르는 이를 처음 만나면 술을 마시고,
벗을 만나면 차를 마시라'는 옛 글귀가 나의 눈에 띤다.
창가에 들어오는 햇살을 등지고
그녀와 차 한잔에 여유로움을 가져본다.
그녀와 나누는 대화는
꿀처럼 달디 달아 시간가는줄 모르고 나도 그녀처럼 곱게 잘 늙어가고 싶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바쁜 생활 탓만 했는지도 모른다.
바쁜 생활속에서 여유를 가질수 있는 자만이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을 가질수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배운다.
항상 대화만을 나누다가 어느 날 그녀의 권유로 조심스럽게 흙을 만지게 되었다.
처음에 흙을 대하기가 조심스럽고 두려웠는데 한 번 두 번 흙 만지는 법을 배우다 보니
흙이 매우 부드럽고 좋을수가 없다.
한 몇개월 정도는 핀칭, 코일링, 판상 작업을 통해서 흙의 감각을 익힌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우게 되면서 물레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도자기를
만드는 동안에 무념무상의 길로 들어서는 걸 느꼈다.
마음이 비워지니 모든 것이 새털처럼 가볍다. 그릇을 만들면서 내 가정에 청아한
향기를 간직하고 싶다. 옛 향기 그윽한 그릇에서 특별한 꾸밈없이
자연과 어우러져 만드는 내 손은 그저 즐겁고 기쁘기만 하다
한 개의 도자기가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과정을 밟는다는 사실에 자못 놀랐다.
흙을 분쇄하고 불필요한 이물질을 제거하는 수비(水飛),
그리고 공기와 기포(氣泡)를 완전히 제거해야 하는 토련 과정이 지나면 성형을 하게 된다.
성형을 하고 난 다음에 조각을 하고 여러 가지 기법으로 장식을 한다.
섭씨 900도가 넘는 화력에서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을 입히는 시유를
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재벌에 들어간다. 그때 아궁이 속으로 활활 타오르는
장작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오게 된 시간들을 되짚어 보면서 가슴 뿌듯한 희열을 느낀다.
그녀와 난 무언의 침묵으로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완성된 도자기를 꺼낼 때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환희심이 생긴다.
누군가 '삶에 지쳤거든 흙으로 돌아가라' 고 했던가.
때로는 중년의 공허함을 느낄 때 흙 냄새, 흙 빛깔을 가슴에 담으러 공방
나들이를 간다.
석양이 붉게 물들 무렵 공방을 나서는 내 모습에서 서서히 겸허해짐을 느낀다.
공방 입구엔 그 바쁜 와중에도 그녀가 심은 야콘, 꽃잔디, 붓꽃, 백합, 나리, 매실,
대추, 토마토, 셀러리 등 수십 종류의 꽃과 채소와 과실수 등이 따뜻한 햇볕을 받으면 잘 자라고 있다.
틈나는 대로 풀과 잡초 등을 뽑아주면서 땀과 노동의 참다운 가치를 느끼게 해준
그녀는 나에게 큰 스승으로 와 닿는다.
돌아 나오는 입구엔 꽃잎들이 다소곳이 앉아서 빨간 노을에 졸고 있다.
특히 눈에 띨 정도로 아름다운 자목련이 한 입 벌어진채 석양을 배어먹고 있으며,
등뒤로 나를 향해 손사레를 치는 친구의 아름다운 얼굴이 노을에 붉게 젖어있다. (현정)
첫댓글 글과 공방의 사진들이 어우러져 넘나 아름다워요.
글을 아주 실감나게 잘 쓰시네요.
제가 마치 그곳에 있는거 같아요.
흙 냄새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저 이기에 글속에 잠시 빠져 들었습니다!!
댓글 감사드립니다.
거실의 도자기들은 모두 친구
부부 작품입니다.
공방 나들이
주제를 잡고 3년동안 썼어요.
부부가 공방을 운영 하거든요.
그녀와 지금도 며칠에 한번씩
통화하는 절친이지요.
부지런하시고 소탈하신 현정님
감성까지 풍부하시고
글솜씨도 뛰어나시고
글이넘 좋아요
공방의 그릇들이 색도 그렇고 편안함을 주네요 그릇들 이쁘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둥근해님
글은 잘 못쓰지만 몇년에
걸쳐서 쓰니 작품이 나왔네요.
글에 매달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지금은 안쓰고 있어요.
그런데요~~
카페에서 아름 문학상을 추진 하더군요.
동참 한번 해보려고
농사일 하면서 틈틈히 적고 있어요.
둥근해님께서도 아름 문학상에
응모해 보세요~~
@현 정 현정님 도전해보세요
저는 읽는건 좋아하는데 쓰는건 꽝이라예
응원할게요
농군으로의 현정님
도공으로의 현정님
작가로의 현정님
그리고
어설픈 가수로서의 현정님
각기 다른
매력 포인트를
가지고 계시네요.
응원의
박수 보내드립니다.♡
어느 봄날의
목련 향기와 함께
사색에 잠기게 하는..
멋진 글에 잠시 푹 빠져보았습니다~♡
히히~~
쑥스럽네요~~
언니가 여성방에 오셔서 열심히
활동하시니 제가 흐뭇하네요.
내년쯤엔 색소폰 연주
꼭 들려 주세요.
저도 기타. 오카리나 있는데
만질 시간이 없네요.
하루에 30분이라도 연주
하는것도 쉽지 않네요.
시작이 반이라고 내일부터
하면 좋을텐데요.
신랑밥, 아들밥 줘야 하고
농사일까지 겹치니 하루가
모자라네요.
색소폰 이야기 좀 올려보세요.
굿저녁 되시구요~~♡♡♡
엊그제 무대에서 큰 웃음을 주었던 그 현정이가 맞나요??
글도 너무 잘 쓰시고 재주가 많은 현정씨는
흙냄새가 좋아서 흙과 무던히도 잘 지내나 보오..
언제적인지 참 미인입니다.ㅎ
낮에는 바빠서 못 읽고
아껴두었다가 이제야 읽었네요..
언니
굿모닝입니다 ~~
요즘 문학상에 응모한다고
끙끙 대고 있어요.
글쓰기가 어려운데
또 도전해 보고 싶네요.
덥기 전에 밭일 하러 갑니다.
오늘도 무탈한 하루 되시구요~~♡♡♡
저도 종일 바빴네요 이제사 컴도 열고 글도 읽고
공방이 아기자기 합니다
저도 후배 하나 공방 크게 합니다
문화원관장도 하고 더러 흙장난 하러 다녔는데
산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다보니
후배 공방에 안가본지 오래네요
덕분에 후배 생각이 잠시 났습니다
선배님
굿모닝입니다 ~~
전에 울산 도심에 살때는
도자 컬렉션 방도 있었는데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거실 한켠에 전시해 놓았네요.
대자연속에서 살고 계시는
선배님의 멋진 전원생활이
부럽습니다.
부럽지만 종일 가꾸고 계실
선배님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 집니다.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소식이 있네요.
바짝 마르고 갈라진 밭에
제발 비님 내렸으면 좋겠네요.
약속있어 나가려 준비마치고 잠시 시간나서 들어와봤더니.
현정님의 보석같은 글이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흙의 냄새. 질감. 햇살을 등지고 있는 스승님?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듯 실감나게 쓰셨어요.
긴 글이라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아름 문학상감이다. 라는.
도전하세요.
강력히 추천드려요.
글을 다듬고 있는데 참 어렵네요.
팝송 부르기와
글쓰기가
제일 어려운거 같애요.
팝 모임 잘 다녀 오시구요.
감사합니다 ~~♡♡♡
이 글을 아름문학상에도 올리시지요. ㅎ
다른 소설 마무리 해서 올려볼께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