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
최호빈
1. 열 살 때 나무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높은 나무가 아니어서 떨어진 곳에 모난 돌이 없어서 머리가 무거워지기 전이어서 죽지는 않았지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을 나무에서 떨어지기 전에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 뒤에 죽음이 있다는 생각이 든 건 그때였던 것 같다 2. 죽음이 열 살에 이르렀을 때 나는 스물일곱 살 죽음이 열아홉 살에 이르렀을 때 나는 스물일곱 살 죽음이 스물일곱 살에 이르렀을 때 나는 서른여섯 살 죽음이 서른여섯 살에 이르렀을 때 나는 마흔두 살 끝내 나를 잡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3.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누가 봐도 살아 있는 것들이 절실하게 살아가고 있어서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한겨울에도 생기를 이어갈 것만 같은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한 아름의 꺾은 꽃을 안고 말린 꽃이 더 아름다울 것 같지 않다고 나보다 늙은 내가 절실하게 말했다 살아가는 모든 것과 죽어가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는, 누가 봐도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4. 자유로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지나야 할 한강의 대교를 생각한다 가양대교 월드컵대교 성산대교 양화대교 곧 집인데 빙판에 미끄러진 차는 서울을 빠져나가는 차처럼 한 바퀴 반을 돌고 멈춘다 한 대 두 대… 차가 소복이 쌓인다 백미러에 비치는 Seoul Welcomes you —계간 《백조白潮》 2023년 겨울호 ---------------------- 최호빈 / 201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국립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