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줄이는 물질 ‘베타카로틴의 이중성’
명승권의 건강강좌
음식이 식도, 위, 소장, 대장 등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폐암은 음식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음식이 흡수되면 여러 물질이 혈액을 타고 폐로 가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예로 과일과 채소, 특히 우리 몸에 들어오면 비타민 에이(A)로 변하는 베타카로틴이라는 항산화물질이 풍부한 채소를 섭취하면 폐암 발생이 20~30%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베타카로틴을 채소가 아닌 종합비타민제와 같은 보충제의 형태로 섭취하면 오히려 폐암 발생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1994년 핀란드 남성 흡연자 약 2만9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절반은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나머지 절반은 가짜약을 먹였는데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먹은 집단에서 폐암 발생이 약 18% 높았다.
또 1996년 미국인 약 1만8천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결과에서도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먹은 집단에서 폐암 발생이 약 28% 높아, 계획보다 일찍 연구가 종료됐다.
즉 흡연자가 베타카로틴을 음식이 아닌 보충제로 먹었을 때에는 오히려 폐암 발생 가능성이 20~30% 높았던 것이다. 이 두 연구를 근거로 미국 정부는 약 10년 전부터 흡연자는 채소 등이 아닌 보충제의 형태로 베타카로틴을 먹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의료인은 많지 않다.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채소를 섭취하면 폐암이 줄어드는데, 베타카로틴 보충제를 먹으면 왜 폐암 발생이 많아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음식의 형태로 섭취하면 베타카로틴뿐만 아니라 다른 비타민이나 항산화물질을 함께 흡수해 폐암 예방에 도움이 된 반면, 베타카로틴만 섭취하면 반대의 결과가 나왔을 수 있다.
특히 흡연자의 경우에 베타카로틴을 보충제로 과량 섭취하면 산화제로서 작용해 폐암 발생이 많아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아무튼 흡연자는 베타카로틴 보충제나 이 성분이 든 종합비타민제를 먹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술과 암의 관련성 하면 흔히 간암을 떠올리지만 현재까지 연구 결과는 이와는 다소 다르다. 2007년 세계암연구기금·미국암연구협회의 보고서를 보면 술은 구강암, 식도암, 대장암, 유방암의 원인으로는 ‘확실’한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데 간암의 경우 암 발생을 높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류하고 있다.
실제로 모든 간암의 약 70% 정도는 비(B)형 간염 바이러스 때문에 생기고, 시(C)형 간염 바이러스가 10%, 흡연이 10% 이상, 술은 5~10% 정도 기여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음식 중에서 간암을 일으키는 것으로 가장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술보다는 부패한 땅콩 등에서 발견되는 아스페르길루스라는 곰팡이가 만들어 내는 아플라톡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지만 다른 아시아지역이나 아프리카에서는 중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대신 하루에 커피를 1~3잔 마시면 간암 발생이 30~40%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간암을 예방하려고 커피를 많이 마시면 고혈압을 일으킬 수 있고, 철분 흡수를 방해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많이 섭취하는 것은 권장할 수 없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발암성연구과장·가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