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강나루 생태공원에서
더디게 더디게 가을을 보내는 십일월 끝자락 일요일이다. 도심 거리에는 떨어진 은행잎이 길바닥에 굴러다녀 만추의 운치를 더하는 즈음이다. 어제 아침 버스를 타고 가던 차창 밖으로 창이대로 줄지어 자란 가로수가 노랗게 물든 풍경을 보면서 대중교통 이용자만이 누린 특권이라는 생각을 가져봤다. 일요일 길을 나서면서 산자락을 누빌까나 강둑을 걸을까를 두고 후자를 택했다.
근교 강가로 나가는 교통편을 이용하려고 마산역 앞으로 향했다. 역 광장으로 오르는 노점에는 계절감이 물씬한 푸성귀와 약재들을 펼쳐 오가는 손님을 맞았다. 누군가 산기슭에서 힘들여 캤을 칡뿌리나 당뇨에 좋다는 돼지감자가 보였다. 주름진 누렁 호박덩이나 무청이 달린 무도 쌓여 있었다. 올가을은 과일이 풍성해 값이 비교적 비싸지 않은 단감이나 사과들이 가득 진열되었다.
마산역 동마산병원 앞에서 합성동 시외터미널을 출발해 칠원을 거쳐 남지로 가는 농어촌버스를 탔다. 서마산에서 내서 아파트단지를 거쳐 칠원 읍내를 둘러 칠북면 소재지에서 이령을 지났다. 창녕함안보가 멀지 않은 덕남에서는 광려천이 흘러와 샛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소랑교를 건넜다. 기점이 거제 연초로 연장된 5호선 국도는 강심에 다리가 걸쳐져 창녕 도천으로 건너갔다.
칠북에서 칠서로 바뀐 들녘은 아까 지나온 이령과 발음이 유사한 이룡이었다. 분교장으로 격하되어도 초등학교가 맥을 잇는 강변의 첫마을은 ‘평지’였다. 들판 가운데 평평한 마을이라 그렇게 불렀는데 마을 안내판에는 오래전 호밀 주산지로서 밀짚모자를 최초로 만든 고장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합성수지로 이루어진 플라스틱이 보편화되기 이전 자연에서 구한 재료의 차양 모자였다.
5호선 국도가 지선으로 나뉘는 강둑으로 오르자 탁 트인 둔치 경치가 펼쳐졌다. 4대강 사업으로 정비된 둔치는 ‘강나루 생태공원’으로 이름 붙였다. 행정 당국은 근년 들어 가을이면 보리를 심어 이듬해 봄에 청보리 축제를 펼쳐왔다. 둔치로 내려가 싹이 푸르게 자라는 경작지를 살피니 올가을은 보리가 아닌 밀을 심어두었는데 그간 날씨가 따뜻해 싱그럽게 자라 목장 초지 같았다.
강나루 생태공원 경작지 가장자리 산책로를 따라 강가로 나가자 허옇게 이삭이 팬 물억새가 햇살이 비친 바람에 일렁거려 장관이었다. 갯버들 가지가 잎이 떨어져 앙상해진 강가 습지는 겨울을 나려고 북녘에서 날아온 철새들이 먹이를 찾느라 오글거렸다. 시야에 들어온 물길은 내서에서 칠원을 거쳐오면서 S자로 휘어진 광려천이 낙동강 본류에 합수가 되어 창녕함안보에 가두어졌다.
둔치에 드넓은 밀밭은 이른 아침부터 동호인이 찾아 누비는 파크골프장 잔디밭으로 이어졌다. 골프장과 인접해서 자동차를 몰아온 야영객들이 텐트를 치고 밤을 샌 오토캠핑장이 나왔다. 산책로를 따라가자 강 언저리 복원해둔 나루터는 환경공단에서 운영하는 생태 탐방선이 묶여 있었다. 나루터 건너편은 창녕 도천 우강리는 임란 의병장 곽재우가 말년을 보낸 망우정이 아스라했다.
강나루 생태공원은 마산과 함안 군민의 식수원을 취수하는 칠서정수장으로 이어졌다. 둔치에서 둑으로 올라 낙동강을 가로지른 다리를 건너자 더 위쪽 옛길 국도에 놓인 남지철교가 바라보였다. 남지로 건너가 읍내 거리로 들지 않고 둔치를 따라 걸으니 그곳에도 조성된 잔디밭에는 골프공을 몰아 다니는 동호인을 볼 수 있었다. 강변은 어디에서나 골퍼들이 여가를 즐기는 곳이었다.
지난날 한국전쟁 피폭으로 부서진 남지철교는 원형을 살려 보존하고 곁에 쌍둥이처럼 트러스트 교량이 놓인 옛길은 남지 유채밭과 인접한 곳이었다. 봄날 노란 꽃을 피울 유채는 월동을 앞두고 잎줄기가 무성하게 자랐다. 아까 강을 건너기 전 봤던 둔치의 밀밭처럼 겨울을 나고 나서 푸르름을 보여주고 노랗게 꽃을 피우면 상춘객이 몰려올 테다. 다리를 건너 계내에서 버스를 탔다. 24.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