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표충사를 거쳐 경주 황룡사터를 후암인들과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황룡사터에는 황량하게 주춧돌만 남아 있지만 그 규모의 광대함에 놀랐다. 홀로 남은 주춧돌에서 남다른 기가 흐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경주 곳곳에 있는 고분들 주위를 거닐다보면 문득 드는 의문이 있다. 과연 이 많은 고분들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적으로 보존해야할 가치가 있는 고분들이지만 이 또한 엄연히 한 인간의 무덤. 개발과 상업주의로 인해 점점 훼손되어가고 있는 고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고분 속 주인들의 흐느낌이 들리는 듯하다.
“1973년 천마총 발굴이 있기 전날에 꿈을 꾸었습니다. 제 집에 도둑이 드는 꿈이었죠. 마치 제 몸에서 뭔가가 날아가는 느낌에 허망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상하죠? 천마총과의 인연이 이렇게 질기다니.”
오래 전 60대의 노부인이 내게 한 고백이다. 마치 영화 ‘타이타닉’에 나온 노부인처럼 뭔지 모를 고귀한 느낌의 여인은 알고 보니 경주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 며느리였다. 지금은 가세가 기울어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그녀가 시집올 당시만 해도 600여 평의 가택 너머로 천마총이 한눈에 보이는 명문가였다.
“대릉원이라고 신라 고분들이 모여 있는 곳 가까이에 집이 있었지요. 당시만 해도 그저 고분이겠거니 했습니다. 천마총은 시동생과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으니까요. 세월에 짓밟혀 훼손되어가는 천마총을 바라보면서 참 많은 눈물을 흘렸지요. 저도 모르게 서러워지곤 했습니다.”
그녀가 천마총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알 수 없는 이끌림 때문이었다. 경남 양산에서 부잣집 맏딸로 자란 그녀가 혼기에 접어들 무렵, 꿈속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하얀 와이셔츠 깃을 세운 엘리트 청년. 그리고 청년의 뒤쪽으로 왕릉과 같은 큰 고분과 연못이 펼쳐져 있었다고 했다.
꿈을 꾼 그 다음날 의사인 할아버지가 그녀를 불러 통도사 부근으로 빨래를 하러가라 명을 내렸다 한다. “북청색 유똥 치마에 양단 저고리를 입어라. 반드시 너 혼자만 나가야 한다.” 순간 그녀는 ‘선을 보는 것이다’라는 생각에 아무 말 없이 빨래통을 지고 개울로 나갔다.
빨래 방망이로 옷감을 두드리던 그녀는 멀리서 들리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곳에 바로 꿈속의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 할아버지가 다시 그녀를 부르더니 다른 남자와 선을 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어제 개울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반대를 하였다고 한다. 그래도 그녀가 고집을 꺾지 않자 그녀는 단 한 푼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나듯 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결혼해 경주 시댁으로 내려갔더니 꿈에서 본 큰 왕릉과 연못이 있었습니다. 바로 천마총이었지요.” 그녀가 본 고분은 신라 제21대 소지마립간 또는 제22대 지중마립간의 무덤이라는 설이 있을 뿐 누구의 무덤인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단지 고분 안에서 천마를 그린 장니와 금관을 비롯한 유물이 출토되어 천마총이라고 불리게 되었을 뿐이다.
그녀는 내게 물었다. “천마총은 저와 어떤 인연입니까? 혹 천마총이 제 무덤은 아니었는지요?” 그녀의 짐작대로 내가 본 그녀는 칠생(七生) 전생에 천마총 주인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평범한 부부로 살아가는 그들에게서 아직도 왕가의 고고한 피가 흐르는지 남들과 다른 품위를 느낄 수 있었다.
전생에서 자신의 무덤이었던 천마총이 예전처럼 복원되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현재 천마총은 일반인이 찾는 내부시설이 노후돼 4월까지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그때까지 기다려야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천마총이 정확한 고증을 거쳐 복원된다니 다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