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빈(孫臏)(기원전 382년 ~ 기원전 316년)은 중국 전국시대의 전략가이다. 병가(兵家)의 대표적 인물 중에 한 명이다. 손무(孫武)의 5대손이고, 손무와 같이 손자(孫子)로 불린다. 손빈병법(孫臏兵法)은 손빈이 저작한 병법이다. 손무는 손자병법의 저자이다.
젊은 시절에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워, 방연은 위나라(魏)에 관직에 오르고 혜왕(惠王)의 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방연은 손빈에 대해 열등감이 있었다. 손빈을 속여서 위나라로 초대하여, 손빈을 모함하여 죄를 짓게하여 무릎뼈를 도려내는 형과 얼굴에 먹칠을 하는 형에 당하게 한다. 손빈은 제나라로 도망갔다.
손빈은 장군으로서보다 장군을 돕는 참모로 재능이 뛰어났다.
손빈의 능력을 보여준 유명한 전투가 계릉전투, 마릉전투이다.
마릉 전투에서 방연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스스로가 진 것을 깨달은 방연은 "기어코 그 녀석의 이름을 떨치게 만들었구나(遂成豎子之名)"라고 탄식한 후 자결하였고, 위나라의 태자 신(太子 申)은 포로가 되었다. 사령관을 잃은 위나라 군은 제나라군에 패배하게 되었다.
이 마릉전투의 승리로 인하여 병가 손빈(兵家孫臏)의 이름은 천하에 알려졌다고 전해진다. 손빈의 말년에 대해서는 역사에는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손빈 병법
손빈은 손무와 같이 병법서를 저술했지만, 그의 병법은 손무의 오손자(吳孫子-오나라의 손자)와 구별하여 제손자(齊孫子-제나라 의 손자)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후에 손빈 병법이 유실되어서, 혹은 현존 하는 손자 병법 자체가 손빈의 저작은 아닐까도 추정하였지만, 1972년에 이르러 산둥성에서 손빈이 저술한 병법서가 죽간(竹簡)으로 된 손빈 병법이 발견되고, 손자 병법의 저자는 아닌 것이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