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을 다스리는 법
家人有過(가인유과)-가족에게 잘못이 있으면
不宜暴怒(부의폭로)-크게 화내지도 말고
不宜輕棄(부의경기)-가볍게 보아 넘기지도 말라.
此事難言(차사난언)-잘못을 깨우쳐주기 어렵다면
借他事隱諷之(차타사은풍지)-다른 일을 빌어 비유로서 깨닫게 하라.
今日不悟(금일부오)-오늘 깨닫지 못하면
俟來日再警之(사내일재경지)-다시 내일을 기다려 훈계하라.
如春風解凍(여춘풍해동)-봄바람이 언 땅을 녹이고
如和氣消氷(여화기소빙)-온기가 얼음장을 녹이듯 하라.
在是家庭的型範(재시가정적형범)-그것이 가정을 다스리는 규범이다.
채근담(菜根譚)
아버지는 천날 만날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KBS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53부작이 어제(2015.2.15.)로 끝났다.
필자는 드라마를 잘 안보지만 흥미 있는 “홈드라마”는 한편씩은 본다.
솔 약국집 아들들, 오작교 형제들등,
그리고 197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에 상영된 미국 서부개척시대를 배경으로 가족 사랑의 훈훈한 정을 그린 패밀리 드라머인 “초원 집”은 지금도 한 번 더 보고 싶은 감동적인 내용이라 생각한다.
주근깨 투성이 로라양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보고싶다
“가족끼리 왜이래”는
일찍 아내와 사별(死別)하고 홀로 삼남매를 키워온 차순봉 두부집 주인의 애환(哀歡)의 이야기다.
시한부 건강 판정을 받은 차순봉은 죽기 전 자식들과 조금이라도 더 살가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 병을 숨긴 채 가족의 화목과 남은 시간 자식들의 일상(日常)에 돌을 던져 파문(波紋)을 일으키지 않고 늘 그랬듯 “오늘”을 일상(日常)대로 지내기를 원하였다.
주인공이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유쾌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가족의 의미와 가치를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장면들은 “가족 해체”라는 우리 사회의 변화된 문화에
“가족이란 무엇인가”의 강한 화두(話頭)를 주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죽기 전에 가족의 행복을 모색하기 위해 자식들에게 불효소송을 제기하면서 인생의 주변정리를 마무리 한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장송곡(葬送曲) 대신에 가족노래자랑으로 드라마 화면을 정리하는 장면이다.
죽을 날이 가까이 오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죽어야 하는 가를 돌아보게 한다.
장자(莊子)는 양생주(養生主)에서 말하기를
適來夫子時也, 適去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죽은 사람을 슬퍼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태어날 때를 만났기 때문이며,
이세상을 떠난 것은 떠나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늘이 정해준 때를 마음 편히 여기고 운명(運命)에 순응(順應)하면, 슬픔과 즐거움이 끼어들 수 없다고 하였다.
아버지는 천날 만날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목메어 울며 자기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아버지를 부르지만---
공자가어(孔子家語) 치사편(致思篇)에 말하기를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나무가 조용히 있고 싶어도 바람이 멎지 않고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부대)-자식이 효도를 다하려 해도 그때까지 부모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부모의 마음은 자기가 부모가 되어야 알 수 있다.
송(宋) 나라의 유학자 주자십회(朱子十悔)에
不孝父母死後悔(부효부모사후회)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후회하고
不親家族疏後悔(부친가족소후회)
-가족끼리 친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뉘우친다.
영원할 것 같던 시간들이 끝나고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은 또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이게 사람 사는 것이다.
드라마를 통해서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 것은
“가족끼리”서로의 마음을 이야기 못할게 없다는 것을 깨닳게 하여주는 메시지다.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은 바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화합의 운영의 묘(苗)가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가족도 경영(經營)이다.
가족들에게 나와 다른 생각을 변화시키려고 온통 에너지를 쏟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말하고 싶다.
상대에게서 문제 해결의 답을 찾으려고 한다면
“행복한 가족”과는 점점 멀어진다. 내 자신의 지난날 상처와 아픔을 돌이켜 보고 가족들의 입장을 이해하여 주고 공감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가족화목의 실마리가 아닐까
이것은 내가 변해야 된다는 말이다.
가족은 소중한 결합체(結合體)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건립하여 조선시대 서원운동을 일으킨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 선생은 가정의 불화로 고민하고 있는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土脈和沃生草必茂(토맥화옥생초필무)-토지가 비옥하면 곡식이 잘 자라듯이
一家和生福必盛(일가화생복필성)-집안이 화목하면 그 집안에 행복이 가득하다고 강조하였다.
여기에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의미가 나왔다고 생각한다.
2013년 1월 1일 조선일보 논설위원 오태진 칼럼에서
인류학자 도널드 그레이슨이 쓴 “가족은 생존의 보증수표”라는 책의 내용이다.
1846년 11월 미국 서부 개척민 80명이 캘리포니아 산맥을 넘다가 눈보라를 만나 도너 계곡에 갇혔다.
80명중에는 젊은 독신 남자 15명과, 나머지는 여덟 살 아이부터 예순살 넘는 할아버지가 포함된 가족들이었다.
이듬해 봄에 구조됐을 때 살아남은 독신 청년은 세 명뿐이었지만.
가족들은 노약자가 많은데도 60%가 생존했다고 했다.
가족끼리 서로 보살피고 의지한 덕분이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2011년 1월 25일 동아일보 기사에서
“부모는 가족”인가 라는 질문에 응답이 92.8%에서 77.6%로 낮아졌고
“배우자의 부모는 가족”이라는 응답은 79.2%에서 50.5%로 급감했다.
형제자매, 배우자의 형제자매(처제 등)를 가족으로 보지 않는다는 응답이 급증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핵(核)가족이 가속화 되어가는 문화 현상이다.
그래도 내일 모레 설날 귀향길은 붐비고 있다.
명절이면 가족이 그리운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변하는 건 가족 형태와 문화의 변화일 뿐
“명절은 가족과 함께”라는 정서(情緖)는 여전히 유효하고 싶다.
아무리 싸우고 다투고 갈등하고 토라져도 가족은 여전히 가족이이다.
내일이면 필자의 집에도 아들 며느리 손녀들이 올 것이다.
차순봉 영감이 가족음악회를 열 듯
나도 청소 깨끗이 하고 보일러도 더 따뜻하게 올려서
직장일 사업일에 시달린 자식들이
옴마, 아부지, 옆에서 편안하게 늘어지게 자고
골치 아픈 이야기들은 생각에 담지도 말고,
그 어떤 일에도 구애 되지 말고
아내에게도 아픈 표정 짓지 말고 화장을 곱게 하여 자식들을 안심시키고
가족들이 자유롭게 푹 쉬고 편안한 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행복한 설날 되세요!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