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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제목 :
1) 한글 반포 후 상용화 매우 빨랐다.. 가장 오래된 편지 보물된다
2) '한글로 쓴 가장 오래된 편지 '나신걸 한글편지' 보물된다'
3) 대전서 발견 '나신걸 한글편지' 보물된다…"훈민정음 반포 실상 확인
4) ‘나신걸 한글편지’ 보물된다… “15세기 생생한 호칭, 높임말 담겨
발견 당시 모습
나신걸 편지 1
나신걸 편지 2
* 위 사진은 인터넷 뉴스에서 퍼왔다.
한글을 애용하는 나한테는 소중한 자료이다.
무단 게재를 용서해 주실 게다.
*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확대된다.
안정나씨 종중묘를 이장하면서 발견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군관으로 활동한 나신걸(1461∼1524)이 아내에게 한글로 써서 보낸 편지 2장인 '나신걸 한글편지'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29일 밝혔다.
조선 초기 군관(軍官) 나신걸(羅臣傑, 1461~1524)이 아내 신창맹씨(新昌孟氏)에게 한글로 써서 보낸 편지 2장이다.
2011년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에 있던 조선 시대 신창맹씨 묘안 피장자(被葬者·무덤에 묻혀 있는 사람)의 머리맡에서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되었다.
편지는 저고리, 바지 등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발굴됐다.
* 위 편지 1에서....'회덕골' 지명이 나온다.
대전시 대덕구 '회덕동'이 있다. 예전에는 '회덕읍'이었는데....
이 편지는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이후 일상에서 한글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 자료로 평가된다.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불과 50년 안팎이 지난 시점에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에도 한글이 널리 보급됐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1470∼1498년에 쓰였던 함경도의 옛 지명인 '영안도(永安道)'라는 말이 나온다.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군관 생활을 한 시기 역시 1490년대로 비슷하다.
* 1490년에 쓴 것으로 추정.
인터넷 뉴스에서....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이자 훈민정음 반포의 실상을 알려주는 「나신걸 한글편지(羅臣傑 한글便紙)」를 비롯해 「창녕 관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昌寧 觀龍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서울 靑龍寺 毘盧遮那佛 三身掛佛圖)」 등 조선 시대 불상과 불화를 포함한 총 3건에 대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하였다.
「나신걸 한글편지」는 조선 초기 군관(軍官) 나신걸(羅臣傑, 1461~1524)이 아내 신창맹씨(新昌孟氏)에게 한글로 써서 보낸 편지 2장이다.
2011년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에 있던 조선 시대 신창맹씨 묘안 피장자의 머리맡에서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되었다.
* 나신걸은 조상대대로 무관직(武官職)을 역임한 집안 출신으로, 편지를 썼을 당시 그는 함경도에서 하급 군관으로 근무하고 있었음. 그의 부인 신창맹씨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은 저고리, 바지 등 의복 28점, 한글편지를 포함해 13점의 유물 등 총 41점 이상에 달함
편지의 제작시기는 내용 중 1470~1498년 동안 쓰인 함경도의 옛 지명인 ‘영안도(永安道)’라는 말이 보이는 점,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군관 생활을 한 시기가 1490년대라는 점을 통해 이 때 작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편지는 아래, 위, 좌우에 걸쳐 빼곡히 채워 썼으며, 주된 내용은 어머니와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 철릭(조선 시대 무관이 입던 공식의복) 등 필요한 의복을 보내주고, 농사일을 잘 챙기며 소소한 가정사를 살펴봐 달라는 부탁이다.
이 편지가 1490년대에 쓰였음을 감안하면,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불과 45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지역과 하급관리에게까지 한글이 널리 보급되었던 실상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 시대에 한글이 여성 중심의 글이었다고 인식되었던 것과 달리, 하급 무관 나신걸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쓴 것을 보면, 조선 초기부터 남성들 역시 한글을 익숙하게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기존에는 조선 시대 관청에서 간행된 문헌만으로는 한글이 대중에 어느 정도까지 보급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면, ‘나신걸 한글편지’가 발견됨으로써 한글이 조선 백성들의 실생활 속에서 널리 쓰인 사실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아울러, 해당 유물은 현재까지 발견된 한글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이자 상대방에 대한 호칭, 높임말 사용 등 15세기 언어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앞으로 조선 초기 백성들의 삶과 가정 경영의 실태, 농경문화, 여성들의 생활, 문관 복식, 국어사 연구를 하는 데 있어 활발하게 활용될 가치가 충분하며, 무엇보다도 훈민정음 반포의 실상을 알려주는 언어학적 사료로서 학술적ㆍ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
편지내용 ;
..... 집에가서 어머니랑 애들이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 못 보고 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 분(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
충북대박물관이 소장한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簡札)'이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로 알려졌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 편지는 16세기에 쓰였다.
나신걸의 편지는 이보다 6여 년 시기가 앞선다.
문화재청은 "현재까지 발견된 한글 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이자 상대방에 대한 호칭, 높임말 사용 등 15세기 언어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나신걸 간찰 두 점(1490년)은 당시 훈민정음이 1443년에 창제되어 1446년에 반포되었기 때문에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반포 후 얼마되지 않아 일반 민간에서 사용된 친필 한글 편지글이라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높다고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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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簡札)'
1977년에 충청북도 청원군(현 청주시) 북일면에서 청주국제공항 건립 공사를 하기 위해 1580년대에 사망한 순천김씨의 묘를 이장하던 중 나온 총 203점의 유물들로 1979년에 중요민속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이전 여성들이 사용했던 의복 11점과 간찰 185통 192장, 그 외에 만장 3점, 은장도, 돗자리, 목관, 표주박 1점이 발견되었다. 간찰의 경우 친정어머니인 신천강씨가 딸인 순천김씨에게 보낸 편지가 120여 건, 친정아버지인 김훈이 딸에게 보낸 편지가 10여 건, 남편인 채무이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30여 건 등이다. 192장의 편지 중 189장이 한글 편지이다.
채무이(1537∼1594)는 명종 10년(1555) 생원을 시작으로 세자 익위사대직을 지낸 인물로 그는 임진왜란 중인 선조27년(1594)에 죽었고 그의 둘째 부인인 김씨는 임진왜란 전에 죽은 것으로 보여 이곳에서 출토된 의복과 서간류는 임진왜란 전의 유물로 분류되고 있다.
참고 :
'안정나씨' 용어로 검색하면 위 편지에 대한 번역물 자료가 많이 뜬다.
나중에 보탠다.
자정이 넘었으니까....
2022. 12. 29.
발굴장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금고동
발굴시기 : 2011년 5월 2일
소장처 : 대전역사박물관
기증자 : 안정나씨대종회
보낸이 : 안정나씨 신걸
받은이 : 부인 신창맹씨 (회덕 온양댁)
작성시기 : 서기 1480년에서 1490년으로 추정
현대번역 :
안부를 그지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장수(將帥)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가서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군관 자리에 자망(自望 : 자기를 추천)한 후면 내 마음대로 말지 못하는 것일세.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을 구태여 가면 병조(兵曹)에서 회덕골로 문서를 발송하여 조회하여(照會) 잡아다가 귀향 보내게 될까 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아니 가려 하다가 못하여 영안도(永安道, 咸鏡道) 경성(鏡城) 군관이 되어 가네.
내 고도(古刀. =낡은 칼)와 겹철릭을 보내소. 거기는 가면 가는 흰 베와 명주가 흔하고 무명이 아주 귀하니 관원이 다 무명옷을 입는다고 하네. 무명 겹철릭과 무명 단철릭(=홑철릭)을 입을까 하네. 반드시 많이 하여 설을 쇠지 말고 경성으로 단단히 하여 들여보내소. 옷을 못 미처 지을 것 같거든 가는 무명을 많이 보내소. 두 녘 끝에 토시를 둘러 보내소. 무명옷이 있으면 거기인들 옷이야 못하여 입을까? 민망하여 하네.
반드시 하여 보내소. 길이 한 달 길이라 하네. 양식을 브경이(인명)에게 넉넉히 하여 주소. 모자라지 아니하게 주소. 전지(田地, =논밭)의 온갖 세납이란 형님께 내어 주소 말씀하여 세납에 대해 대답하소. 공세(貢稅, =공물(貢物)는 박충의 댁에 가서 미리 말하여 두었다가 공세를 바꾸어 두소. 쌀 찧어다가 두소. 또 골에서 오는 제역(除役,=면역(免役)) 걷어 모아 채접하여 주거늘 완완히(緩緩) 가을에 덩시리(인명)에게 자세히 차려서 받아 제역을 치라 하소. 또 녹송이야 슬기로우니 녹송이에게 물어보아 저라고 대답하려 하거든 제역을 녹송이에게 맡아서 치라 하소. 녹송이가 저라고 대답하거든 골에 가서 곡식담당 관리에게 많이 달라 하여 하소연하여 청하라 하소.
또 전지(田地, =논밭) 다 소작(小作) 주고 농사짓지 마소. 또 내 다른 철릭 보내소. 안에나 입게. 또 봇논(洑) 모래 든 데에 가래질하여 소작 주고 절대로 종의 말 듣고 농사짓지 마소. 또 내 헌 간 생사로 짠 비단 철릭을 기새(인명)에게 주소. 기새 옷을 복경(인명)이 입혀 가네. 또 가래질할 때 기새 보고 도우라 하소. 논 가래질을 다하고 순원이(인명) 놓아 버리소. 부리지 마소. 구디(인명) 데려다 이르소. 영동에 가서 아뢰어 우리 논 있는 곁에서 경성 군관이 내월 열흘께 들어오니 거기 가서 알아 함께 내 옷 가져 들어오라 하소. 또 반드시 영동에 가서 물어 그 군관과 함께 들어오라 하소. 그 군관의 이름이 이현종이라 하는 바이니 또 내 삼베 철릭이랑 모시 철릭이라 성한 것으로 가리어 다 보내소. 또 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가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고, 울고 가네.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또 다랑이 순마니가 하는 논에 씨 열여섯 말, 이필손의 논에 씨 일곱 말, 손장명의 논에 씨 다섯 말, 소관이가 하는 논에 씨 다섯 말, 구디지에 하던 논에 씨 다섯 말, 이문지에 논에 씨 여덟 말, 종도리가 하는 논에 씨 여덟 말, 진 구레논에 씨 열 말, 또 두말 구레 밭에 피 씨 너 말, 뭇구레에 피 씨 너 말, 삼밭에 피 씨 한 말, 아래 밭에 피 씨 한 말 닷 되, □ 하는 밭에 피 씨 서 말, 어성개 밑밭에 피 씨 서 말, 허오동이 소작 하던 봇논에 씨 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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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교 여자동창생의 카페에 내가 올린 글
일부를 퍼서 여기에 올린다.
조선조 4데 세종이 1443년에 훈민정음을 만들고, 1446년에 세상에 널리 알렸다.
조선조 사대부(왕족, 양반계급 등)은 전체 인구의 10%. 나머지 90% 백성(노비와 천민 포함). 조선조 후기에는 사대부 인구가 많이 늘고, 대신에 노비 천민계급을 줄어들었다.
사대부들이 과연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을 활용해서 문자생활을 했을까?
그 자료가 있어?
없다. 양반계급들은 중국 한자문화에 길들여졌기에 한글(언문)을 천대시했다.
2022년 지금도 마찬가지다. 배웠다고 하는 것들은 중국 한자말을 유식한 체 엄청나게 쓴다.
나는 문학카페, 문학지 등을 읽을라치면 때로는 답답하다. 왜그리 어려운 중국 한자 단어를 썼는지....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기 쉬운 한글로 올바르게 많이 쓰자>라고 말하는 나.
이조시대 한글로 쓴 글이 과연 얼마나 남았을까 궁금해 한다.
국문학사에 아주 소중한 자료가 된다.
'가장 오래된 한글편지'에 박수를 보낸다.
2022. 12. 31. 토요일(음 섣달 초이레날).
* 참고 :
한글로 쓴 여성 편지가 또 있다.
<원이 엄마의 편지>이다.
서기 1586년에 쓴 한글 편지....남편을 잃고서...
국보문학 '세상사는 이야기 방', '자유게시방' 등에도 몇 개 더 있다.
* 예) '둔갑하는 놈이 최고(원이 엄마)' 세상사는 이야기방 제 3749번(2020. 12. 27)
'99칸 집의 노비... 의문이 풀리기 시작' '세... 방'제 2762호(2020.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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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한글 사랑하시는 분이라 역시 한글을 사랑하자고 주장하시는군요.
그리고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에 박수를 보내시는
그 마음에 존경심마저 듭니다.
저도 한글로 시를 쓰고
수필을 쓸려고 애 쓰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되도록이면 한자를 안 쓰고....
한글은 세계 최고의 글자이지요.
1등인데도 조선조의 유식한 한문쟁이들은 중국 한자로 행세했고.,
한글은 언문이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 부녀들이나 겨우 배워서 책 읽고 글 썼지요.
2020년대인 지금도 거의 그럴 겁니다.
왜그리 한자말을 많이 쓰는지..
정말로 유식해서 그럴까요?
제가 몇 개 질문을 하면 전혀 대답도 못할 것들이지요.
저는 대전의 돌집손자, 돌집아들...
제 주변에는 돌공장과 관련된 사람이 무척이나 많아서...
저는 국민학교 시절부터 한문을 숱하게 보고 자랐지요. 빗돌에 새기는 한자들...
한자로 된 빗돌이 줄줄이...
저는 종손인데도 빗돌을 구석에 줄 세워서 돌장식품으로 대접하지요.
내가 읽지도 해석하지도 못하는 한자들...
한글사랑이 나라사랑이지요.
한글이 세계로 더 많이, 번졌으면 합니다.
전세계로 수출되어야겠지요.
위 자료 계속 확인해야겠습니다.
저도 처음으로 이 편지를 알았거든요.
최선생님 나신걸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해박한 글에서
많이 배우고 갑니다.
편안한 시간이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김일제 소설가님
댓글 고맙습니다.
극동에 치우친 작은 나라.
그나마 반토막이 되어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고...
지하자원도 별로 없고...
이런 나라에 희망이 있다면.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신념으로 우리 전통문화...특히나 우리말과 우리글을 더 다듬어서
세계로 세계로 번져야겠지요.
한글.... 그거....국민 모두가 한글을 배우고 익힌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아쉽군요.
아직도 중국 한자말로 유식한 체하는 것들이 득실벅실한 세상이기에.
우리 한글을 더 다듬어서 세계 공용어로 채택되었으면 합니다.
국제회의석상에서도 한글로 말하고, 한글로 통역되는 그런 희망을 가져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