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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개탁(擧世皆濁)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뜻으로,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擧 : 들 거(手/14)
世 : 세상 세(一/4)
皆 : 다 개(白/4)
濁 : 흐릴 탁(氵/13)
출전 : 사기(史記) 굴원열전(屈原列傳)
굴원(屈原)은 굴(屈)은 성이고, 원(原)은 자이다. 본명은 평(平)이다. 전국시대 초나라 선왕(宣王) 시기에 태어났고 회왕시기 활동하다 경양왕(頃襄王) 시기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굴원은 혼란했던 전국 시기의 상황에 불우한 자기의 처지를 글로 표현하였는데 이런 그의 작품이 후대에 초사(楚辭)로 불리며 인정받게 되었다.
진나라의 소양왕(昭襄王)이 음모를 꾸며 초나라 회왕을 초청했다. 이때 초나라의 대부 굴원은 회왕이 가는 것을 말렸지만 회왕은 그 말을 듣지 않았고 소양왕은 회왕을 함양에 가두고 초나라에 땅을 바치라고 요구하였다. 초나라 대신들은 그 요구를 거절하면서 태자를 왕으로 세웠는데 그가 경양왕(頃襄王)이다.
회왕이 그 후 1년 뒤 초나라로 돌아오지 못하고 병들어 죽자 초나라 사람들은 격분하였고 이에 굴원은 경양왕에게 인재를 등용하고 군사력을 키워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재상의 지위에 있던 자란(子蘭)이 굴원을 반대하면서 심지어 경양왕 앞에서 굴원을 헐뜯기 일수였다.
경양왕은 자란의 말만 듣고는 굴원을 파직시키고 유배 보냈다. 유배를 간 굴원은 멱라강(汨羅江)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신세를 한탄하면서 시를 지었다. 그러고는 세상이 혼탁한데 홀로 깨끗한 자신을 빗대며 '거세개탁 아독청(擧世皆濁 我獨淸)'이라 읊었다.
어부가 건넨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탁하면 발을 씻으라'는 시를 뒤로 한 채 기원전 278년 5월5일, 돌을 가슴에 안고 멱라강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세상의 기운은 청탁이 혼재되어 있기 마련인데 혼탁함이 너무 심하면 맑은 기운의 소유자는 견디기 힘들어 술과 시를 찾기 마련인가 보다.
거세개탁(擧世皆濁)
온 세상이 모두 흐리다. 즉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다는 뜻이다. 또한 온 세상이 혼탁한 가운데서는 홀로 맑게 깨어있기가 쉽지 않고, 설령 깨어있다 해도 세상과 화합하기 힘들다는 것을 나타낸다. 남들이 모두 절개를 꺾는 상황 속에서도 홀로 절개를 굳세게 지키고 있음을 뜻하는 독야청청(獨也靑靑)과 유사하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의 출전은 사기(史記) 굴원열전(屈原列傳)에 실려 있는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이다. 굴원은 초(楚)나라 충신으로, 그를 시기하는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벼슬에서 쫓겨난다.
어느 날 굴원이 강을 거닐며 시를 읊고 있는데 그를 알아본 어부가 벼슬에서 쫓겨난 이유를 묻자, 굴원은 "온 세상이 모두 흐렸으나 나 혼자만은 맑았으며, 뭇사람이 모두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 이로써 쫓겨났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라고 말한 데서 유래한다.
거세개탁(擧世皆濁)
교수신문은 해마다 그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전국의 교수들에게 설문 조사하여 발표하는데 시의적절한 사자성어가 나올 때가 많아서인지, 연말연시 뉴스거리로 삼기 괜찮은 주제인 탓인지 주변 언론들도 곧잘 인용 보도하여 뉴스거리로 삼는다.
지난 2012년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는 전국 교수 62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8.1%(176명)가 온 세상이 모두 탁하다는 뜻의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택했다고 한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이란 초나라의 충신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 말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아 홀로 깨어있기 힘듦을 의미할 때 쓰이는 말이다.
굴원이 모함을 받고 쫓겨나 강가를 거닐 때 한 어부가 "어찌 이 꼴이 되었느냐?"고 묻자, "온 세상이 흐려 있는데 나만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다. 그래서 쫓겨났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 是以見放)"고 답했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다만 이뿐이었다면 굴원의 어부사(漁父辭)가 시대와 세월을 거슬러 남겨진 수많은 한시(漢詩) 중에서 명시(名詩)의 반열에 오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저 그런 필부필부(匹夫匹婦)의 시로 남았거나 잘해야 굴원이라는 굴곡많은 한 사대부가 남긴 비탄에 젖은 남긴 시 한 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시를 한 번 살펴보자.
어부사(漁父辭)
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
굴원이 추방되어 강과 호숫가를 이리저리 떠돌며 시를 읊고 방황하니 안색은 초췌하고 몰골이 마르고 시들었다.
漁父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 何故至於斯.
어부가 그를 보고 말했다. "그대는 초나라 삼려대부가 아니시오? 어찌 이곳에 이르러 방랑하시오?"
屈原曰; 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
굴원이 말했다. "세상이 모두 탁해졌는데 나 홀로 맑고 바르고자 했으며,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몽롱하거늘 나 홀로 술 깨어 있고자 했노라. 이런 연유로 추방되었노라."
漁父曰; 聖人 不凝滯於物 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 何不淈其泥 而揚其波. 衆人皆醉 何不飽其糟. 而歠其醨 何故深思高擧 自令放爲.
어부가 다시 말했다. "성인은 만사에 엉키거나 얽매이지 않고 능히 세속과 어울려 옮아갈 수 있다 했소. 세인이 모두 탁하다면 왜 그대는 썩은 진창의 물을 더욱 어지럽게 하고 탁한 물결을 일게 하지 않으시오? 또한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 세인이 혼몽하다면 왜 그대는 어울려 술지게미를 먹고 진한 술을 마시지 않으시오? 무슨 까닭에 깊이 생각하고 고결하게 하여 스스로가 추방되게 하였소?"
屈原曰; 吾聞之, 新沐者必彈冠, 新浴者必振衣. 安能以身之察察 受物之汶汶者乎. 寧赴湘流 葬於江魚之腹中. 安能以皓皓之白 而蒙世俗之塵埃乎.
굴원이 말했다. "내가 듣길 '새로이 머리를 감은 사람은 관을 털어 머리에 얹고, 새로이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고 걸친다'고 했소. 그러니 어찌 청결한 몸에 더럽고 구저분한 것을 받을 수 있겠소? 차라리 상강 흐르는 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배 속에 묻히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오. 어찌 깨끗하고 흰 내가 세속의 더러운 티끌과 먼지를 뒤집어쓸 수 있겠소?"
漁父莞爾而笑 鼓枻而去 乃歌曰; 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
어부가 웃으며 노를 저어 배를 몰아가며 노래를 지어 말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고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
遂去不復與言.
어부가 어딘가로 가 버려 다시 더불어 말을 나누지 못했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의 배경 : 춘추시대(春秋時代)와 전국시대(戰國時代)
춘추시대(春秋時代)는 주(周)나라가 도읍을 호경(鎬京)에서 낙양(洛陽)으로 천도한 BC 770년부터 이후 403년까지 약 360여 년간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공자가 편찬한 춘추(春秋)를 토대로 불리기 시작한 이름이고, BC 403년부터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BC 221년까지를 전국시대(戰國時代)라고 하는데, 유향(劉向)이 편찬한 전국책(戰國策)이 이 시대에 전국을 유세하고 다니던 사람들의 활동을 기술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봉건제에 기틀을 두고 있던 주(周)나라의 국가체제가 흔들리면서 주의 종주권을 그나마 명목상으로라도 인정하던 춘추시대를 거쳐 이후 주나라의 권위조차 부정하고 제후들이 천하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시대가 바로 전국시대였다.
여러 제후국들 중에서 진(秦)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 멸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일곱 국가, 서방의 진(秦), 북방의 燕(연), 동방의 제(齊) 그리고 중원의 한(韓), 조(趙), 위(魏), 남방의 초(楚)를 일러 전국칠웅(全國七雄)이라 하는데 굴원은 초(楚)나라 사람이었다. 그는 학식이 뛰어나 초나라 회왕(懷王)에게 좌도(左徒; 左相)의 중책을 맡아, 내정, 외교 분야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나 초나라 회왕이 누구인가? 중국 역사에서 미녀를 좋아하기로 소문난 왕이었고, 암담한 제후였으니 애초에 굴원 같은 충신들을 곁에 두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주군으로는 역량이 부족한 자였다. 게다가 굴원 역시 정적(政敵)들과 자주 충돌했다는 것으로 보아 자기주장에 대한 믿음이 강하여 융통성이 부족하고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주변에 정적을 많이 만드는 편이었으리라는 건 능히 짐작이 된다.
전국시대에는 훗날 천하를 통일하는 진나라가 가장 강성하였기 때문에 나머지 여섯 나라들은 진에 대항하여 살아남기 위한 국가전략을 수립해야만 했다. 당연히 여러 주장들이 나와 경합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나머지 여섯 나라들이 위에서 아래로 연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소진(蘇秦)의 합종론(合縱論)과 이들이 연합할 수 없도록 막아 진나라의 고립을 막으려고 했던 장의(張儀)의 연횡론(連衡論)이 가장 큰 힘을 얻었다.
굴원은 초나라가 제나라와 동맹하여 강국인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파(合縱派)에 속했으나 진나라의 장의(張儀)와 내통한 연횡파(連衡派)와 초 회왕의 애첩(愛妾)의 중상모략으로 인해 권좌에서 밀려나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진의 모사(謀士)인 장의는 제, 초 동맹을 와해시키기 위해 초나라에 잠입하여 신하들 사이에 자기편을 만들고, 장의와 간신들의 변설과 감언이설에 넘어간 초 회왕은 제나라와 단교한 뒤 영토를 약속한 진나라에 땅을 요구하였으나 한껏 비웃음만 당하고 만다.
격분한 초 회왕은 분을 참지 못하고 무리하게 출병하였으나 조나라에마저 배신당하고 두릉(杜陵)에서 대패하고 만다. 진나라는 화평의 조건으로 계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진해서 초나라의 인질이 된 장의를 석방하고, 초 회왕을 폐위하여 진나라에 보내도록 요구했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굴원은 급히 귀국하여 장의를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늦어버린 뒤였다.
초 회왕은 자식들에 의해 폐위되어 포로나 다름없는 신세로 진나라로 끌려갔고, 그곳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 왕이 진나라에서 객사(客死)하자, 장남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재상)의 자리에 올랐는데, 막내 자란은 자신의 아버지를 객사하게 만든 장본인 중 하나였으므로, 굴원은 이를 비난하다가 다시 죄를 받아 양쯔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는데 어부사(漁父辭)는 이때에 남겨진 작품이다.
사기(史記)에 실려있는 회사부(懷沙賦)는 굴원이 마침내 분을 참지 못하고 창사(長沙)에 있는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남긴 절명시(絶命詩)였다.
굴원의 또 다른 목소리, 어부
어부사(漁父辭)를 찬찬히 읽어보면 굴원(사대부, 지식인)이 추방되어 방황하는 동안, 그를 알아본 한 어부(민중)와의 대화를 시로 옮긴 것이다.
먼저 어부가 그를 알아보고 묻기를 "자네는 삼려대부에 속하는(국가운영에 책임이 있는) 사람인데 어째서 이렇게 초췌한 모습으로 강가나 방황하고 있소?"하고 묻자 굴원은 "세상이 모두 더러워졌는데 나만 깨끗하게 굴다 보니 이렇게 되었소"라고 답한다. 굴원의 대답 속에는 초나라(세상)가 망하게 된 것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자신의 책임보다는 그의 주장에 귀기울여주지 않은 세상(초나라)에 대한 한탄이 녹아있다.
그의 말을 들은 어부가 말하길 "자네는 세상이 더러워서 자네가 이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만약 자네가 깨끗하게 산다는 명분보다 주변에 더 많은 동료들을 포용하고, 이들과 함께 임금에게 좀더 현명하게 간언하였더라면 그런 세상에서라도 희망을 만들어 내고, 좀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이바지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라고 되묻는다.
어부의 힐난어린 목소리에 굴원이 재차 변명하기를 "세상이 이토록 더러운데 내가 어찌 그 속에서 나의 뜻을 굽히고, 그런 자들과 통하여 대사를 도모할 수 있겠는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죽어 버리겠네"라고 말한다.
그러자 어부가 웃으며 말하길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더럽다면 발을 씻으면 되지"라며 융통성 없는 굴원의 어리석음을 조롱한다. 굴원은 어부와 좀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이미 그는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보이지 않았다는 내용이다.
과연 굴원이 강가를 헤매다가 정말로 현명한 어부를 만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어부사(漁父辭) 속에 등장하는 현명한 어부 역시 사실은 굴원의 다른 페르소나가 들려주는 목소리였으리라 생각한다.
이미 그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며 충성을 다했던 초나라의 멸망은 정해졌고,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 전 회한으로 가득했던 굴원은 어부의 목소리를 빌어 자신의 과오(강직하였으나 융통성이 없었던)에 대해 고백하고 성찰한 것을 시로 남겼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의 세계화,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목소리, 거세개탁(擧世皆濁)
교수신문에는 2012년의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윤평중 한신대 교수(철학)는 "바른 목소리를 내야 할 지식인과 교수들마저 정치참여를 빌미로 이리저리 떼거리로 몰려다니고, 진영논리와 당파적 견강부회가 넘쳐나 세상이 더욱 어지럽고 혼탁하다"며 "현 정부의 공공성 붕괴, 공무원 사회의 부패도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해법과 출구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고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추천한 이유를 밝혔다.
김민기 숭실대 교수(언론홍보학)는 "MB정부의 부패, 공공성의 붕괴, 분노사회 등 우리사회의 문제를 직시했다.", 김석진 경북대 교수(경영학)는 "모든 것에 획일적으로 시장과 경쟁의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근시안적 접근으로 자신의 이익만 우선하고 집단이기주의가 판을 쳤다"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이것만이 거세개탁(擧世皆濁)의 의미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들의 근거도 나름 일리가 있겠으나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택된 절묘한 까닭의 이면에는 크게 두 가지의 함의(含意)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매사 남 탓하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의 더러움을 질타하지만 정작 그 세상에서 살아가고, 그 세상을 변화시켜야 했음에도 자신의 무지와 무능으로 인해 실패한 세력들에게 던지는 어부(민초)의 질타가 이 사자성어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역사상 중국인들에게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고, 중국 대륙이 곧 천하(天下)였다. 그런 의미에서 춘추전국시대는 그들이 20세기 말엽 개방개혁시대를 거치며 만나게 된 21세기의 세계화 이전에 경험한 고대의 세계화였던 셈이다.
춘추전국시대의 천하쟁패는 정치, 경제, 사회제도의 급격한 변모를 이끌며 중국 대륙을 뒤흔든 세계화였고, 그 당시 변화의 속도와 진폭은 오늘날 디지털 문명의 세계화를 능가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시대였다.
천하를 차지하기 위해 제후국들은 봉건적 신분질서를 뒤흔들었고, 무한경쟁을 통해 토지 소유의 제한이 폐지되어 백성들에게도 사유제가 허락되었으며, 부유한 계층은 더욱 넓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농경법도 기술적으로 진보하여 무기뿐만 아니라 농기구에서도 철기가 사용되었고, 소(牛)를 농사에 이용하게 되면서 수확량이 증대되었다. 농경을 위한 수리관계 공사를 위해 천문지리와 같은 학문도 발달하면서 생산력이 더욱 증대된 만큼 상공업도 발달하여 도시에는 상설시장이 생겨나면서 금속으로 주조된 화폐들이 도시를 중심으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은 이미 춘추시대 중기 이후부터 생겨나기 시작했다. 춘추전국시대에 이루어졌던 문물의 눈부신 발전은 훗날 진시황에 의한 천하통일과 진나라를 무너뜨리고 등장한 한나라가 이후 중원의 패자가 되어 세계최대의 제국으로 자리 잡게 되는 기초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에는 공후(公侯)를 주군(主君)으로 모시는 의리와 능력만이 중시될 뿐 신분과 출신, 계급은 문제가 되지 않았으니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자본의 국경 없는 이동 못지않은 대단한 변화였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나 글로벌리즘(globalism)이 중국에서는 이미 춘추전국시대부터 시작되었던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 그런 맥락에서 굴원의 어부사(漁父辭)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역시 남다를 것이다.
天下非一人之天下, 天下之天下.
(천하비일인지천하, 천하지천하)
천하는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며 천하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의 것이라
춘추전국시대라는 이른바 난세(亂世)를 거치며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의 고통 속에서 중국(인)의 문화적 심성구조에는 국가(임금)권력에 대한 충의(忠義)와 다른 맥락에서 백성에 대한 충의로서 의협(義俠)의 세계관이 출현한다.
그러나 의협의 세계가 최종적으로는 판타지나 무속(巫俗)의 세계로 후퇴하게 된 것은 현실정치에서 민중의 정의를 의미하는 의협이라는 대의명분이 얼마나 성공하기 어려운 정치인지 반증한다. 또 민중의 정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의협의 세계가 민중들에게 항상 존중받을 수는 없었다는 것 역시 주목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굴원의 또 다른 페르소나인 어부의 목소리를 통해 그것을 엿볼 수 있는데, 어부(민초)가 원하는 이상적 사대부(지식인이자 정치세력)란 대의에 입각해 홀로 깨끗하고 고결한 명분의 수호자가 아니라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선택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의 평화와 갈리아의 평화가 동일한 의미일 수 없듯 왕의 태평성대(太平聖代)가 백성의 태평성태와 같은 의미일 수 없는 것이다. 굴원이자 곧 어부인 작중화자의 회한은 민중의 정의를 표방하는 의협과 대의명분이라 할지라도 무능하여 이상을 실현시킬 수 없거나 백성을 설득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대의명분이란 결국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천하관이란 천하도리를 논하는 이념인 동시에 현실정치를 반영한 철저한 실용주의이기도 하다. 백성들은 유능하지 못한(실패한) 의협도 판타지나 무속의 세계에서 신(神)과 영웅으로 떠받들지만 현실정치에서는 그 고통이 극에 달하여 반역(변혁) 이외에 다른 선택이 불가능하거나 확실한 대안을 보여주기 전에는 선택하는 법이 없다.
무릇 천하를 논하고, 민중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天下非一人之天下 天下之天下라, 천하는 어느 한 사람의 것이 아니며 천하는 천하의 모든 사람들의 것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길 일이다. 육도(六韜)에 나오는 말이다.
■ 거세개탁(擧世皆濁)과 불쌍한 사람들
소설 '레 미제라블' 제목은 우리말로 '불쌍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 소설에 대해 시인 테오필 고티에는 "한 사람 작품이 아니라 시대상황과 자연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이 가져온 일그러진 인간 모습을 상세하게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랑송은 여러 층위에 대한 함의를 가진 '레 미제라블'에 대해 "하나의 세계이자 하나의 혼돈이라"고 평했다. 거센 현실의 파도 속에 개인의 삶은 사라졌지만 휴머니즘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이다. '레 미제라블'은 관용과 포용 사랑으로 상생을 말하고 있다.
교수들이 올 한해 한국 사회 모습을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거세개탁(擧世皆濁)'을 선정했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은 교수 40명에게서 28개를 추천받은 뒤 교수신문 필진과 명예교수 30명이 5개를 추려내 묻는 방식으로 정해졌으며 전국 교수 626명 중 176명(28.1%)이 '거세개탁'을 선택했다.
'거세개탁'은 굴원(초나라 충신)이 모함으로 벼슬에서 쫓겨나 파리한 안색으로 강과 호수를 떠돌며 강가에서 시를 읊고 있는데, 어부가 그를 알아보고 "그대는 삼려대부이면서 어찌 이곳에 왔소?"라고 묻자 굴원이 "온 세상이 흐린데 나만 홀로 맑고, 뭇 사람이 다 취해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어서 쫓겨났다(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고 답했다.
어부가 빙그레 웃으면서 노 저어 노래했다. "창랑의 물이 맑구나 내 갓끈을 씻겠네. 창랑의 물이 흐리구나 내 발을 씻겠네" 라고 한 어부사(漁父辭)에서 유래했다.
올해 사자성어로 선정 된 '거세개탁'은 혼탁한 한국 사회에서 위정자와 지식인의 자성을 요구한 것이라고 한다. 소설 '레 미제라블' 제목의 뜻은 '불쌍한 사람들'이다. 민중이 아닌 위정자와 지식인이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거세개탁'이 아닐 수 없다.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여 진행된 대선 결과 한국 사회에서 믿을 수 있는 균형자와 깨어 있는 지식인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말았으며 지식인들의 커진 정치 지향성에 의해 특정 대선후보 진영과 직·간접으로 관련되지 않은 이들을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이 아닐 수 없다.
시인 김지하는 오적을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다섯 종류의 도적이라고 풍자했다. 김지하는 이 시를 통해서 위에 거론한 다섯 종류의 도적이 저지르는 부정과 부패 탐욕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특히 다섯 도적을 표현하는 데 한자를 사용하여 한자 마다 개견(犬)자가 들어가는 풍자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거세개탁(擧世皆濁)은 '레 미제라블'에서 나타난 불쌍한 사람들이 민중이 아니라 오적을 포함해 지식인까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정부의 소통부재와 검찰 공무원의 부패 등이 연일 지면을 장식했던 2012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우울했던 한해와 대선 결과를 지켜본 지식인들의 우울한 마음이 담긴 '거세개탁'이 새해에는 맑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감동이 있는 즐거운 세상이 활짝 펴지는 그런 새해를 기대해 본다.
▶️ 擧(들 거)는 ❶회의문자로 举(거), 挙(거), 㪯(거)는 통자(通字), 舁(거)와 동자(同字), 举(거)는 약자(略字)이다. 擧(거)는 음(音)을 나타내고 더불어 같이하여 정을 주고 받는다는 與(여, 거)와 손(手)으로 물건을 들어 올린다는 뜻이 합(合)하여 들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擧자는 '들다'나 '일으키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擧자는 舁(마주들 여)자와 与(어조사 여)자, 手(손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舁자는 위아래로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마주 들다'라는 뜻이 있다. 그러니 擧자에는 총 5개의 손이 그려져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擧자를 보면 단순히 아이를 번쩍 든 모습만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부터는 다양한 글자가 조합되면서 지금의 擧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擧(거)는 ①들다 ②일으키다 ③행하다 ④낱낱이 들다 ⑤빼어 올리다 ⑥들추어 내다 ⑦흥기하다(세력이 왕성해지다) ⑧선거하다 ⑨추천하다 ⑩제시하다 ⑪제출하다 ⑫거동(擧動) ⑬행위(行爲) ⑭다, 모든 ⑮온통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움직일 동(動), 옮길 반(搬), 흔들 요(搖), 옮길 운(運), 할 위(爲), 옮길 이(移), 다닐 행(行)이다. 용례로는 온 나라 모두를 거국(擧國), 일에 나서서 움직이는 태도를 거동(擧動), 어떤 사람의 이름을 초들어 말함을 거명(擧名), 손을 위로 들어 올림을 거수(擧手), 스승과 학인(學人)이 만나는 일을 이르는 말을 거각(擧覺), 기를 쳐듦을 거기(擧旗), 많은 사람 가운데서 투표 등에 의하여 뽑아 냄을 선거(選擧), 통쾌한 거사나 행동을 쾌거(快擧), 많은 무리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나는 것을 대거(大擧), 인재를 어떤 자리에 추천하는 일을 천거(薦擧), 법령이나 질서를 위반한 사람들을 수사기관에서 잡아 들임을 검거(檢擧), 난폭한 행동을 폭거(暴擧), 경솔하게 행동함을 경거(輕擧), 바둑을 두는 데 포석할 자리를 결정하지 않고 둔다면 한 집도 이기기 어렵다는 뜻으로 사물을 명확한 방침이나 계획을 갖지 않고 대함을 의미하는 말을 거기부정(擧棋不定),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공손히 남편 앞에 가지고 간다는 뜻으로 남편을 깍듯이 공경함을 일컫는 말을 거안제미(擧案齊眉), 한 가지를 들어서 세 가지를 돌이켜 안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미루어 모든 일을 헤아림이나 매우 영리함을 이르는 말을 거일반삼(擧一反三), 모든 조치가 정당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거조실당(擧措失當), 머리를 들어 얼굴을 맞댐을 일컫는 말을 거두대면(擧頭對面), 이름 난 사람의 장례 때, 사회 인사들이 모여서 통곡하고 장송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거애회장(擧哀會葬), 돌이 무거워 드는 돌에 낯 붉는다는 뜻으로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거석이홍안(擧石而紅顔), 명령을 좇아 시행하는 것이 민첩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거행불민(擧行不敏),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뜻으로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거세개탁(擧世皆濁), 살받이 있는 곳에서 화살이 맞는 대로 기를 흔들어 알리는 한량을 일컫는 말을 거기한량(擧旗閑良), 다리 하나를 들어 어느 쪽에 두는 가에 따라 무게 중심이 이동되어 세력의 우열이 결정된다는 뜻으로 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어떤 사안에 대하여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때 하는 말을 거족경중(擧足輕重), 온 국민이 모두 한마음 한 뜻으로 뭉치어 하나로 됨을 이르는 말을 거국일치(擧國一致) 등에 쓰인다.
▶️ 世(인간 세/대 세)는 ❶회의문자로 卋(세)의 본자(本字)이다. 세 개의 十(십)을 이어 삼십 년을 가리켰으며 한 세대를 대략 30년으로 하므로 세대(世代)를 뜻한다. 삼십을 나타내는 모양에는 따로 글자가 있으므로 이 글자와 구별하기 위하여 모양을 조금 바꾼 것이다. ❷상형문자로 世자는 '일생'이나 '생애', '세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世자는 나뭇가지와 이파리를 함께 그린 것이다. 世자의 금문을 보면 나뭇가지에서 뻗어 나온 새순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世자의 본래 의미는 '나뭇잎'이었다. 나무는 일 년에 한 번씩 싹을 틔운다. 나뭇잎이 새로 돋는 것을 보고 봄이 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나뭇잎이지는 것을 보며 한해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世자는 후에 사람의 생애에 비유해 '생애'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世자가 가차(假借)되면서 소전에서는 여기에 艹(풀 초)자와 木(나무 목)자를 더한 葉(잎 엽)자가 '나뭇잎'이라는 뜻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世(세)는 (1)지질(地質) 시대(時代)의 구분(區分)의 한 단위(單位). 기(紀)를 잘게 나눈 것 (2)일부(一部) 국가(國家)에서) 왕조(王朝)의 임금 순위(順位)를 나타내는 말. 대(代). 이세(二世) 등의 뜻으로 ①인간(人間) ②일생(一生) ③생애(生涯) ④한평생 ⑤대(代), 세대(世代) ⑥세간(世間: 세상 일반) ⑦시대(時代) ⑧시기(時期) ⑨백 년(百年) ⑩맏 ⑪세상(世上) ⑫성(姓)의 하나 ⑬여러 대에 걸친 ⑭대대(代代)로 전해오는 ⑮대대(代代)로 사귐이 있는 ⑯대를 잇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대신할 대(代), 지경 역(域), 지경 경(境), 지경 계(界), 지경 강(疆)이다. 용례로는 세대(世代), 세상(世上), 세상에 흔히 있는 풍속을 세속(世俗), 그 집에 속하는 신분이나 업무 등을 대대로 물려받는 일을 세습(世習), 조상으로부터의 대대의 계통을 세계(世系), 주로 명사 앞에 쓰여서 세상에서 흔히 말함의 세칭(世稱), 온 세상이나 지구 상의 모든 나라를 세계(世界), 세상의 풍파를 세파(世波), 세상의 돌아가는 형편을 세태(世態), 숨어 살던 사람이 세상에 나옴을 출세(出世), 현실을 속되다고 보는 처지에서 현실 사회를 일컫는 말을 속세(俗世), 일신 상의 처지와 형편을 신세(身世), 뒷 세상이나 뒤의 자손을 후세(後世), 현재의 세상으로 이 세상을 현세(現世), 죽은 뒤에 가서 산다는 미래의 세상을 내세(來世), 가까운 지난날의 세상을 근세(近世), 잘 다스려진 세상으로 태평한 시대를 청세(淸世), 세상에 아첨함을 아세(阿世), 이 세상에서 살아감을 처세(處世),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일컫는 말을 세상만사(世上萬事), 자손 대대로 이어져 내림을 일컫는 말을 세세손손(世世孫孫), 뜨거웠다가 차가워지는 세태라는 뜻으로 권세가 있을 때에는 아첨하여 좇고 권세가 떨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속의 형편을 일컫는 말을 세태염량(世態炎凉), 세상의 도의와 사람의 마음을 일컫는 말을 세도인심(世道人心), 세상 물정과 백성의 인심을 일컫는 말을 세태인정(世態人情), 신세대가 구세대(와 교대하여 어떤 일을 맡아 봄을 이르는 말을 세대교체(世代交替), 세상일의 형편을 일컫는 말을 세간사정(世間事情), 세상이 그릇되어 풍속이 매우 어지러움을 일컫는 말을 세강속말(世降俗末), 대대로 내여 오며 살고 있는 고장을 일컫는 말을 세거지지(世居之地), 여러 대를 두고 전하여 내려옴을 일컫는 말을 세세상전(世世相傳), 대대로 나라의 녹봉을 받는 신하를 일컫는 말을 세록지신(世祿之臣), 세상일은 변천이 심하여 알기가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세사난측(世事難測) 등에 쓰인다.
▶️ 皆(다 개)는 ❶회의문자로 사람이 줄을 짓는다는 뜻의 比(비)와 말함을 뜻하는 白(백)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같이 말하다의 뜻이 전(轉)하여 죄다 또는 함께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皆자는 '다'나 '모두', '함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皆자는 白(흰 백)자와 比(견줄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皆자의 금문을 보면 白자가 아닌 曰(말씀 왈)자가 쓰여 있었다. 比자가 서로 나란히 서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고 曰자가 ‘말’을 뜻하니 皆자는 여러 사람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皆자는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목소리를 낸다는 의미에서 '모두'나 '다 함께'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皆자는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다른 글자와 결합해 '모두'라는 뜻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皆(개)는 ①다(=總), 모두 ②함께, 다 같이 ③두루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④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비교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 실(悉)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기간 동안에 휴일 외에는 하루도 빠짐 없이 출석 또는 출근함을 개근(皆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일함을 개로(皆勞), 일정한 부분의 산림을 일시에 모두 베어 냄을 개벌(皆伐), 다 또는 모두를 개시(皆是), 모든 사람이 말하되 라는 개왈(皆曰), 남에게 빌었던 것을 남김 없이 다 갚음을 개제(皆濟), 조세 따위를 남김없이 다 바침을 개납(皆納), 전혀 없음을 개무(皆無), 거의 모두나 대부분을 거개(擧皆), 거의 다를 기개(幾皆), 모두나 다를 실개(悉皆), 지구와 태양과의 사이에 달이 들어가서 태양의 전부 또는 일부가 달에 의하여 가려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을 개기일식(皆旣日蝕), 누구든지 삼생을 통하여 불도를 닦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개성불도(皆成佛道), 온 산의 풀과 나무까지도 모두 적병으로 보인다는 뜻으로 적의 힘을 두려워한 나머지 하찮은 것에도 겁냄을 이르는 말을 초목개병(草木皆兵), 사람은 있는 곳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니 그 환경을 서로 바꾸면 누구나 다 똑같아 진다는 말을 역지개연(易地皆然),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다 나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세상일은 무엇이나 내 몸가짐에 대한 깨우침이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선악개오사(善惡皆吾師), 이미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다른 나머지도 다 이와 같음을 일컫는 말을 여개방차(餘皆倣此),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뜻으로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거세개탁(擧世皆濁) 등에 쓰인다.
▶️ 濁(흐릴 탁)은 ❶형성문자로 浊(탁)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蜀(촉, 탁)으로 이루어졌다. 본래 강의 이름이었다. 또 음(音)이 '더럽다', '더럽히다'의 黷(독)과 통(通)하여 '물이 더럽다'는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濁자는 '흐리다', '혼탁하다', '더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濁자는 水(물 수)자와 蜀(나라이름 촉)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蜀자는 몸통과 눈이 강조된 애벌레를 그린 것이다. 濁자는 이렇게 벌레를 그린 蜀자를 응용해 벌레가 살 정도로 탁한 물이라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濁(탁)은 ①흐리다 ②혼탁(混濁)하다 ③더럽다 ④혼란(混亂)하다 ⑤어지럽다 ⑥바보스럽다 ⑦우둔(愚鈍)하다 ⑧우매(愚昧)하다 ⑨흐림, 더러움 ⑩불결(不潔), 추악(醜惡)한 행동 ⑪강(江)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섞을 혼(混), 흐릴 혼(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맑을 청(淸)이다. 용례로는 물이 맑지 아니한 강을 탁강(濁江), 물의 혼탁을 정량적으로 나타낸 것을 탁도(濁度), 사회나 정치 분위기 등이 흐리고 어지러움을 탁란(濁亂), 풍교가 어지럽고 더러운 세상을 탁세(濁世), 흐린 물을 탁수(濁水), 흐리고 더러움을 탁오(濁汚), 깨끗하지 못한 뜻을 탁의(濁意), 물이 맑지 아니한 우물을 탁정(濁井), 깨끗하지 못한 지조를 탁조(濁操), 흐린 물결을 탁랑(濁浪), 먹걸리를 탁주(濁酒), 혼탁한 물의 흐름을 탁류(濁流), 탁한 목소리를 탁성(濁聲), 속세의 더러움을 탁예(濁穢), 아무 분수도 모르는 사람을 농조로 이르는 말을 탁보(濁甫), 맑지 않고 흐림을 혼탁(混濁), 맑음과 흐림을 청탁(淸濁), 성질이 둔하고 혼탁함을 둔탁(鈍濁), 더럽고 흐림을 오탁(汚濁), 맑게 거른 막걸리를 명탁(明濁), 누는 오줌의 빛이 뿌옇고 걸쭉한 병을 백탁(白濁), 탁류를 몰아내고 청파를 끌어 들인다는 뜻으로 악을 제거하고 선을 떨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격탁양청(激濁揚淸), 물고기 한 마리가 큰 물을 흐리게 한다는 뜻으로 한 사람의 악행으로 인하여 여러 사람이 그 해를 받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일어탁수(一魚濁水), 안은 깨끗하나 바깥은 흐리다는 뜻으로 군자가 난세에 몸을 온전히 하려면 속인같이 꾸며야 한다는 말을 내청외탁(內淸外濁),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뜻으로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거세개탁(擧世皆濁), 맑은 것과 탁한 것을 함께 삼킨다는 뜻으로 선악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을 일컫는 말을 청탁병탄(淸濁倂呑)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