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의 고리
신철규
계절을 먼저 사는 사람이 있고 뒤늦게 붙잡는 사람이 있다
마주 앉던 사람이 옆에 앉기 시작하면
앞이 텅 비어버린 느낌
옆이 가득 차서 앞이 보이지 않는다
가로수 밑동 근처에 수북이 쌓여 있는
잎 더미 위로 너는 누웠지
검은 책가방을 메고 목도리를 한 채
그리고 파하 웃었지
푹신한 감촉에
다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내가 두 손을 잡고 일으키려는데
네가 힘을 줘서 나까지 잎 더미 속을 뒹굴었지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잎이 떨어진 가지들 사이에 비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밤하늘에 금이 이렇게 많네
우리는 서로의 옷에 붙은 낙엽 부스러기를 털어 주었지
서로를 때리며 또 웃었지
엉덩이도 팡팡 때렸지
털실로 짠 목도리에 붙은 낙엽 부스러기들은 유난히 떨어지지 않았지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집어 떼어 줄 때
내게 입맞춤을 했지
양팔을 고리처럼 내 목에 두르고
네 얼굴이 행성이라면 내 팔은 행성의 고리야
입술을 서로 붙이고 떼었다가 다시 붙인다
스카치테이프로 옷에 붙은 먼지를 떼어내듯
너의 등 뒤로 밤하늘에
별똥별 하나가 도화선처럼 피어나서
한 뼘 정도 바지직 타들어가다가
사라졌다
서로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끼우고 있으면
콘센트에 끼워진 전구 같은 기분이 든다
전류가 흐르고 여린 빛과 열이 온몸에 퍼진다
—사이버문학광장《문장웹진》 2024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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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철규 / 1980년 경남 거창 출생.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시 등단.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심장보다 높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