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
어린 나이에 민며느리로 시집와 예쁜
옷 한 벌, 배불리 밥 한번 못 먹은 해순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밭일만
허리 한번 못 피고 죽도록 하고
해가 져 집으로 돌아오면 늙은 시부모,
팔푼이 남편 봉양하랴 서러운 삶의 한숨,
눈물만 그렁
너무 애처롭고 불쌍하다
가난이 원수이지 원래 예쁜 얼굴이어
동네 부자집 노인네들이
후처 삼을려고 껄떡대었지만
모두 인색하기란 스쿠루지 닮은 꼴
마음에 안 들던 참
50여리 떨어진 두륜산 산아래 사는
늙은 어머니와 팔불출 아들,
해순이의 고운 모습이 탐이 나
쌀 석섬에 땅 2마지기의 댓가로
7살 어린 해순이를 며느리로 아내로
맞이한다
넉넉지 못한 산골 생활에 땅 2마지기를
잃어버렸으니 생활은 자연히 곤궁
남편과 시어머님만 보리쌀 반 옥수수 반,
해순이는 남은 누룽지만 긁어 먹고
눈물겹게 살았다
그래도 복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민며느리 생활 10년째
시름시름 앓던 시어머님 돌아가시고
민며느리 13년째
팔불출 남편 나무하러 산에 갔다
호랑이에 물려 종적없이
저승으로 가버렸다
홀로된 해순이는 그제서야 쉼통이
트였는지 밥도 배불리, 옷도 마음껏,
어려운 친정도 도우며 모처럼 행복하다
무더위가 몰아치는 여름날
해순이 방문을 열어 놓고 모시저고리
모시치마 속에 얇은 고쟁이
하나만 걸치고 앉아 부지런히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쫓고 있다
마당에는 모기퇴치 하느라 피워 놓은
잡풀타는 냄새가 진동하고
밤하늘은 별이 초롱초롱 밝게 빛난다
그런데 아무리 홑껍떼기 옷을 입고
열심 부채질을 해도
폭염으로 인한 열대야라
더위는 가실 줄 모르고 이마부터
얼굴을 거쳐 배꼽을 지나 사타구니를
통과, 은밀한 곳까지 땀이 장대비처럼
‘줄줄 좔좔’ 엄청 흘러내린다
인내도 한계가 있는 법
20살의 해순이는 급기야 몽유병환자처럼
벌떡 일어나 ‘주섬주섬’
떼뺐기는 타월, 수건, 갈아입을 옷과
전등을 챙겨 계곡으로 스며든다
홀로 계곡에 든 해순이는 인적없는
것을 수차례 확인하고
가져온 타월만 손에 들고 나머지
물건들은 바위위에 소중히
모셔 놓고, 옷을 모두 벗은 채
‘풍덩’ 다이빙한다
조용한 계곡의 풍경, 지저귀는
산새들, 이름모를 꽃들의 향기,
반짝이는 밤별들
너무 죽여주는 밤이다
여기저기 씻으며 드러나는 하얀
육체는 별빛을 받아 더욱 빛나고
20살의 꽃봉오리는 임자를 찾아
꿈길을 걷는다
자기가 보아도 너무 싱그러운 몸,
아름다운 얼굴
떼묻지 않은 싱싱 청순함
해순이는 나르시즘에 빠져 흐느끼다
콧노래를 부르며 흥겹다
‘쏴아악’ 물결치며 계곡물을 가르는
인어같은 해순이와 자연의 교감
은은한 별빛을 받아 빛나는
선녀같은 해순이의 모습에
부끄러운 달님도 연신 ‘부끄부끄’
하면서 구름사이로 숨어버리고
청초한 해순이는 잠겼다 떠올랐다
물고기 반 물 반이 된다
그런데 해순이의 아름다움을
시기라도 하듯이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며 돌개바람에
소나기가 엄청 쏟아진다
그리고 지나가는 심메마니의 소리
‘풀썩’거리는 짐승들의 소리가
마음을 어지럽게 무섭게 한다
아마 소나기가 내리니 비 피할
곳을 찾는 모양새다
해순이는 물속으로 잠수해서 피하고
한참 후에야 물에서 나와 옷을 찾아
보지만 바위위에는 아무것도 없고
달빛만 요란하다
거짓말같이 비가 온 것이다
방금 전 불어 온 돌개바람이 옷가지며
수건이며 전등을 멀리까지
실고 가버린 것이다
해순이는 할수없이 다시 물로 내려와
떼수건으로 열심 묵은 떼를 벗기며
주변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두리번 거리고 할 일만 묵묵히 한다
구석구석 떼 뺐끼는 일이 끝난 해순이
이젠 아무도 없다고 판단이 서자
근처 떡갈나무잎을 나뭇가지로 꿰어
만든 옷으로 은밀한 곳을 가리고
가슴은 두 손으로 감싸며
맨발로 집을 향해 간다
집으로 가는 길은 어둡고 험해
넘어지고 미끄러져 엉덩이며
무릎이며 시퍼런 멍이 가득하다
더구나 집근처에 오자 마을 주민들이
야간 천렵을 하느라
동네 개천을 환하게 횃불을 밝히며
왁자지껄하다
‘큰 일이다’ 집으로 갈려면 저 길을
통과해야 하는데 홀딱 벗은 몸으론
엄두도 안 나고 불가능한 것이다
할수없이 근처 풀숲에 숨어 소리가
잦아들기까지 기다려 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사위가 조용하고 ‘옳지 됐구나’ 생각한
해순이는 ‘살금살금’ 도둑고양이마냥
나서고, 그 길을 거의 벗어날 쯤
잡은 고기를 매운탕으로 끓여서 술과
함께 먹던 마을 노총각 깨소금 봉달이,
소변보다 해순이의 모습
아니 누드를 보고 침을 ‘갤갤’ 흘린다
그것도 모르고 ‘조용조용’ 가던 해순이
갑자기 잡아채는 봉달이의 손에
놀라 두 손을 놓아버리자 하얀 가슴이
달빛에 봉긋 쏫아 오른다
이젠 큰일이다 싶어 창피를 무릎쓰고
늘씬한 다리를 뻗어 봉달이 거시기를
냅다 차버리고 도망을 간다
봉달이는 무척 아프지만 왠 횡재인가
오늘만 잘되면 해순이는 자기 껏
장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아픔도 참고
뒤따라 달린다
앞서가는 해순이, 뒤를 쫒는 봉달이
달리느라 겨우 가린 떡갈나무잎들이
떨어져 완전 누드인 해순이
멀리 도망갈까봐 미처 바지를 올리지
못하고 쫒아가는 봉달이
서로가 죽자사자 이판사판이다
마침 구름을 벗어난 달님이 비추자
어이없지만 너무 이상스럽고 멋진
장관이다
주변의 누가 들으면 자신의 벗은 몸이
알려질까봐 ‘사람 살려’ 란 말도
못 지르고 달아나는 해순이
누가 들으면 먼저 해순이를 채어갈까봐
조용히 달리는 봉달이
여름날의 진풍경
열대야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풍경이다
‘하하하하하’ 너무 재미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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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누구나 더듬어 보는 추억의 인생길인것 같네요칠세 부동석이 통할때죠
예전에 우리마을에 누에를 마니도 키웠죠
그때만도
그리운 추억과 함께한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좋은오후 시간 이어시고 행복하십시요` 모네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