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의 관계개선은 김춘추를 감금한 이후 부터 이미 물건너 간 상황이었고 백제가 고구려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수긍하기 힘들군요. 고당전쟁때 백제가 고구려에게 도움을 줄 최선의 방책은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후방을 노리는 신라를 견제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자왕은 신라가 당이 고구려를 치는 틈을 타서 고구려로 출병하자 기다렸다는듯이 신라를 공격하였고 결국 고구려로 간 신라는 동맹군 역할을 제대로 수행 못하고 결국 고구려가 당을 격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러한 해석은 국제정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당시 신라의 외교상황은 고구려, 백제와의 오랜 적대관계로 인해 동맹을 말할 처지가 못되었으며, 신라가 애초에 먼 당나라를 끌어들인 이유가 가까이에 있는 고구려를 더욱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고구려가 손을 내밀려고 해도 신라로서는 아직 뚜렷한 적대세력이 되지않은 당나라와 동맹관계를 파기한다고 해도 이렇다할 비전을 가지기가 힘듭니다. 단순히 연개소문의 외교적 실책으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이런 부분에서는 국제정치에 대한 이해를 먼저 선결하시는 게 중요하고 생각됩니다.
고당전쟁 때에 전선이 황해쪽이었으면 혹시 또 모를까 고당전쟁때에 전선이 남부였으면 모르겠으나 주전선은 요동이었습니다. 과연 백제가 시간과 자국의 군사를 소비하면서까지 그 먼 전선으로 주력 부대를 무리없이 파병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만일 파병했다해도 고구려로 진군한 신라군 혹은 자국이 대군을 요동으로 출병한 틈을 타서 자국으로 올 수도 있는 신라군을 어떻게 견제했을까요? 백제가 요동으로 출병을 했다면 아주 멍청한 짓이거니와 오히려 작전을 더 그르칠 뿐입니다. 만일 백제 부흥이 성공하고 그 이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 군세는 엄청났을 것이라고 봅니다. 백제 부흥군은 신, 당 연합군을 상대로 대등하
또한 고구려가 한반도 내륙에 위치한 신라와 연합할 경우 백제는 자연스레 당나라와 밀착을 하게 됩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 고구려는 서해상에서 만만치않은 수군력을 구축한 백제와 당의 연합수군을 막아야하는 위협상황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신라를 적대 세력으로 돌리는 것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전략적인 부담을 안게된다는 말이죠.
거나 우위의 전력을 보여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백제가 복국됬을 경우 의자왕 때 보다 더 훨씬 신라에 대해 공세적으로 나가고 당과의 관계도 확실하게 정리했을 것입니다. 어쨋건 간에 동북아 정세는 훨씬 더 복잡다난해졌겠지요. 그리고 연개소문의 대북방(초원), 대남방 외교에서는 실책이 없었다고 봅니다. 설연타와 철륵이 돌궐 만큼 포스도 없어서 금방 멸망하고 이에 따라 거란이 당으로 가게되고 백제 또한 기습으로 어이없게 멸망하는 등 당시 주변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 연개소문 장군은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외교를 하였습니다.
언제나 국제논리나 외교논리는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행동하게 돼있습니다. 백제가 비록 고구려와 당 사이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을 지언정 제가 말했들이 "전략상"으로는 실질적으로 고구려에게 더 큰 도움을 줬습니다. 이거면 동맹으로 충분한 거 아닙니까? 무전신현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제국군 시절 때도 마찬가지지만 국제정치학이나 역사학, 군사학의 기본도 따지지 않으시면서 항상 자기 생각을 먼저 내세우시고 거기에 만족되지 않으면 흑백 양단논리로 성급하게 나눈다는 점입니다. 국제상황이나 외교논리는 꼭 님 생각처럼 돌아가야 진실인게 아닙니다.
백제는 당과의 외교에서 큰 이익을 보는 국가입니다. 당이 협박을 해긴 했었지만 실제로 공격할 가능성은 당시로써는 극히 낮았습니다.그렇다해도 당의 협박은 백제와의 국교 단절 즉 무역을 일체 안 하겠다는 의미로 다소 긴장을 줄 수 있었기에 당과의 외교를 완전히 깨끗하게 단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금휴개는 당군 전체에게 돌린 것이 아니라 최소 이세민에게만 최대 수뇌부에게만 돌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구려가 백제와 연합한 것은 전략적인 계산이 다분합니다. 고구려가 신라랑 연합을 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얻을 것은 없습니다. 신라가 설연타처럼 당나라와 땅을 마주해서 후방을 교란시키는 것도 아니고, 백제는 또 신라의 주적이지 고구려의 주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백제와 연합할 경우 고구려는 서해상에서의 위협세력 중 백제를 배제할 수 있어 전략상 부담이 줄어들 뿐 아니라 이미 당나라와 밀착을 시작한 신라를 남방에서 견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백제와 밀접한 왜까지 동맹세력으로 얻을 수 있어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격이됩니다. 당시 국제정치적 위상상 신라보다 백제가 훨씬 더 전략적 파트너로서 가치가 큰 게 사실입니다.
당연히 기존 동맹세력을 도와야죠. 게다가 백제는 완전히 정복당한게 아니라 수도만 함락당하고 주력군은 지방에 그대로 있어서 완전한 멸망으로 보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방 군사력이 건재함으로 회복의 가망이 보였기에 연개소문이 백제부흥군을 지원한 겁니다. 오히려 자신의 동맹 세력이 패망했다고, 방금 전까지 칼들고 싸운 상대랑 갑자기 손을 잡아야 한다는 님 생각 자체가 정치학상으로 비정상적인 겁니다.
삼국시대는 내전이나 동란의 시대가 아니라 삼국으로 칭해지는 독립적 정치체를 지닌 세나라 간의 전쟁시대입니다. 지금 무전신현님은 마치 고구려와 신라가 한민족 계통이니까 쉽게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삼국시대를 민족개념을 지닌 내전이 아니라 종족적 개념도 희박한 독립적 국가들의 전쟁 시기로 보아야 정상이며, 이렇게 볼 경우 신라는 적대국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렇게 볼 경우 고구려는 오히려 강대해지는 나당 연합군에 맞서 동맹국인 백제를 재빨리 구원해야하는 겁니다. 아까전부터 계속 이익을 따지시면서 백제를 버리고 신라를 택하는 게 이익이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기존 동맹국으로 버리고 자신에게 이빨을 들어낸 적대국한테 갑자기 동맹을 하라는 식으로 말하는지 전 그게 더 신기합니다. 동맹은 어느 한쪽이 하고 싶어서 갑자기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결과론적으로만 역사를 평가하는 게 아닐지 모르겠군요. 백제가 멸망하고 설연타가 멸망한 모든 책임을 연개소문에게 돌리는 행태를 볼수록 그런 생각이 다분해집니다. 고구려 당시를 중심으로 생각할 경우 연개소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을 뿐이며, 당시 국제적 상황이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마치 고구려를 살리려고 발버둥치는 그를 버리듯 말입니다.
백제 멸망과 설연타(파장으로 거란 이탈), 철륵 멸망 까지 연개소문의 책임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평양성 포위는 물론 전략적으로 큰 실수이지만 그런 실수는 고구려 수군지휘부의 수장인 왕제 고건무도 했었습니다. 왜 이 모든 것을 연개소문에게만 돌리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연개소문은 신이 아닙니다.
완벽한 지도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최고 전략가라면 서러워할 광개토태왕 마저도 신라에 원군을 파병했을 때 후연에게 틈을 보여 성 두개를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후연을 재기불능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긴 합니다. 참고로 허를 찌르는 평양 상륙전은 고건무 때와 연개소문 때의 수, 당의 진격루트는 거의 같습니다. 다만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연개소문과 고건무의 전략 차이와 수, 당의 규모 정도 입니다.
무전신현님의 기본 전제 중 가장 잘못된 것은 모든 잘못 연개소문한테 돌린다는 점입니다. 모든 죄악을 연개소문 한사람한테 지우기 전에 전체적인 당시 6~7세기 국제정치 상황을 포괄적으로 살펴보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되는 군요. 그러면 최소한 일개 장수에 불과한 고건무(고-수 전쟁 당시), 김유신하고 국가 최고지도자인 연개소문을 비교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아실 겁니다. 제국군시절부터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정치학이랑 군사학을 기본만이라도 좀 배우고 오십시오.
제가 말씀드린 것은 백제 멸망 이후의 상황이었는데 다들 말씀이 백제 멸망 이전의 상황에 대해 토론을 하시네요. 고구려로서는 느슨한 동맹국이었던 백제가 망했고 신라로서는 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야욕을 드러낸 상황에서 연개소문의 김춘추 감금 이후 앙금이 생긴 고구려-신라간이었지만 서로의 이득을 위해 손을 잡고 당을 견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는지 안타까워서 꺼낸 얘깁니다. 신라가 고구려 유민과 손잡고 당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660년대 초에 두 나라가 손잡고 당을 견제했다면 민족사가 달려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말입니다. (아쉬워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기는 해도 말입니다.^^)
武田信玄님 글에 댓글을 달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그런데 백제가 고구려의 느슨한 동맹국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에 대해 위에서 말했으니 더는 거론치 않겠습니다. 고구려와 신라의 화친은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서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우선 신라는 자국의 역량으로는 한참 모자르기 때문에 멸망한 백제부흥군을 진압하고 그 땅을 다스리려면 좋던 싫던 간에 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당과의 동맹파기는 당시로써는 실현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만일 신라가 당과의 동맹파기를 했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이 나오지만 신라에 이득이 될만한 상황은 제 공부가 부족한 탓인지 영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신라가 당과의 동맹 파기를 했다면 백제부흥군을 제압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당은 이 때 백제부흥군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고구려와 당, 왜 모두 백제를 지원하는 이상한 관계가 되어 신라는 더 더욱 고립을 자초하는 꼴이 됩니다. 그러자면 신라는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 상대는 과거 적국이었던 고구려와 왜에게서 찾아야 하는데 고구려가 이런 신라의 어떤 점을 보고 화친을 해줄지 의문입니다. 고구려로서는 신라와의 화친 보다 백제와 당의 관계를 어떻게든 이간질 시키는 것에 중점을 뒀을 것입니다. 백제가 당과 연합한 상태에서 복국되었을 경우 고구려 안보에 미치는 악영향은 상당히 큽니다.
무전신현님, 제가 가만히 살펴봤는데 무전신현님은 지금 역사 전체를 알고있는 자신과 긴박한 정치, 군사적 흐름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7세기 당시를 살던 연개소문을 동급으로 비교하시는 우를 범하시는 것 같군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 시대에 예측하기 힘들어 보여도 전혀 예측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시는 겁니까? 긴박한 시대를 살던 당시 사람에게 여유롭게 그 모든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과 똑같은 안목을 요구하는 것은 일종에 오만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도대체 무슨 근거와 사료로 연개소문을 그렇게 쉽게 평가하시는 겁니까? 연개소문의 전체 일대기가 담긴 기록이라도 보신 겁니까? 어떻게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결론을 내실 수 있습니까? 정치적 위상이 다른 김유신이랑 연개소문을 비교하는 이유는 또 뭡니까? 님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모든 사실을 확정하고 제멋대로 제단하는 겁니까?
반드시 경험이 있어야 전략이 뛰어나다는 논리는 광개토태왕을 통해서 그리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개토태왕은 18세에 즉위하자마자 뛰어난 전략을 선보여 여러 전장에서 항상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고국양태왕 말년 전쟁 기록은 광개토태왕이 했다고 합니다. 연개소문은 이십대 중후반에 권력을 잡은 것으로 추정되며 대당대전 전에도 신라를 직접 공격할 만큼 나름 야전 경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개소문에 대한 기록이 김유신 열전 처럼 열전히 소상했으면 연개소문 집권전 활약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원래 발제한 주제와는 달리 연개소문에 대한 성토나 옹호로 초점이 바뀐 것 같습니다. 암튼 백제 입장에서는 줄을 잘못 서서 망한 건가요?(결과적으로 고-당 전쟁 최후의 승자가 당나라가 되었으니...) 고구려 또한 운이 정말 없군요. 토번이 665~668년 사이에 한 10년만 앞당겨서 발흥을 하든지 연개소문이 670년대 중반까지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반대로 신라는 운이 좋은 케이스군요. 나당 전쟁 당시에는 토번의 발흥으로 당나라가 전력을 기울일 수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신라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일까요? 아니면 신라의 저력이라고 해야 될까요?
저랑 닉도 비슷한 ^^; 글쓴님 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아니나; 제가 생각해 보기엔 역시 -_- 이미 신라는 관산성 전투 이후 백제에게도, 그 이후 고구려와의 지속적인 영토 분쟁으로 인해 고구려에게도 동맹의 신용을 완전 잃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고/백 동맹이야 주적 나/당이라는 뚜렷한 공동의 적이 있었고 고구려 입장에선 국력도 한수위고 해양입지의 지세를 봐서도 괜찮은 백제를 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겠죠.. 더군다나 백제 멸망 시기의 정세는 (비록 굳건하진 않아도) 이미 나/당의 합세라는 불리한 조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의 입장에서도 입장 요리조리 바꿔 당 버리고 고구려를 택하느니
그대로 당과의 연합으로 밀고 나가는 게 손해없는 장사일 게 뻔했으니 (백제도 멸망한 이런 대세상 고구려와 당 간의 격차를 실감했겠죠..) 동맹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죠.. 무엇보다 고구려 입장으로선 적대시하는 당을 돕는 신라니 동맹을 제의할 마음도 없고, 제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도 않았겠죠; 저였더라도 그랬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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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의 관계개선은 김춘추를 감금한 이후 부터 이미 물건너 간 상황이었고 백제가 고구려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수긍하기 힘들군요. 고당전쟁때 백제가 고구려에게 도움을 줄 최선의 방책은 고구려와 연합하여 당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후방을 노리는 신라를 견제하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래서 의자왕은 신라가 당이 고구려를 치는 틈을 타서 고구려로 출병하자 기다렸다는듯이 신라를 공격하였고 결국 고구려로 간 신라는 동맹군 역할을 제대로 수행 못하고 결국 고구려가 당을 격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러한 해석은 국제정치를 잘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당시 신라의 외교상황은 고구려, 백제와의 오랜 적대관계로 인해 동맹을 말할 처지가 못되었으며, 신라가 애초에 먼 당나라를 끌어들인 이유가 가까이에 있는 고구려를 더욱 위협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고구려가 손을 내밀려고 해도 신라로서는 아직 뚜렷한 적대세력이 되지않은 당나라와 동맹관계를 파기한다고 해도 이렇다할 비전을 가지기가 힘듭니다. 단순히 연개소문의 외교적 실책으로만 몰아세우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이런 부분에서는 국제정치에 대한 이해를 먼저 선결하시는 게 중요하고 생각됩니다.
고당전쟁 때에 전선이 황해쪽이었으면 혹시 또 모를까 고당전쟁때에 전선이 남부였으면 모르겠으나 주전선은 요동이었습니다. 과연 백제가 시간과 자국의 군사를 소비하면서까지 그 먼 전선으로 주력 부대를 무리없이 파병할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거니와 만일 파병했다해도 고구려로 진군한 신라군 혹은 자국이 대군을 요동으로 출병한 틈을 타서 자국으로 올 수도 있는 신라군을 어떻게 견제했을까요? 백제가 요동으로 출병을 했다면 아주 멍청한 짓이거니와 오히려 작전을 더 그르칠 뿐입니다. 만일 백제 부흥이 성공하고 그 이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본다면 그 군세는 엄청났을 것이라고 봅니다. 백제 부흥군은 신, 당 연합군을 상대로 대등하
또한 고구려가 한반도 내륙에 위치한 신라와 연합할 경우 백제는 자연스레 당나라와 밀착을 하게 됩니다. 만약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 고구려는 서해상에서 만만치않은 수군력을 구축한 백제와 당의 연합수군을 막아야하는 위협상황이 벌어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신라를 적대 세력으로 돌리는 것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전략적인 부담을 안게된다는 말이죠.
거나 우위의 전력을 보여왔던 것을 감안한다면 백제가 복국됬을 경우 의자왕 때 보다 더 훨씬 신라에 대해 공세적으로 나가고 당과의 관계도 확실하게 정리했을 것입니다. 어쨋건 간에 동북아 정세는 훨씬 더 복잡다난해졌겠지요. 그리고 연개소문의 대북방(초원), 대남방 외교에서는 실책이 없었다고 봅니다. 설연타와 철륵이 돌궐 만큼 포스도 없어서 금방 멸망하고 이에 따라 거란이 당으로 가게되고 백제 또한 기습으로 어이없게 멸망하는 등 당시 주변 여건이 따라주지 않았을 뿐 연개소문 장군은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외교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이 님 친구도 아닌데, "SBS연개소문"에서 이세민과 이적이 옛친구 개소문 말하듯 개소문, 개소문이 뭡니까. 표현 좀 고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확실히 개소문이라는 표현은 좋아보이지는 않는군요.
언제나 국제논리나 외교논리는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행동하게 돼있습니다. 백제가 비록 고구려와 당 사이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을 지언정 제가 말했들이 "전략상"으로는 실질적으로 고구려에게 더 큰 도움을 줬습니다. 이거면 동맹으로 충분한 거 아닙니까? 무전신현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제국군 시절 때도 마찬가지지만 국제정치학이나 역사학, 군사학의 기본도 따지지 않으시면서 항상 자기 생각을 먼저 내세우시고 거기에 만족되지 않으면 흑백 양단논리로 성급하게 나눈다는 점입니다. 국제상황이나 외교논리는 꼭 님 생각처럼 돌아가야 진실인게 아닙니다.
백제는 당과의 외교에서 큰 이익을 보는 국가입니다. 당이 협박을 해긴 했었지만 실제로 공격할 가능성은 당시로써는 극히 낮았습니다.그렇다해도 당의 협박은 백제와의 국교 단절 즉 무역을 일체 안 하겠다는 의미로 다소 긴장을 줄 수 있었기에 당과의 외교를 완전히 깨끗하게 단절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금휴개는 당군 전체에게 돌린 것이 아니라 최소 이세민에게만 최대 수뇌부에게만 돌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구려가 백제와 연합한 것은 전략적인 계산이 다분합니다. 고구려가 신라랑 연합을 한다고 해도 실질적으로 얻을 것은 없습니다. 신라가 설연타처럼 당나라와 땅을 마주해서 후방을 교란시키는 것도 아니고, 백제는 또 신라의 주적이지 고구려의 주적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백제와 연합할 경우 고구려는 서해상에서의 위협세력 중 백제를 배제할 수 있어 전략상 부담이 줄어들 뿐 아니라 이미 당나라와 밀착을 시작한 신라를 남방에서 견제하는 것은 물론이고, 백제와 밀접한 왜까지 동맹세력으로 얻을 수 있어 세 마리 토끼를 잡는 격이됩니다. 당시 국제정치적 위상상 신라보다 백제가 훨씬 더 전략적 파트너로서 가치가 큰 게 사실입니다.
당연히 기존 동맹세력을 도와야죠. 게다가 백제는 완전히 정복당한게 아니라 수도만 함락당하고 주력군은 지방에 그대로 있어서 완전한 멸망으로 보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방 군사력이 건재함으로 회복의 가망이 보였기에 연개소문이 백제부흥군을 지원한 겁니다. 오히려 자신의 동맹 세력이 패망했다고, 방금 전까지 칼들고 싸운 상대랑 갑자기 손을 잡아야 한다는 님 생각 자체가 정치학상으로 비정상적인 겁니다.
삼국시대는 내전이나 동란의 시대가 아니라 삼국으로 칭해지는 독립적 정치체를 지닌 세나라 간의 전쟁시대입니다. 지금 무전신현님은 마치 고구려와 신라가 한민족 계통이니까 쉽게 손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삼국시대를 민족개념을 지닌 내전이 아니라 종족적 개념도 희박한 독립적 국가들의 전쟁 시기로 보아야 정상이며, 이렇게 볼 경우 신라는 적대국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이렇게 볼 경우 고구려는 오히려 강대해지는 나당 연합군에 맞서 동맹국인 백제를 재빨리 구원해야하는 겁니다. 아까전부터 계속 이익을 따지시면서 백제를 버리고 신라를 택하는 게 이익이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기존 동맹국으로 버리고 자신에게 이빨을 들어낸 적대국한테 갑자기 동맹을 하라는 식으로 말하는지 전 그게 더 신기합니다. 동맹은 어느 한쪽이 하고 싶어서 갑자기 하는게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결과론적으로만 역사를 평가하는 게 아닐지 모르겠군요. 백제가 멸망하고 설연타가 멸망한 모든 책임을 연개소문에게 돌리는 행태를 볼수록 그런 생각이 다분해집니다. 고구려 당시를 중심으로 생각할 경우 연개소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했을 뿐이며, 당시 국제적 상황이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마치 고구려를 살리려고 발버둥치는 그를 버리듯 말입니다.
그런 면에서 무전신현님께서 찾으신 연개소문장군의 실책이 무엇이 있는지요? 그리고 위에서 말씀드렸는데 그리고 연개소문이 님 친구도 아닌데, "SBS연개소문"에서 이세민과 이적이 옛친구 개소문 말하듯 개소문, 개소문이 뭡니까. 표현 좀 고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백제 멸망과 설연타(파장으로 거란 이탈), 철륵 멸망 까지 연개소문의 책임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평양성 포위는 물론 전략적으로 큰 실수이지만 그런 실수는 고구려 수군지휘부의 수장인 왕제 고건무도 했었습니다. 왜 이 모든 것을 연개소문에게만 돌리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연개소문은 신이 아닙니다.
완벽한 지도자란 있을 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최고 전략가라면 서러워할 광개토태왕 마저도 신라에 원군을 파병했을 때 후연에게 틈을 보여 성 두개를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나중에 후연을 재기불능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긴 합니다. 참고로 허를 찌르는 평양 상륙전은 고건무 때와 연개소문 때의 수, 당의 진격루트는 거의 같습니다. 다만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연개소문과 고건무의 전략 차이와 수, 당의 규모 정도 입니다.
무전신현님의 기본 전제 중 가장 잘못된 것은 모든 잘못 연개소문한테 돌린다는 점입니다. 모든 죄악을 연개소문 한사람한테 지우기 전에 전체적인 당시 6~7세기 국제정치 상황을 포괄적으로 살펴보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되는 군요. 그러면 최소한 일개 장수에 불과한 고건무(고-수 전쟁 당시), 김유신하고 국가 최고지도자인 연개소문을 비교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아실 겁니다. 제국군시절부터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정치학이랑 군사학을 기본만이라도 좀 배우고 오십시오.
제가 말씀드린 것은 백제 멸망 이후의 상황이었는데 다들 말씀이 백제 멸망 이전의 상황에 대해 토론을 하시네요. 고구려로서는 느슨한 동맹국이었던 백제가 망했고 신라로서는 당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야욕을 드러낸 상황에서 연개소문의 김춘추 감금 이후 앙금이 생긴 고구려-신라간이었지만 서로의 이득을 위해 손을 잡고 당을 견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는지 안타까워서 꺼낸 얘깁니다. 신라가 고구려 유민과 손잡고 당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660년대 초에 두 나라가 손잡고 당을 견제했다면 민족사가 달려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말입니다. (아쉬워 해봐야 소용없는 일이기는 해도 말입니다.^^)
武田信玄님 글에 댓글을 달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그런데 백제가 고구려의 느슨한 동맹국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에 대해 위에서 말했으니 더는 거론치 않겠습니다. 고구려와 신라의 화친은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서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우선 신라는 자국의 역량으로는 한참 모자르기 때문에 멸망한 백제부흥군을 진압하고 그 땅을 다스리려면 좋던 싫던 간에 당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당과의 동맹파기는 당시로써는 실현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만일 신라가 당과의 동맹파기를 했다면 여러 가지 가능성이 나오지만 신라에 이득이 될만한 상황은 제 공부가 부족한 탓인지 영 떠오르지가 않습니다.
신라가 당과의 동맹 파기를 했다면 백제부흥군을 제압못했을 가능성이 크고 당은 이 때 백제부흥군을 지원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고구려와 당, 왜 모두 백제를 지원하는 이상한 관계가 되어 신라는 더 더욱 고립을 자초하는 꼴이 됩니다. 그러자면 신라는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 상대는 과거 적국이었던 고구려와 왜에게서 찾아야 하는데 고구려가 이런 신라의 어떤 점을 보고 화친을 해줄지 의문입니다. 고구려로서는 신라와의 화친 보다 백제와 당의 관계를 어떻게든 이간질 시키는 것에 중점을 뒀을 것입니다. 백제가 당과 연합한 상태에서 복국되었을 경우 고구려 안보에 미치는 악영향은 상당히 큽니다.
武田信玄님이 말씀한 시기가 아시다시피 문무대왕 때 입니다. 문무대왕의 강온양면 센스는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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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위에서 백제가 이중적인 태도를 취했다며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신라의 이중적 미래지향성에 대해서는 너그럽군요?
그런데 백제를 멸망했다고 신라가 바로 남방의 새로운 강자가 됐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당시 백제 지역은 유명무실한 웅진도독부만 있었을 뿐 고구려, 백제, 신라 왜, 당등이 각축전을 벌이던 지역이었습니다.
무전신현님, 제가 가만히 살펴봤는데 무전신현님은 지금 역사 전체를 알고있는 자신과 긴박한 정치, 군사적 흐름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던 7세기 당시를 살던 연개소문을 동급으로 비교하시는 우를 범하시는 것 같군요,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 시대에 예측하기 힘들어 보여도 전혀 예측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쉽게 결론을 내리시는 겁니까? 긴박한 시대를 살던 당시 사람에게 여유롭게 그 모든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과 똑같은 안목을 요구하는 것은 일종에 오만이라고 생각되는군요.
도대체 무슨 근거와 사료로 연개소문을 그렇게 쉽게 평가하시는 겁니까? 연개소문의 전체 일대기가 담긴 기록이라도 보신 겁니까? 어떻게 그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결론을 내실 수 있습니까? 정치적 위상이 다른 김유신이랑 연개소문을 비교하는 이유는 또 뭡니까? 님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렇게 모든 사실을 확정하고 제멋대로 제단하는 겁니까?
반드시 경험이 있어야 전략이 뛰어나다는 논리는 광개토태왕을 통해서 그리 논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광개토태왕은 18세에 즉위하자마자 뛰어난 전략을 선보여 여러 전장에서 항상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일각에서는 고국양태왕 말년 전쟁 기록은 광개토태왕이 했다고 합니다. 연개소문은 이십대 중후반에 권력을 잡은 것으로 추정되며 대당대전 전에도 신라를 직접 공격할 만큼 나름 야전 경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개소문에 대한 기록이 김유신 열전 처럼 열전히 소상했으면 연개소문 집권전 활약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강경파의 우두무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보면 여러 전장을 누볐다는 추정을 해도 무리는 없을 듯 싶습니다
전투 경험이 후계자 문제와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연개소문의 신라 공격은 단군한 무력시위가 아니라 성 두개를 빼앗은 대대적이라면 대대적인 공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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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과 약소국의 정치논리가 다르시다는 부분은 아예 고려도 않 하신 듯 하군요. 하긴, 국가 최고 지도자와 일개 장군을 동급으로 비교하시는 행위 자체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만-_-
원래 발제한 주제와는 달리 연개소문에 대한 성토나 옹호로 초점이 바뀐 것 같습니다. 암튼 백제 입장에서는 줄을 잘못 서서 망한 건가요?(결과적으로 고-당 전쟁 최후의 승자가 당나라가 되었으니...) 고구려 또한 운이 정말 없군요. 토번이 665~668년 사이에 한 10년만 앞당겨서 발흥을 하든지 연개소문이 670년대 중반까지만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요. 반대로 신라는 운이 좋은 케이스군요. 나당 전쟁 당시에는 토번의 발흥으로 당나라가 전력을 기울일 수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결과를 놓고 보면 신라는 운이 좋아서 살아남은 것일까요? 아니면 신라의 저력이라고 해야 될까요?
저력이라고 인정되려면; 국가간 전면전의 결과,. 혹은 그에 준할 만한 국가 대 국가의 건곤일척의 승부의 결과 정도여야 할 텐데 신라의 경우야 그런쪽 보다는 확실히 어부지리 쪽이라 볼 수 있으니 ^^; 역시 천운이라 해야 할까요...
저랑 닉도 비슷한 ^^; 글쓴님 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아니나; 제가 생각해 보기엔 역시 -_- 이미 신라는 관산성 전투 이후 백제에게도, 그 이후 고구려와의 지속적인 영토 분쟁으로 인해 고구려에게도 동맹의 신용을 완전 잃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고/백 동맹이야 주적 나/당이라는 뚜렷한 공동의 적이 있었고 고구려 입장에선 국력도 한수위고 해양입지의 지세를 봐서도 괜찮은 백제를 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겠죠.. 더군다나 백제 멸망 시기의 정세는 (비록 굳건하진 않아도) 이미 나/당의 합세라는 불리한 조건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라의 입장에서도 입장 요리조리 바꿔 당 버리고 고구려를 택하느니
그대로 당과의 연합으로 밀고 나가는 게 손해없는 장사일 게 뻔했으니 (백제도 멸망한 이런 대세상 고구려와 당 간의 격차를 실감했겠죠..) 동맹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죠.. 무엇보다 고구려 입장으로선 적대시하는 당을 돕는 신라니 동맹을 제의할 마음도 없고, 제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도 않았겠죠; 저였더라도 그랬을 듯..^^;;
이 얘기는 수차례 나왔던것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