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순간 자연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팽팽한 긴장의 연속인 스포츠의 세계에서는 더욱 만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여기 어떤 힘든 순간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야구선수가 있다.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주전포수 강민호 선수(26)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점수가 나는 순간 짜릿한 환호부터 삼진 아웃 당할 때의 멋쩍은 웃음까지 그의 미소 연타를 아끼는 팬들은 ‘강민호 송’까지 만들어 그를 응원하고 있다.
1월6일,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에게 한약을 보시한 동임한의원의 제안으로 진행된 팬사인회에서 강민호 선수를 만났다. 사인회가 열린 아파트 상가 태권도 체육관에는 마을 주민들이 끊임없이 몰려와, 그는 한 시간 내내 숨돌릴 틈도 없이 펜을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그는 마냥 즐겁단다.
“어휴, 늘 웃고 있기란 쉽지 않아요. 함께 경기를 하는 선수들에게 이를 요구하기란 더 힘든 일이죠. 단지 전 스스로 스포츠를 즐기면서 하려고 해요. 웃다 보면 안 풀리던 상황이 역전될 때가 있고, 지나간 실수에 연연하지 않는 힘도 지니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실력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그의 미소는 실소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10년간 한국프로야구를 이끌 ‘대표 포수’로 꼽히는 그는 젊은 포수 가운데 ‘포수가 할 일’을 가장 잘 아는 이로 통한다. 2004년 포철공고 졸업 이후 바로 롯데자이언츠로 입단한 그는 당시 주전포수였던 최기문 선수의 부상으로, 입단과 동시에 실전 경기 마스크를 쓰게 됐다. 이후 1~2년 동안 냉혹한 프로의 세계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대단한 선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어린시절 사찰 마당서 야구 연습
“요즘은 포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어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타자들의 타격 능력에 대응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시속 150km 이상의 강속구와 상, 하, 좌, 우로 떨어지거나 휘는 온갖 변화구, 심지어는 폭투까지 받아내야 하기에 끊임없이 연습하고 실전에 부딪혀야 해요. 결국 포수는 어떤 공도 받을 수 있는 텅 빈 상태여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걸 보면 불교에서 수행을 통해 추구하는 깨어있는 마음과 조금 연결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마스크, 프로텍터, 레가드 등 무거운 방어용 기구를 몸에 걸친 채 장시간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 하는 고단한 이 포지션을 멋지게 표현하는 강민호 선수. 그런 그의 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도 바로 ‘불교’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강 선수의 불교 인연은 어머니에게서 비롯됐다. 제주도 출신의 그는 어린 시절 교회에 가서 빵을 먹은 기억보다 절에 가서 떡을 먹은 기억이 더 많다. 고향마을 절 마당은 그만의 야구연습장이었다. 그렇게 불교는 어린 시절 자신의 마음 속 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신앙이 마음 깊숙한 곳에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8년, 부산 원오사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사인회에 참석했을 때이다.
“(이)대호 형이 원오사 주지 정관 스님과 인연이 깊어요. 그날 대호 형을 대신해 제가 참석하게 됐는데 절 자체도 좋았고 어린이들을 만나서 더욱 신이 났어요. 대타치고는 뿌듯한 성과였죠. 그날 이후 정관 스님과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어요. 스님은 제가 힘들 때면 어떻게 아시고 전화를 걸어주시고 경기 전에는 격려 문자도 보내주시죠. 그럴 때마다 자신감을 되찾았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습니다.”
사실 그는 지난해 시즌 초반 팔꿈치 부상이 재발하고 경기마저 풀리지 않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정돈되지 않는 마음을 붙들고 싶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 때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준 사람이 바로 불연으로 맺어진 같은 구단의 홍성흔 선수였다.
매일 108배를 할 정도로 수행에 적극적인 불교신자였던 홍 선수의 권유로 밀양 법흥사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던 그는, 이후에도 혼자 법흥사를 찾아 기도와 수행법을 배웠다. 그리고 지난 6개월 간 배운 대로 매일 잠에 들기 전 향을 피우고 내면을 관하는 시간을 가졌다.
홍성흔 선수 권유로 불연 맺어
|
“잠들기 전 향을 하나 피우고 그 향이 다 탈 때까지 ‘화엄성중’을 반복해서 염송하는 주력 기도를 했어요. 나중에 들으니 ‘화엄경’에 등장하는 불법을 옹호하고 불자들을 보호하는 신중을 부르는 주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잠이 들고 나면 다음날 아침은 늘 개운하고 뭔가 새로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더니 몸의 회복속도 역시 빨라졌어요. 이제는 잘 때만 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시간이 날 때 ‘화엄성중’을 외웁니다. 제 헬멧 안쪽에도 ‘화엄성중’을 써 넣었어요. 기도 덕분에 슬럼프는 완전히 극복했어요.”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은 어린이를 향한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는 유달리 어린이를 위한 후원 인연이 많다. 지난 2007년부터 방문해 온 부산 동구 수정동에 위치한 아동복지시설 미애원은 그에게 각별한 곳이다. 생애 처음 그가 자발적으로 마음을 내어 시작한 봉사활동이기 때문이다. 연말마다 자신의 팬클럽 회원들과 이곳을 찾아가 하루 종일 어린이들과 함께 나눔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08년에는 어린이재단 부산지역본부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산타할아버지 옷을 입고 동료 선수들과 함께 어렵게 생활하는 어린이들을 찾아가는 이 활동 역시 그에게는 가슴 따뜻한 나눔의 실천이다. 앞으로는 원오사의 꿈나무가꾸기 장학재단에도 후원자로 동참할 예정이다.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일은 마냥 뿌듯하고 신이 난다”는 그의 말에 천진함 가득 묻어났다.
여성 팬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은 그에게 여자 친구가 있는지 여부를 살짝 묻자 지금 미국에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 여자 친구가 한국에 오면 제일 먼저 같이 절에 가보고 싶다고. 함께 고요한 법당에서 절하고 기도를 하면 기분이 정말 편안할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런 그에게 새해 서원을 물었다. 의외의 소박한 대답이 나왔다.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한 해 몸이 아프니 건강이 최고라는 사실을 절감했어요. 그 이상 바라는 건 없어요.”
건강을 염원하며 미소를 짓는 강민호 선수. 그의 인사에 법구경의 게송이 문뜩 떠올랐다.
“성 안 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이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로다. 깨끗해 티가 없는 진실한 그 마음이 언제나 한결같은 부처님 마음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