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동 가로수길
십일월 마지막 한 주를 시작한 월요일이다. 날짜 변경선이 넘어간 한밤중 잠을 깨 전날 다녀온 남지 일대 강변 풍광을 생활 속의 글로 남기고 덤으로 한 일이 있었다. 아침이면 지기들에게 사진과 함께 안부로 전하는 시조로 ‘옛길 남지철교’ 외에 2수를 남겼다.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에 올가을 심어 웃자란 ‘월동 보리’와 이른 아침 갯버들 사이 철새가 날아온 ‘아침 강가’ 풍경이었다.
날이 밝아온 아침은 평소처럼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랐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길거리에는 며칠 사이 떨어진 가로수 낙엽이 수북이 쌓여 만추의 서정을 더했다. 휴지와 같은 생활 쓰레기가 아닌 단풍이 진 낙엽은 한동안 길거리를 뒹굴게 해도 좋으련만 마냥 그렇게 둘 수 없지 싶다. 당장 주초 화요일에 저기압이 통과하면서 강수가 예보되는데 낙엽이 우수관을 막을까 걱정이 된다.
버스가 반지동에서 창원천2교를 건널 때 창이대로 은행나무가 줄지은 모습에서 거리의 가로수가 차지한 도시 미관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명서동을 지난 소답동에서 창원역 기점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근교 시골 일터로 나가는 회사원과 더불어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개를 넘자 거기서부터 아침은 별세계가 펼쳐졌다. 일교차가 큰 날 더 짙게 끼는 안개가 자욱했더랬다.
찻길 차량은 안개등을 켜고 거북이 운행인데 마을버스 기사는 계절이 바뀔 때면 흔한 현상이라 순순히 받아들였다. 동읍이나 대산면 일대 안개가 짙음은 주남저수지와 낙동강의 물길에서 낮에 증발한 복사 수증기와 대기 중 습도가 아침에 낮아지는 기온으로 생겨난 현상이었다. 지역 주민들이나 늘 다닌 출근길 운전자는 익숙한 광경으로 받아들여 작은 접촉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대산 산업단지를 지나 가술 거리에서부터 혼자 남아 제1 수산교를 지난 일동마을 회관 앞에서 내렸다. 아까 지나온 강둑이나 마을 동구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 한동안 가시거리가 짧은 구역을 걸어야 했다. 동구에는 일손이 모자라 그런지 아직 수확하지 못한 단감이 주렁주렁 달려 가지가 처진 감밭이 나왔다. 안개 속 들녘을 지나니 벼농사 뒷그루를 위한 비닐하우스 설치로 분주했다.
저지대 논에는 연근을 심어 일찍 캔 흔적이 보였고 그 이후부터는 트랙터가 땅을 갈아둔 논에 철골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지 농민의 기술을 전수 받은 베트남 청년들이 힘을 모아 철골을 구덩이에 꽂아 나란히 세웠다. 비닐하우스 설치는 단계별로 몇 가지 공정을 거치는데 철골 세우기가 가장 힘들고 이어서 대형 천막과 같은 합성수지 필름을 씌우는 작업도 쉬운 일 아니었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던 구산 들녘에서 죽동마을 앞으로 가니 안개가 서서히 걷혀 시야가 드러났다. 지난가을 어느 날 아침 둘러본 기자(祈子)의 성혈과 아기장수 전설 변형 설화의 현장인 바윗돌이 드러난 당산에서 죽동 본동 앞을 지나자 메타스퀘이아 가로수길이 나왔다. 일자형으로 된 포장도로는 지방도나 국도가 아님에도 오래된 가로수가 우람하게 자라 멀리서도 눈에 쉽게 띈다.
창원은 용호동 도심에도 메타스퀘이아 가로수길이 알려졌는데 죽동 들녘 가로수도 무척 인상적이다. 동읍 봉강에서 대산 가술로 가는 길이라 ‘봉강가술로’로 명명된 길이다. 메타스퀘이아는 연초록 잎이 돋을 때와 늦가을 단풍이 물들 때가 더 시선을 끄는데 지금은 후자에 해당했다. 며칠 전 기온이 낮아져 된서리가 내려 초록 잎은 일제히 갈색으로 물들어 하늘로 솟구쳐 서 있었다.
농촌 마을 간의 생활도로라 농기구나 차량 운행이 뜸한 포장도로를 걸어서 지났다. 우람한 나무둥치의 열병을 받으면서 지났는데 키가 높은 가로수의 위엄이 대단해 길을 걸어서 지나는 이의 모습은 미미한 존재였다. 메타스퀘이아 가로수길이 끝난 대방마을 동구 언덕에는 고목이 된 두 그루 떫은 감나무가 서 있었다. 앙상한 가지에 까치밥으로 달린 몇 개 감은 새들이 날아와 쪼았다. 24.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