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진다 갈새는 얼마 아니하여 잠이 든다
물닭도 쉬이 어느 낯설은 논두렁에서 돌아온다
바람이 마을을 오면 그때 우리는 섦게 늙음의 이야기를 편다
보름밤이면
갈거이와 함께 이 언덕에서 달보기를 한다
강물과 같이 세월의 노래를 부른다
새우들이 마름 잎새에 올라앉는 이때가 나는 좋다
어느 처녀가 내 잎을 따 갈부던을 결었노
어느 동자가 내 잎을 따 갈나발을 불었노
어느 기러기 내 순한 대를 입에다 물고 갔노
아--- 어느 태공망이 내 젊음을 낚아 갔노
이 몸의 매듭매듭 잃어진 사랑의 허물 자국
별 많은 어느 밤 강을 내려간 강다릿배의 갈대 피리
비 오는 어느 아침 나룻배 내린 길손의 갈대 지팡이
모두 내 사랑이었다
*「늙은 갈대의 독백」부분. 현대어 정본
-『한라일보/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2025.02.18. -
해가 지는데 갈대가 홀로 말한다. 말하려는 충동은 치밀어오르고 또 억제되면서 밤의 풍경과 기억을 고적한 데생으로 그려낸다. 갈새가 와서 잠들고 물닭도 그만 돌아오고 바람마저 쌀쌀하게 불어오면 세월이 섧다. 보름밤 강물 위 마름 잎새에 새우가 기어오르는 사정을 누가 알겠는가. 어느 처녀가 갈잎을 따 노리개를 만들었으며, 어느 동자가 갈잎으로 피리를 불었으며, 날아간 기러기는 과연 대를 입에 물고 있었나.
젊음은 사실일 경우에만 아름다운 언어를 늙어서 갖게 된다. 몸의 마디마디 끊어져 피리로 밤 강을 내려가고, 어느 길손의 갈대 지팡이가 내 사랑이었다면 남은 흔적과 함께 모두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그게 또 허물이라 해도, 해오라기 조는 옆에서 꾼 꿈이었다 해도. 갈대의 자탄은 참 회화적이면서 깔끔하다. 늙음의 말이라는 것 외에 어떤 결점도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