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오정현씨의 여호수아서 강해(?)설교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지난 수요일 제직회의 파행적 운영에도 불구하고 오늘(2014년 1월 12일) 공동의회도 전혀 개선됨 없이 독선으로 치달았다. 주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에서 엿볼 수 있어야 하는 최소한의 배려, 인권의식, 정의마저 실추된 공동의회였다. 오정현씨는 바로 오늘 여호수아서 20장을 설교 본문으로 선택하였다. 오정현씨는 여호수아서 20:1~9 본문을 가지고 '도피성 되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제목으로 설교하였던 것이다.
여호수아서 20장은 도피성(Cities of Refuge) 제도를 다룬다. 도피성 제도는 고대 이스라엘에서 '부지 중에 살인을 저지른 자'(오살자, unintentional killer)를 그 복수자 - 죽은 자의 피붙이나 친족 - 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도피성은 보호감호소와 유사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여호수아서 20장은 도피성 제도의 취지와 입소/퇴소의 절차, 도피성 억류기간, 도피성들의 목록(수와 위치 등)을 소개하고 있다.
사실 그 동안 오정현씨를 중심으로 하는 리더쉽(지도력) 그룹이 사랑의교회 안에서 보여준 태도를 고려하자면, 여호와의 선민이었던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의 높은 인권 정신과 사법적 정의 수준을 반영하는 도피성 제도를 가지고 오정현씨가 설교한 것은 사실 가소로운 일이었다. 오늘 설교를 통해 너무 분명하게 나타났다. 설교자가 실질적으로 도피성 제도의 취지와 기본정신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향후 일련의 설교비평 글들을 통하여 오늘 여호수아서 20장을 본문으로 행한 오정현씨의 위선적 자가당착 설교를 조목조목 비평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우선 오늘 오정현씨 설교의 한가지 매혹적인 오류에 관해서 논평하는 정도로 일단 그치겠다. 오정현씨는 구약성경의 도피성을 오늘날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상징한다고 해석하면서, 정작 적용에 있어서는 그 해석에 어긋나는 설교를 했다. 그는 자신의 설교를 적용한다고 하면서, '도피성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는 변화되어서 사명(소명)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도피성이란 단지 도피하는 것만이 아니고 묵상과 자기점검, 변화의 경험을 통한 제자훈련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주장하였다.
다시 말해서, 오정현씨에게 있어서 도피성이란, 사명(소명)자로의 변화 그리고 제자훈련의 맥락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도피성의 은혜를 적용하는 것이란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오정현식 해석과 적용은 서로 어긋난다. 여호수아서 20장의 도피성을 영원한 피난처이자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상징/모형이라고 해석했다면, 도피성에 머무르는 체류/억류의 기간은 철저한 자기부숴짐/회개의 시간으로 간주되어야 마땅했다. 여호수아서 20:6의 '대제사장의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희생의 예표/상징/모형으로 해석했다면, 오늘날 도피성을 우리에게 적용하는 중대한/필수적 한가지 방식은 대속자/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온 존재를 전복(顚覆)시키고 하나님을 향하여 온전히 돌이키는 참된 회개를 실천하는 일이어야 했다.
오정현씨는 회개를 누락하고 그 자리에 '소명'과 '제자훈련'을 대입시킨 것이다. 오정현씨 입에서는 절대로 '회개'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보다. 이미 스스로는 충분히 회개했다고 하니까.
진실로, 도피성의 적용은 회개다. 일례로, 송태흔 교수는 자신의 여호수아서 강해설교에서 이렇게 함축적으로 결론 맺는다(송태흔, 2010, 382쪽).
따라서 도피성 제도의 본질은 회개라는 명목으로 설명될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오정현씨와 그의 설교준비팀(?)이 열심히 참조(?)하고 있을 김형준(2013)에서도 구약의 도피성 제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을 상징하는 예표로 해석하면서 회개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김형준, 2013, 316쪽).
단 한가지가 있다면 이 도피성으로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길은 예수께로 나가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을 그르치게 하지 않는 것도, 내가 회개하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회복하는 길도 바로 예수 안에 있습니다. 도피성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며 이 성에 들어가지 않고서는 살아날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박한 심정으로 나아가는 자입니다. 그리고 성 입구에서 그곳에 있는 장로들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이처럼 도피성의 기본적 적용은 회개와 죄고백에의 강조가 필수이다. 도피성 제도를 예표론적으로 해석하고, 대제사장의 죽음(여호수아 20:6)을 그리스도의 죽음(속죄제사)의 모형으로 해석하여 설교하는 한, 그 설교는 필수적으로 "복음설교"이어야 하고 "복음설교"일 수밖에 없다.
예컨대, 고신일(2011, 344~345, 347쪽)은 여호수아서를 강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교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거나 실수로 사람을 상하게 했더라도 도망칠 수 있는 그 당시의 도피성이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귀중한 장소가 보장되어 있다.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도피성이 가진 모든 특성을 다 가지고 계시며 오히려 그 도피성의 정신을 완성시키셨다... 예수님은 진정한 도피성으로 가는 넓은 길이다. 누구에게든지 열려 있는 길이다. 그 길은 진리요 영생을 보장한다... 그리고 당시 대제사장이 별세하면 재판을 받았건 아니건 상관없이 도피성에 있는 사람들은 방면되었다. 대제사장의 죽음 자체가 무죄를 선고하는 효력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셨다.
이와 같이 도피성에 대한 설교는 복음설교다/복음설교여야 한다. 오정현씨는 뭐하는가? 일주일 동안 무엇을 준비하는가? 누가 구약의 도피성과 신약의 도피성(예수 그리스도)의 특징을 상호 비교하는 강의를 들으러 예배당에 주일에 모인다고 생각하는가? 제대로 된 복음설교를 하라.
오정현씨여, 귀하를 향한 옥한흠 목사님의 편지(2008. 6. 1.)에서 지적당했듯이(옥성호, 2014, 155쪽), 귀하는 여전히 '소제목을 줄줄이 엮어 내려가는 단편적인 지식들'을 설교시간에 나열하고 있다. 기독교 설교자가 복음설교, 복음의 선포를 제대로 못하는가? 못하면 강단에서 내려오라. 복음을 힘있게 선포하는 대신, 회중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없게 만들고 있다. 여전히.
오정현씨여, 회개를 실종시키고 그럴싸한 대체물로 커버하지 말라. 소명/묵상/제자훈련? 회개다 회개!
회개를 누락하는 설교자여, '소제목을 줄줄이 엮어 내려가는 단편적인 지식들'의 짜깁기 설교가 감성을 자극하는 찬양 이벤트로 극복될 것 같은가? 천만에!
오정현씨, 귀하는 사실상 회중 앞에서 다음과 같이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회개만 빼고 뭐든지 가르칠 수 있다!
참고문헌
고신일 (2011). 준비된 2인자. 서울: (주)넥서스.
김형준 (2013). 여호수아처럼 형통하라. 서울: 두란노서원.
송태흔 (2010). 조직신학자가 본 여호수아. 고양: 엘림미디어.
옥성호 (2014). 왜 WHY? 수원: 은보.
첫댓글 하나더 추가합니다. 김경섭 여호수아 강해서...
오목의 '나는 죽어도 회개못해(안해)'는 오래전부터 설교속에서 감지했습니다.. 이제는 하고싶어도 하지못하는 할수없는 지경에 이르게되어가는것 같아요
설교비평 늘 감사합니다
본문에는 "그 살인자는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라고 되어있는데 재판이 두렵기는한가 봅니다. 그부분은 쏙빼고 대제사장 부분만 강조하다보니 또무리를 했군요. 회개를 모르니 재판을 받기까지만 도피성에 머무를수 있겠군요 속히 그날이 오기만을 기도합니다.
저도 이부분을 어떻게 설명할지 기다렸는데 그냥 마치 없는 구절인듯 슥 넘어가더군요.
오늘 6개의 도피성을 설명하며 말씀이 지식이라 여기고 성도들에게 그 지식을 알려줌으로써 대단한설교자인냥 여기는 오목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참 안쓰러운분입니다
옆에 앉은 청년이 작정하고 메모하는데 적은 건 날짜, 설교제목, 6개 도피성 이름이었습니다. ㅠㅠ
뭔가 중요한것이 빠진 느낌이였는데 그것이 회개를 통한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구원이였군요~~감사합니다~
잡초 보다 못한 더러운 목자가 누구인지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데 혼자만 귀먹어리 소경 입니다.
오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무엇을 잘 못했는지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회개를 논하는 자체가 무리인 것 같네요...
여전히 말씀으로 자기를 합리화시키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는 당당해하시더군요.
4부예배때는 건물이 완공되었으니 외부사역에 더 힘을 쏟아야하고
그러면 내적인 것은 저절로 채워진다는 말에 아연실색..
자신감있고 당당한 목사님 모습을 보노라니 괴롭네요.
오랜만에 공동의회 때문에 센터에 가보고 오목의 설교도 들었습니다. imagodei님 설교비평 늘 기대하며 잘 보고 있는데.. 오늘 직접 설교를 듣고난 후에 비평을 접하니 더 와닿네요~ 감사합니다~^^
강해설교가 뭔지도 모르시는분. 전 큐티나눔 정도로 들리지 강해설교로는 안들렸습니다.
딩동뎅 ~저도 그렇게 들렸어요
큐티라도 제대로하고 나누면 좋으련만 ......안타깝죠
말씀 감사합니다. 오씨가 "회개" 되신 "소명"을 언급하므로 친오들이 사명감을 갖고 더 우리를 향해 저주를 퍼부어대는것 같습니다. 미혹한 영에 사로잡힌 오씨의 현혹이 먹혀들어감을 보았습니다 귀와 눈이 막혀 자기도 모르게 오씨를 찬양하는 무리들을 보니 그들이 불쌍해집니다 그들 위해더 간절히 기도해야겠습니다
회개없이도 얼마든지 구원 받을 수 있고, 새롭게 변화된 사람이 될 수 있고, 소명자로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말이 되겠군요.
영원한 도피성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일성이" 회개하라"였는데... 고의가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지은 죄인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함께 그러한 죄라도 완전히 사면받으려면 대제사장의 생명으로 대속해야한다는건, 죄를 가볍게 처리하지 않는다는 경고라 생각됩니다.
10년만에 처음으로 가까이서 보았는데 불쌍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지난주 이재훈 목사님 설교에서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나눔 정직 정의라고 하셨는데, 오먹은 자기 교회만 비대해지고 학력을 포함하여 거짓되고, 자기를 맹신하는 무리에게만 공의를 베풀고
소명자, 변화된 삶을 예기하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회개는 빼 먹었으니 제대로 된 설교라고 할 수 없으며, 설교준비팀까지 운영하는 목사로서 ㅇㅁ은부끄럽게 생각하길 바랍니다. imagodei 님이 시간을 내서 비평을 해주심에도 불구하고 이 자의 설교는 도무지 개선의 기미가 없습니다.
기독교인의 회개란 일반인들의 회개( 단순히 과거를 뉘우치고 반성함)과는 달리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신을 다시 돌아봄을 의미할텐데, 그사람은 하나님의 시각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겁장이라 차마 회개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할겁니다. 앞으로도 '정직'이라는 말과 함께 그가 보기만 하면 피해 다닐 단어일 것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무슨 소명일까요? 아무리 보아도 샤만 왕국을 위한 소명이겠지요? 회개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하기 싫으니까 예수님으로 부터 오는 소명은 못받았을테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를 통한 유무형의 복을 바라는 것으로 생각되어 그는 예수님 이외의 또 다른 중보자로서 사람들을 미혹시켰다는 심증입니다. 이렇게 빨리 설교 비평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한 밤 보내세요.
도피성은 고의가 아닌 살인을 저지른 자들만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ㅇㅁ의 설교를 듣다보면 고의적인 살인을 포함하여 아무 죄든지 죄를 지은 자는 예수님께로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의미인것 같네요.
아마도 본인처럼 고의적으로 죄를 저지른 자도 예수께로 나아가면 무조건 보호를 받는다고 믿고 있는건 아닌지요?
센터장님은 회개없이 구원을 얻기 원하는 자들이 센터 안에 널렸다는 걸 잘 압니다. 자신을 든든히 지켜주고 후원해 줄 같은 영의 소유자들...
그렇기에 앞으로도 그의 입에서 진심을 담은 '회개'라는 말은 나오기 힘들 것입니다. 무서운 교회 현실입니다.
한번도 제대로 신학을 공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깊이있는 강해 설교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봅니다.
설교가 자신 없으면, 그냥 찬양 인도자로 만족하며 살아야 되는데, 그렇게 하기는 돈이 좀 안되고,,,
빙고~!!. 님의 글이나 댓글들은 보면, 가끔 저랑 꼭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놀랍니다. 마치 동일인물같습니다. ㅎㅎ
맞습니다. 찬양인도자 정도로 족합니다.
찬양인도자 하기에는 박자감각이 많이 모자랍니다.
오씨가 요즘 설교준비나 할까? 밥그릇 지키기 바쁘고 소송준비해야하고 마음이 바쁘지.. 안봐도 비디오다ㅋㅋ 마음이 붕떠 있으니 기도 할 시간도 없을껄...말씀과 기도에 집중한다면 요즘과 같은 행동못하지..불쌍하다. 자리지키느라고...10년후 당신 모습이 그려진다.
오목사를 처음 보았을 때 받은 인상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판단이 틀리기를 바랬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성경 본문은 오로지 제목을 뽑아내기 위해 사용하고, 내용은 그 제목을 이용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항상 그 본문과 전혀 상관없거나 모순되는 말들을 마구 내뱉고...
설교준비팀도 자신의 설교가 아니라 대충 때우기식으로 준비해 주나 봐요. 그게 아니면 오목의 요구대로 고쳐주다 보니 결국 오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