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왠만하면 이 주제로 글을 안쓰고 싶었지만
도저히 안 쓸 수가 없는 토론회였습니다.
■ 오늘 부동산 대토론회에서 그나마 좋게 본 부분
오늘 토론회 전체가 의미 없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첫째, 정부가 공급·세금·대출·임대차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고 서로 다른 입장의 전문가와 실수요자 의견을 들은 점은 긍정적입니다.
정책을 이미 정해놓고 일방적으로 발표하기보다 국민에게 공개된 자리에서 의견을 들으려 한 시도 자체는 좋게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기존 제도를 믿고 계약했는데 갑자기 대출규제가 바뀌어 잔금대출을 받지 못하게 된 실수요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 자체는 나름 타당했습니다.
대통령도 “기존 제도를 믿고 계약했는데 사후적으로 정책이 바뀌면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며 경계선에 있는 사람들의 피해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출규제는 원칙적으로 신규 계약부터 적용하고, 이미 계약을 체결한 사람에게는 충분한 경과조치를 부여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 해줄거라 믿습니다)
셋째, 사업자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하는 등 대출 용도 외 사용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화하겠다는 방향도 필요합니다.
운영자금 명목의 사업자대출이 실제로 주택 구입에 사용된다면 정상적인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돌아가야 할 자금까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전세대출을 일률적으로 없애기보다 청년·신혼부부·생애최초 등 실제 지원이 필요한 계층은 보호하겠다는 접근도 최소한의 현실성을 갖고 있습니다.
비거주 1주택자가 다른 지역에 전세를 얻기 위해 정책성 전세대출을 이용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충분히 재검토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보유세를 무조건 단기간에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기 어렵다는 현실도 인정했습니다.
부동산 세제는 한 번에 뒤집을 것이 아니라 장기 계획을 제시하고 예측 가능하게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오늘 토론회의 가장 큰 문제
가장 큰 문제는 너무 많은 제안이 나왔지만 정부가 무엇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지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집값을 낮추는 것인지, 거래를 늘리는 것인지, 세수를 확보하는 것인지, 가계부채를 줄이는 것인지,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을 돕는 것인지 목표가 혼재돼 있습니다.
이 목표들은 서로 충돌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출을 완화하면 실수요자의 구매 능력은 올라가지만 공급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집값이 상승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출을 강하게 제한하면 거래와 가격 상승세를 억제할 수 있지만 현금 부자만 주택을 살 수 있는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보유세와 양도세를 동시에 올리면 집을 보유하기도 어렵고 팔기도 어려워져 매물이 잠길 수 있습니다.
PF 지원을 확대하면서 재개발·재건축 총량을 제한하면 공급금융은 늘리면서 정작 사업은 막는 모순이 생깁니다.
토론회에서 여러 의견을 듣는 것은 좋지만, 정부가 이를 그대로 나열해서는 정책이 될 수 없습니다.
■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한 제안들
첫 번째는 1주택 양도세 비과세를 생애 한 번만 허용하자는 주장입니다.
사람은 평생 한 집에서만 살지 않습니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직장이 바뀌고, 부모를 모시거나 자녀가 독립하고, 은퇴 후 작은 집으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1주택 비과세를 생애 한 번으로 제한하면 투기보다 정상적인 주거 이동을 막게 됩니다.
두 번째는 1주택 양도세 비과세 한도를 5억 원 수준으로 대폭 낮추자는 주장입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5억 원은 더 이상 고가주택의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지역·물가·주택가격 변화를 무시하고 전국에 동일한 절대금액을 적용하는 것은 비현실적입니다.
세금은 주택가격 자체보다 실제 양도차익, 보유기간, 거주기간 등을 기준으로 설계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세 번째는 기존 대출자에게도 만기 시점에 새로운 대출규제를 적용하자는 주장입니다.
대출 당시 규정을 지킨 사람에게 만기 때 갑자기 강화된 DSR을 적용하면 대출금 상환이 불가능해져 강제매각과 경매가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규제는 신규 대출부터 적용하고 기존 차주는 장기간에 걸쳐 원금을 상환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네 번째는 규제지역을 없애고 전국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자는 주장입니다.
서울 강남의 과열시장과 지방의 미분양 지역을 같은 기준으로 규제하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DSR처럼 상환 능력에 관한 기본 원칙은 전국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지만, LTV·정책대출·보증 지원은 지역 상황에 따라 달라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보유세와 양도세를 모두 강화하자는 주장입니다.
보유세를 강화하려면 취득세와 양도세는 낮춰 거래할 수 있는 출구를 열어줘야 합니다.
집을 계속 가지고 있어도 높은 세금, 팔려고 해도 높은 세금이라면 사람들은 매도를 미루게 됩니다.
이는 공급되는 매물을 줄여 오히려 가격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 대통령이 생각을 바꿔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
부동산 문제를 ‘집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도덕 대결’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집값은 탐욕만으로 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수도권 일자리 집중, 교육 인프라, 교통망, 토지 공급, 정비사업 지연, 건축비, 금리, 유동성, 가구구조 변화가 모두 영향을 줍니다.
서울 아파트를 피카소 작품 같은 투기상품이라고 표현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 식의 비유는 분노를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정책을 설계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가 수요를 ‘실수요’와 ‘투기수요’로 간단히 나누는 사고도 바꿔야 합니다.
지방에 집 한 채를 가지고 있지만 서울에서 직장 때문에 전세로 사는 사람, 부모를 부양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두 채가 된 사람, 상속으로 지분을 받은 사람, 재건축 이주를 위해 전세를 구한 사람을 모두 같은 유주택자로 취급하면 부당한 결과가 생깁니다.
주택 수만 세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거주, 소득, 부채, 취득 경위, 보유 지분 등을 함께 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대출을 줄이면 집값이 내려가고 서민이 집을 살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대출을 막으면 가장 먼저 시장에서 밀려나는 사람은 다주택 투기꾼이 아니라 현금이 부족한 무주택 실수요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현금 부자와 사적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남고, 급여생활자는 퇴장합니다.
이번 대통령 아파트 거래가 바로 그 현실을 보여줬습니다.
■ 앞으로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정책
첫째, 매도인 금융과 사인 간 대규모 차입을 제도권 관리에 포함해야 합니다.
일정 금액 이상의 잔금 유예·사인 간 대출·매도인 근저당 거래는 자금조달계획서에 대출 기간, 이자율, 상환 재원, 특수관계 여부를 의무적으로 기재하게 해야 합니다.
무조건 금지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거래 내용을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통령의 거래 역시 잔금액, 지급 일정, 무이자 조건, 자금조달계획, 재건축 권리와의 관계를 개인정보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명확하게 공개하는 것이 맞습니다.
둘째, 세제는 보유세와 거래세를 하나의 패키지로 개편해야 합니다.
보유세는 장기간에 걸쳐 예측 가능하게 조정하되 취득세와 양도세를 낮춰 정상적인 이사와 매도를 허용해야 합니다.
현금소득이 부족한 고령 1주택자에게는 세금을 면제하기보다 매각·상속 시점까지 납부를 미루는 과세이연 제도를 도입하는 방법이 합리적입니다.
셋째, 대출규제는 주택가격만 보지 말고 차주의 상환능력과 자금 용도를 중심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전국 공통 DSR 원칙은 유지하되 생애최초·신혼·다자녀 등 실수요자는 장기 고정금리 정책대출로 지원하고, 사업자대출·법인대출·사인 간 차입을 이용한 규제 우회는 별도로 관리해야 합니다.
넷째, 공급 목표를 인허가 숫자가 아니라 실제 입주 물량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재건축·재개발, 3기 신도시, 비아파트 공급 모두 발표한 물량이 아니라 착공·준공·입주까지 이어지는지를 공개해야 합니다.
PF 지원도 부실 사업자를 살리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준공이 가능한 사업장만 선별해 지원해야 합니다.
다섯째, 정책을 발표하기 전에 계층별 영향을 공개해야 합니다.
보유세를 올리면 소득·연령·지역별로 누가 얼마나 더 내는지, DSR을 강화하면 몇 명이 대출을 받지 못하는지, 양도세를 바꾸면 매물이 얼마나 늘거나 줄어드는지 정부가 수치로 제시해야 합니다.
정책 의도가 선하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 최종 정리
오늘 토론회에서 가장 필요했던 것은 새로운 세금과 규제를 더 만드는 일이 아니라 대통령 본인의 거래를 하나의 사례로 놓고 현행 대출규제가 어떤 사람에게 유리하고 어떤 사람을 시장에서 밀어내는지 솔직하게 토론하는 것이었다고 봅니다.
부동산 정책의 신뢰는 대통령이 집을 보유했느냐 무주택자가 됐느냐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원칙이 적용되고, 정책이 바뀌더라도 예측 가능하며, 현금이나 인맥이 없는 평범한 국민도 합리적인 경로로 집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생깁니다.
이번 논란을 정쟁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대출규제와 사적 금융, 세제와 공급정책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보유세는 올리는 방향, 거래세는 낮추는 방향 저도 옮다고 생각합니다.
토론회만 봤을때 이 정부가 무슨 방향성으로 손대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명확한 비전없이 손만 많이 댈려고 하는게 보이는데 그리되면 부작용만 클겁니다 중요한건 지금까지도 이재명은 부동산이나 주식같이 개인 재산문제로 직결되는 민감한 것들을 손본다고 저질러놓은걸 책임진게 없다는 점을 봤을때 답이 안나온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인간이 더 좋은 환경에서 더 좋은 교육을 받고 더 좋은 직장으로 점점 더 좋은 집으로 가는게 궁극적으로 나라에도 좋은거 아님? 몬 투기 투기 거리는지... 답답합니다
좋은 정리글 감사합니다
제주도에서 부동산하시는 여자분이 제일 똑똑한것 같습니다.
정리 엄청 잘하셨네요 멋지십니다
글이 너무 좋네요.
핀셋규제를 하려하던데 걱정이 많이됩니다
배워갑니다
공감합니다. 마지막
부동산 정책의 신뢰는 대통령이 집을 보유했느냐 무주택자가 됐느냐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원칙이 적용되고, 정책이 바뀌더라도 예측 가능하며, 현금이나 인맥이 없는 평범한 국민도 합리적인 경로로 집을 구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생깁니다.
요거 맘에 드네요
정리가 깔끔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