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 기러기 편대
십일월 끝자락 화요일이다. 간밤은 우리 지역으로 이동성 고기압에 뒤이어 기압골이 다가와 겨울을 재촉할 비가 내리던 새벽이다. 우천이라도 자연학교 등교는 미루지 않고 오히려 당겨 집을 나섰다. 지난여름도 폭염이라 아예 새벽에 얼음 생수와 죽염을 챙겨 현관을 나섰다. 근교로 나가는 첫차 마을버스로 강둑이나 들녘을 두세 시간 먼저 걸은 후 마을도서관 열람실을 찾아갔다.
가을에 들어서는 첫새벽은 아니라도 일반 학생들의 등교보다는 빠른 시간대 일터로 가는 이들과 함께 근교로 나갔다. 아침나절에 햇살이 퍼지거나 안개가 자욱하게 낀 강둑이나 들녘을 서너 시간 걸어 가술 식당에서 점심을 때우고 오후에 국도변 거리에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집으로 왔다. 때로는 시외 구간 진영읍에서 기점을 삼거나 한림정에서 강둑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했다.
가을에는 초반에 비가 왔던 날을 제외하고는 평생 학습센터와 겸한 마을도서관으로 나가 머물 시간을 내지 못했는데 우천이라 들러볼 생각이다. 업무를 시작하는 시각보다 이르게 우산을 받쳐 쓰고라도 들녘을 먼저 걸은 뒤 도서관을 찾아갈 셈으로 날이 덜 밝은 어둠 속에 현관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보도는 낙엽이 비에 젖어 물기를 머금은 채 널브러져 스산한 분위기였다.
창원역을 거쳐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소답동에 내려 1번 마을버스를 갈아탔더니 승객이 만원이라 서서 가야 했다. 근교 일터로 가는 이들로 기점이 아닌 도중에 타면 입석을 감수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이른 아침 생업 전선으로 나선 이들에게 자연학교 등굣길 학생도 끼어 섞여 갔다. 차창 유리에는 빗방울이 스쳤는데 용강고개를 넘어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갔다.
버스가 주남저수지에서 들녘 한복판 시골 학교를 지날 때 내렸다. 바람이 세차지는 않아도 비가 차분하게 내려 우산을 펼쳐 썼다. 버스가 지나온 일대와 운무가 가려진 먼발치에 거리를 둔 산들을 바라봤다. 가술로 가는 차도와 방향이 다른 용산으로 가는 신동마을 앞으로 걸었다. 빗속 이른 시각이라 지역 주민이나 오가는 차량이 없는 한갓진 마을 앞을 지나자 들녘이 펼쳐졌다.
우산을 받쳐 걷는 들녘 하늘에 갑자기 철새들이 떼 지어 날았다. 주남저수지와 가까웠는데 밤에는 저수지로 들어 잠을 잤을 철새들이 비가 오는 아침 하늘에 편대를 이루어 비행했다. 선발대로 여길 몇 마리가 아니라 수많은 기러기가 떼를 지어 날아올라 장관이었다. 비가 오는 아침이라 들판으로 내려앉아 먹이 활동을 할 여건이 못 되니 선회 비행으로 스트레칭을 겸하는 듯했다.
우산을 젖혀 비를 맞으며 머리 위로 날아오른 기러기들은 폰 카메라 앵글에 담아두고 신동 당산나무에서 들녘을 더 걸어 장등으로 갔다. 가술 일반산업단지는 지역 아파트단지와 이어진 거리 카페에서 테이크아웃으로 따뜻한 커피를 손에 쥐고 마을도서관으로 향했다. 가을에 들어 새벽처럼 길을 나서지 않아 한동안 들리지 못한 도서관을 찾으니 평생학습센터장과 사서가 반겨주었다.
올가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작품집은 대출 중인데 사서가 비치 본으로 둔 책을 꺼내주었다. 사서에게 ‘소년이 온다’를 건네받아 열람석에서 오전 서너 시간에 걸쳐 완독했다. 내 말고는 아무도 찾지 않은 마을도서관이라 개인 서재나 마찬가지로 독서에 몰입한 시간을 보냈다. 옹이로 굳어진 광주의 상흔이 역사가 아닌 문학에서 담아낸 논란은 후학들이 평가하고 연구할 과제였다.
때가 되어 도서관을 나와 추어탕으로 점심을 들고 식후 국도변 거리를 서성이면서 아침에 본 기러기로 시조를 한 수 남겼다. “겨울비 내린 아침 주남지 들녘 모습 / 하늘에 너울너울 기러기 삼각 편대 / 저수지 둑을 넘어서 앞다투어 나선다 // 바람이 세게 불까 기온이 내려갈까 / 빗속에 정찰 비행 기상을 살펴둬야 / 날 개면 지상에 내려 곡식 낱알 찾는다” ‘우중 기러기 편대’ 전문. 24.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