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음료가 된 동물의 젖 ‘밀크’의 글로벌한 역사 이야기
- 음식의 지구사로 읽는 밀크의 모든 것
이 책은 갓 태어난 포유류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젖’, 곧 ‘밀크’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에서는 ‘milk’를 우유로 번역하지만, 인류가 목축을 시작하면서 마시기 시작한 동물의 젖에는 ‘소젖’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밀크는 양젖, 염소젖, 말젖, 야크젖, 낙타젖, 순록젖, 당나귀젖 등 인류가 가축화해서 키운 포유동물의 젖 모두를 일컫는다. 그럼에도 ‘밀크 = 우유’의 등식이 성립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 《밀크의 지구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기원전 7000년부터 인류가 동물의 젖을 마시기 시작한 시기부터 현재까지의 밀크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밀크를 왜, 어떻게 마시기 시작했으며, 고대 사람들은 밀크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비롯해 신들의 음료이자 영혼의 음식으로 불린 ‘하얀 묘약’의 신화와 전설을 들려준다. 그러나 밀크가 언제나 묘약의 지위를 누린 것이 아니었다. 중세 유럽 도시에서 밀크 소비가 늘어나면서 그 수요를 맞추기 위해 도시 근교 낙농장에서는 대부분 소를 대량으로 키우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밀크의 대다수는 우유가 차지하게 되었다. 이 당시 우유는 냉장하지 않은 상태로 먼 거리로 운송되는 데다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타거나 소의 뇌와 같은 불순한 첨가제를 섞은 가짜 우유, 불량 우유가 유통되면서 ‘하얀 독약’이 되고 만다.
저자는 ‘묘약’에서 ‘독약’이 된 밀크, 그중에서도 특히 ‘우유 문제’를 해결해가는 역사를 통해 ‘우유의 영양과 기술’이 어떻게 발달해왔는지를 들려준다. 이는 곧 현대 우리가 소비하는 ‘가공’ 우유의 탄생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기술과 영양의 변천 과정만을 들려주지 않는다. 젖먹이를 둔 어머니들을 산업혁명의 현장으로 내몰기 위해 모유 대신 불량 우유를 먹게 함으로써 수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가슴 아픈 역사를 통해 ‘우유와 어머니의 관계사’를 살펴보고 있으며, 또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생적인 우유 공급 과정에 근대 국민국가가 개입하는 과정을 짚어나가면서 국가가 ‘공공보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역사’, 그리고 20세기 건강 유지의 필수 음료가 된 밀크(우유)의 광고와 선전을 통해서는 우유의 ‘선진적’ 이미지는 서양에서 출발한 영양학에 기초한 ‘영양의 식민화(nutritional colonization)’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이야기까지 촘촘하게 놓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저온 또는 고온에서 깨끗하게 박테리아를 ‘멸균’하고 몸에 나쁜 지방을 제거해 ‘가공’한 현대의 우유는 ‘묘약’인 것일까? 이제 ‘우유 문제’는 다 해결된 것일까? 우리가 마시는 ‘가공’ 우유는 ‘진짜’ 우유일까? 서구 유럽에서는 우유 소비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아시아에서는 왜 소비량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이 궁금하다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읽어보기 바란다.
덧붙여 이 책의 감수를 맡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주영하 교수는 특집을 통해 ‘한국 우유의 20세기사’를 들려준다. 일제시대 시행된 우유 정책, 그리고 해방 이후의 우량아 선발대회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어린 시절 마시던 우유 한 잔에 얽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더불어 분유에서부터 학교 급식 우유를 거쳐 저지방, 무지방 우유와 무가당, 유산균, 비타민과 무기질, DHA 강화 우유 등 시중에 널려 있는 그 많은 우유들이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유목이나 목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밀크’는 결코 우유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보다는 모든 포유동물의 젖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그러한 연유로 이 책의 제목은 ‘우유의 지구사’가 아닌‘밀크의 지구사’가 되었다. 독자들 또한 오랜 옛날부터 우유뿐 아니라 다양한 포유동물의 젖이 인간의 음료로 쓰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우유에만 한정하지 말고 모든 젖을 포괄하는 말인 밀크라는 말에 집중하기 바란다. (중략) 저자는 밀크의 전 세계화를 서양에서 출발한 영양학에 기초한 ‘영양의 식민화’라고 불렀다. 우유가 위주가 된 근대적 밀크는 영양학이란 근대 학문에 의해 강력한 지지를 받고서 인간을 위한 음료로 만들어졌다. (중략) 이 책은 ‘우유’를 중심으로 하여 모든 ‘밀크’의 지구사를 다루면서 동시에 ‘우유’의 영양과 기술의 역사를 함께 다루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우유와 어머니의 관계사’이기도 하다. 19세기 이래 불량 우유가 제공된 이유는 젖먹이의 모유권을 빼앗아 어머니들을 산업혁명의 현장인 공장으로 내몰기 위해서였다. 20세기 후반부터 아시아의 몇몇 국가에서는 우유 소비량이 빠르게 늘어났다. 우유가 지닌 ‘선진국’의 이미지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 사회가 지난 50년 사이에 경험한 우유로 번역된 밀크의 역사를 모두 관통하고 있다. ― 「초대의 글: 추억이 담긴 밀크의 지구사」 중에서
인류는 왜, 어떻게 밀크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이 책의 주요 내용 1
인류는 기원전 7000년부터 ‘가축의 젖’을 먹기 시작했다. 자연의 완전식품이자 포유동물의 생명의 바탕을 이루는 밀크는 아프리카와 서아시아에서 식량과 물이 귀한 시기에 인류의 생존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칼슘과 라이신, 그리고 비타민 D 등 다양한 영양소를 제공해주었다. 염소와 말, 낙타의 젖을 짜는 자세는 모두 달랐는데, 예를 들어 낙타젖을 짤 때는 한쪽 다리를 들어 그 위에 그릇을 올려놓고 젖을 짜야 한다. 어미의 젖을 얻을 더 많이 얻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새끼를 이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또는 어미의 질이나 직장에 바람을 불어넣는 방법이 있다. 고대 스키타이인은 암말의 항문에 공기를 불어넣은 후 젖을 짜냈다는 기록이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실려 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동물의 젖을 좋아한 것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류는 6세가 지나면 유당분해효소를 만들지 못하며, 지금도 세계 인구의 75~80퍼센트는 생유(?墾를 소화시키지 못한다. 또한 포유동물 대부분은 풀이 풍부한 계절에 새끼를 낳기 때문에 봄과 여름에 젖 분비기가 몰려 있어 계절별로 생산량의 변동이 심하고, 쉽게 부패하기 쉬웠다. 따라서 동물의 젖을 주로 마셨던 유목민들은 생유를 발효시켜 치즈 또는 알코올성 요구르트 음료로 마시거나 끓여 먹었다. 이 책 1부 「최초의 밀크」에서는 이 밖에도 사막의 베두인족, 동아프리카의 마사이족, 몽골과 인도 사람들, 고대 로마인과 북유럽 사람들이 밀크를 어떻게 먹고 향유했는지 세밀하게 들려준다.
몽골에서는 해마다 처음 말젖을 짜는 날을 축하하기 위해 축제를 연다. 바로 ‘하얀 음식’이라는 계절의 첫날로 말젖, 치즈, 커드, 술의 계절을 이른다. 말젖은 설사를 일으키기 때문에 대개 그냥 마시지 않는다. 기원전 1세기에 마르쿠스 바로가 쓴《농업론》에도 이러한 부작용이 쓰여 있다. 몽골 사람들이 아이락이라 부르는 마유주(+
柯� 쿠미스kumis)는 톡 쏘는 약한 술이다. 이것을 만들려면 신선한 말젖을 가죽이나 양가죽 주머니에 넣고 큰 막대기로 젓는다. 이때 막대기는 남자 머리만 한 크기로 끝부분을 파낸 것이다. 3일 후면 말젖이 시큼해지면서 아이락으로 발효된다. 몽골 사람들은 기념일과 경축일마다 아이락을 마신다. ― 1부 「최초의 밀크」 44쪽 중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는 생유를 즐기지 않았던 문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대 지중해 지역은 예나 지금이나 주로 염소젖과 양젖을 생산했다. 고대 로마의 마을과 도시에 살던 사람들이 생유를 즐겨 마시지 않은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대부분의 밀크가 마을과 도시 밖 목장에서 생산되어 밀크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둘째 밀크를 야만인과 교양 없고 촌스러운 유목민이나 먹는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 1부 「최초의 밀크」 46쪽 중에서
밀크는 하얀 묘약인가, 독약인가?
이 책의 주요 내용 2
밀크는 예부터 음식과 음료일 뿐 아니라 신비롭고 귀중한 존재였다. 순수한 이미지로 인해 신의 음료로 여겨졌으며, 병든 이를 고치는 약으로도 숭배되는 등 예부터 많은 문화권에서 ‘하얀 묘약’으로 칭송받았다. 소를 숭상하는 인도의 힌두교에서는 물소젖을 종교 정화의식에 썼으며, 신들에게 헌주로 바쳤다. 로마의 건국 시조인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젖을, 그리스 신화의 아기 제우스는 염소젖과 꿀을 먹고 자랐으며, 이집트에서는 암소 모습을 한 여신 이시스에게 밀크를 바쳤다는 신화가 전한다. 밀크는 치료제 역할도 했다. 대 플리니우스는 해독제부터 피부 가려움증 억제제, 눈연고 등 밀크의 치료법을 54가지 소개하면서 당나귀젖, 소젖, 염소젖이 가장 효험이 높다고 했다. 켈트 문화에서는 소젖이 결핵 치료에 이용되었으며, 17세기 영국에서는 간질과 결핵에 좋다고 여겼다. 또한 클레오파트라와 네로 황제의 부인 포파에아는 피부 노화 방지를 위해 당나귀젖으로 목욕을 했다고 전한다.
17세기 중반 이후 서양의 도시에서는 밀크 수요가 빠르게 늘어났다. 그러나 밀크는 그 특성상 빠르게 부패하고 먼 거리 유통이 어려웠기 때문에 비싼 가격에 팔렸으며, 신선한 밀크를 제공하기 위해 런던에서는 암소를 끌고 다니며 집 앞에서 바로 젖을 짜주는 우유 판매상이 있었다. 19세기에는 도시에도 낙농장과 외양간이 생기고 배달망이 구축되었지만, 지저분한 환경에서 키운 소는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고, 이런 소에게서 짠 젖은 비위생적인 운송과정을 거쳐 냉장도 하지 않은 채 저장되었기 때문에 질병과 사망
초대의 글 : 추억이 담긴 밀크의 지구사
0. 서문
1. 최초의 밀크
2. 하얀 묘약
3. 하얀 독약
4. ‘우유 문제’를 해결하다
5. 20세기 후반 우유의 또 다른 역사
특집 : 한국 우유의 20세기사
다양한 밀크 요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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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해나 벨튼 지음 / 역자 강경이 옮김 / 역자평점 10.0 / 출판사 휴머니스트 | 2012.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