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지킨 사람들
김슬옹 글, 이량덕 그림, 아이세움 출판사
먼저 한글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애쓴 여러 위인들을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 정의공주를 비롯한 세종대왕의 왕자들, 주시경, 최현배 같은 분들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세조와 신숙주, 성종, 허균, 김만중의 역할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었다.
둘째로 오늘날 우리 민족이 그리고 우리가 한글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 그냥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훈민정음을 만들고서 자칫 세상에서 사라질뻔한 위기도 여러 번 있었고, 언문이라 하여 양반들에 의해 멸시받으며 우리 국민의 반절만 사용하는 글자로 절락할뻔한 것을 오늘날 온 국민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난 열정과 희생으로 지켜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한 우리말, 우리글이기에 더욱 아끼고, 사랑하고, 소중하게 사용해야 하겠다. 우리 어린이들, 학부모님들, 정치인들, 특히 기자들과 출판 관련하여 일하는 분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과 글이 통하는 세상을 이룬 한글,
한글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
세종 대왕은 오랜 연구 끝에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글자를 창제했어요. 그리고 ‘훈민정음’이라고 이름 붙였지요. 훈민정음은 28개의 글자만 익히면 소리 나는 대로 글자를 적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세종 대왕이 만든 훈민정음은 사대부 양반들의 반대에 부딪혔어요. 사대부들은 조선을 세우는 데 아주 큰 공을 세운 데다 조선의 지배계층을 이룬 집단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뜻을 꺾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이 스러지지 않고 오늘날 우리가 아주 편하게 쓰는 우리글이 된 것은 한글을 지켜 낸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한글을 직접 만들고 널리 펴기 위해 노력한 세종 대왕부터, 선왕의 뜻을 받들고자 한 세조와 성종, 최초의 한글 소설을 쓴 허균, 한글 문법의 뼈대를 세운 주시경 등이 있지요. 《한글을 지킨 사람들》을 통해 한글이 왜 위대한 글자인지, 한글을 만들고 지켜 온 과정은 어떠했는지,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 세종 대왕은 왜 한글을 만들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한글’로 글을 적고, 읽으며 세상 만물과 소통합니다. 그럼 이전에는 어땠을까요? 우리 조상들은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그리고 널리 쓰이기 전까지 입으로는 ‘한국어’를 말하면서 글은 ‘한자’로 써야 했습니다. 한자는 아주 어렵고 오랫동안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양반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글을 읽고 쓸 수 없었지요. 글자를 모르니 교육을 받을 수도, 지식수준을 높일 수도 없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 대왕은 훈민정음을 만들었습니다. 글로써 백성들을 가르치고, 소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 위대한 문자, 한글을 지킨 사람들
한글을 창제한 세종 대왕은 신하들의 반발을 우려해 비밀리에 가족들과 실험을 했습니다. 절대 음감이었던 정의 공주는 세종의 소리 실험을 도왔지요. 왕이 된 세조와 성종은 세종이 만든 훈민정음을 널리 알리기 위해 여러 책을 펴내고, 직접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한편 집현전 학자들은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해례본을 만들었어요. 《훈민정음》해례본은 새 글자인 훈민정음에 대해 설명한 해설서입니다. 신숙주는 여기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우리 소리의 표준을 정한《동국정운》을 집필하기도 했어요. 최세진은 《훈몽자회》라는 책을 통해 한글 교육의 길을 열었지요.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과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은 민중과 소통하는 한글의 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글로 문학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주시경, 최현배, 이극로는 일제강점기, 우리 말글을 일제로부터 지키기 위해 한 몸 바친 분들입니다. 우리말 문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 말글을 잃지 않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미국인 헐버트는, 한글과 조선을 사랑한 외국인으로, 최초로 한글로만 쓴 교과서를 직접 펴냈습니다.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선 사람이지요.
《한글을 지킨 사람들》에서는 이렇게 한글을 지키는 데 노력한 12명의 인물들을 만나 보면서, 한글의 우수성과 과학성, 그리고 이를 지켜 온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세계가 인정한 한글의 우수성!
한글은 매우 짜임새 있고 조화롭게 만들어진 과학적인 글자입니다. 훈민정음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28개의 글자였고, 오늘날에는 자음과 모음을 합쳐 24자를 사용하는데, 이 24자로 무려 11,172개의 글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24개의 기본 글자들도 만들어진 원리가 우리의 발성 기관과 비슷하여 직관적으로 익힐 수 있는데다가 모양이 번듯하고 대칭을 이루어 읽고 쓰기도 쉽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이고 우수한 한글은 이제는 세계의 석학들에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글 김슬옹
김슬옹 선생님은 철도고등학교 1학년(1977년) 때 한글 운동에 뛰어들어 우리 말글의 슬기롭고 옹골찬 옹달샘이 되고자 ‘슬옹’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35년간의 한글 운동과 연구 공로로 문화체육부장관상(2012년)을 받았고 EBS 한글 지킴이로 뽑힌 바 있습니다. ‘동아리’라는 말을 백기완 선생님과 함께 처음으로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연세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상명대학교에서 훈민정음 연구로 문학 박사, 동국대에서 맥락 연구로 국어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글학회 연구위원, 한글문화연대 운영위원, 외솔회 이사, 세종한말글연구소 대표, 전국독서새물결모임 독서A교육연구소장. 짚신문학회 부회장 및 문광부 국어심의위원, 한글박물관 자문위원, 세종시 자문위원, 한글날 공휴일 지정 자문위원, 2012 한글날 기획행사 책임 연구위원, 2013 한글날 큰잔치 추진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외 37권(공저 포함)이 있습니다.
그림 이량덕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어린이책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으로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책벌레들》, 《나는야 미생물 요리사》, 《맛의 거리》, 《눈사람이 엄마를 데려갔어요》, 《떴다! 지식 탐험대》 등이 있습니다.
○ 띄워쓰기의 유래
조선시대 말까지 조상들의 글쓰기는 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하는 세로쓰기 방식이었어요. 띄어쓰기도 없었습니다. 띄어쓰기는 언제 처음 나왔을까요?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877년 영국 목사 존 로스(John Ross)가 편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이 그 첫 번째 사례입니다. 한글 문장이 먼저 나오고, 그 아래 발음, 또 그 아래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를 차례로 대응시켜 놓았는데요. 영어식으로 자연스레 띄어쓰기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1896년 서재필, 주시경,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 등이 만든 '독립신문'이 간행물로는 최초로 띄어쓰기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론 최초 순한글 신문이기도 하죠. 창간호인 4월 7일자 1면 '논설' (사설)을 보면 이와 관련된 부분이 나오는데요. 이후 1933년 조선어학회가 만든 '한글맞춤법통일안'이 나오면서 띄어쓰기는 보편화 되어 집니다.
○ 가로쓰기의 유래
앞의 외국인 사례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 중 최초의 가로쓰기(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문헌은 무엇일까요? 1895년에 나온 '국한회어(國韓會語)'가 그 예인데요.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 대역사전(한글 단어를 다른 나라말로 설명한 것)으로 2012년 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국립국어원 '쉼표, 마침표.' 연재글 홍윤표의 '한글이야기'(같은 이름의 책으로도 출간)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 한글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인가?
일부에선 한글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랐다는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이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훈민정음 해례본'(解例: 예를 들어 해설함)이 올라간 것을 확대해석한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맞지 않아요.
유네스코 유산은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 3가지가 있으며, 세계기록유산에는 훈민정음 외에 난중일기, 5.18민주화운동 기록물, 새마을운동 기록물 등 11개 한국 기록물이 올라있습니다.
○ 한글날의 초창기 이름은?
1926년 조선어연구회(후에 조선어학회)가 '왕조실록'의 "9월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다"는 내용을 근거로 음력 9월 29일(마지막 날로 임의지정, 당시 양력 11월 4일)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글은 언문, 조선글, 가갸글(가겨거겨 순으로 가르친 데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 암클(여자들이 쓰는 글) 등으로 불렸습니다.
이후 1928년에 '한글날'로 이름이 바뀌었고, 날짜도 양력으로 환산해 10월29일, 10월28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다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는데요.
1945년 책에 담긴 '9월 상한(上澣, 상순을 의미)'이라는 글을 근거로 상순의 끝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을 한글날로 확정합니다. 반포 500돌인 이듬해엔 공휴일로 지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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