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
석야 신웅순
나는 5, 60년 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둑길을 걸어 산모롱이를 돌아 공동묘지 산길을 오르면 서낭당 고개가 있었다. 산길을 내려가면 성냥간(대장간)이 있었다. 그곳은 쉬어가는 우리들의 정거장이었다. 대장간 망치소리를 뒤로하고 둑길을 한참 가면 신작로길이 나온다. 신작로 플라타너스 길을 15분쯤 가면 ○○초등학교가 있다. 학교에서 집까지 1시간 반쯤 걸렸다.
나와 늘 동행해준 친구가 있었다. 가수 명국환의 노래 ‘방랑시인 김삿갓’ 이었다.나는 이 노래를 좋아했고 많이도 불렀다. 가사의 뜻이야 제대로 알았겠냐만 서낭당 고개에서, 공동묘지 산길에서 학교와 집을 오가며 불렀던 김삿갓이다.
가수 명국환이 향년 96세로 별세했다. ‘백마야 우지 마라’, ‘방랑시인 김삿갓’, ‘아리조나 카우보이’ 등으로 실향의 아픔을 노래했던 1950년대 명품 가수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은 1957년에는 영화 ‘김삿갓’의 주제가로 당시 대히트한 곡이었다.
한국전쟁 직후였으니 참으로 살기가 어려웠던 때였다. 실향민의 설움이야 말해 무엇하랴. 트롯은 우리들에게 민족상잔과 실향민의 아픔을 달래주었던 유일한 출구이자 명약이었다. 남인수 못지 않게 명국환도 인기를 꽤 누렸던 가수였다.
명국환은 월세 23만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에서 가족 없이 정부의 지원금만으로 홀로 살았다고 한다.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무연고 장례’를 치를 뻔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도 KBS 가요무대에 나왔었다. 이제와 명예도 인기도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심한 것은 세월이다.
내발 달린 소나무 상에 놓인 죽 한 그릇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 함께 떠도는구나
주인께서는 부끄럽다는 말 마시오
나는 본디 물에 푸른 산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사랑한다오
-김삿갓의 「죽 한 그릇」
김삿갓이 어느 집에 가 밥 한 그릇을 청했다. 주인이 가난해 멀건 죽 한 그릇 차려주었다. 다른 것을 대접할 수 없어 미안해하는 주인에게 하도 고마와 지은 시이다. 멀건 죽이니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떠돌 수 밖에 없다. 얼마나 고마웠으면 김삿갓은 본디 물 속에 떠도는 푸른 산을 사랑한다고 했을까.
김삿갓도 떠났고 김삿갓을 부른 명국환도 떠났다. 내 역시 김삿갓이 좋아 한 때 논문을 썼으니 때가 되면 나도 훌훌 가야할 것이 아니냐?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흰구름 뜬 고개 넘어 가는 객이 누구냐
열두 대문 문간방에 걸식을 하며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떠나가는 김삿갓
6.25 이후 먹고 사는 일이 어렸웠던 시절, 근심 걱정 다 버리고 떠도는 김삿갓, 어린 시절에 별 뜻 없이 불렀던 김삿갓 노래. 학교에서 파하고 심심하면 산언덕에 올라 이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나도 어느덧 풍진 세월을 건너 나그네 시인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인생은 덧없기 짝이 없다. 인생 행운유수 일편부운이 이 아닌가.
-2023.8.3. 석야 신웅순의 서재,여여재.
첫댓글 人良卜一하오리까 대감댁 종년이 하는소리다
月月山山하거든 대감이 말을 받는다
丁口竹天이로다 犬者禾重이로다 김삿갓이 일어나며 웃으며 하는 소리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자주 좋은글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석봉-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쓰고는 싶은데 늘 부족하니 글쓰기 참 어렵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