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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골난망(刻骨難忘)
뼈 속에 새겨 두고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남에게 입은 은혜가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잊히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다.
刻 : 새길 각(刂/6)
骨 : 뼈 골(骨/0)
難 : 어려울 난(隹/11)
忘 : 잊을 망(心/3)
(유의어)
결초보은(結草報恩)
백골난망(白骨難忘)
다른 사람에게 입은 은덕에 대한 고마움이 마음 속 깊숙이 사무치어 결코 잊을 수 없다는 뜻이다. 풀을 묶어서 즉 죽어서라도 은혜를 갚는다는 뜻의 결초보은(結草報恩)이나, 죽어서 백골이 되어도 그 은혜를 잊을 수 없다는 뜻의 백골난망(白骨難忘)과 비슷한 말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의 위무자(魏武子)는 병이 들어, 그의 아들 위과(魏顆)에게 자기가 죽으면 후처였던 위과의 서모(庶母)를 개가시키라고 하였다가 다시 번복하고는 서모가 순사(殉死; 남편의 뒤를 따라 죽음)하게 하여 자기 무덤에 함께 묻어달라고 유언하였다. 그러나 위과는 서모를 순사하도록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서모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하였다.
그 뒤 진(晉)나라의 위과가 전쟁터에서 진(秦)의 환공(桓公)이 보낸 장수인 두회(杜回)와 싸우게 되었는데, 이때 두회가 탄 말이 넘어져 위과는 두회를 사로잡을 수 있었다. 위과의 꿈속에 서모의 아버지가 나타나 딸을 지켜준 고마움에 보답하려고 풀을 엮어서 두회가 탄 말이 걸려 넘어지게 했다고 말하였다. 은혜를 잊지 못한 이 이야기는 좌씨전(左氏傳)에서 유래하였다.
관우(關羽)가 독 화살을 맞아 뼈 속까지 화농이 생겼을 때 화타(華陀)는 마취도 없이 관우의 살을 가르고 뼈 속의 고름을 긁어내는 수술을 하였다는데 말 그대로 뼈를 쪼는(깨는) 즉 각골(刻骨)의 고통을 관우는 이겨낸 것이다. 마취도 없이 멀쩡한 살을 가르고 뼈에 못을 박는 고통을... 그런 심한 고통이 오더라도 입은 은혜을 잊을 수 없다는 말이다. 어떠한 수난과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 은혜를 간직하고 갚겠다는 뜻이다.
■ 각골난망(刻骨難忘)
각골난망(刻骨難忘)은 은혜가 뼈에 새겨질 만큼 커서 잊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뼈에 사무치는 은혜'를 입었을 때 쓰는 말이다. 또 '오종대은 명심불망'이라는 말이 있다. 다섯 가지 큰 은혜를 마음에 새기고 잊지 말라고 하는데 국가, 부모, 직장, 스승, 친구에 대한 은혜로 정의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주서 벼슬을 하던 사람이 고향인 충청도로 낙향을 하던 중에 길가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부부와 열이 펄펄 나는 아이를 발견하고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입히고 주막으로 옮긴 다음 의원을 불러 아이를 치료해 준 뒤 다음날 노자돈까지 주었는데 이를 받은 부부가 이름을 묻자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니, 내세울 바가 아니다"고 하였으나 이름을 재차 묻자 "주서 벼슬을 하다가 물러나는 이(李)가 입니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후 그 어린아이는 왕비가 되었다. 불우했던 과거를 딛고 한 나라의 중전으로 존귀한 몸이 되어서도 부모님으로부터 들었던 이름 모를 선비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가 임금님에게 간청을 하여 그 분을 찾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15년 전 주서의 벼슬을 하였던 충청도 출신의 이씨 성을 가진 분을 결국 찾았는데 부원군은 직접 나서서 그 선비를 극진히 대접을 하였으며, 임금님도 선비의 어진 마음을 높이 치하하고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여기서 정순왕후와 영조대왕이 왕비와 임금님이며 부원군은 김한구이다.
경행록에 "은혜와 의리를 널리 베풀도록 하라"고 했으며, 진정한 은혜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이며 은혜를 입은 사람이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면 짐승보다 못하다고 여겼다. 베푼 은혜는 잊어버리고 받은 은혜는 잊지 말라고 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가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의 덕분으로 살아간다. 세수하는 물, 아침밥, 출근길 차량에서부터 하루 종일 상대하는 사람과 일들이 나의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당연히 나의 것처럼 알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이제 은혜를 베풀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해 보십시오. 감 4개 또는 감과 사과로 감사의 뜻을 전해 보십시오. 저도 예외는 아닌지라 내면을 정리하면서 차근차근히 하나 하나 갚아 나가고자 합니다.
■ 남에게 베푼 일은 잊어버리고, 신세 진 일은 잊지 말라
我有功於人不可念, 而過則不可不念.
(아유공어인불가념, 이과즉불가불념)
내가 남에게 공이 있거든 그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나, 허물이 있다면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人有思於我不可忘, 而怨則不可不忘.
(인유사어아불가망, 이원즉불가불망)
남이 내게 베푼 은혜가 있거든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되나, 원한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아니하면 안 된다.
누구나 자신이 어떤 희생을 지불했거나 또 부담을 느끼면서도 남에게 무엇을 베풀었을 때는 비록 그것이 자발적인 행위였다 하더라도 유형무형의 보은을 은근히 바라게 마련이다. 한편 내가 받은 은혜는 까맣게 잊고 또 어쩌다가 원망을 듣게 되면 그것은 좀처럼 잊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인지상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보은을 했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보은을 안 하면서 남에게 베푼 것을 마음에 새겨 두고는 보은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모순 속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에게 공이 있거든 그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나, 허물이 있다면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남이 내게 베푼 은혜가 있거든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되나, 원한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아니하면 안 된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44)"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의 말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예수에게는 원수 자체가 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에게는 원수가 될 수가 없다. 그 까닭은 예수는 과거의 기억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지금 이 순간만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은 '원수는 없다'로 해석을 해야 예수가 말하고자 하는 취지가 온전히 전달될 수 있다. 예수가 만약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사람을 만났다면 예수는 그를 자신과 한치의 다름도 없는 똑 같은 사람으로 여길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모든 과거의 관념을 버리고 참나(眞我)를 되찾아 완전한 자유와 지극한 행복만이 존재하는 천국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써 도와줄 것이다.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성인으로 추앙 받을 수 있는 참나가 잠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참나는 다만 스스로 쌓아 만든 마음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사람을 죽인 살인자라 하더라도 모든 관념을 깨부수어 없애버려 참나로 다시 태어난다면 그는 세상의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위대한 성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인 '성(性)'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완전한 자유와 지극한 행복만이 존재하는 참된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에 얽매인 삶을 산다면 영원히 모순과 갈등을 반복하는 삶만을 살 뿐이다.
내가 남에게 공이 있거든 그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나, 허물이 있다면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세상에는 그 어떤 공(功)도 없다. 다만 功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功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은 그 功에 대하여 상(賞)을 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것을 내세우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남들이 그것을 功으로 인정하여 賞을 내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功을 우리 자신이 내세워 賞을 받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모순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 될 뿐이다.
허물(過)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 자신이 한 일에 대하여 남들이 그것을 허물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거나 그 죄값을 받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그것이 허물인 줄을 알고 우리 자신이 행한다면 그것은 끊임없는 모순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 될 뿐이다.
참된 삶에서는 功도 허물도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의 욕심이 만들어내는 거짓 삶에는 功과 허물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우리를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한 고통의 삶으로 빠트리게 된다.
우리가 행복을 위한 삶을 산다면 우리의 삶에는 끊임없는 功과 허물이 만들어지지만, 우리가 행복으로 시작하는 삶을 산다면 功과 허물이라는 단어 자체가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고 만다. 행복을 위한 삶에서는 결코 행복을 찾을 수 없고, 행복으로부터 시작하는 삶에는 오로지 행복만이 존재하게 된다.
남이 내게 베푼 은혜가 있거든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되나, 원한이 있다면 그것을 잊지 아니하면 안 된다.
우리 자신이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하여 꼭 지켜야 할 말임은 분명하나, 문제는 은혜(恩)와 원한(怨)을 판단하는 기준이 사람마다 모두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A라는 사람은 그것을 은혜와 원한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자인 B는 그것을 은혜와 원한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이에 모순과 갈등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은혜와 원한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이해관계에 얽혀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고,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는 이기심으로 비롯된다.
그러나 우리가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심의 삶을 산다면 우리의 삶에는 은혜라는 말도 원한이라는 말도 모두 사라지고 오로지 사랑과 자비만이 남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남을 이롭게 하는 이타심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이타심만이 있는 삶을 살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 또한 우리 자신의 욕심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가 스스로 쌓아 만든 모든 관념을 깨부수어 없애버리면 우리의 마음이 텅 비어 고요해져(虛靜)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만다(無爲). 그런 상태가 진정한 사랑과 자비의 상태이다. 사랑과 자비를 행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고, 그 사람 자체가 사랑과 자비일 뿐이다.
그런 사람이 어떤 상황에 마주치게 되면 사랑과 자비를 행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고(無爲), 오직 그 사람의 보여주는 언행(言行)이 사랑과 자비일 뿐이다. 그런 행적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예수이다.
예수는 병든 자들을 고쳐주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살려주며,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삶을 한평생 살았지만 그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無爲). 그것이 바로 노자(老子)가 강조하는 무위의 삶이고, 예수가 보여준 사랑과 자비의 삶이다.
있는 그대로 스스로 그러한 세상에는 그 어떤 모순도 갈등도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모순과 갈등,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문제는 모두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낼 뿐이다. 돈아 아무리 많다고 그것이 얼마나 행복할 것이며, 돈이 없으면 몸은 좀 불편할 수 있어도 그것이 어찌 불행한 일이겠는가?
이 세상에는 오직 행복만으로 가득한데, 사람들은 행복을 찾기 위하여 살고 있으니 그 행복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오직 사랑과 자비로 가득한데,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은혜와 원한을 반복하며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다. 그것은 모두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만들어내는 결과일 뿐이다.
■ 은혜는 보답하라
◆ 은혜는 받은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늘 주인공만 하고, 실제 인생에서도 늘 멋진 날만 있었을 것 같은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의 말이다. "내가 무일푼이었던 시절, 그들의 소파에서 잠을 잤고 그들에게 빌린 돈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그런 클루니에게도 어두운 과거가 있었던 모양이다. 상대적 궁핍이 아니라, 실제적 궁핍의 날들로 생각보다 길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클루니는 잠자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친구들의 집을 기웃거려야 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서 밥을 사 먹어야 했다. 다른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클루니 자신이 한 말이니 사실임에 틀림이 없을 듯 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클루니의 자세이다. 클루니는 부끄럽지도 않은지, 그런 이야기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어렵고,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람은 과거를 숨기고 싶어한다. 그래서 수치스럽고, 민망한 일들은 없었던 것처럼, 입을 꽁꽁 다무는 경우가 많다. 꺼내 봤자 누추하기만 할 뿐인 까닭이다.
클루니는 친구들의 소파에서 잠을 잘 때, 빌린 돈으로 밥을 사 먹을 때,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한 모양이었다. 각골난망(刻骨難忘), 누군가에게 받은 은혜를 뼈에 새긴다는 말도 있듯이, 클루니는 그 기억을 뼈에 새겼던 것 같다.
◆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한다.
클루니의 말이다. "친구들은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항상 도와줬고 나를 오랫동안 응원해 줬다. 나는 친구들이 없이는 그 어떤 것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1982년부터 저예산 영화에 출연하면서 경력을 쌓았지만, 정작 데뷔다운 데뷔는 1985년에 이르러서야 할 수 있었던 클루니. 데뷔 이후에도 클루니의 어둠의 세월은 계속되었고, 1990년이 되면서부터 주연으로 영화에 출연하였다.
이후 스타로 발돋움하며, 4편의 시리즈물 드라마 등에 출연하고, 80여 편의 영화에서 주연과 감독을 하면서 클루니는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성에 2차례나 뽑히기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바뀐 클루니.
그런 클루니이니, 당연히 만나는 사람들이 영화계 톱스타, 사회적 명사, 지도자급 인물들이었을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는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끼어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강남에 집을 사려고 몰려드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클루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마다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만든 사람들과의 관계도 소중히 했다.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고생을 같이한 아내 조강지처(糟糠之妻) 대하듯 한 것이다.
◆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클루니의 말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어떻게 보답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음, 각자 100만달러를 받는 건 어때?'라고 물었다."
지난 2013년 개봉한 영화 '그래비티'에 출연한 클루니. 알폰소 쿠아론이 감독을 맡은 그래비티는 우주를 탐사하던 주인공이 폭파된 인공위성 잔해와 부딪히며 떠돌던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줄거리였다. 흥행의 성공은 미지수.
출연 제의를 수락할 당시, 클루니는 이 영화의 흥행을 자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클루니는 고정 출연료 대신 러닝개런티, 즉 영화 수익의 비율을 출연료로 받기로 했다. 흥행에 성공하면 대박 나지만, 실패하면 출연료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그래비티는 흥행에 성공했다. 전 세계에서 무려 7억달러(7800억원) 이상의 흥행 수익을 거뒀고,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7개 부문 수상을 했다. 클루니는 그래비티로 1400만달러(156억 원)의 수익금을 얻게 됐다.
클루니는 곧바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시내에 있는 한 창고에 낡은 밴을 몰고 가 현금 1400만 달러를 가득 채운 뒤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앞에 한 말을 꺼내면서, 14명 친구들에게 100만 달러씩을 선물한 것이다.
친구들 중 사업으로 성공한 랜디 거버라는 친구가 받지 않는다고 말하자, 클루니는 "네가 받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거버도 받기로 했고, 클루니는 친구들 모두에게 100만 달러씩을 선물했다.
◆ 이성민 박사의 톡팁스(말의 요령) :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 원수 갚기는 쉬워도, 은혜 갚기는 그만큼 어렵다는 말이다.
2013년 클루니는 자신의 데킬라 회사를 매각했다. 데킬라 회사의 매각 대금은 10억 달러(1조 1000억원)이었다. 하지만 클루니는 그 돈으로 친구들에게 선물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친구들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클루니는 출연작 '그래비티'의 러닝개런티로 선물했고, 친구들도 마음 편하게 받을 수 있었다.
돈이 많다고 모두 클루니처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더 갖고 싶게 하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마음가짐이다. 클루니는 은혜를 갚겠다는 마음을 가졌고, 그것을 실천했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은혜는 받은 사람이 기억하는 것이다.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은혜는 반드시 보답하라.
▶️ 刻(새길 각)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亥(해; 분명하게 하다, 각)로 이루어졌다. 칼로 새기다, 표를 하다, 구분짓다의 뜻을 나타낸다. 십오분(十五分)을 일각(一刻)이라 한다. ❷회의문자로 刻자는 ‘새기다’나 ‘벗기다’, ‘깎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刻자는 亥(돼지 해)자와 刀(칼 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亥자는 돼지를 그린 것이다. 그런데 亥자는 살아있는 돼지가 아닌 가공한 돼지를 그린 것이다. 돼지를 뜻하는 글자로는 豕(돼지 시)자도 있다. 이 두 글자의 갑골문을 보면 豕자는 돼지를 온전히 그렸지만 亥자는 머리와 다리가 잘린 모습이었다. 이렇게 도살한 돼지를 뜻하는 亥자에 刀자가 결합한 刻자는 잡은 돼지를 자른다는 뜻이다. 刻자에 ‘벗기다’나 ‘깎다’라는 뜻이 있는 것도 사실은 돼지를 나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刻자는 단순히 무언가를 새기거나 부각한다는 뜻으로만 쓰이고 있다. 그래서 刻(각)은 (1)연장으로 나무나 돌 같은 데에 글이나 그림 따위를 새기는 일 (2)조각(彫刻) (3)누각(漏刻) (4)시간(時間) 단위의 하나. 시헌력(時憲曆)에서 하루의 12분의 1인 1시간(지금의 2시간)을 8로 나눈 것의 하나. 곧 15분 동안을 말함 (5)시헌력 이전에는 하루의 1/100이 되는 시간. 곧 14분 24초 동안을 이름 등의 뜻으로 ①새기다 ②벗기다, 깎다 ③깎아내다 ④조각하다 ⑤시일(時日)을 정하다 ⑥다하다, 있는 힘을 다 들이다 ⑦각박(刻薄)하다 ⑧모질다, 몰인정하다 ⑨꾸짖다, 잘못을 지적하여 말하다 ⑩괴롭게 하다, 해치다, 해롭게 하다 ⑪심하다(정도가 지나치다), 엄하다(매우 철저하고 바르다), 급하다 ⑫시간(時間) ⑬때, 시각(時刻) ⑭새김, 새겨 놓은 솜씨, 그릇의 각명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새길 간(刊)이 있다. 용례로는 모나고 혹독하고 인정이 박함을 각박(刻薄), 도장을 새김 또는 새겨 만든 도장을 각인(刻印), 조각한 판목으로 인쇄한 책을 각본(刻本), 몹시 애씀이나 대단히 힘들임을 각고(刻苦), 고마움 또는 원한이 마음속 깊이 새겨짐을 각골(刻骨), 날짜를 정함을 각일(刻日), 나무를 오리어 새기거나 깎음을 각목(刻木), 시각이 급한 이때를 각하(刻下), 도자기에 꽃무늬를 새김을 각화(刻花), 글씨나 형상을 나무나 돌 따위에 파는 데 쓰는 칼을 각도(刻刀), 글자를 새김을 각자(刻字), 마음에 깊이 새겨 두는 일을 심각(深刻), 곧 그 시각에를 즉각(卽刻), 어떤 사물을 특징지어 두드러지게 함을 부각(浮刻), 시간의 어느 한 시점을 시각(時刻), 정해진 시각에 늦음을 지각(遲刻), 한 시의 첫째 시각 곧 15분을 일각(一刻), 잠깐 동안이나 눈 깜박할 동안을 경각(頃刻), 그림이나 글씨를 나뭇조각에 새김을 판각(板刻), 고니를 새기려다 실패해도 집오리와 비슷하게는 된다는 각곡유목(刻鵠類鶩), 입은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뼈에까지 사무쳐 잊혀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각골난망(刻骨難忘),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으로 판단력이 둔하여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각주구검(刻舟求劍), 고니를 새기려다 실패해도 집오리와 비슷하게는 된다는 뜻으로 성현의 글을 배움에 그것을 완전히 다 익히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선인은 될 수 있다는 말 또는 학업에 정진하여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는 말을 각곡유목(刻鵠類鶩), 마음속 깊이 새겨 둠을 일컫는 말을 각골명심(刻骨銘心), 심신을 괴롭히고 노력함 또는 대단히 고생하여 힘써 정성을 들임을 일컫는 말을 각고면려(刻苦勉勵), 아무리 꾸며도 무염이란 뜻으로 얼굴이 못생긴 여자가 아무리 화장을 해도 미인과 비교할 바가 못됨 즉 비교가 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각화무염(刻畫無鹽), 마음속 깊이 분하고 한스러움을 일컫는 말을 각골분한(刻骨憤恨), 마음속 깊이 새겨 잊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각루심골(刻鏤心骨), 나뭇잎이 저 산 모양이 드러나 맑고 빼어나다는 뜻으로 가을 경치가 맑고 수려함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각로청수(刻露淸秀), 나무를 깎아 관리의 형상을 만든다는 뜻으로 옥리를 심히 미워해 이르는 말을 각목위리(刻木爲吏), 살을 에고 뼈를 깎는다는 뜻으로 고통이 극심함을 이르는 말을 각기삭골(刻肌削骨), 뼈에 사무치도록 마음속 깊이 맺힌 원한을 이르는 말을 각골통한(刻骨痛恨), 촛불이 한 치 타는 동안에 시를 지음이라는 각촉위시(刻燭爲詩), 각박하여 집을 이룬다는 뜻으로 몰인정하도록 인색한 행위로 부자가 됨을 이르는 말을 각박성가(刻薄成家) 등에 쓰인다.
▶️ 骨(뼈 골)은 ❶회의문자로 月(월, 살)과 부수(部首)를 제외한 글자 冎(과)의 합자이다. 骨(골)은 살 속에 있는 뼈, 몸 속의 뼈, 한자의 부수로 되어 뼈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骨자는 '뼈'나 '골격', '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서의 骨자는 뼈와 관절이 서로 이어져 있는 모습이었지만, 금문에서는 여기에 肉(고기 육)자가 더해져 뼈와 살을 함께 표현하게 되었다. 이처럼 骨자는 뼈와 살을 함께 그린 것이지만 단순히 '뼈'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骨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뼈'나 '신체'와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骨(골)은 (1)뼈 (2)골품(骨品)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뼈 ②골격(骨格) ③기골(氣骨), 의기(義氣) ④사물(事物)의 중추(中樞), 중심(中心), 골수(骨髓) ⑤몸, 구간(軀幹; 머리와 사지를 제외한 몸통 부분) ⑥인품(人品), 됨됨이 ⑦골품(骨品) 제도(制度) ⑧문장(文章)의 체격(體格) ⑨굳다, 강직하다 ⑩글씨가 힘차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뼈 해(骸),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살가죽 기(肌), 가죽 피(皮)가 있다. 용례로는 일이나 말의 골갱이를 골자(骨子), 척추동물의 몸을 이루고 지탱하게 하는 여러 가지 뼈의 조직을 골격(骨格), 뼈가 부러짐을 골절(骨折), 건물의 주요 구조가 되는 뼈대를 골조(骨組), 몸이 파리하여 뼈가 앙상함을 골립(骨立), 고마움 또는 원한이 마음속 깊이 새겨짐을 각골(刻骨), 죽은 사람을 화장하고 남은 뼈를 유골(遺骨), 살이 전부 썩은 사람의 머리뼈를 해골(骸骨), 죽은 사람의 살이 다 썩고 남은 뼈를 백골(白骨), 단단한 기질로 굽히지 아니하는 성품을 강골(强骨), 쉽게 사람을 따르지 않는 기질을 반골(反骨), 몸이 약한 골격 또는 그런 사람을 약골(弱骨), 오래되거나 늙어서 가치나 쓸모가 없게 된 물건을 골동품(骨董品), 뼈가 부러지는 부상 또는 그 상처를 골절상(骨折傷), 동물의 몸을 버티고 보호하며 힘살이 들러붙는 뼈로 된 조직을 골격계(骨格系), 뼈 조직에 석회 성분이 줄어들어 다공성을 나타내는 증세를 일컫는 말을 골다공증(骨多孔症), 가까운 혈족 사이의 사랑을 일컫는 말을 골육애(骨肉愛), 부자나 형제 또는 같은 민족 간에 서로 싸움을 일컫는 말을 골육상잔(骨肉相殘), 뼈와 살이 서로 다툼의 뜻으로 형제나 같은 민족끼리 서로 다툼을 뜻함을 일컫는 말을 골육상쟁(骨肉相爭), 뼈와 살을 같이 나눈 사이로서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친족이란 뜻으로 부자와 형제 또는 그와 가까운 혈족을 지칭하는 말을 골육지친(骨肉之親),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듣기에 괴로운 직언을 하는 강직한 신하를 일컫는 말을 골경지신(骨骾之臣), 가까운 혈족 사이의 정분을 일컫는 말을 골육지정(骨肉之情) 등에 쓰인다.
▶️ 難(어려울 난, 우거질 나)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새 추(隹; 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근; 난)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진흙 속에 빠진 새가 진흙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다는 뜻이 합(合)하여 '어렵다'를 뜻한다. 본래 菫(근)과 鳥(조)를 결합한 글자 형태였으나 획수를 줄이기 위하여 難(난)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새의 이름을 가리켰다. ❷형성문자로 難자는 '어렵다'나 '꺼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難자는 堇(진흙 근)자와 隹(새 추)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堇자는 진흙 위에 사람이 올라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근, 난'으로의 발음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難자는 본래 새의 일종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일찌감치 '어렵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새를 뜻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새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가 왜 '어렵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혹시 너무도 잡기 어려웠던 새는 아니었을까? 가벼운 추측이기는 하지만 전혀 근거가 없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래서 難(난, 나)은 (1)어떤 명사(名詞) 아래에 붙어서 어려운 형편이나 처지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렵다 ②꺼리다 ③싫어하다 ④괴롭히다 ⑤물리치다 ⑥막다 ⑦힐난하다 ⑧나무라다 ⑨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⑩공경하다, 황공해하다 ⑪근심, 재앙(災殃) ⑫병란(兵亂), 난리(亂離) ⑬적, 원수(怨讐) 그리고 ⓐ우거지다(나) ⓑ굿하다(나) ⓒ어찌(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쓸 고(苦), 어려울 간(艱)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쉬울 이(易)이다. 용례에는 어려운 고비를 난국(難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난문(難問), 어려운 문제를 난제(難題), 전쟁이나 사고나 천재지변 따위를 당하여 살아 가기 어려운 처지에 빠진 백성을 난민(難民), 풀기가 어려움을 난해(難解), 일을 해 나가기가 어려움을 난관(難關), 무슨 일이 여러 가지 장애로 말미암아 순조롭게 진척되지 않음을 난항(難航), 꺼리거나 어려워하는 기색을 난색(難色), 어려움과 쉬움을 난이(難易), 견디어 내기 어려움을 난감(難堪), 바라기 어려움을 난망(難望), 처리하기 어려움을 난처(難處), 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을 난망(難忘), 어떤 사물의 해명하기 어려운 점을 난점(難點), 뭐라고 말하기 어려움을 난언(難言), 병을 고치기 어려움을 난치(難治), 이러니 저러니 옳으니 그르니 하며 시비를 따져 논하는 것을 논란(論難), 남의 잘못이나 흠 따위를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을 비난(非難), 경제적으로 몹시 어렵고 궁핍함을 곤란(困難),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을 재난(災難), 힐문하여 비난함을 힐난(詰難), 괴로움과 어려움을 고난(苦難), 위험하고 어려움을 험난(險難), 공격하기 어려워 좀처럼 함락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난공불락(難攻不落),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일컫는 말을 난망지은(難忘之恩),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누가 더 낫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비슷함 또는 사물의 우열이 없다는 말로 곧 비슷하다는 말을 난형난제(難兄難弟), 마음과 몸이 고된 것을 참고 해나가는 수행을 일컫는 말을 난행고행(難行苦行), 어려운 가운데 더욱 어려움이 있다는 말을 난중지난(難中之難),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생겨난다는 말을 난사필작이(難事必作易), 어렵고 의심나는 것을 서로 묻고 대답함을 일컫는 말을 난의문답(難疑問答), 매우 얻기 어려운 물건을 일컫는 말을 난득지물(難得之物), 변명하기 어려운 사건을 일컫는 말을 난명지안(難明之案), 교화하기 어려운 어리석은 백성을 이르는 말을 난화지맹(難化之氓) 등에 쓰인다.
▶️ 忘(잊을 망)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 심(心=忄,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亡(망; 숨다, 없어지다)의 합자(合字)이다. ❷회의문자로 忘자는 '잊다'나 '상실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忘자는 亡(망할 망)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亡자는 날이 부러진 칼을 그린 것으로 '망하다'나 '잃다', '없어지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없어지다'는 뜻을 가진 亡자에 心(마음 심)자를 결합한 忘자는 '마음을 없애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잊으라는 뜻이다. 忘자를 보니 '미망인'이란 단어가 생각난다. 하지만 미망인은 '아직 잊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未忘人(미망인)이 아니라 ‘아직 따라 죽지 않은 사람’이란 뜻의 未亡人(미망인)이다. 그래서 忘(망)은 주의하는 마음이 없어지다, 잊다는 뜻으로 ①잊다, 기억(記憶)하지 못하다 ②버리다, 돌보지 않다 ③끝나다, 단절되다 ④소홀(疏忽)히 하다 ⑤망령되다 ⑥상실하다, 잃어버리다 ⑦없다 ⑧건망증(健忘症)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사실을 잊어 버림을 망각(忘却) 또는 망실(忘失), 집안을 망치는 못된 언동을 망덕(忘德), 은혜를 잊음을 망은(忘恩), 잊어 버림을 망기(忘棄), 나이를 잊음을 망년(忘年), 근심을 잊는 일을 망우(忘憂), 여덟 가지 덕목을 잊어버렸다는 뜻에서 무뢰한을 일컫는 말을 망팔(忘八), 보고 듣는 것을 자꾸만 잊어 버림을 건망(健忘), 잊기 어렵거나 또는 잊지 못함을 난망(難忘), 잊지 아니함을 불망(不忘), 잊지 않게 하려는 준비를 비망(備忘), 기억에서 사라짐을 소망(消忘), 잊을 수가 없음을 미망(未忘), 정신이 흐려 잘 보이지 않음을 혼망(昏忘), 노인이 서로 가까이 교제하는 젊은 벗을 일컫는 말을 망년우(忘年友), 자신과 집안의 일을 잊는다는 뜻으로 사私를 돌보지 않고 오직 나라와 공公을 위해 헌신함을 이르는 말을 망신망가(忘身忘家), 입은 은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뼈에까지 사무쳐 잊혀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각골난망(刻骨難忘), 일을 이루려고 끼니조차 잊고 분발 노력함을 이르는 말을 발분망식(發憤忘食), 남에게 입은 은덕을 잊고 배반함을 이르는 말을 배은망덕(背恩忘德), 죽어도 잊지 못할 큰 은혜를 입음이란 뜻으로 남에게 큰 은혜나 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을 표시하여 이르는 말을 백골난망(白骨難忘), 자나깨나 잊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오매불망(寤寐不忘), 그리워서 잊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연연불망(戀戀不忘), 나이 차이를 잊고 허물없이 서로 사귐을 이르는 말을 망년지교(忘年之交), 눈앞의 이익을 보면 탐내어 의리를 저버림을 이르는 말을 견리망의(見利忘義), 자꾸 생각나서 잊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염념불망(念念不忘), 마음에 새기어 오래오래 잊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명심불망(銘心不忘), 사랑하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해 잊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상사불망(相思不忘), 사람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득능막망(得能莫忘), 잠을 안 자고 밥 먹는 것도 잊는다는 뜻으로 매우 열심히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폐침망식(廢寢忘食),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교제하는 벗을 이르는 말을 망년지우(忘年之友), 잊어버리고 별로 생각하지도 않음을 이르는 말을 치지망역(置之忘域), 시름을 잊게 하는 물건 또는 술의 이칭으로 술을 마시면 근심 걱정을 잊게 된다를 이르는 말을 망우지물(忘憂之物), 배가 고픈데도 먹는 일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뜻으로 걱정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기이망식(飢而忘食), 편안한 가운데서도 늘 위험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늘 스스로를 경계하여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어려움에 대처함을 이르는 말을 안불망위(安不忘危), 밤이 되어도 잠자는 것을 잊는다는 뜻으로 일에 열중함을 이르는 말을 야이망침(夜而忘寢), 사모해 잊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사모불망(思慕不忘), 눈에 스쳐 지나가면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번 본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를 이르는 말을 과목불망(過目不忘), 자꾸 잊어 버리기를 잘함을 이르는 말을 선망후실(先忘後失), 사람이 이 세상에 새로 태어날 때에는 전세의 일을 모두 잊는다를 이르는 말을 격세즉망(隔世卽忘),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이르는 말을 난망지은(難忘之恩), 영원히 은혜나 은덕을 잊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만세불망(萬世不忘), 뜻을 얻어 자신의 형체마저 잊어버리다는 뜻으로 매우 기뻐하여 정상적인 상태를 벗어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득의망형(得意忘形),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를 이르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이르는 말을 난망지택(難忘之澤), 잊지 못할 은혜를 이르는 말을 불망지은(不忘之恩), 이 시름을 잊는 물건이라는 뜻으로 술을 이르는 말을 차망우물(此忘憂物), 어떠한 것의 근본을 잊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불망기본(不忘其本), 한 번 보면 잊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일람불망(一覽不忘), 영구히 잊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영세불망(永世不忘),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는다는 뜻으로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썼던 사물을 잊어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득어망전(得魚忘筌), 은혜를 잊고 의리를 배반함을 이르는 말을 망은배의(忘恩背義),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지를 이르는 말을 망아지경(忘我之境), 한 가지 일을 알면 다른 열 가지 일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기억력이 좋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득일망십(得一忘十), 바닷가에서 갈매기와 해오라기 노는 것을 보며 세상 일을 잊는다는 뜻으로 숨어 살면서 속세의 일을 잊음을 이르는 말을 구로망기(鷗鷺忘機), 침식을 잊고 일에 심혈을 기울임을 이르는 말을 폐침망찬(廢寢忘餐), 이사하면서 아내를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건망증이 심한 사람이나 의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사가망처(徙家忘妻), 가엾게 여겨 항상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권권불망(眷眷不忘), 집을 옮기며 아내를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소중한 것을 잊어 버린다를 이르는 말을 사택망처(徙宅忘妻)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