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처님께서
삼계 대도사요 사생에 자부이신 서가여래부처님께서
일대사인연을 위해서 이 사바세계에 출현을 허셨습니다.
사십구 년동안
앉을자리 더울, 더워질 겨를이 없이 팔만사천에
묘법문을 설하셨습니다. 마지막 이련하 측에서
열반을 보이실 때에 “사십구 년(동안 단 한마디도 설한
바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십구 년 동안 팔만사천법문을 설하시고서도 마지막에 가서는 한 말도 설한 바가 없다고 허는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도리는
말로써 설할 수가 없고 귀로써 들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인은 제득혈루무용처라,
울어서 피가, 피눈물이 쏟아져 나오도록, 피가 목구녁에서 넘어오도록 밤새 울고 울어도 아무 소용이 없어.
불여함구과잔춘(不如緘口過殘春)이라,
입을 다물고 쇠잔한 봄을 지낸 것만 같지 못하다」고 읊으셨던 것입니다.
목구녁에서 피가 나모... 넘어오도록 부르짖고 부르짖어도 이 도리는 설할 수가 없는 것이고, 아무리 귀를 손가락으로 비비고 기울여서 들을랴고 해도 이 도리는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만일 입을 가지고 설할 수 있다면
그 법은 참 법이 아니고,
우리가 귀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 법이라면
그 법은 참 법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는
그 도리를 위해서, 중생을 위해서 수없이 많은 몸을
희사를 허셨습니다.
‘어느 손바닥만 한 좁은 땅도 불보살이 우리 중생을 위해서 버리지 아니한 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 설할 수 없는 법을 기어코 설하실랴고 했으며,
왜 우리는 들을 수 없는 법을 한사코 들을랴고만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그 법을 설하기 위해서 이 법상에 올라온 산승은 목숨을 구걸할 곳이 없으며 여기에 모이신 사부대중은 이미
큰일을 그르치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설할라야 설할 수 없는 법을 구태여 표현헐라면 이러헌 말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근기에도 차별이 있고 법에도 차제가 있어서
부처님을 비롯한 모든 성현들은 근기와 차제에 따라서
많은 방편을 설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삼천 년을 내려오면서 역대조사들은
‘이 알라야 알 수 없고 설할라야 설할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는 이 일대사를 어떻게 하면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이 도리를 깨닫게 할 수 있을까?’
그 길을 갈고 닦아서 누구라도 헐랴고만 허면 반드시
목적을 이루도록, 이룰 수 있는 그러헌 길을 개척을
해나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입니다.
활구참선법 이외의 모든 법은 설사 그 법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 속에 있는 법이라 하더라도, 또한, 또는 모든 도인들이 설하신, 직접 설하신 법이라 할지라도
이 활구참선법 이외의 법은 활구참선법에 이르는 방편에 지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첫댓글 일체 중생 참 나를 깨달라 생사의 윤회에서 벗어 나기를 발원합니다 _()_
감사합니다. 옴 아비라 훔 캄 스바하 _()_
고맙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