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 옛날이여
TV를 켜니 11살 꼬마 김유아 어린이의 앙증맞고 카랑카랑한 노래소리가 나온다
저 조그만 몸에서 어찌그리 야물차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나올가
온몸에서 소름이 솟을 정도로 호소력있고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이다
이젠~ 내곁을 떠나간~
아쉬운 그대이기에~
마음속의 그대를 !
못잊어 그려본다 ~
유아 어린이 목소리가 귓가에서 여운이 그대로 남아있다
나에게도 못잊게하는 [ 아~ 옛날이여] 가 있었다
풋풋한 내음을 담뿍 간직한 소녀
가수 이선희와는 너무나 많이 닮은 이승희였다
사무실에서 빤히 내려다 보이는 저 앞 큰길에서 어느 소녀가 우산도 없이 사뿐사뿐 걸어가고 있다
다행히 안개비라서 옷은 젖지 않는것 같다
마침 퇴근시간이라서 미리 준비한 커다란 우산을 펴서 그녀의 어깨 위로 받쳐주었다
알맞은 키에 분홍빛갈 부라우스에 꽃무늬 스카프를 두르고 짧은 검정 스커트치마를 입었다
복숭이빛 뺨은 무르익었고 분홍빛 부라우스 위로 봉곳히 솟아있는 가슴과 짧은 검정 스커트치마 아래로 쭉뻣은 다리가 예쁘다
흘낏 바라다본 아가씨는 아무런 표정없이 고개를 숙인채 바닥만을 보며 천천히 걷고있다
한참을 걸어 큰길가에 다다르자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드니 옆길로 빠저 나간다
이십여분을 같이 걸어가면서도 둘이는 아무런 말도 없이 헤여젔다
그냥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일 뿐이였다 말한마디 건네지 못했으니 이름도 성도 알수가 없었다
단발머리가 무척이나 깔끔해보이고 도톰한 양볼에는 보일듯 말듯 볼우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아마도 이십이 갓넘어 보인다 아니 여학생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참동안이나 사라지지 않고 뿌연 안갯속의 천사처럼 자리하고 있다
고등학교시절 찜통속의 짐짝더미 같은 통학기차 속에서 서로 코를 맞대다 시피하고 다니던 신수지 얼굴이 떠오른다
신수지는 내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고 밤잠을 설치게 한 보기 드물게 예쁘고 깜찍스러운 S여고 학생이였다
어쩌다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 하다가도 만나게 되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지만 말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언제나 같은시간 같은 위치에서 둘이는 기다리기나 했드시 코를 맞대다 시피 했고 복잡한 차내에서 가슴을 부딛치기도 했다
어느날 우연히 가슴을 열어 놓을수 있었던것은 밤길의 건달녀석들이 오작교가 되어 주었다
괜히 여학생에게 시거리를 거는 녀석들과 얼떨결에 한판을 하다가 한대 얻어맞고 코피를 흘렸다
순간 뛰어와서 분홍 손수건을 꺼내 코피를 닦아주는 신수지는 나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수호의 천사였다
이로인해 수지와는 공원길에서 자주 만나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호주머니속에 먼지만 있는 고학생에게는 가난이 웬수였다 흔해터진 도너츠나 아이스 크림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채 졸업을 앞두고 우리들는 그간의 시간을잊어버리고 속으로 안타까움만을 가지고 그렇게 유야무야 헤여젔다
사방팔방 산과 들로 병풍을 친 이곳 시골에 내려온지 거의 반년이 되였다
우연찮게 이곳 오너로부터 잠시만이라도 있어달라는 부탁으로 지방으로 내려온것이다
내가 몸담은 회사의 전무가 곧 여기 S산업의 오너이다
울며 겨자먹는다는 식으로 내려와서 터줏 대감들이 판치는 이들의 숫한 괄시속에서 가까스로 몸과 마음을 부대끼고 있었다
하루종일 먼지와 땀으로 범벅이된 이들과 어울려 하루를 보내고 구내식당에서 하루세끼를 마치면 잠자리만 있는 작은방이 기다리고있었다 그들과 함께 해야할 기숙사에는 적응이 되지 않아 작은 방을 얻었다
처음 두어달은 적응하지 못하고 목노집에 들어가 일군들과 어울려 한잔술로 달래였다
어둠이 깃들면 온천지 사방은 어둠속에 묻히였다 책이 있기에 벗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달빛묻~은 속삭임
별빛속에그밀어
안개처럼~ 밀려와
파도처럼~ 꺼저간다 아 ~옛날이여
유아 어린이의 노래소리가 아직도 귓밥처럼 귓가에 남아 여운을 짓고있다
-선생님 저건너 정자나무아래서 누군가가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문방구에 다녀온 급사 아이가 어른스럽게 옆으로 오드니 작은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이 산간 벽지에 나를 아는 사람도 없고 나를 찾을 만한 사람도 있을리가 없다
그렇다고 열다섯 어린 소녀가 거짓을 말하기에는 너무나 어린 나이이다
대충 설걷이 하듯 하던일을 거두어 책상에 구기어 넣다시피 하고 일어났다
벽시계가 나를 바라보며 여섯시를 치고있다
기대반 설렘반 의아반 두려움반 이다
워낙 객지이고 낯설다보니 엉뚱하게도 동네 건달패들이 공짜술을 찾아 어스렁거리며 동네를 휘젖고 다니기도 한다
돌고돌다 여기까지 내려오지 않았는가
두려울게 없다 때리면 몇대 맞아주고 술이 고픈 녀석이면 막걸리 몇대접 사주면 된다
정자나무 그늘아래 조그만 목의자에 먼산을 바라보고 등지고 앉은 여인이 보인다
분홍 빛 부라우스에 짧은 검정 치마 전번에 입었든 그대로이다
조그마한 장미꽃 한송이를 들고있다
- 전번에 너무 고마웠어요 - 이제껏 살아 오면서 꽃을 받아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들릴듯 말듯 고개를 살짝숙인 여인에게서 오이향 내음이 스친다
-뭘 그리 고마울것도 없는데 감사합니다 - 꽃향기가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마침 동네를 들어왔다가 나가는 시발택시가 있어 무작정 K역까지 달렸다
[광해옥]
여기는 몇번 들렸든 곳이다
처음으로 내려오든 날도 어쩌다 서울에서 직원이 내려오든 날도 이곳을 들렸다
- 아이 예쁘기도 해라 어쩜 이리도 예쁠가 - 여러번 찾아와 이제는 제법 단골집이 라서 그럴가
늙수레한 광해옥 주인아줌마는 반갑게 다가오드니 의미있는 미소를 던지며 조용한 뒷방으로 안내한다
- 천천히 자시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요 - 시키지도 않은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내온다
친절이 지나친 것일가 문까지 닫아주면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고개만 숙이고 아래만 내려다 보는 여인에게 처음으로 통성명을 나누었다
이승희 ! 나이는 스물셋 !
보지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데려가라는 셋째딸이자 나와는 네살이 아래다
천생연분이란 조건을 모주리 갗춘것 같다
평소 엄격하신데다가 딸사랑이 지극하신 아버지의 감시가 무서워 외출이 쉽지 않다고 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여운 딸이 혹시나 못된 돔들의 꼬임에 빠지지나 않을가 하는 염려인것이다
- 첫눈에 보고 믿을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보고 싶었어요 -
얌전할것 같았던 승희는 아주 직설적이였고 서슴이 없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둠이 짙은 밤길을 한참이나 걸었다
뒤에는 생선냄새를 맡은 고양이 새끼처럼 건달 두어명이 뒷따르고 있다
아랑곳 할바 없다
객지생활 수삼년에 보고 듣고 헤처온길인데 이 조그만 시골길에서 무엇이 두려울가
호수건너 건너다 보이는 작은 파아란 함석집 !
그곳에는 호랑이처럼 무서운 구렛나루 턱수염을한 승희 아버지가 있다
마당앞에 감나무 아래에서 떠나지 못하고 아쉬워 하는 승희를 들여 보내였다
조그만손을 흔들고 돌아서지 못하고 서있는 소녀의 눈빛이 어둠속에서 반짝 빛난다
터덜터덜 돌아오는길이 멀기도 하다
오너와 약속했던 일년이 승희가 있어 지루한줄 모르고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다
그동안 자주 만났다 매일이라도 같이 하고 싶다며 종알대는 승희의 예쁜 입술을 바라보는 기쁨을 누구가 알가
볼때마다 더예뻐지는 승희의 두뺨에 얼굴을 묻을때의 행복은 잊지 못할것같다
악마가 찾아왔다 우리를 시샘하는 악마는 우리곁에서 우리를 갈라치려한다
일년이 지나든 가을날 만기제대 하라며 전령이 내려왔다
가을낙엽을 밟으며 호수길을 걷든날 우연히 승희 아버지를 만났고 그뒤로 승희의 소식이 끈어젔다
집으로 찾아가 우리는 떨어질래야 도저히 떨어질수 없는 사이라며 딸을 내어 놓으라고 호통이라도 칠줄 알았던 승희는 얼마나 실망을 하고 안타까워 했을가 어쩌면 승희 아버지도 그처럼 당돌한 녀석이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오죽이나 헤어짐이 쓰라리였으면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노라는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보따리를 챙기고 서울로 올라 오면서 승희는 어느새 잊혀진 여인이 되였다
지난 시절 다시올수없나 그날 ~
아니야 잊어야지 아름다운 사연들 ~
구름속에 묻으리 모두다 꿈이라고 아 ~ 옛날이여
창밖 푸른하늘은 청자빛으로 물들고 예전처럼 뭉게구름이 흐르고있다
저 구름도 다시 오지 않으리라 승희와의 헤어짐 처럼 ! 아 ~ 옛날이여
이선희 가수의 초롱초롱한 노래를 듣는다 마치 승희의 목소리 하고도 그리 닮았을가
마음속에 묻으리 모두다 지난 옛 이야기라고 ! 세월속에 묻히여 흘러가는 저구름 !
부운浮雲이라는 말은 그냥 있는 말이 아니다
긴세월속에 묻힌 짧은 이야기가 가슴에 메아리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