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는 목숨과도 바꿀 만한 맛이다.” 중국의 시인 소동파(蘇東坡)의 말이다. 실제 복은 독이 있어 잘못 조리한 걸 먹으면 죽을 만큼 위험하다. 그러나 이를 역설적으로 보면 목숨을 내놓고 먹을 만큼 맛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할 두 곳은 각각 신촌과 충무로에서 40여 년 가까이 복을 팔며 지역의 흥망성쇠를 함께 했다.
1·2위 어떻게 선정했나
江南通新은 레스토랑 가이드북 『다이어리알』 이윤화 대표와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배한철 총주방장, 롯데호텔 무궁화 천덕상 셰프, 더플라자 허성구 총주방장, 『주식9단 서울맛집 유랑』 저자 이영승씨 추천을 받아 5개 식당을 후보로 추렸습니다. 이후 후보 식당 5곳을 12월 3일자 江南通新에 공지하고 같은 날 강남통신 온라인(www.joongang.co.kr/gangnam)에 올려 일주일 동안 독자투표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삼호복집(창천동)이 1위, 부산복집(충무로3가)·송원복집(소공동)이 공동 2위로 뽑혔습니다. 그러나 송원복집의 경우 10월 8일 샤브샤브 편에 송원스키야키샤브샤브가 나와 이번엔 소개하지 않습니다.
7080 신촌, 호텔 셰프들이 비법 배우려 줄 섰지
1위 신촌 삼호복집
●대표 메뉴: 삼코스(6만원), 호코스(6만원), 참복맑은탕·복매운탕(3만원) ●개점: 1976년(78년 서용석) 대표가 인수, 2010년 현재 자리로 이전) ●특징: 40년째 복요리 하나로 신촌을 지키고 있는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80~90년대 신촌 상권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대표적 복 요리인 매운탕과 맑은탕(지리)를 비롯해 얇게 저민 복어살로 미나리와 버섯을 돌돌 말아 육수에 익혀 먹는 샤브샤브와 복어살을 푹 끓인 복죽 등이 인기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세로5다길 10 삼호빌딩 2·3층(창천동 62-11) ●전화번호: 02-337-9019 ●좌석 수: 120석(룸 10개) ●영업시간: 오전 10시30분~오후 10시30분(매주 일요일, 설·추석 당일 휴무) ●주차: 발레 주차(무료)
1 살아있는 복. 복어는 성질이 급해 금방 죽는 데다 안 잡힐 때가 많아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 중 하나다. 2 2010년 35년 만에 지금 자리로 이전했다. 3 서용석 대표가 육수 맛을 보고 있다. 그는 요즘도 전국의 복집을 찾아다닌다.
“지금은 신촌 상권이 많이 죽었지만 80~90년대 신촌은 요즘 청담동이나 가로수길 같은 역할을 했어요. 지식인들이 다 모였죠.”
서용석(63) 삼호복집 대표는 부모님 대부터 신촌에 살아온 이 지역 토박이다. 그가 삼호복집을 맡은 건 1978년이다. 군 제대 후 삼호복집 인근에서 순두부 가게를 하고 있었는데 순두부 요리의 단가가 낮은데다 순두부를 끓일 때 나는 연탄가스 냄새가 심해 다른 요리를 해 볼 생각이었다. 그때 눈에 띈 게 삼호복집이다. 일본을 자주 오가던 부모님이 복 요리를 좋아하신 덕분에 그도 자주 먹던 요리라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78년 권리금 3000만원을 내고 가게를 인수했다. 문을 연 지 3년 된 당시의 삼호복집은 장사가 잘 안되는 편이었지만 신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권리금이 비쌌다. 서 대표는 “70년대 후반 신촌은 지금의 강남 못지 않은 최고급 상권이었다”며 “3000만원이면 다른 동네 건물을 하나 살 정도의 큰 금액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비싼 금액을 주고 인수했지만 처음 6개월 동안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복은 독이 있어 다루기 어렵고 이 때문에 소수의 사람들만 찾는 요리였기 때문이다. 복은 성질이 급해 금방 죽기 때문에 수족관에 오래 둘 수 없었다. 잘 잡히지 않아 구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당시엔 탕 외엔 변변한 복 요리 조리법이 개발돼 있지 않아 맛을 내기 어려웠다. 서 대표는 아내와 함께 전국에서 유명하다는 복집과 수산시장을 찾아다녔다.
살아있는 복어를 손질한 신선한 복어회
“순두부 가게를 하면서 좋은 재료와 손님과의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배웠거든요. 그래서 복집을 인수할 때 ‘가장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고 손님에게 내가 먹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음식을 대접하자’고 결심했습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값이 싼 밀복·졸복을 쓰는 다른 복집과 달리 두 배 이상 비싼 참복·까치복을 주로 사용한다. 또 그중에서도 큰 복만 쓴다. 복은 같은 종류라도 크기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클수록 맛이 좋고 식감이 쫄깃하다. 질 좋은 복을 받기 위해 도매상이 부르는 가격은 절대 깎지 않았다.
얇게 저민 복어살을 버섯과 미나리로 돌돌 말아준 복어샤브샤브
“호텔에서는 계절마다 특별 메뉴를 선보이잖아요. 복 요리를 할 때면 매년 호텔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다 우리 가게에 와서 맛을 봤습니다. 특히 80년대 많이들 왔고 2000년대 초반까지도 가끔 찾아왔었어요.”
삼호복집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의 82㎡(25평) 가게엔 한 번에 80명이 앉을 수 있었는데 언제나 만원이어서 옆 사람과 바짝 붙어 앉아 먹어야 했다. 그래도 복을 맛보려는 사람들로 식사 시간이면 가게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역대 대통령들도 즐겨 찾았다. 맑은 탕을 좋아하는 모 대통령은 참모를 시켜 포장해 오도록 했고, 샤브샤브를 좋아하는 모 대통령은 주방장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워낙 단골이 많아 별로 경기를 타지 않는 것도 삼호복집의 특징이다.
“복 요리는 아무래도 매니어 층이 주로 찾아요.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음식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경기가 안 좋을 때도 우리 집은 괜찮았어요. 삼호복집에 왔던 사람은 다른 복집 못가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서울에서 우리 집이 복을 가장 많이 사와요. 그만큼 손님이 많다는 얘기죠.”
30년 넘게 한 자리를 고수하던 삼호복집은 2010년 가게를 200m 떨어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좌석 간격이 좁고 화장실이 외부에 있어 손님들이 불편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새 가게에는 전보다 넓은 테이블을 놓았고, 테이블마다 인덕션(전기렌지)을 설치했다. 주차할 곳이 부족한 지역 특성을 고려해 편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발레 주차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
가게를 옮길 때 강남으로 이전하라는 권유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40년 가까이 지켜온 신촌을 떠날 수 없었다.
요즘 그는 연세로가 ‘차 없는 거리’로 지정돼 교통이 불편해지면서 가게를 찾는 손님이 줄어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여유있게 웃어보였다.
“지금의 신촌 상권은 바닥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얘기잖아요. 신촌 상권이 다시 일어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삼호복집도 더욱 노력할 겁니다. 복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에 복이 많이 나는 일본 시모노세키에 갔는데 거기 있는 복 전문가가 ‘복은 목숨을 걸고 먹어도 될 만큼 훌륭한 최고의 음식’이라고 말하던데 그게 바로 제 생각이에요.”
7080 충무로, 기다리던 손님들이 알아서 상 치웠지
2위 충무로 부산복집
●대표 메뉴: 복매운탕·복지리(1인분, 각 1만2000원), 복불고기(1인분, 1만7000원) ●개점: 1968년(68년 대구에서 ‘부산복어식당’으로 개점. 76년 서울 중구 초동으로 옮긴 후 다시 87년 지금 자리로 이전) ●특징: 40년째 충무로 먹자골목을 지키는 동네 명물이다. 1인당 1만2000원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복을 맛볼 수 있는데다 40년째 한결같은 맛을 내는 게 인기 비결이다. 충무로에 자리한 만큼 신성일·남궁원·강수연 등 영화 배우부터 이준익 감독 등 영화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다. ●주소: 서울시 중구 수표로2길 25 1·2층(충무로3가 57-6) ●전화번호: 02-2266-6334 ●좌석 수: 150석(2층에 큰 방 2개)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10시(설·추석 휴무) ●주차: 가게 앞 1대 가능
김옥진 부산복집 사장이 44년의 경력자다운 능숙한 솜씨로 복을 손질하고 있다. 복은 독이 있어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요리할 수 있다.
“70~80년대엔 충무로 먹자골목을 찾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중에서도 우리 집은 더 잘됐죠. 우리가 상 치울 일이 없었어요. 기다리던 손님들이 알아서 상 치우고 앉았으니까요.”
김옥진(69) 사장의 부산복집은 40년째 서울 충무로 먹자골목을 지키는 동네 명물이다. 부산복집의 시작은 부산도, 충무로도 아닌 대구다. 김 사장의 남편 고 최종선(1940~97)씨가 누나 두 명과 함께 1968년 대구에 ‘부산복어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복집을 냈다. 남편 최씨의 고향이 부산이다. 김 사장은 71년 결혼하며 가게 일을 돕기 시작했다. 요리 솜씨가 뛰어난 친정엄마를 보고 자란 덕분에 그도 어릴 때부터 요리를 잘했다. 식당 일에 쉽게 적응했다.
부산복집은 대구에서 장사가 제법 잘됐다. 그러다 76년 서울로 옮겼다. 당시 함께 장사하던 큰 시누이가 “내 딸이 서울에서 백반집을 하던 남자와 결혼했는데 대구보다 서울이 장사하기 쉽다”며 설득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실제 올라와보니 대구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엉덩이 붙일 시간이 없었는데, 서울은 식사 시간에만 바빠 그나마 덜 힘들었다”고 말했다.
가게는 대한·명보극장과 함께 충무로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스카라극장 골목 안(초동)에 열었다. 이름도 부산복집으로 짧게 바꿨다.
“70년대 충무로는 어느 가게나 장사가 잘됐어요. 우리 가게도 문을 열마자자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어요. 당시 복 요리는 먹고 죽을까봐 꺼리는 사람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장사가 제법 잘됐어요.”
김 사장은 좋은 복을 찾기 위해 매일 새벽 4시면 시누이와 함께 버스를 타고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다. 당시만 해도 도매업체들이 복을 가게로 배달해주지 않아 직접 복을 사러 다녀야했다. 밀려드는 손님을 감당하지 못하고 김 사장과 남편 최씨는 몇 달 후 원래 가게에서 10m 떨어진 곳에 2호점을 냈다. 가게가 두 곳으로 늘어났지만 부산복집의 인기는 여전히 대단했다. (※큰 시누이가 운영하던 초동 가게는 90년 김 사장의 막내동생에게 팔았고, 2005년 다시 김 사장의 넷째 동생에게 넘겼다). 그러다 87년 2호점에서 걸어서 3분 정도 걸리는 지금 자리로 가게를 옮겼다. 좀 더 넓은 가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곳은 순두부집을 하던 일본식 목조건물이었는데 순두부집은 장사가 잘 안됐다. 김 사장네가 그 가게에 새로 문을 열려는 중에 큰 불이 났다. 건물을 아예 허물고 새로 지었다. 가게는 문을 열자마자 문전성시를 이뤘다.
“문을 연 첫 날 재료인 복도 안 왔는데 사람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서더라고요. 당시만 해도 복 잡을 곳이 없어서 원래 있던 가게 한 켠을 빌려 복을 손질했거든요. 그런데 주문이 밀려 드는 바람에 손질한 복을 바가지에 담아 두 가게 사이를 뛰어다녔어요.”
1 복매운탕은 콩나물을 많이 넣어 국물 맛이 깊고 개운하다. 2 복매운탕에 매콤한 양념장과 마늘을 넣고 있다. 3 40년 역사의 충무로 명물답게 입구부터 오랜 전통과 정취가 느껴진다.
아침 일찍부터 손님이 몰려오는 날이면 저녁 장사할 복어를 구할 수 없어 문을 닫아야 했다. 장사가 잘된 비결을 묻자 김 사장은 “다른 복집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고 말했다. 실제 부산복집의 요즘 복매운탕의 가격은 1만2000원이다. 1만5000원 정도인 서울 시내 일반적인 복집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다시 초동에서 충무로3가로 자리는 옮겼지만 마늘과 미나리를 듬뿍 넣어 깊고 개운한 국물 맛은 부산복집의 변치 않는 인기 비결이다. 변함없는 맛을 위해 김 사장은 일흔을 코 앞에 둔 요즘도 매일 가게에 나와 주방을 챙긴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인기 메뉴는 바뀌었다. 김 사장은 “예전에는 복매운탕이나 지리가 많이 팔렸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이 오면서 요즘은 매콤하게 양념한 복불고기가 인기”라고 설명했다.
오랜 역사만큼 많은 사람들이 가게를 다녀갔다. 40년째 단골인 백발의 어르신도 많지만 요즘은 맛집을 찾아다니는 젊은층도 많이 온다. 김 사장은 “직장 동료들과 왔다가 다음 번에 가족을 데리고 오는 사람을 보면 뿌듯하다”고 했다. 특히 영화사 사무실이 많은 충무로의 특성상 영화인들이 많이 찾았다. 영화배우 신성일·남궁원·윤일봉·강수연·정진영과 영화감독 이준익은 이곳의 단골이다. 인근에 교통방송이 있어 연예인들도 오는데 성우 배한성은 방송 있는 날이면 꼭 들른다. 개그맨 고 이주일도 단골 중의 단골이었다.
단골은 가게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김 사장은 단골들의 조언대로 95년 가게를 리모델링할 때 매운탕과 맑은탕을 담아내는 양푼을 스테인레스 냄비로 바꿨다.
“복은 접대할 때도 많이 먹잖아요. 우리 집이 맛있고 좋은데 양푼에 주니까 귀한 손님을 모시고 오기 곤란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꿨죠.”
1990년대부터 영화사들이 강남으로 이전하며 충무로가 쇠퇴하기 시작했고 부산복집을 찾는 사람도 줄었다. 복요리를 많이 먹지 않는 여름이면 더 힘들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아들 최상해(41)씨가 본격적으로 가게를 맡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고 한다. 김 사장은 어느 때보다 “든든하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경기가 안 좋아 다들 어렵다고 말할 때도 가게를 찾는 손님은 전보다 늘었다. 어머니의 칭찬에 최씨는 쑥스러운 듯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다른 친구들이 장래희망에 대통령이나 과학자를 적을 때 전 가업을 잇겠다고 말했어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조금 늦어졌지만 전 요즘 어릴 때 꿈을 이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