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단풍’을 화두로 붙들고
십일월 하순 넷째 목요일이다. 수도권과 중부 내륙엔 이틀째 첫눈이 폭설로 내려 교통 혼잡은 물론 일상생활 큰 불편을 초래한단다. 설경과 거리가 먼 우리 지역도 자고 난 아침, 함양에 사는 친구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읍내 풍경을 사진으로 보내와 지리산이 가까운 곳에서도 눈이 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도심 거리는 단풍이 물든 낙엽이 뒹굴어 가을을 오래 만끽한다.
아침 식후 자연학교 등교를 위해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로 내려섰다. 지상 주차장을 겸한 뜰에는 조경수들이 자라는데 그 가운데 단풍나무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올해는 늦게까지 더위가 이어져 단풍도 늦게 물들고 오래도록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지나간 시월 하순 초등 친구들과 속리산 단풍 축제로 소풍을 갔더랬는데 법주사 세조길에는 단풍빛이 물들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이후 한 달여 시간이 흐르면서 근교 들녘은 누벼도 산을 찾는 겨를은 내지 못한 나날을 보낸다. 아침저녁 버스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거리 가로수가 물든 단풍에서 가을이 더디게 가는 현장임을 알고 있다. 도심에서 벚나무는 진작 나목이 되어도 느티나무는 짙은 갈색 단풍이 낙엽이 져 거리를 휩쓸었다. 노랗게 물이 드는 은행나무는 채색으로나 뒹구는 낙엽으로나 풍성해 보였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기까지 시야에 든 몇 그루 조경수 단풍나무 색깔을 눈 여겨봤다. 며칠 새 아침 기온이 뚝 떨어지니 엽록소는 빠져나가고 붉은 색소로 바뀌어 감이 실시간으로 확인되었다. 어제 그제보다 오늘 아침 단풍나무가 더 붉은색으로 바뀌어 물든 잎을 매단 채 떨어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풍나무는 다른 활엽수들과 달리 단풍이 물들어도 잎은 쉽게 낙엽으로 지지 않았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면서 붉게 물든 홍단풍 나무를 폰 사진으로 담아 소답동을 거쳐 가는 버스를 탔다. 창원역 기점 2번 마을버스를 타려니 운행 간격이 뜸해 출발 시간을 제법 기다려야 했다. 주천강이 낙동강 샛강으로 합류하는 유등으로 가려면 2번 마을버스를 타야 해서였다. 앞서 남겨둔 홍단풍 사진에 음수율을 맞춘 시조 가락으로 다듬으면서 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을 기다렸다.
정한 시각 몇 승객을 태워 출발한 2번 마을버스는 대산 산업단지까지 1번과 운행노선이 겹쳐 차창 밖은 익숙한 풍경이었다. “단풍이 곱기로는 누구나 손에 꼽을 / 피아골 웅덩이나 홍류동 소리길이 / 눈앞에 아른거려도 찾지 못해 아쉽다 // 날마다 드나드는 아파트 진출입로 / 여러 종 수목 중에 홍단풍 물이 드니 / 제 이름 몰라줄까 봐 속살까지 꺼낸다” ‘아파트 홍단풍’을 남겼다.
버스가 가술에 이르렀을 때 승객은 줄어 혼자 남아 종점 유등을 앞둔 유청에서 내려 들녘 서원을 한 군데 들렀다. 김해 김씨 중시조 삼현파 ‘관’을 제향하는 저산서원을 찾아 고목 은행나무와 경앙문 아래서 서성였다. 이후 주천강과 나란한 물길로 들녘을 빠져 오는 죽동천을 따라 딸기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단지를 거쳤다. 까치들이 떼 지어 날아온 묵혀둔 과수원을 지나왔다.
죽동천 천변 다리를 건너 들녘에 외따로 떨어진 월림산 동곡마을을 비켜 덕현고개를 넘었다. 들녘에 시골 초등학교는 멀리 바라보인 진영 아파트단지로 통학 버스가 다녀 폐교되지 않고 맥을 이었다. 초등학교 앞에서 벼를 거둔 들녘 들길을 걸으니 겨울은 비닐하우스를 세워 당근 농사를 짓는데 올가을 많이 내린 비에 논바닥 배수가 되지 않아 일손을 놓고 땅이 굳어지길 기다렸다.
벼농사보다 더 수익을 보는 당근 농사는 추수 이후 논바닥이 마르지 않아 시작하지 못한 채 경작지를 빈 논으로 둔 채였다. 주천강이 비켜 가는 중포마을에 이르니 꽃을 가꾸는 비닐하우스단지가 나왔다. 지난번 절화용으로 꽃을 포장하던 리시안셔스를 한 묶음 안겨주던 주인 아낙이 떠올랐다. 꽃송이가 피는 리이안셔스와 안개꽃 농장을 거쳐 국도변에서 가술로 가서 오후를 맞았다. 2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