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단풍을 완상하고
수도권에 첫눈이 폭설로 내린 첫 추위가 찾아온 십일월 끝자락 다섯째 금요일이다. 며칠 사이 내려간 날씨로 바깥 찬바람에 들녘을 누비고 길거리 임무 수행으로 가벼운 감기 증상이 왔다. 간밤 코로라 시대에 준비해둔 감기 대비 상비 알약을 먹고 잤더니 기침과 콧물이 잦아들었다. 평생 감기는 질환이라 생각하지 않아 의사는 대면하지 않는데 나이가 드니 면역력이 약해지나 싶다.
아침 식후에도 자기 전 먹었던 감기약을 한 알 더 먹고 자연학교 등굣길에 나섰다. 아파트단지에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제 고유의 빛깔로 단풍이 물들어 아직 잎이 온전했다. 올가을은 늦게까지 더위가 머물렀고 가을비도 두어 차례 흡족하게 내려 토양 함유 수분이 늘었다. 예년과 다른 이런 기상 여건을 도심 아파트단지 조경수는 물론 거리의 가로수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다.
40여 년 전 계획 도시로 출발한 창원은 녹지 공간이 많고 거리에 심어둔 가로수가 연륜이 보태져 우람하다. 전쟁의 폐허와 오랜 가난에서 벗어나 식민 치하를 겪은 국가로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경제 기적을 이룬 대통령의 설계다. 당시로 마산시에 곁에 한때는 의창군이나 창원군 이름으로 두 개의 면 지역이 창원 본토다. 옛 상남면과 웅남면이 지금의 공단과 주거지역이 되었다.
내가 창원으로 정착이 아이엠에프가 닥칠 무렵이니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다. 그 전 밀양에서 청년기를 보내다 울산이 광역시를 앞두고 인사교류가 막히기 전 살아볼 곳인가를 두고 망설였던 적이다. 그때는 시골에 부모님이 생존해 계셔 고향으로 병문안도 다녀야 하는 등의 이유로 창원으로 옮겨 와 눌러산 게 오늘에 이른다. 근무지는 지역 연한이 채워져 김해와 거제를 거쳐왔다.
자차를 운전하지 않고 대중교통만 이용하는 나에게 올가을은 도심에서도 멋지게 물든 단풍을 실컷 구경한다. 벚나무야 가을과 무관하게 여름부터 낙엽이 져 일찍 나목이 되었다. 지난 구월 벚나무가 곱게 물들던 사림동 사격장 잔디밭 가장자리 고목을 찾아 완상했다. 이후 시간차를 두고 창원대학 캠퍼스와 도청과 시청 사이 중앙대로와 용지 호숫가 수목들이 물드는 단풍을 살폈다.
아침저녁 자연학교 등하굣길에 버스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거리 활엽수들이 물드는 모습은 가히 단풍 ‘잔치’나 ‘축제’라는 이름을 붙여도 알맞을 듯하다. 창원의 거리 사계에서 싱그런 잎이 돋는 삼사월의 가로수가 청춘에 활기를 불어넣는 생명력이라면, 늦가을에 곱게 물든 단풍은 노년을 단아하고 원숙하게 맞은 인생의 황혼을 보는 듯했다. 봄가을의 수목에다 인생을 대비해 봤다.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창원역에서 1번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근교 회사 일터로 가는 일반인들 틈에 섞여 주남저수지를 비켜 대산 산업단지에 이르자 승객은 다 내렸다. 외국인 한 아낙과 함께 제1 수산교를 지난 신성마을에서 내려 수성마을 앞을 지났다. 사계절 비닐하우스에는 폿고추와 가지를 따내는 철이었다. 벼를 거둔 논에는 당근을 심을 준비로 새로운 비닐하우스를 세웠다.
강변 들녘에서 일 년 중 가장 바쁜 때가 추수 후 뒷그루 작물 당근 농사 준비였다. 예전에는 겨울이면 비닐하우스로 짓던 수박 농사에서 작목이 바뀌었다. 부족한 농촌 일손은 베트남 청년들과 부녀들이 메웠다. 그들은 이국 생활 농촌 일이 고될 법도 한데 늘 밝은 표정이고 부지런했다. 몇 차례 지나가 봐 익숙한 들녘 풍경을 걸어 구산마을 근처에서 모산마을 가까운 곳으로 갔다.
들녘 한복판 학교 운동장보다 더 넓은 크기 대형 비닐하우스단지를 찾았다. 안면을 트고 지내는 주인과 인사를 나누고 실내를 살펴봤다. 지나간 봄여름에 다다기 오이를 두 차례 생산한 농장인데 가을에 심은 오리가 다시 싱그럽게 자랐다. 베트남 두 청년이 오이 곁순을 따서 한군데 모았다. 배양토에 심어 수분과 영양은 관을 따라 보내졌는데 넝쿨에서는 노란 꽃이 피기 시작했다. 24.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