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슬픈 노래처럼 밤새 내리던 겨울비가 그치고, 빛난 햇살의 화창한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거리는 푸근하게 내린 비로 막 목욕을 마치고 오는 새색시같이 깔끔하고 정결해졌다. 지난 주말에 내린 차가운 눈과 그 위에 스트레스처럼 쌓였던 먼지가 씻겨 내리니 잔디와 풀들이 초봄처럼 풋풋하게 생기를 내 뿜었다.
오전 7시 50분, 뉴저지 린우드 프라자에 도착하니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아, 아마도 전날 밤의 산악인 송년 파티와 2차 애프터의 여파가 크구나, 잠깐 염려했지만 곧 회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8시 30분, 총 15명의 회원이 모여 2009년의 마지막 산행을 떠났다.
하이킹 팀은 본래 앤소니 웨인산으로 예정이 잡혀 있었지만, 겨울 산행의 백미인 아이스 크라이밍을 맛보자는 암벽팀의 제안에 모두 솔깃하여 결국 캐스킬 지역 빙벽 탐험 합동 산행으로 변경되었다.
---
뉴한산 멤버들끼리 <17번 휴게소>로 통하는 R-87 상의 정겨운 휴게소인 프래트킬 프라자 (Plattekill Travel Plaza)에 들렸는데, 주변의 풍경이 도저히 뉴욕의 한 겨울 풍경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화창하다.
그러나 다시 1시간을 넘게 달려 캐스킬 지역으로 들어가니 여전히 눈과 얼음이 널려 있다. 가죽 무두질 (Kierstad Tannery) 공장이 있었다던 계곡 주차장에 차들을 세우고 길 건너 Mt. Plateau 의 빙벽으로 가고자 했으나, 선발로 떠난 김영일 회원의 탐사 보고에 따르면 포근한 기온으로, 얼음이 녹아내리고 있어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더 깊숙한 Hunter Mt. 으로 향했다.
지난 10월 초순 경, 2박 3일의 야영을 갔던 팀과 합류했던 Plateau Mt. 산행을 했을 때 처음으로 이 지역에 왔었는데, 그 때 보았던 풍경과 지금의 모습이 너무 달라 놀랐다. 그 때 이곳으로 오면서 내내 탄성을 자아내게 했던 화려한 단풍을 잊을 수 없다. 저 호수에도 수 많은 알록달록한 나뭇잎들이 떠있었는데.... 지금은 눈 덮인 벤치와 얼어 붙은 호수의 표면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외로운 나그네처럼 쓸쓸하게 느껴진다.
주차장에서 장비들을 단단히 챙기는데, 나역시 이번에는 몇가지 동계 장비를 더 마련하여 갔다. 그러나 정작 날이 따듯해 나중엔 거추장스러웠다. 얼음으로 덮인 주차장 바닥이 스케이트 장을 떠올렸는지 이승호 회원이 스케이트 탈 줄 아느냐고 묻는다. (구라1이 구라3이 쓴 산행기를 꼼꼼하게 읽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못하는게 어디 있는가, ... 다만 잘 하는 것이 없을 뿐이로소이다.^^ )
11시 40분, 뉴저지에서 떠난 지 3시간이 넘어 서야 Hunter Mt.의 레드 트레일을 따라 산행을 출발했다. 그런데 나무 다리 밑으로 흐르는 계곡 물의 양이 너무 많으니…
곧 저 멀리 빙벽이 보였으나, 눈과 얼음이 녹아 내리는 수로를 따라 길이 갈라졌으니.... 여기서 3명의 골수 암벽 회원 (신승모, 이효성, 이춘길)은 끝내 녹아 내리는 빙벽 쪽을 향해 우측으로 향했고, 나머지 합리적인(?) 12명의 회원은 하이킹을 위해 좌측으로 향하여, 짧은 이별이 되었다.
하이킹 팀이 걷는 길도 눈이 녹아 질척거리니 행진하기기 퍽 힘들고,
조금 올라가니 급경사라 자꾸 미끄러지는 회원들이 생겼고, 모든 회원들이 아이젠(cramp)을 발에 찼음에도 눈 덮인 바위 길은 매우 위험했다.
경사가 거의 60도 정도는 되지 않겠느냐는 정현용 회원의 말마따나 시작부터 계속 깔딱거리다가, 한 30분 후 쯤 쉬게 되었을 때 등에 눈을 대고 누워 버렸다. 눈 위에 누워 바라다 보는 하늘과 나무의 뻗은 모습이, 나의 숨가쁨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니... 헥헥...
숨을 고르고 다시 출발, 30여분을 더 올라가니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그 앞에 우리가 나란하게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장소가 나와 여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이 때가 12시 30분 경이다.
즐거운 점심 시간, 지난 밤 파티에 참석하느라 준비를 제대로 못한 건 구라형제뿐, (우린 H마트에 급하게 들러 ready made 몇가지를 사왔다) 나머지 회원들은 이번에도 여러가지 색다른 음식을 준비 해 왓으니, 조개탕-육계장-만두찜-...깻잎무침, 세가지 김치..라면도 가지가지에, 죠니워커 블랙라벨, 에소프레소 커피머쉰에 이르기까지...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성찬으로 점심을 먹는 산악회가 바로 뉴한산일 것이다. (이러니 아내가 산에만 다녀오면 살이 붙어 온다고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하하)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 풀코스 정찬으로 <헌터 마운틴 자연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잘 먹었으니, 등 뒤의 바위가 바람을 막아주고, 따뜻한 햇살이 앞에서 비춰주니 겨울 산행이지만 여간 여유들이 넘쳐 있었다. 오가는 대화도 그 주제의 폭이 다양하고 다채로웠으니 <퇴행 최면>에서 부터 <국선도>, <칼세이건의 우주>까지.....이 맛에 졸리고 피곤한 몸을 억지로라도 이끌고 산행을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다가 오후 정각 2시 시보가 울리고, 뉴한산 FM 방송이 시작되니, 빠바바바 빠바바밤~ 빠바바바 밤밤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2시의 데이트 김주천입니다. 빰빠밤~ 오늘은 뉴욕 헌터 마운틴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빙벽의 기본에 대한 특집입니다. ... 자 시청자 여러분 우선 도끼를 이렇게 찍고....... 헤이~ 사진사 무엇보다 사진 부터 한 컷!
회장님은 멋진 시범을 보여주시려고 애를 쓰셨지만, 그간 사업과 스트레스에 녹이 스신 것인지 옆에 서있던 회원들을 둘러 보시더니... 자 그럼 실제 실연 시범은 김영일 조교가... 조교 앞으롯!
늠름한 기백의 김영일 조교, 넘겨 받은 도끼로 빙벽을 간단하게 찍고, 가볍게 빙벽을 오르니 대번에 폼이 확 나오네요...
우리 모두 감탄하여, 박수 찍짝짝...치는데
이내 김영일 조교 왈: 자 그럼 신병 앞으롯!
이에 따라 신병 중 최고참 격인 최동훈 회원이 제일 먼저 나서서 멋지게 ....으흠... 간단하게 보였는데...어찌 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웃음만 나오고 이거..
이후, 최동훈-정현용-앙드레이(명흠) 순으로 이어지며 빙벽 도전을 하지만 보는 것처럼 쉽지 않네요... 저 뒤에서 한 참 그렇게 신병들을 애처롭게 바라보시던 최고참 배윤근 회원께서 마침내 참지 못하시고,,,, 자신이 한번 직접시범을 보여주시겠다고 나섰는데....어이쿠 이거 자꾸 미끄러지니… 젠장, 이건 뭐 뉴욕 마라톤 완주보다 더 어렵잖아 ...하하 웃음만 나오실 뿐!
그렇게 유쾌하게 빙벽 앞에서 30여분의 시간이 지나, 2시의 데이트 1부가 끝나게 되고, 막간 광고 시간을 이용해 단체 사진 하나 큐!
오늘 2시의 데이트 제2부는 초대 손님을 모셨습니다.
하여, 새로 나오신 유재영씨의 자기 소개와 노래가 이어지는데..
미국에 온 지는 7년째이고, 뉴욕-펜실베니아-매리렌드 등에서 살았고, 이번 11월 초에 프러싱 지역으로 이사를 왔으며, 메리랜드에서도 산에 자주 다녔고, ... 아직 미혼이고....
어느새 신입회원 담당 조교로 제멋대로 등극해버린 제가 옆구리 쿡 찌르고 소개는 그만,
(노래 해 노래 해) 속삭이자
명령이 명령인지라 바로 1발 장전하여 스스럼없이 노래가 나오는데…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오라던
(살리고 살리고)
이왕이면 더 큰 잔에 술을 따르고 / 이왕이면 마주앉아 마시자 그랬지
그래 그렇게 마주앉아서 / 그래 그렇게 부딪쳐 보자
(더크게 더크게)
가장 멋진 목소리로 기원하려마 / 가장 멋진 웃음으로 화답해 줄께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신병이 노래를 너무 잘해(?) 앵콜 송으로 <긴머리 짧은 치마>까지 관객들과 함께 박수를 치며 부르며,... 어느덧 아쉬운 2시의 데이트는 막을 내리게 되고, 3시경 우린 하산을 시작합니다.
사람의 인생처럼 올라가기보다 내려오는 것이 더 힘든 겨울 산행 길, 조심에 조심을 더하며 내려와 주차장에 당도해 보니, 빙벽으로 향했던 3인의 행방은 묘연하고, 자세히 보니 일행이 타고 온 차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이 지역에선 휴대폰이 터지지 않아 궁금한데, 아마도 다른 지역의 빙벽을 찾아갔으리라 추측을 하면서 돌아오는 길, 오전에 지났던 폭포엔 물이 더욱 불어났고... 이 부근에서 무슨 사고가 났는지, 여러 경찰차들과 소방대가 출동하여 한 쪽 길을 막아 길을 통제하니...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였습니다...
그러나, 약 1시간 후 R-87 도로상 뉴버그 휴게소에서 마침내 사라졌던 3인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비로소 안심이 되었습니다. 비록 본격적인 아이스 크라이밍은 하지 못했지만 가능성이 높은 며러 장소들을 물색하러 다녔다고 하는군요.
이런 모습을 보고 뉴저지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최고참 배형님께 여쭈었습니다. “얼음 위를 장난감처럼 생긴 도끼로 찍고 오르는게 뭐 그리 재미가 있습니까?”
이 질문에 뒷좌석에서 내내 잠자코 주무시는 줄만 알았던 박동주 회원이 바로 한마디 합니다: “조남목씨 암벽 한번 해 봐야겠네요…” 그리고 자상하고 친철한 배형님의 부연 설명이 뒤따르는데… 요약하면 백언이불여일행이라 한번도 먹어 보지 못한 음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해 보았자다. 일단 한번 맛을 본 후에 다시 얘기 해보자는 거였습니다.
뉴저지에 도착할 무렵, 오늘 산행에 불참했던 이경식 회원 부부, 박상윤 회원 등이 <그냥 갈 순 없잖아> 연락이 닿아 뉴한산 전용 식당 <청화루>에서 저녁도 먹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 하나는 그간 우리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하게 해내던 청화루가 이달 말에 주인이 바뀌어 문을 닫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특별한 대우를 해주며 가까웠던 제니씨와도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고, 청화루 짜장면 한젓가락을 마지막으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안녕 청화루,
안녕 2009년.
그렇게 2009년 마지막 산행의 대단원이 막을 내렸습니다.
------
뉴저지 팀에 속해 청화루 옆 커피숍에서 녹차 한잔의 2차를 하고 맨하튼 아파트로 귀가 하니 밤 9시가 넘었다.
샤워를 하고, 포근한 빙벽 산행의 미련을 떠올리면서 잠을 청한다.
꿈은 낮에 나누었던 구라(?)때문인지 어지러웠고. 검고 흰 빙벽이 왔다 갔다 하는데...
다음 주엔 <빙벽>과 <빙의>에 대한 구라를 새해 벽두부터 풀어야겠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 신입으로 들어 온 유재영군,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 동생, 남혁이와 나이가 똑같은 이 친구가 부른 <목로 주점 >의 여운이 길게 남는 밤이다.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 언제라도 그곳에서 껄껄껄 웃던
멋드러진 친구 내 오랜 친구야 / 언제라도 그곳으로 찾아오라던
월말이면 월급 타서 로프를 사고 / 연말이면 적금 타서 낙타를 사자
그래 그렇게 산에 오르고 / 그래 그렇게 사막에 가자
가장 멋진 내 친구야 빠뜨리지 마 / 한 다스의 연필와 노트 한 권도
오늘도 목로주점 흙바람 벽엔 / 삼십 촉 백열등이 그네를 탄다
- (이연실 작사/작곡/노래, 1981)
그래, 다음 달 말 쯤엔 나도 월급을 타서 침낭을 사자. 내년 여름 쯤에는 로프도 사고, 년말엔 보너스도 타서 빙벽용 도끼도 사자....니 뭐하노, 니가 니 마음대로 할 수 있나? 디씨젼메이커는 니가 아닌데... 츳츳츳 신세가 처량하구나 (한숨이 휴~우)
이 깊은 밤에 <낙타>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던 내 멋드러진 친구, 강민이가 보고 싶다.
지난 12년간 내 즐겨찾았던 캘리포니아 사막에 꼭 같이 가보고 싶다던 친구, 지난 여름 백두산 천지에 홀로 올라가 감동하여 울었다던 친구,
무엇보다 이 노래가 유행할 무렵, 나에게 등산의 기쁨을 소개해 준 그 친구가 보고 싶다....
너 거기 북한산 밑에서 잘 있느냐 친구야~
나 여기 뉴한산 아래서 잘 살고 있데이........
첫댓글 와!! 어쩌면 이렇게 재밋게 쓰냐???? 술 한잔 쏘고싶다. 은밀이 전화해라..요...
은밀하게건, 공개적으로건 전화번호를 알아야 전화를 하죠 ^^ 언제 정말로 진하게 술 한잔, <목로주점>같은 곳에 데리고 가서 쏘아 주시길. 그 때 위에 쓴 얘기 보다 더 재밋고, 정감있는 얘기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 <산나물>하면 전 설악산 입구 설악동이라는데서 어느 해 겨울 (아마도 1983년 - 84년 쯤) 시켜 먹었던 <산나물 비빔밥>의 맛을 잊을 수가 없어요. 산골에서 태어났는데도 거기서 먹었던 산나물의 맛이란 참 독특하였죠, 그리고 뉴한산의 산나물 아가씨를 만나게 되니, 올 해, 2010년부터 로그인 이름을 본명에서 예명 <산도화>로 바꾸겠습니다. <산나물>아가씨와 <산도화>총각, 짝이 나쁘지 않죠?